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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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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은 눅진하게 퍼지듯 다가오지 않고, 가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찌르듯 덮쳐온다. 그러므로 솔향을 맡는 이는 누구나 고즈넉함에 기대어 소나무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조용히 마음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내음을 먼저 맡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조용조용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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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은 눅진하게 퍼지듯 다가오지 않고, 가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찌르듯 덮쳐온다. 그러므로 솔향을 맡는 이는 누구나 고즈넉함에 기대어 소나무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조용히 마음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내음을 먼저 맡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조용조용 서로를 탐구하며 가까워졌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냄새는, 아니 향기는 마음보다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전조처럼. 혹은 징후처럼.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일 수가 없어서 카드에 의존한다. 그래서 점을 치는 게임이나 수맥 찾는 막대기 같은 것을 좋아한다. 길을 찾아줘. 금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려줘. 나도 전에 영화에서 본 방법을 써본 적이 있다. 책 한 권을 집어 아무 쪽이나 펼친 다음(『오만과 편견』이 내가 가장 많이 쓴 책이다. 엘리자베스 베넷의 분별력에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손으로 짚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단어를 예언이나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책점'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점술법이다."  (p.356)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는 독특한 여행기이자 도시를 빈둥거리며 구경하는 플라뇌즈로서의 도시 비평서이기도 하다. 엘킨의 여행은 우리를 파리, 런던, 도쿄 등의 풍경 속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 도시들의 속살을 보여준다. 작가는 책에서 때로는 관광객이었다가, 또 때로는 동네 주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민자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엘킨의 숨김없고 솔직한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것도 이처럼 낯선 느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호텔 방에 있다.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첫날밤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 도시, 뉴욕에서. 빙하 위의 동굴에 비할 만큼 에어컨이 세게 나오는 방에서 담요를 둘둘 말고 있다.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는 것 같지만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할 용기가 없다. 누군가가 올라오면 팁을 얼마나 줘야 할까? 팁도 없이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줘서 호구로 보이느니 차라리 추운 게 나을 것 같다."  (p.395)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연코 선택 1순위에 올려놓을 듯한 이 책은 사실 하나의 장점이 더 있다.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의 두께가 그것이다. 책에 빠져들 만하면 금세 책이 끝나버리는 불합리한 책의 두께가 늘 불만이었다면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주목한 여성 산책자들은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걷기와 사색을 통해 자기가 관찰한 삶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고 새로 만들어낸' 예술가들이라고 극찬하며 그들의 작품을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울프는 거리에서 이야기를 캐냈고 자기가 관찰한 사람들, 걷고 물건을 사고 일하고 멈추어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을 채웠다. 특히 여자들.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묘사하면서 울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소설은 반대편 구석의 늙은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아니면 상점의 젊은 여자. "나는 나폴레옹의 150번째 전기나, Z교수가 심혈을 기울이는 키츠가 밀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70번째 연구보다는, 그 여자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p.129)

 

2022년의 설 명절은 가만가만한 냄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분주함 속에 내재된 불안이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위협과 그 위협을 더는 용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반감이 만들어낸 거친 시간이었다. 사랑한다는 건 그와 같이 치솟는 감정을 가만가만 누르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묵묵히 인정하는 침묵의 울음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리저리 공간만 바삐 달라졌을 뿐 '언제'라는 시간에서 다시 또 '언제'라는 시간으로 되돌아온 나는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읽었고, 잔설이 남은 아파트 화단을 먼 시선으로 보고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솔향. 뭔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

