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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초, 고마리, 꽃다지, 패랭이꽃, 메꽃, 흰독말풀, 부들, 갯까치수염, 왕고들빼기... 저자가 산책길에서 만나는 들풀들이라고 하는데 내겐 낯선 것들이다. 아마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혼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일 거다. 우리도 살다보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같이 고독하고 허전하며, 지금까지 이룬 것 하나 없이 무엇하고 살아왔는지 허망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자는 흔들릴 때 산책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이런 시름들이 모두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산책으로 사라지지 않는 거대한 슬픔은 몇 가지 안될지도 몰라. 걷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21쪽)
이 책은 매일매일의 산책에서 만난 별것 아닌 들풀로부터 위로받고 천천히 괜찮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상을 적은 에세이집이다. 나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며 나무와 풀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같은 산책을 하면서도 누구는 더 많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었다. 우리가 멈춰 서서 한 발 다가갔을 때 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묵꼬치처럼 기다란 갈색몸통의 부들이 폭신폭신했다. 목이 긴 화병에 꽂아 놓으니 초가을 햇살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이 폭신한 것은 보기에 예쁘지만 오래 두면 한계를 모르고 터져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말랑한 몸통 안에 민들레 홀씨처럼 공기 중에 날아다닐만큼 가벼운 솜털 씨앗들을 숨기고 있다. (118쪽)
들풀들의 사진과 함께 꽃말과 꽃의 특징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더 쉽고 흥미롭게 읽혀진다. 이름만 들었을 땐 잘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나도 산책길에 만난 듯한 것들이 많다. 물론 가평 설악면의 조용한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40대 저자가 만날 수 있는 들풀은 도시에 사는 나보다는 훨씬 다양할 것이다. 클로버가 지천이면 이제 본격적 여름이 되었음을 알고, 제비꽃은 혼자서도 악조건에서 살아남는 강인함을 가졌다는 사실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내가 이순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인지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불혹의 자세로 나아가려는 저자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따라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들풀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모습은 인생의 연륜이 쌓여가는 바로 그런 모습은 정겹게 다가온다. 그 동안 나를 물들게 했던 타인의 평가와 시선과 기대와 기준이 서서히 빠져나가며 온전한 나를 만나는 경험을 이야기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를 통해 또 이 책을 통해 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자신도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배우게 된다. 이 책은 특히 산책길에서 잠시 멈춰 만난 초록이 우리에게 건내는 위안의 말을 저자의 감수성을 통해 필터링해 듣게 해 준다. 사람은 흔들리기 마련이고, 자연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라도 이런 것들을 자주 체험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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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굉장히 우울했다. 이십 대에 바라본 마흔은 우리가 넘지 못할 선으로 여겼었다. 마지노선처럼 여겼던 마흔을 눈앞에 두었을때 세상을 등지는 것마냥 그렇게 방황했었던 것 같다. 마흔을 넘기고 후반부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적응을 하게 되었다. 마흔이 가진 나이를 인정하니 마흔이 가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조금쯤은 삶을 제대로 살아볼 나이이기도 하다. 여전히 방황하고 조그만 것에도 흔들리지만 사십 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말한다. 지금이 훨씬 좋다고. 아스라히 떠오르는 이십 대의 기억은 아픔 뿐이어서,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지만 다시 돌아가도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조금쯤은 알아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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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직장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과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1년의 시간을 휴식으로 채울 것인가 여전히 생각중이다. 오후가 되면 나는 집을 나선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긴팔 티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햇빛 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산책길을 향한다. 처음엔 가지만 앙상했던 산책길의 메타세콰이어는 지금은 푸르른 초록으로 변했다. 변해가는 초록의 향연에 눈이 부셨다. 메타세콰이어 아래쪽에는 맥문동이 자리잡고 있다. 작년에 보라색으로 예쁘게 피었던 기억이 떠올라 하루하루 변해가는 나무 색깔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조금씩 푸르러지더니 초록으로 무성해졌고, 햇볕이 비치는 맥문동이 하나씩 꽃을 피우더니 활짝 피워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맥문동이 피기 전 분홍색 상사화가 먼저 피기 시작했고, 꽃댕강나무도 꽃을 피웠다. 개망초도 피고 산책길 바깥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때문에 도라지꽃, 깨꽃 등 변해가는 들꽃들의 아름다움때문에 걷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개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별것 아닌 들꽃에도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여도 초록으로 피어난 들꽃으로 보고 있으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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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평의 설악면에서 작은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에세이스트다. 벌써 세 권의 책을 냈다고 했는데 저자를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었음에도 작가라는 걸 몰랐다. 짧은 글과 사진을 바라보며 멋진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구나, 라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 게 다였다. 저자가 걸었던 길을 글로 읽으며 나는 길가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새로운 이름도 있어 들꽃들도 이렇게 예쁜 게 많구나 했다.
