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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점으로 ‘위안부’ 역사를 복원하다”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의 캐롤라인 노마 교수가 쓴 <위안부는 여자다>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의 실태와 그 역사적 배경을 천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판 서문에서 “이 책은 ‘위안부’로 억류된 여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피해의 기저에는 전쟁과 군국주의보다도 성착취와 포르노라는 바로 그 남성 우월적 제도가 깔려있다고 지적하는 책이다”라고 이 책의 성격을 요약합니다. 저자는 서문에 이어지는 ‘개요: 첫 번째 피해자’를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중일/태평양 전쟁이 펼쳐지는 동안 일본군은 여러 나라에서 수만 명의 여자를 끌고 와 성노예제를 운용했으며, 그중 한국 여성 피해자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두 전쟁 기간 동안 군 성착취 업소와 ’위안소‘로 인신매매된 일본 여성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일본 식민지 및 점령지, 해외 전방의 군 성착취 업소에서 노예로 생활해야 했던 일본 여자들의 역사를 서술한다.(23쪽)”라고 시작합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발표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일/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행하여지던 다양한 성매매 업소(저자는 이를 성착취 업소라고 합니다)의 행태를 소개하고, 이런 업소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과 같은 식민지에도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 국내에 있던 이런 업소에 있던 여성들을 군부대로 차출해 보내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전선이 확대되고 군인이 늘어나면서 위안부 여성들의 수요도 늘어났고,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어 일본 및 한국과 대만 등의 식민지, 심지어는 점령지에서도 여성들을 감언이설로 속이거나 인신매매의 형식으로 모아 군 위안소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전쟁 전 일본 남성들의 성과 관련된 행동들이 전쟁을 통하여 강화된 것은 전적으로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이런 현상을 가부장 제도를 통하여 공고해진 남성우월주의의 소산이라는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실 예수님 말씀에도 막달라 마리아라는 창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여성들의 성매매의 역사는 상당히 옛날로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 신전의 여사제의 역할 가운데 신전을 방문하는 남성에게 성을 제공하는 것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병사들이 민간인 여성들을 강제로 범하였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으로, 외적이 침입했을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살을 선택한 여성들의 사례를 백제가 패망할 때 삼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고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혹은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성매매에 나섰다는 사실을 소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일본사회에서의 다양한 형식의 성착취 업소가 전쟁 당시 군이 앞장서서 위안소를 운영하기에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군 위안부의 문제를 떠나서 민간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성착취(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주장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성착취의 근본 원인은 가부장제에서 발전해온 남성 우월주의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유학온 남성들을 고용하여 여성들에게 성을 제공하는 업소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업소가 활황을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업소들은 남성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업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성주의 관점에서 이런 업소들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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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띠지에 있는 친일도 반일도 틀렸다는 말이 정말 공감됐다 단어 선택에도 하나하나 신경쓴점이 좋았다 (ex) 업소에서 일한다, 종사한다 대신 매여 있다, 억류됐다라고 묘사한 점) 또 성착취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위안부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이렇게 깊게 써낸 책은 처음인것 같다 나는 위안부가 전쟁 당시에만 생겨난 성착취 형태인줄 알았는데, 전쟁 이전의 성착취 구조로 인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충격적이었고, 성착취의 역사가 이렇게 깊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몰랐던 사실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성착취 피해여성들을 아무 생각 없이 비난했던 지난 날들에 대해서 반성했다. 이런 책을 단어 하나하나 신경 쓰며 번역하고 출판하여 이 책을 만나게 해준 열다북스 출판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들 한번씩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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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복절에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컬러로 복원되어 공개되었다. 미국 국립문서관리청에서 찾아낸 자료였는데 흑백으로 볼 때와 다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중국 학자들이 수집한 증거 자료에 따르면 위안부 수는 36만명에서 40만명 이상까지 추정되며 일본군 병사 수는 300만명이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 여성이었고 20만 명은 중국 여자, 2만 명은 일본인도 있었고 대만과 동남아시아 유럽 국가 출신까지 존재했다. 수 많은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일본은 이 모든 걸 부정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이 모두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재일 조선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탑승한 일본 배 '우키시마호'가 한국으로 오던 중 폭발된 것부터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광복 전에 사살되고, 위안부도 날조, 독도도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현재 일본 내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면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제대로 된 관점에서 바로 잡을 만한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책에는 피해자들의 증언 뿐 아니라 가해자들의 증거자료도 제시하여 보여준다. 일본 장교들이 증언한 사료들이 명백한데 성착취가 아닌 성노동으로 주장하며 정당화하며 만행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매매 체계를 대하는 이들의 대처와 자세들을 여성의 관점에서 더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말하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진주만에서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하기에 급급하다. 매년 다큐로 만들고 몇 년 주기로 영화까지 제작한다. 정확한 역사관계는 언급하지 않고 전쟁 당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취재하며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어떻게 일본인들이 당했는지 일본인 피해자는 몇명인지 그 후에 남겨진 일본인 유족들의 슬픔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시청을 높이기 위해 항상 유명 연예인이 동행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픔을 내세워 과거를 정당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청년 대부분에게 주입식의 그런 프로그램 방영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와 독도 문제들을 주장할 때는 답답함도 느낀다. 현재 전 아베 총리가 퇴사하고 차기 총리로 스가 요시히데가 당선되었다. 그로인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 또한 불투명 할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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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저자가 당연히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캐롤라인 노마’라는 호주 페미니스트 학자셨다. 노마는 거의 400페이지가 다다르는 체계적이고 노고가 묻어나는 글 속에서 현재 ‘위안부’ 운동의 문제점, 전시 ‘위안소’ 제도와 평시 성착취 산업의 유사성,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지적한다.