s*****l 2022.02.02.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시를 걷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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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로 언제 걷느냐’고.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내 대답은 ‘기분 좋을 때, 기분 안 좋을 때, 생각할 것이 많을 때’였다. 그 대답은 지금도 같지만, 지금은 거기에 ‘아무 이유 없이’라는 말도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는 달리기나 속보가 더 좋지만, 그보다는 ‘소요유(逍遙遊)’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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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로 언제 걷느냐.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내 대답은 기분 좋을 때, 기분 안 좋을 때, 생각할 것이 많을 때였다. 그 대답은 지금도 같지만, 지금은 거기에 아무 이유 없이라는 말도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는 달리기나 속보가 더 좋지만, 그보다는 소요유(逍遙遊)’라는 말처럼 혼자 노닐 듯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도 좋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걸음 가는 대로 걷기에는 혼자가 좋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못 보던 것들이 보이고, 걷는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서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한동안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 산책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혼자 걷는 산책의 여유로움이 여자들에게 허용(!)된 것은 이제 겨우 백 년 남짓한 일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여자 혼자 거리에 나서는 것은 말 그대로 거리의 여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녀들조차 어디든 걸어 다녀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구역의 거리에 나와 있는 정도만 허용되었다. 19세기 말 이전까지 여성이 혼자 거리에 나간다는 것은 평판과 정숙함에 오명을 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으며, 상류층 여성 역시 지붕이 없는마차를 타고 숲을 돌아다니거나 보호자와 함께 공원 산책을 하는 정도만 허락되었다 한다.

 

러시아 귀족이었던 마리 바시키르체프. 그녀는 그림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파리 살롱에 작품을 전시할 정도로 재능을 지녔었지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녀는 18791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 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창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물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걷고, 구경하고, 배회하는 일들이 19세기 이전까지는 (여성들에게만) 금지된 행동이었다니! 이런 시대 배경을 알고 나니 그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에 왜 유명한 여성 화가는 없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된다. 이런 금기가 깨진 것은 1차대전 동안 여성이 노동시장에 대규모로 유입된 이후의 일이다. 그러면서 반() 공공장소인 카페 등에 여성용 화장실이 생기고, 독신 여성이 쓸 수 있는 하숙집도 비로소 등장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저자인 로런 앨킨은 스스로를 플라뇌즈 flaneuse(산책하는 여자)’라고 부른다. ‘거닐다, 산책하다라는 프랑스어 동사 flaner에서 파생된 플라뇌르 flanuer한가롭게 거니는(사람), 빈둥대는(사람)’이라는 뜻의 형용사, 명사로 쓰인다. 그런데 플라뇌르가 여성형이 되면 침대형 의자라는 뜻만 있을 뿐이다. ‘혼자 산책하는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라 그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산책하는 여성이라는 뜻의 ‘flanuese’는 현재도 웹이나 위키사전에만 있는 가상의 정의다.

 

플라뇌즈인 로런은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 같은 도시를 거닐며 자신보다 앞서 걸었던 진 리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등을 자주 떠올린다. 그녀의 산책길을 따라 걷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다시 읽히기도 했고, 소피 칼이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도 떠올랐으며, 나 역시 그녀처럼 도시 구석구석을 걸었던 파리나 도쿄 등의 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녀는 인용한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책이나 주소를 이용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아니라 걸어서, 눈으로 보아서, 습관으로, 경험으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끝으로 사족 몇 가지. 저자는 루스 오킨의 유명한 사진을 예로 들며 ‘20세기 중반 거리 성희롱 장면이라고 했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이 사진은 남자 혼자는 여자들 사이를 못 지나가도, 여자는 남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는 속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사진의 주인공인 모델 크레이그 역시 사진가 루스 오킨과 둘이 도시에서 장난치듯 놀며 찍은 사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하나는 걷는 행위와 관련하여 역자는 계속 산보, 산보하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식 한자어인 산보(散步)보다는 산책(散策)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지금 우리가 혼자 걷고, 벤치에 앉고, 상점 진열장을 구경하고, 박물관에 가고,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는 일은 19세기의 여성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 그 자유로움에 감사하며 더 자주 걸어봐야겠다.

    

d******n 2020.08.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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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배회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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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에 입성했다.작고 조용한 시골 도시에서 유년을 보낸 여덟살 꼬맹이에게 이 거대한 낯선 도시는 꽤나 무섭고 신기한 곳이었으리라.그럼에도 호기심이 두려움을 눌렀고 겁도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점점 활동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다.그렇게 도시에 익숙해지고, 도시의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것이 재밌고 즐거웠다.그 때의 내가 플라뇌르의 소년 버전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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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에 입성했다.