어떤 것이든 어떻게 바라보느야에 따라 그것이 소중하고 어여쁜 법이다. 하루의 일상인 산책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들꽃의 이름을 알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나이건 흔들리는 법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아닌 자발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딸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또한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세 번씩 아파트 내의 요가교실에서 요가를 했다. 코로나-19때문에 요가 수업이 중단되어 몸이 굳어 있었는데 다시 연다는 문자를 받았다. 반가웠다. 다시 몸을 정돈할 수 있겠다. 저자 또한 주민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요가를 한다고 했다. 느린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과도 닮았다. 하루에 쌓아 둔 묵은 마음들을 내려보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는 것 또한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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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은 작아서 더 오래 내 곁에 남는다. 크고 무거운 것들은 생의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져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비싸게 돈 들여 산 옷이라도 옷장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결국 버려지고 만다. 작은 드리퍼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208페이지)
소소한 일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들꽃과 더불어 잔잔하게 빛났다. 저자가 찍은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고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조그만 들꽃 하나에 마음을 주는 이야기에 감동했다.
성공한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여백 없이 빵빵하게 명예까지 얻는 삶이 아니라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나 한 가지쯤 남보다 못한 무엇, 남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이 언제 어느 때 아름답게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13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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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으로 물들인 맥문동 길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불어 걷는 나도 매일이 행복하다. 점점 짙어져가는 보라색 꽃, 꽃 모양이 점점 커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 길을 매일 걸으며 생각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마음에게 귀를 기울이며 오늘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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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한창 핀 계절에 시선은 아래로 아래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앙증맞은 꽃을 만날 수 있으니 땅만 보고 다녔다. 볕 좋은데서 옹기종기 모여 핀 봄까치풀꽃과 민들레, 제비꽃, 광대나물풀꽃, 꽃다지, 돈나물꽃, 주름잎, 괭이밥, 고들빼기꽃, 애기똥풀, 메꽃 등 다양한 색감과 향기를 지닌 꽃들을 보고 검색해 알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해가 바뀌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풀꽃들이 이사를 가고, 이사 오기를 여러번 이름을 알아가는 풀꽃들이 더 많아지고, 아래로 향한 내 눈길이 바빴다. 그들의 생명력에 놀라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기와 지기를 반복하는 풀꽃으로부터 배운다. 바람과 비와 추위와 더위에 얼마나 흔들리면서 피고 질까? 씨앗을 멀리 넓게 퍼뜨려 한 해의 맡은 일을 다한다. 다음 봄에는 또 다른 자리에서 내가 이름 불러주었던 풀꽃을 만난다. 겨울을 잘 견뎌 다시 피어서 고맙다^^ 우리네 삶도 풀꽃의 삶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간을 잘 견뎌만 주면 꽃은 기어코 피리라~~~
생물학적 나이 '마흔'이란 시간의 강을 건너가는 사람들도 수시로 흔들린다. 불혹, 미혹되지 않는다고 말해도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이럴 때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흔들리는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 볼 뿐이다. 산책길을 나선다는 사람도 있다. 거기서 만나는 들풀이 주는 위로가 크다고 말한다. 인정^^ 나도 해봤으니까. 지금은 마구 핑계를 대면서 안에서만 뒹굴뒹굴~~~ 책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읽었다.
2020년 연말을 보내고, 2021년 새해가 밝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에다 하루 더 덤으로해서 보내는 시간이다. 일요일 오후 4시에 10살 된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사연인즉, 벌써 4시가 되었는데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텔레비젼만 봐서 속상해 라고....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이 아이의 사연을 보고, 너무 너무 고개 끄덕여졌다. 너만 그렇겠니? 나도 그래. 아니 오후 1,2시만 되어도 벌써 마음이 불안해져. 무엇을 딱히 한 게 없는데, 황금같은 시간만 야속하게 흐르고 있으니까. 한 해를 돌아보는데도 마찬가지고, 새 해가 시작되었는데도 딱히 일상의 변화가 없다. 그저 주어진 덤의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들리는 소리가 부담스럽다.
이 책은 하루를 잃어버렸다고 우는 4시의 아이와 여전히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4학년 7반의 어른아이에게도, 그리고, 그럴때마다 산책길을 나서는 작가의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길을 걸을 때 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꽃, 풀꽃에게 시선을 주는 작가의 이야기에 내 마음이 웃었다. 아..... 세상에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의외로 있구나!!! 풀꽃을 만나고 한참동안 보면서 마음이 쉬어간다. 괜찮다..... 좀 늦게 더디 가면 어때? 내 삶의 보폭대로 걸어가면 되지.