가장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았던 대목은 국적 불문, 심지어 일본인 포함 많은 수의 여자들이 실은 민간 성착취 산업으로부터 ‘위안소’에 끌려왔다는 부분이었다.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위안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동상을 둘러싼 우익 일본 측과 한국 측의 공방이나, ‘위안부’ 관련 운동, 기부사업 등을 볼 때마다 어딘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불편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바로 ‘위안부’의 대표 이미지 격인 그 동상이 ‘소녀상’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위안부’는 자의에 반해 억지로 끌려간 순수한 소녀라는 이미지가 있다.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의 저자 박혜정은 본 책의 해설 란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소녀상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위안소’에 있는 여자가 아니라,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가기 전에 조선에서 유곽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던 ‘순결한’ 어린 여자인 것이다. … 소녀상에서 당시 ‘위안부’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은 맨발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p. 370-371)
(중략) 이 책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전시 일본군 성노예제가 민간 성착취 제도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다. (p. 37) 그러니 우리는 ‘성노동’ 담론을 벗어나 ‘성매매’가 사실은 성착취 산업임을 인지하고, 다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여성들을 또 똑같은 성노예제로 밀어넣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민간 성착취 산업의 근절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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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가장 놀랐던 부분은, 나도 몰랐던 피해자 구분 짓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흔히 '위안부'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미디어를 볼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추악한 꾀임에 넘어가 불행을 겪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피해자가 된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건 분명히 선경험 성착취의 피해자도 존재했고, 그런데 우리는 그 피해자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순수한' 피해자와 구분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생양 삼기는 비단 '위안부' 문제에만 국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이 전시 상황 이전에 겪었던 성경험 성착취도 분명한 폭력이었으며, 돈을 원해 스스로 선택했다 할지라도 과연 그 선택이 100% 자발적이었냐고는 의심해야만 한다. 평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굉장히 편안하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는 과정 중에서 묵살당한 피해자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비단 '한국의 '위안부''에 국한되어있지 않고 좁게는 일본, 넓게는 아시아 부근의 성착취가 왜 잔혹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우리 인식에 스며들게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드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래도 나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느꼈던 내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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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에 쓰인 '여성주의 관점으로 위안부 역사를 복원하다' 문구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이 책은 이 때까지 내가 읽었던 어떤 글과도 다른 방식으로 해당 역사에 대해 접근한다. 다른 책 및 글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숨겨진 피해자 언급'과 '단어의 선택'이었다. 첫째로, 나는 내가 생존자 증언집도 읽어왔고, '위안부'를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및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해왔으니 피해자에 대해 어느정도까지는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오만이었다. 폭력에 의해서 또는 누군가에게 속아서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 및 중국 등 다른 국적의 피해자가 있다고 알아왔다. 이미 '성착취'당하던 여성들이 인신매매 되어 '위안부'가 되었으며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숨겨지고 지워지고 있다는건 이 책을 통해서야 겨우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겨우 '위안부'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도 가해자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열다북스의 책을 읽을때마다 번역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전시 성노예제, 전시 성착취제'야 말로 오히려 진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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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에 쓰인 '여성주의 관점으로 위안부 역사를 복원하다' 문구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이 책은 이 때까지 내가 읽었던 어떤 글과도 다른 방식으로 해당 역사에 대해 접근한다. 다른 책 및 글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숨겨진 피해자 언급'과 '단어의 선택'이었다. 첫째로, 나는 내가 생존자 증언집도 읽어왔고, '위안부'를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및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해왔으니 피해자에 대해 어느정도까지는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오만이었다. 폭력에 의해서 또는 누군가에게 속아서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 및 중국 등 다른 국적의 피해자가 있다고 알아왔다. 이미 '성착취'당하던 여성들이 인신매매 되어 '위안부'가 되었으며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숨겨지고 지워지고 있다는건 이 책을 통해서야 겨우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겨우 '위안부'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도 가해자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열다북스의 책을 읽을때마다 번역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전시 성노예제, 전시 성착취제'야 말로 오히려 진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