작고 조용한 시골 도시에서 유년을 보낸 여덟살 꼬맹이에게 이 거대한 낯선 도시는 꽤나 무섭고 신기한 곳이었으리라.

그럼에도 호기심이 두려움을 눌렀고 겁도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점점 활동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시에 익숙해지고, 도시의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것이 재밌고 즐거웠다.

그 때의 내가 플라뇌르의 소년 버전 쯤 될라나 ^^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긴 한데, 여자들이 도시를 마음껏 활보한 역사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자들을 집 안에 묶어 두고 남자들은 치사하게 자기들끼리만 도시의 감각을 맘껏 누렸던 것이다.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 여자들도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간다.


스스로 자신이 플라뇌즈임을 강조하는 로렌 엘킨은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통하여 그 자신에 앞서 도시를 자유롭게 거닐며 그 감각에 기대어 전복과 창조를 이루어 낸 선배 플라뇌즈, 여성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첫번째 공간에 대한 사유, 「롱아일랜드·뉴욕」 은 로렌 엘킨 자신이 어떻게 여성 도시 산보자, 플라뇌즈로 태어났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아메리칸 드림, 미국 중산층 신화의 공간인 교외에 대한 로렌 엘킨 만의 통찰이 흥미롭다. 그녀에게 백인 중산층의 공간으로 인종적·계급적 분화가 이루어지는교외는 지극히 보수적이며 반동적인 공간이다.

그녀에게 도시는 삶 그 자체다. 도시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 최선의 기회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속 네 개의 파리 중 마지막 「파리·이웃」부터 산보를 시작했다.

영화 감독 아네스 바르다.

우연한 선택이었는데, 주파수가 맞았다. 작년에 영상자료원 프로그램으로 접한 아네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파리·이웃」의 이야기감이다. 제목 그대로 가수 클레오가 5시부터 (저녁) 7시까지의 파리의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는 영화다. 또한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우울했던 클레오가 주체성을 회복하며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렌 엘킨은 아네스 바르다 그리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정말 좋아하는 팬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시선으로 읽어 주는 이 영화에 대한 독해가 흥미진진하다.


첫번째 파리,  「파리·그들이 가던 카페로 페이지를 돌린다.

진 리스라는 미지의 작가, 그녀의 삶과 작품이 이 구역의 이야기감이다.

어찌할 수 없음의 비감, 그냥 나빠지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진 리스를 닮은 진 리스 소설 여자 주인공들은 기꺼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들에게 무위는 체념을 넘어 가능한 최선의 저항이다. 

아마도 젊은 날의 로렌 엘킨이 푹 빠졌을 이야기들.


아직 런던, 다시 파리, 베네치아, 도쿄, 또 따시 파리, 그리고 뉴욕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로렌 엘킨의 도시라는 유기체에 대한 깊은 애정에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여자든 남자든 자신이 젊다고 느끼는 시절엔 조용한 교외나 전원보다는 활기 넘치는 도시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7 2020.09.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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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뛰쳐나가 거리를 쏘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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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기대했던 바로 그 주제를 관통하는 책입니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도시에 살았던, 그리고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단상이 들어가 있을 뿐, 어디까지나 작가 본인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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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기대했던 바로 그 주제를 관통하는 책입니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도시에 살았던, 그리고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단상이 들어가 있을 뿐, 어디까지나 작가 본인의 인생과 사상과 고민과 철학을 담고 있거든요. 물론 거기에는 앞서 걸었던 여성 선배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긴 하죠.