쇠뜨기는 번식력이 강해 아무리 캐내도 그 원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옛 어른들 말씀이 캐다보면 지구 끝까지 간다고도 했고, 하룻밤 새 평양까지 치고 올라간다고도 했다. 3억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 온 역사가 녹록치 않은 식물. 쇠뜨기를 보면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하다는 말이 딱 맞다. 오래가면, 오래 버티면 강해진다고 쇠뜨기가 내 앞에서 말해준다.
고민하는 요즘이었다. 일을 잘 하기보다 일을 수월하게 책임감있게 처리하려고 하는데 바뀔 업무로부터 내 능력이 부족해 해야 될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파고드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처음이란 시간은 누구나 겪는다. 처음부터 전문가가 되고, 업무를 잘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처음의 내가 아니라 처음보다 낫은 내가 되어있다. 뭐든 잘하고 아주 탁월한 사람이 오래 가는게 아니라, 시간을 잘 견딘 사람이 강하다는 말은 들어도 그냥....... 위로가 되는 듯 하다. 아비토끼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일을 하다보면 한 자리에서 1년, 3년, 5,6년, 10년 그 이상이 된다고.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라고.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뭔가 일을 해낸다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인 경우는 내 삶 주변에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일을 한지 횟수로 5년이 되었다. 부족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능숙하게 한다. 그렇더라도 새로이 마주하게 될 환경과 상황에서는 걱정이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쓴 지는 횟수로 13년의 물들임,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돌아보면 대단한 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한지 5년..... 일요일 오후 4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서양 민들레는 다른 동료들이 무성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잘 살펴보면 어디든 혼자 쌩, 볕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곳에 피어 있다. 다른 식물의 그림자에 가리면 금세 시들어버린다. 그러니 한적한 곳을 찾아 피어나는 수밖에. 가을 하늘 아래 풍성한 은행나무도, 조금 떨어질 곳에 핀 서양 민들레도 함께 빛난다. 굵기도 크기도 사람들의 대접도 인정도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같다. 둘 다 노랗고, 둘 다 흔들리며, 둘 다 반짝인다.
모두 때가 있다. 저마다의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힘들 때마다 그냥 내 자리에서 또 견딘다. 그리고, 시간이 저만치 가 있다. 견뎠구나! 넘겼구나! 산책길을 나서야겠다. 풀꽃을 만나러~~ 움츠러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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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면 엄청 어른인 거 같고 대부분의 일들이 다 해결되어 있을 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아니었다. (6페이지) 왜 하필 마흔일까. 인생의 계단을 한번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10년이라는 간격이 있었지만, 스물 서른을 넘기고 마흔에 다가간 감정을 확인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을 거꾸로 묻고 싶기도 했다. 살면서 흔들리지 않은 때가 언제였더냐고, 그런 때가 있다면 오히려 흔들리지 않은 때를 세는 게 더 빠르겠다고. 하루를 보내면서도, 몇 년의 세월을 넘어가면서도, 한 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작은 선택 하나를 할 때도, 갑자기 닥친 큰 문제를 해결할 때도 언제나 마음은 위태로웠다. 그저 그 순간, 오늘을 잘 건너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마흔 즈음의 흔들림은, 그냥 우리가 사는 모든 찰나의 순간이 이어져가는 거라고 느껴진다. 어차피 오늘도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고, 내일도 흔들리는 날들을 감당하면서 걸어갈 테니까 말이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작가는 마흔에 접어든 순간의 일상이 흔들림을 경험한다. 작가라고 하기에도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고, 프리랜서 작가로의 일도 그즈음 줄었다고 한다. 소박하게 꾸려가는 작은 책방 역시 현상 유지만 할 뿐이라니,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한 오늘이겠는가. 중학생 딸과의 관계도 잘 이어가야겠고, 저자 자신의 삶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데, 무엇 하나 완벽하게 갖춰진 것 같지도 않다. 나이 마흔. 어릴 때 들었던 마흔이란 숫자는 참 대단해 보이고 굉장한 어른이 된 것만 같았는데, 막상 자기 앞에 닥친 마흔은 아직 어른도 아니었고, 마냥 편하게 안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가까운 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 마흔이 넘으면 뭐든 다 자리 잡은 상태일 거라고, 결혼하고 직장 잘 다니고 아이 키우면서 걱정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내면 될 것 같았다고. 그런데 현실은 한없이 불안하고 아직도 아이인 것만 같은 날들이라고, 적성과 다른 직장에서 버티는 나날에 '억' 소리 나는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고. 계속 달린 것 같은데 왜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지 모르겠다고, 죽을 때까지 자리 잡기는 잡는 거냐면서. 누구나 오늘을 살면서 느끼는 건 비슷한 것 같다. 괜찮을까 하면서 나아가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또 마음이 갈팡질팡 우울해지고.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다른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삶. 저자도 비슷하게 말하더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느냐고. 나도 웃으면서 그런 말 자주 했다. 다시 고3으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친구 말에, 나는 그때로 돌아가도 공부를 더 열심히 잘할 것 같지는 않다고.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고 선택하고 싶다고.
아마도 저자는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붙잡아줄까 하는 바람으로 걷지 않았을까 싶다. 잠깐 걸으면서 눈앞의 것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록한다. 넘어질 것 같을 때 걷기로 한 저자의 발걸음이 여러 곳을 향하고 많은 것을 보게 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반려견과 함께. 아름다운 이름과 꽃말을 가진 식물들, 들꽃이라 불리며 길가에 단단하게 피어 있는, 풀 같으면서도 피어있다는 것 자체가 예쁘고 고운 것들. 항상 다니던 길인 것 같은데 왜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나 싶어서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다. 패랭이꽃의 화려한 색을 왜 못 보고 지나치기만 했는지, 왕고들빼기꽃이 이렇게 예뻤나 싶고, 강아지풀의 꽃말은 왜 동심과 분노처럼 대조적인지, 담쟁이가 덮고 있는 저 담 너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면서, 길에서 마주친 꽃과 풀에서 섞여 나오는 자기 이야기에 인생의 어느 부분을 되새기기도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마주하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시간과 만났다. 물가에 핀다는 고마리를 보면서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인생을 생각한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게 인생이겠거니 하는 마음의 긍정을 찾는다. 가슴에 뭔가 꽉 찬 것처럼 답답한 속내가 길에서 만난 작은 꽃 하나에 스르륵 풀리기도 한다. 나를 숨 가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눈을 돌리니 주변이 보이고, 소소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흔들리는 마음에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여기저기 뿌리내린 작은 초록들은 제각각 자기의 모습 그대로 꿋꿋하게, 누가 와서 봐주지 않아도, 조금 천천히 자라도,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남은 생은 실속 있는 알밤처럼 알맞게, 매달려 있을 만큼만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행복하고 불행하다가, 적당히 얻기도 하고 내주기도 하면서, 적당히 여물어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속도이자 앞으로도 쭉 유지하고 싶은 속도이고 내 꿈이다. (171페이지) 작은 것들은 작아서 더 오래 내 곁에 남는다. 크고 무거운 것들은 생의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져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비싸게 돈 들여 산 옷이라도 옷장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결국 버려지고 만다. (중략) 사람과의 관계도, 그밖의 많은 것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연스레 정리되기 마련이다. 작은 관계, 작은 성취, 작은 성공, 작은 수고, 작은 행복, 작은 즐거움, 음악, 색깔, 향기처럼 아예 손에 쥘 수 없는 것들. 인생에 중요한 건 웅장한 게 아니라 작고 사소해서 긴밀하고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208페이지)
마음이 괜찮지 않은 어떤 날들은 흘러갈 거라고 위로하는 글이다. 길가에 보이는 꽃과 풀을 보면서 자기가 흘러온 시간을 반추하며 하는 이야기가 새삼 낯설지 않다. 땀 흘리면서 걷던 어느 저녁 시간이 개운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나를 감싸고 있던 것들에서 잠시 눈 돌리는 땡땡이가 필요하다.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지는 날들과 마음을 기대하면서 공감하는 문장들이다. 어제 저녁에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밥 한 숟가락 밀어 넣고 울컥하는 기분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놀랐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요즘 며칠 괜히 우울하고, 워낙 집순이인데도 반강제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니까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득하다. 핑계지만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드니 살이 찌는 속도도 빠르다. 반년 넘게 심각한 감염병 때문에, 긴 장마에 안 나가고, 폭염에 숨이 막혀서 못 나가고, 태풍이 몰고 오는 바람이 무서워서 스스로 집안에 가두는 시간. 가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로수 잎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꽉 막힌 속을 뚫을 수 있는 것은 문득 시선을 돌린 어느 곳에서 발견한, 소소한 것 하나에서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오늘은, 마음을 묶어두는 것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은, 태풍이 지나간 어느 길 위를 땀 흘리면서 걸어도 좋은 하루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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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부드러운 에세이집 한 편 읽었습니다. 그동안, 아니 어쩌면 2020년 8개월 동안 날 서고 모난, 화가 나고 무서운 글들만 읽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눈 뜨며 바로 접하는 뉴스들과 세상 변화를 알기 위해 읽는 책들이 어딘가 겁이 나고 무섭고 두려운 내용 일색입니다. 뭔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유의 글들. 어딘가 사람을 날카롭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글들이죠. 이런 글들 속에서 쉼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부드럽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읽으며 포근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어요. 책 제목은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라고 적혀 있지만,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부드럽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느낌이 강해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느낌인지. 반갑습니다. 책은 글쓴이의 일상과 그 일상에서 느낀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드러내주는 꽃과 풀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꽃들은 생긴 모양이나 제각각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성격을 띠며 살아갑니다. 어떤 꽃들은 세상의 모든 관심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듯 본인의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뽐내고, 어떤 꽃들은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어느 한구석에서 아주 자그마하게 꽃을 피웁니다. 또 어떤 꽃들은 짧은 시간 일제히 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어떤 꽃들은 오래오래 꽃을 피웁니다. 저마다의 형태, 저마다의 삶의 방식들. 풀도 마찬가지죠.