 에세이가 으레 그렇듯, 특별하게 가지는 줄거리나 명확한 갈등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끊임없는 사유가 둥둥 떠다녀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공감'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닙니다. 꽤나 많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에, 한 줄 한 줄 신경써서 읽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에요. 책 뒤편에 소개된 참조문헌/이미지 출처만 30페이지가 넘어갈 정도거든요. 개인적으로 출처표기가 이렇게 잘 되어있는 책 오랜만에 봐서 좋았습니다. (한국은 이 부분에 엄청 소홀해서 번역하면서 일부러 삭제하는 곳도 있대요. 인용출처 뺀다고 부피에 별 차이도 없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아무튼 설명을 꽤 열심히 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르주 상드'나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같은 예술가에 대해 잘 모르면 쏟아지는 사유의 폭격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거예요. 알면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구요.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걷기에 대한 예찬입니다. '정처 없이 걸으면서 사유하는 자'라는 뜻의 프랑스 단어 '플라뇌르'를 여성형으로 바꾼 '플라뇌즈'에 대한 책이거든요. 산책자, 산보자, 걷는 사람. 플라뇌르는 길에서 대중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19세기 어느 순간까지는 길에서 여성은 너무 눈에 띄는 존재였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여서 플라뇌르가 될 수 없다고 배제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방에서 뛰쳐나와 걷기 시작하는 여성들이 있어왔고,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쭈욱 연장시켜 그들의 인생까지 가 닿게 만듭니다. 걷는 것에 대한 가치를 굉장히 높게 치는데, 이건 약간의 지리적 특권이 포함된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프랑스처럼 산책하기 딱 좋은 기후에 자리잡은 나라가 아니라면, 플라뇌르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 싶거든요.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운 나라이거나 반대로 영상 40도에 가까운 더운 나라라면, 정처없이 쏘다니면서 인생과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지는 않겠죠. 이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로런 엘킨이 걷고 싶어하는 도시는, 과거를 품고 역사를 드러내는 도시입니다. 읽다보면 이 사람이 왜 파리와 사랑에 빠졌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도요. 단순히 풍광이 예쁘고, 깨끗하고, 깔끔한 도시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저자는 거리를 걸으면서 100년 전, 200년 전에 여기서 살고 저항하고 걷고 싸우고 외치고 죽어갔던 수많은 유령들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시를 원하거든요. 그게 바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제1조건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 뉴욕이나, 천편일률적인 현대식 건물들로만 가득한 일본 도쿄에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어요. 천상 파리나 베네치아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 살아야 할 운명입니다. 파리를 걸으면서 68혁명을, 코뮈나르를, 1848년 혁명을 생각하고 그 흔적을 찾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그저 빠르게 현대화되고 흘러가는 도시는 별 매력이 없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로런 엘킨이 서울에 왔으면 도쿄만큼이나, 아니 도쿄보다도 더 학을 떼고 싫어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울도 딱히 걷기 좋은 도시가 아닐 뿐더러,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비슷한 빌딩숲으로 가득찬 느낌이 강하잖아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로런 엘킨의 눈으로 봤을 때입니다. 한국의 남쪽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면서 서울로 흘러들어온 저 같은 사람이 보는 서울은 또 다르겠죠. 심리적 지리로만 따지면, 서울은 뉴욕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모두가 무언가 야망을 품고 도망쳐오는 도시'. 그리고 외부에서 여기에 '살러' 왔지만 속한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인간이 걸으면서 체감하는 도시는 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꾸 운동화를 신고 거리로 뛰쳐나가서 이 획일화되고 무기질한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어졌어요. 로런 엘킨이 바라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바라볼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역사를 가진 채 둘러보는 서울은 어떨까? 그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요즘처럼 산책하기 딱 좋은 기온과 날씨일 때 이 책을 읽게 되어서 행운이었습니다. 자꾸 중간에 책을 덮고 '지금 동네 한 바퀴 돌고 올까' 하는 충동에 시달렸거든요. 실제로 몇 번 나갔다 오기도 했고요.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인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떠날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분명히 로런 엘킨에 대해 읽었는데, '내'가 새삼스레 궁금해지다니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s******8 2020.09.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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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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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오늘날 당연시 되는 것들 중에 예전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여자들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조선 시대 때만 해도 여성들이 장안이라는 시내 거리를 홀로 걷는 건 쉽지 않았다. 외모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어 장옷이라는 걸 둘러써야 했다.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다. 근대 초기만 해도 도시에서 여성들이 걸을 땐 늘 남자의 동반이 있어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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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보면 오늘날 당연시 되는 것들 중에 예전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여자들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조선 시대 때만 해도 여성들이 장안이라는 시내 거리를 홀로 걷는 건 쉽지 않았다. 외모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어 장옷이라는 걸 둘러써야 했다.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다. 근대 초기만 해도 도시에서 여성들이 걸을 땐 늘 남자의 동반이 있어야 가능했다. 도시의 거리를 비롯하여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들도 많았다. 바즈 루어만이 감독하고 니콜 키드만과 휴 잭맨이 주연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1940년대가 배경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호주의 선술집은 여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금녀의 구역이었다. 거리를 걷고 들어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는 그 흔한 일상적인 행위마저 역사를 따져보면 일련의 투쟁을 거쳐서 얻어낸 자유와 권리의 확장이었다. 새삼스레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한 권의 책 때문이다. 여성 문화 비평가인 로런 엘킨이 쓴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 등 주로 도시를 축으로 하여 그 거리를 걸었던 여성 작가를 중심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과 사유를 펼쳐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자신에게 '걷는다'라는 의미에 대해 처음 생각할 계기를 던져 준 뉴욕을 비롯하여 유학을 떠났던 도시에서 받았던 생경한 풍경들 속에서 그런 것을 먼저 경험했던 여성 작가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여 독자 또한 그러한 일종의 문화사적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이 농밀하게 배여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들이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그러한 자신의 삶을 앞서 도시를 걸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잘 조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론 도시를 걷는 여성들의 문화사인 이 책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은 공간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특히나 여성들에게 말이다. 이제는 너무나 흔하게 누리는 자유이자 권리라서 어느덧 잊혀져 버린 엄혹한 세월의 기억을 복원하여 어떤 공간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운다. 