그런 다양성이 이 책을 쓴 이에게 다양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꽃은 꽃일 뿐이고 풀은 풀일 뿐이지만, 글쓴이의 마음이 다양한 해석과 감정, 깨달음을 느끼게 한 것이겠죠. 그래도 좋습니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것은 대단한 결단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도시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이 책의 글쓴이는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반대로 시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기서 한 박자 여유로움이 느껴지네요. '쉼'이라고 해야 할까요.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과 달리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져요. 싱그러움도 함께요. 오늘도 흔들리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고,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과 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갑갑하고 숨 막히는 코로나 시대에, 책으로 여유와 쉼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푸른 여유로움을 드릴 수 있는 책입니다. 흔들리지만, 아름답게 피고, 오히려 흔들려서 아름답게 보이는 꽃과 풀들. 우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흔들려서 인간다운, 흔들려서 아름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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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들풀과 함께 건네는 다독임. 특히 마흔이라는 나이에게. 마흔에게 오기까지의 나에게 건네는 다독임.
하아. 마흔.. 마흔.. 오지않을 것만 같았던 마흔. 올텐데. 코앞인데. 흐엉. 이제 어떡하지? ㅠㅠ
들풀과 함께 담은 저자의 위로가 잔잔해서 좋았다. 글과 함께 있는 사진도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고.. 화려하지 않아도 각자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들풀. 매일 걸으며 이름도 모르고 지나치기만 했던 들풀들을 마주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들풀이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모으는 시선으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들꽃과 들풀. 그리고 공감할 만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글과 사진.
가평에서 작은 책방 '북유럽'의 주인장이기도한 저자. 길가의 초록이 주는 위로를 깨닫게 된 후 부지런한 산책가가 되었고, 세상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꿈이라는 저자.
아.. 뭔가 예쁜 들꽃같아.. 비바람에 흔들렸지만 잘 버텨내었다고 환하게 웃어주는 것 같았어.... :D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에 넘겨 본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덕분에 괜찮아졌어..
■ 책 속으로
![]() ▲ p.47 _ 선택되지 않은 기쁨
나를 선택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었다. 노력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행운은 욕망의 반대편에 있는 빌어먹을 내 인생.
![]() ▲ p.83 _ 둘 다 흔들리며 둘 다 반짝이는
내일을 기다리고 그 하루가 신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빛이 나던 때. 그때의 나는 모든 게 서툴렀지만 대부분 잘해냈다. 잘 해내지 못해도 툭 털고 다시 앞을 잘 달려나갔다. 그때의 나는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심장을 뛰게 하던 가슴 속 방망이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 p.211 _ 작은 것의 긴밀함
아직 꽃말이 없는 작은 꽃마리에게 꽃말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사소한 행복'이라고.
![]() ▲ p.242 _ It's getting better.
삶이 질경이 같기를 바란다. 밟히고 밟혀도 조금씩 나아가는 삶. 인간으로 존엄함의 경계를 지키며 나아지는 삶. 기꺼이 토끼와 말의 먹이가 되어주는 그 키 작은 풀처럼 작고 소중한 관계라도 놓치지 않고 내어주는 삶. It's getting better and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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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긴 하지만 아주 천천히, 정말 조금씩, 그렇지만 분명하게 괜찮아지더라고. 그러니까 사십 대는 흔들리지만 분명히 괜찮아지는 날들의 합인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p.6~7)
#오늘도흔들리는중입니다 #이재영 #흐름출판 #에세이 #에세이추천 #추천에세이 #책추천 #추천도서 #위로 #공감 #다독이는글 #괜찮아지는날들 #마흔 #괜찮아지는날들의합 #걱정하지마 #또르르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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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란, 어린날 나에게는 그저 부모님의 나이였다. 분명 그랬었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기에, 우리 부모님은 마흔을 지났고, 나는 삼십대에 들어섰다. 이제 마흔이란, 다가올 내 미래가 되었다.
내 이십대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사회초년생때 남들에게 말해도 우쭐할 만한 직장에 들어갔고, 이십대 후반에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나도 신랑도 워낙에 성실한 성격이기에, 이십대를 참 성실하게 보냈다. 일할 땐 열씸히 일했고, 놀러다닐 땐 열씸히 놀러다니고. 그렇게 이십대를 보내고, 삼십대가 되니 조금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이게 또 살다보니 아이가 생겨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지금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엔 썩 좋은 환경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잘 자랐고 우리 신랑도 잘 자랐으니까 내 아이도 잘 자라지않을까 싶은? 아마도 내 삼십대는 내 아이를 낳고, 키우다 사십대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막연하게 그려보는 내 사십대는 땅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그 시절 우리 엄마와도 같은 ‘어른’이었는데, 정말... 정말 그럴까? 나는 흔들리지 않는 사십대가 되어있을까?
이미 사십대를 지난 우리 엄마도 많이 흔들렸을까? 그때마다 어떻게 다잡았을까, 무엇으로 위로받았을까, 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 속의 저자는 딸아이가 던진 한마디 한마디에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 내가 책에서 정말 멋진 말을 읽었는데 인생은 물 흐르듯 흐르는 거래. 그래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대. 눈 때문에 이모랑 석준이가 못 와서 아쉬웠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대신 눈이 왔잖아“ p 040 아무것도 아닐 것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것을 주워 든 아이의 손이 엄마처럼 나이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마도 부모의 욕심이려나? p 079 나는 저만할때 엄마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엄마에게, 어린 내 한마디가 상처가 아닌 위로가 되었길 바랄 뿐이다. 누구도 다시 엄마가 되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부분 결혼 이전의 삶이 지속됐을 거라고 했다. 밥벌이를 하고 좋아한하는 일을 하며 휴식을 취하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해서 벗어났던 그 삶을 이어왔을 것 같다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정을 해봤다. 과연 내게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p 068 조금은 먹먹한 문장이었다. 난 엄마의 청춘을 갉아먹고 이렇게 컸다(물론 아빠의 청춘도 갉아먹었다). 하지만 난 이렇게 멀쩡하게 제 밥그릇을 챙길 줄 알고, 제 스스로 인생을 사는 건, 내 스스로 잘 컸기 때문에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그랬다. 심지어 결혼하고 나서도 그랬다. 참으로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어디까지나 엄마가 본인의 청춘을 희생했기 때문에, 엄마의 청춘을 내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렇게 멋지게 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가 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엄마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의 어릴적 꿈이었던 서점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다른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었을지도? 하지만 엄마는 나를 선택했다. 그 모든 기회를 저버리고, 나를 선택한 엄마는 나를 키움으로써 그만한 행복감을 얻었을까? 나는 그만큼 엄마를 행복하게 해줬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고 장담하기엔, 잘못한 일이 많다. 만약 우리 엄마가 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살고 있었을까? 사십대가 될 미래의 나를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왠걸. 나를 키우기 위해 청춘을 바친, 사십대를 훌쩍 넘긴 엄마가 떠올랐다. 사람은 자기 자식이 생기면, 그때서야 부모마음을 조금은 알게 된다는데. 나도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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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다지도 끊임없이 흔들리는가?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더 이상 반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나는 자연을 택하겠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가평에서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운영 중인 에세이스트 이재영의 세 번째 에세이. 그녀는 매일의 산책에서 들풀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세상에 산책으로 사라지지 않을 거대한 슬픔은 몇 가지 안 될지도 모른다’ 자연을 홀대해 우리가 받은 재앙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을 사랑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았음에 벌을 받을뿐, 우리는 그래도 자연을 사랑한다. 흙내음, 빗소리, 바다의 짠내, 숲속의 나무향은 나를 설레게 한다. 아마도 저자도 그러했으리라. 그녀는 들풀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유홍초, 고마리, 꽃다지, 쇠뜨기, 왕고들빼기. 나도 이제 자그마한 들풀들을 들춰보아야겠다. 그 작은 들풀들에게 나 또한 위로를 받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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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하루는 '겨우'라는 부사만 넘쳐났다. 겨우겨우 일어나고, 겨우겨우 밥을 먹고, 겨우겨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가고, 겨우겨우 일을 하고, 겨우겨우 잠들었다. 대구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알렉스 카츠의 인터뷰 기사도 겨우겨우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려다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청년 같은 그 뒷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겨우'라는 늪에 빠져 있는지 깨달았다. _ P.89~90
지금의 나를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든다면, 이 문장처럼 '겨우겨우' 무언가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 '겨우겨우'와 비슷한 뜻이지만 어쩐지 더 위태롭게 느껴지는 '간신히'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느 순간 내가 이미 '간신히'의 늪에 빠져있다는 걸 또 '간신히' 발견하게 되었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을 뿐임을 깨달았다. 간신히 일어나고, 간신히 밥을 하고, 간신히 아이들을 돌보고, 간신히 하루를 보내고, 정말 간신히 잠드는 삶. 반쯤 잠든 채 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선명하도록 맑은 정신으로 삶을 바라보고 싶지만 자꾸만 꾸벅꾸벅 조는 일상의 반복.