 나를 걷게 하라. 내 속도로 걷게 하라. 삶이 나를 따라, 내 주위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하라. 극적인 일을 보여달라. 예상하지 못한 둥근 길모퉁이를 달라. 으스스한 교회와 아름다운 상점과 드러누울 수 있는 공원을 달라. 도시는 우리를 달뜨게 하고 계속 가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원하고 참여하게 한다. 도시는 삶 그 자체다.(p. 65)


 도시의 거리만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엔 어떤 이는 들어가고 어떤 이는 못 들어가게 하는 관문들이 많이 존재한다. 현대 도시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리처드 세넷은 20세기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도시 대부분이 실은 게토화를 지향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니콜 키드먼이 들어갈 수 없었던 1940년대의 호주 술집 같은 공간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주위의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보듯이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를 벽으로 분리하며 입구에 차단막을 설치하여 다른 사람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과 같은 걸 말이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그런 게토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코로나 19가 다시금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어 자유롭게 걷는다는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작고도 사소한 일상 행위 하나에도 오래 누적된 역사적 과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l****1 2020.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유롭게 걷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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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걷는여자들 #로런엘킨 #홍한별 옮김 #반비 #플라뇌즈 #flaneuse #책서평 #북리뷰 #독서기록 #book #bookreview #서평단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로런 엘킨은 미국 뉴욕 출신으로, 현재는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서 파리와 리버풀 (그리고 아마도 뉴욕도)을 오가며 살고 있다.이 책은 문학 비평가인 그녀가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베네치아에 머물고,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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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걷는여자들 #로런엘킨 #홍한별 옮김 #반비 #플라뇌즈 #flaneuse
#책서평 #북리뷰 #독서기록 #book #bookreview #서평단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로런 엘킨은 미국 뉴욕 출신으로, 현재는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서 파리와 리버풀 (그리고 아마도 뉴욕도)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 책은 문학 비평가인 그녀가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베네치아에 머물고, 남자친구를 따라서 일본 도쿄로 가고, 그간의 여정을 따라서 느꼈던 도시 산보자의 느낌을, 앞서 도시를 걸으며 표현의 자유를 쟁취해 냈던 여성 예술가들의 횡보를 추적하면서 쓴 책이다. 선구자들의 횡보는 저자 로런 엘킨의 자아찾기와도 이어진다.
앞선 여성 예술가들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무렵은, 여성이 혼자 거리를 걷는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샤프롱과 함께야만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노동 계급에 있던 여자들은 거리에 나왔다. 판매원으로도 일하고, 심부름도 했고, 더러는 성매매자로도 일했다. 그들은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반면 남자들은 자유로웠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 도시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관찰하는 산보자를 칭하는 플라뇌르의 여성형으로 작가가 만든 신조어라 한다. 사전에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다.
_
저자는 각 도시를 걸어다니며 발로 쓰는 지형도를 그리며, 골목 골목을 보고 냄새 맡으며, 도시에 대해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등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도시와 어울렸던 여자들을 만난다. (p28)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조르주 상드,아녜스 바르다, 마사 겔흔 등이 그 주인공이다. 로런 엘킨이 도시를 걸으며 그녀들을 만나면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글, 영화 등을 독자인 우리도 함께 읽고 보며, 앞선 여성 예술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이 발견하고 말하고 싶어한 것을 표현할 자유를 투쟁하며 얻었는지, 아니 가졌는지 알게된다.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되찾으려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억눌린 지성과 문화의 역사를 되찾는다. 걸어다니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정의하고 남성의 시건을 전복할 방법을 찾는다. (파이넨셜 타임스) 공간뿐 아니라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성 산보자들은 정처없이 떠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을 통해 자기가 관찰한 삶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며 새로이 만든다.(가디언)