'겨우겨우', '간신히' 무언가를 하는 삶에서 미치도록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그 늪을 벗어나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힘을 빼고 다시 천천히 떠오르기 위해, 손을 뻗어 무엇이라도 부여잡고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간신히 책을 읽는다.
마흔은 괜찮지 않았다. 다 뿌리내린 줄 알았는데 그 뿌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삼십대를 지나면서 이제야 자리를 잡았나 했는데 마흔이 되니까 이십대처럼 다시 위태로워졌다. 마흔은 그런 나이였다. 다시 흔들리는 나이. _ P.5
십대와 이십대를 겪으며 나이 들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단단해지고, 현명해지고, 분명해지리라 기대했었다. 멍청이 같고 두부처럼 무르고 속빈 수수깡 같던, 젊음 말고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시절. 약한 바람에도 갈 길을 잃고, 작은 돌멩이에도 툭툭 꺾이고 무너져 버리던 그때에 가장 기대했던 나이가 바로 마흔이었다. 마흔이 되면 무어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명확하고 선명한 삶이 나를 흔들림 없이 걷게 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곧 마흔이 되는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바보 같고 줏대 없으며 연약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얼 하며 살았나 허탈해지던 마음에 그녀가 말을 건넨다.
마흔은 그런 나이라고. 다시 흔들리는 나이라고. 연약한 나의 뿌리를 깨닫는 나이라고.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그 모든 곳에 내렸던 나의 뿌리들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진짜 나만의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것들에 휘둘리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 마흔쯤 되면 이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상대방의 기분에 맞추느라 나를 소비하는 일은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함부로 헝클어트리도록 내버려 두었던가 보다. 하나씩 어둠 속에 잠겨들고 나면 오롯이 내가 보이는 시간이 찾아온단다. 마흔에 마주치는 나만의 시간. 오롯이 나를 비추는 조명 속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일.
나는 그녀 덕분에 조금 덜 흔들리며 마흔을 맞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벌써 마흔인데 이룬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시간들이 내게 쏟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하나는 미리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흔에 나는, 그녀가 일러준 대로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과 고민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면 몰랐던 나를 뒤늦게 발견하기도 하겠지. 내 안엔 나도 모르는 내가 여전히 많으니까.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마흔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내 맘을 잡아채버렸지만, 딱히 마흔을 위한 위로라고 규정지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흔들림을 느끼는 때라면 그게 어떤 나이라고 해도 우리들에겐 손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삶은 우리를 끝없이 뒤흔든다.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우리를 스쳐지나 가지만, 가끔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태풍의 힘으로 우리를 내동댕이 치기도 한다. 살면서 넘어지는 날이 얼마나 많은가. 내 잘못으로 넘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밀쳐서 넘어트리기도 한다. 가끔은 삶이 직접 손을 뻗어 우리를 넘어트린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지쳐버린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거울 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녀는 산책을 한다. 반려견 하이와 함께 매일 동네를 걷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식물이 아닐까 싶다. 싹을 틔우고, 잎을 올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간의 흐름. 그 흐름 속에 계절이 있다. 그녀는 매일매일 산책을 하며 식물을 만나고, 그 식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계절을 배운다.
그녀가 그렇게 깨닫게 된 계절의 의미. 식물의 이름과 담긴 뜻을 통해 더 넓게 보고 깊게 느끼는 그녀의 시선이 다정하면서도 따뜻했다.
부끄러운 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종종 이기적이고 못된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감추고 싶은 순간의 얼굴들도 말갛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식물의 말간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본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녀가 드러낸 숨기고 싶은 얼굴들마저도 전혀 못나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미 그녀의 얼굴이 식물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봄 풀처럼 보드랍다.
개미와 꿀벌의 도움을 받다가 더 이상 꿀벌이 오지 않으면 스스로 수분 과정 없이 스스로 씨앗을 맺어 생을 연장시킨다. 자가수분, 자가수정.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해낸다. 악조건에 적응하다 보니 이게 가능해졌단다. 처음부터 앙다물고 살아남은 건 아니다. 하다하다 안 되면, 아무리 해도 어려우면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스스로 해낸다. 올 봄에도 어쨌든 제비꽃은 피었다. 좁은 틈에서 애를 쓰면서도. _P.36
너무 좋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화나거나 너무 재미있거나 너무 벅차서 끓는 점을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감정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지 못해 결국 넘치고 졸아들어버린 시간. 삶은 그래서 항상 짜다.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자란다는 염생식물 갯까치수염. 짜디 짠 인생에도 예쁜 꽃이 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갯바위의 하얀 꽃 _ P.111
'위로' 소란스럽거나 화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조용하고 묵묵하고 다정할수록 더 진심으로 느껴지는 것.