_
몇 번 되지 않지만, 자유 여행으로 여러 도시를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가능한 많은 것을 눈에 담아오기 급급했다. 최근 유행했던 한달 살기 프로젝트라면 조금은 더 그 지역을 경험하고 체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작가가 방문한 도시 중 내가 경험한 도시는 그 묘사 속에서 바로 추억속에 풍덩 뛰어들게 한다. 비록 문화 소비자에 불과한 나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그 도시들을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다시금 여유롭게 걸으면서 그 도시를 냄새 맡고 체험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이전보다는 더 세밀하게 관찰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외국의 도시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서울도 곳곳을 다시 체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인식하고 도전해야겠지. 그 경계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된다. 인생의 후반부를 달려가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인적없는 어두운 밤길은 선뜻 내딛기가 어렵다. 여행중에서도 해가 지면 숙소로 가능한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곤 했다.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여자들에게 용기를 가져야하는 것인지? 이 책은 걷기 예찬으로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걸을 자유,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읽다보면 나서고 싶게 한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멀리 외출하기가 힘든 요즘, 동네에서라도 하루 1시간 걷기를 생활화 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의 타이틀도 미앤더링(meandering)이라고지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정처없이 걷는다는 의미로. 블로그에서는 정신적인 걷기 의미가 더 크지만. 추천한다.

책 속으로//

p42> 걷기는 발로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걸어서 돌아다님으로써 도시를 잘 알게되었다는 데에서 오는 작은 기쁨이 있다..
나는 걷기가 어떤 면에서 읽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걷는다. 걷기를 통해 나와 무관한 삶을 엿보고 대화를 엿듣고 비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거리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란히 걷는다.

p421>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공간은 페미니즘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테헤란이든 뉴욕이든, 멜번이든 뭄바이든, 여자는 여전히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다...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누가 어디에 갈 수 있을 지 경계를 표시하는, 형태가 없는 관습의 문이 있다....보이지 않는 가치가 우리가 도시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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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p******p 2020.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시를 걷는 것이 권력임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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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책이 된다.여행책이 아니다.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책의 띠지에 있는 말의 느낌이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대도시의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여성들을 따라 걷는 여행"어떤 사람은 '여행'에 방점을 찍으며 여성 예술가들의 시선이 도시의 어디쯤에 머물렀을지 궁금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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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책이 된다.

여행책이 아니다.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

책의 띠지에 있는 말의 느낌이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도시의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여성들을 따라 걷는 여행"


어떤 사람은 '여행'에 방점을 찍으며 

여성 예술가들의 시선이 도시의 어디쯤에 머물렀을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내 눈을 잡아끌고 생각에 머물게 한 것은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이다.


이제나 저제나,

여성들이 길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아, 물론.