그녀의 위로는 조금도 소란스럽지 않고, 강하거나 직설적이지도 않다. 식물을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들이 강경하고 딱딱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주 보고, 오래 보고, 깊이 보는 것들은 결국 동화되어 간다. 그녀가 식물을 바라본 시간들이 그녀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 그녀의 내면을 보드랍게 만들어 주었나 보다. 보드라운 위로가 너무 좋아서, 나뭇잎을 쓰다듬듯 책을 쓰다듬어 본다.
힘들 때 나는 초록이 많은 곳으로 간다. 그녀에겐 가평이 이방의 도시이겠지만, 내게는 풀보다 아파트가 더 많은 도심이 이방의 세계다. 온통 바다와 풀과 나무와 흙이 있던 곳에서 나고 자란 나는 초록의 위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회색 도심이 더 혹독하다. 그래서 자꾸만 초록으로 손을 뻗는다. 그녀는 회색 도심에서 벗어나 초록의 나라로 가 뿌리를 내렸다. 분명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가 될 것이다.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느라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도 이방의 이곳에서 기어코 살아가기 위해 애쓰기로 한다. 보도블록의 아주 좁은 틈 사이로도 아름다운 보랏빛 꽃을 틔우는 제비꽃처럼. 나도 작지만 아름다운 연한 보랏빛 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 애써야겠다.
그녀의 초록 일상이 조금은 부럽지만, 여리고 연약해 보이는 식물들이 어느 곳에서든 싹을 틔우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기에 나도 이곳에서 삶을 버텨본다.
'해와 달과 바다, 숲과 노을과 안개에 대해. 비열하거나 비겁하지 않은 삶에 대해. 받아들임과 놓아버림에 대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생에 갖춰야 할 예의에 대해.' 이야기 나눌 줄 아는 작가. '세상에 아무런 해 없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
그 초록의 길들을 같이 걸으며 산책하고 싶다. 계절이 바뀌는 미세한 색감을 함께 발견하고, 계절의 소리를 듣고 음미하며, 계절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우리가 지금 걷는 계절은 삶의 어디쯤인지를 가늠해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러다가 다정히, 애쓰는 인생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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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쁜 생활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지만 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쉽게 쓸 수 있는 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만 그것을 누군가 읽어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니까요. ![]() 책을 읽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시골에서 뛰놀던 기억들입니다. 들판에 버려진 목재를 집 삼아 놀거나 개울가에서 올챙이를 잡거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항상 밭이 있었고, 친척 집을 가면 거기도 시골이라 항상 논밭이 지천에 있었습니다. 벼나 고추 같은 농작물도 있지만 시골이란 다니는 길에조차 풀이 자라서, 흙과 풀을 밟지 않고서는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학교에 가기 전 서울로 올라왔지만, 도시에서의 생활이 뭐 별거 있었겠어요. 그래서 여전히 제 어릴 적 기억은 푸릅니다. ![]()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의 저자는 가평에 내려가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골생활이라는 게 녹녹치가 않아요. 시골집에서는 해야 될 일이 정말 많습니다. 해야 될 일이 많아 바쁘지만 도시에서의 생활과 다른 것은 분명히 있겠죠.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치이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에 치이고, 환경에 치이고. 시골이라고 문제가 없으랴마는 그래도 가장 큰 차이라면 마음의 차이겠죠. ![]() 괜찮다. 다 괜찮다. 하루 일상이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도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작가의 능력은 아닐까요. 길에 핀 들풀과 꽃들 속에서 작은 위로를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그 위로를 얼굴도 모르는 독자에게 들려주는 것.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는 글 속에는 사진들이 너무 튀지 않게 어우러져 흥미를 돋웁니다. 책 속에는 정말 생소한 식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유홍초, 고마리, 미국자리공, 갯까치수염같은 처음 보는 식물들. 길가에 핀 들꽃도 모두 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들의 이름을 찾고 살폈을 마음이 저에게까지 전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사실 도시에서 이미 뿌리를 내린 저로서는 가끔씩 공원이라도 가는 것 외에는 흙을 밟을 일이 없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못하게 되니 사진 속의 들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아요. ![]() 개를 기르는 건 나를 돌보는 일이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대상이 나를 살게 했다는 것을. 가끔은 이렇게 어딘가에 몰두하는 것이 사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걸. 힘이 들어도 해야 될 일은 해야 되고,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숨을 쉬는 동안, 나를 괴롭히던 잡념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 아마 저자도 느꼈을지 모릅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풀과 나무들. 늘 똑같아 보이지만 하루하루 자라나는 들풀을 보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괜찮아지는 날들이 오리라는 것을. 저자가 발견한 것처럼 강하고 질기게 들판 위에 피어난 것들을 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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