밝은 낮에 여러 명이, 치안이 확실한 곳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만큼

필요한 업무를 보거나, 잠깐의 산책을 즐긴 다음 

해가 떨어지거나 인적이 드물어지기 전에 각자의 집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길거리를 걷는다'라고 표현한다면 예사로운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알 것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한적한 길거리를, 

아무런 목적이나 생각없이 발 가는대로 혼자서 거닌다는 것은

'위험!' 이란 불을 켜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런 과민한 반응에 씁쓸하거나 

 세상은 위험한 곳이니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지지를 보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도시를 거닐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로런 엘킨은 뉴욕 태생으로 2004년에 파리로 이주해 살고 있는

책, 예술, 문화, 여행에 관해 쓰는 작가이자 비평가다.


그는 길을 걸으며 사유하던 '사람'들 속에서 '여성'의 존재가 빠져있음에

일종의 충격을 받는다.

영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느낀 감정과 탐험심, 열정 등을

플라뇌르(산보자,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이라는 프랑스어) 라는 단어 속에

녹여내려다 발견한 사실.

같은 단어라도 여성형과 남성형 (혹은 단어마다 여성/남성으로 나누는) 

프랑스어의 특성과 규칙에 따라 '플라뇌르'의 여성형인 '플라뇌즈'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바꾼 저자는 사전에 설명된 '플라뇌즈'는 전혀 다른 뜻임을 알게 된다.


19105년의 사전에는 '산보하는 사람'으로 'flaneur, -euse'가 등재되어 있지만

<생생한 프랑스어 사전>에 따르면 플라뇌즈는 '안락의자의 일종'이라고 한다.

산책과 산보라는 뜻의 능동적인 플라뇌르를 여성형 플라뇌즈로 바꾸면 

가만히 앉거나 누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물건이 되어 버린다. 


산책으로 사유하고 철학의 깊이를 만드는 남자들과

거리에 나와 정처없이 돌아다니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여자들.


평판과 정숙함, 안전이라는 가치를 내려놓아야만 여자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안전은 담보되지 않고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행실이 바르지 못해서-/늦게까지 돌아다녀서-/그런 골목에 들어가다니- 로

스스로 위험에 노출시킨 분별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함께 하여도 그 성과를 나눠갖지 못하고,

도로의 이름이나 공공장소의 명칭도 신화 속 인물, 왕족 여성, 여자 성인(saint)에서

민주적 영웅, 지성인, 과학자, 혁명가로 근대적이며 평등하게 바뀌어가는 동안,

문화 자본을 지니지 못했던 여성들이나 다른 인종이 소외되는 일들에 대해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혹은 생각할 이유도 없이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묻혀져 왔던 사각지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작가의 말은

별 생각없이 걸었던 도시의 공간이 얼마나 계급/성별/자본/나이/정치/출신으로 

세밀하게 구별되어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당장 내가 자주 가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머리 속으로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공간을 주로 차지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해보자.

아무도 '금지'하지 않지만 무서울 정도로 놀랍게 사람들의 공간은 나뉘어있다.

분리까지는 아닐지언정, 어색함이나 친숙함을 느끼는 공간이 확실히 있다.



처음에는 여성학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남성의 시선, 제도의 억압, 불안의 이유로 거리를 맨 몸으로 걷지 못하는 여성과

그로인해 예술, 문화, 철학,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면에서 지워진 여성예술가에 대해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점점 책을 읽으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두드러지지 않고,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두 발과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맨 몸으로도

자유롭게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권력이며

(사유지가 아닌) 허락된 공간이라면 어디든 탐색하고 모험하며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안전 뿐만 아니라 할 일에 대한 초조함으로부터 해방되어)

길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로와 길은 다르다.

신호체계가 없고, 속도제한이 없으며,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길을 자기의 속도와 경험으로 활보하는 일이 성별/장애/나이/계층에 따라

한계지어지지 않길 바란다.


길 위에서 드러나는 존재로 인해 

비로소, 있었으나 차지하지 못했던 각자의 모습이 

시대와 세상에 등장하고, 인식되며, 함께 하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r***n 2020.09.1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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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장영은님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시대고 쉽지 않은 여성이라는 존재의 치열한 삶. 그들의 굴곡진 생애와 그 생애 속에서 이루어낸 값진 열매들. 하지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 이후 책에 등장한 여성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작품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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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장영은님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시대고 쉽지 않은 여성이라는 존재의 치열한 삶. 그들의 굴곡진 생애와 그 생애 속에서 이루어낸 값진 열매들. 하지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 이후 책에 등장한 여성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작품은 찾아 읽기도 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가 이 책에서 살아 숨쉰다.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지만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성차별과 관련되어 있기도 했다. 여성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시대, ‘거리의 여자(성매매 여성)’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니며 지금도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밤길의 잠재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도 이와 같은 지적을 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에서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aneuse)’로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엘킨은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걸으면서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길과 저자의 삶 또한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읽어내려가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왜 이리 문장이 턱턱 걸리는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을 때와는 영 다른 느낌이었는데 어째서인지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끌어안고 끙끙 거린 책이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봐야겠다.

 

 

y********j 2020.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시를 걷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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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것이 좋다. 약간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도시의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계절감은 물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시선의 차이 때문인지 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 익숙한 곳을 낯설게 바라보기도 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걷기 좋은 곳들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걷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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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것이 좋다. 약간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도시의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계절감은 물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시선의 차이 때문인지 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 익숙한 곳을 낯설게 바라보기도 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걷기 좋은 곳들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걷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동차에게 내주었던 길을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아. 그 자체로 기분이 참 좋다. 점점 많은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고 싶다.




하지만 이런 걷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과거(특정 국가에서는 지금도)의 대도시에서 여성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성이 홀로 집을 나와 길을 걷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고 자칫 평판을 망칠 수도 있었다. 모두에게 개방된 공공장소에서도 여성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니. 여성들이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 것도 당연하다.

자신을 ‘플라뇌즈(flaneuse-산책하는 여자)’라고 지칭하는 저자는 자시의 의지로 당당하게 세상을 활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책자. 우리나라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아니 없지는 않지만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하고 사전에서 의미를 검색하고 아~ 산책자. 흥미로운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더 흥미로운 것은 '산책자'를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한국어, 한자,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가 검색되지만 영어는 검색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산책자"에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와! 이 단어 평범한 단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들의 걷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저자는 뉴욕과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 등 많은 도시들에 머물려 그 도시를 걸었던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소피 칼, 마사 겔혼 등과 같은 여성들을 떠올린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시선은 다르지만, 이 공간에서 그녀들이 느꼈을 감정과 생각을 상상해보면 '걷는다'것이 이렇게나 의미심장한 의미라니. 행위 자체가 달리 보인다.


그녀들이 걸었던 것은 단지 길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홀로 집 밖을 나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뎌 자신의 인생길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걸으며 세상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이제는 거기에 '나'라는 명확한 기준점을 추가해야겠다. 내가 걷는 이 길을 만들어 온 그녀들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고, 걷고 싶은가!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d****a 2020.08.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시를 걷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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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제목과 감각적인 표지가 돋보이는 도시를 걷는 여자들지금은 어느 누구나 마음껏 거리를 걷을 수 있었지만불과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거나 혼자서는거리를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제한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여산보자 란 의미의 프랑스 말인 ‘플라뇌르(flaneur)’는 남성형 명사인데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간간히 이런 남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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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제목과 감각적인 표지가 돋보이는 도시를 걷는 여자들

지금은 어느 누구나 마음껏 거리를 걷을 수 있었지만

불과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거나 혼자서는

거리를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제한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여

산보자 란 의미의 프랑스 말인 플라뇌르(flaneur)’는 남성형 명사인데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간간히 이런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역시 산보자를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남성형 명사로 사용하였고

여자는 과감히 배제되어 있었다.

책의 저자는 플라뇌르에 대응하는 여성 명사인 플라뇌즈(flaneuse)를 만들어

책 제목으로 쓰고 있다.

아주 가까운 거리를 움직이더라도 차를 이용해야만 하는 미국 교외에서 태어난

저자는 걷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는데 파리에 살게 되면서

그녀는 걷기를 통해 파리를 가장 진하게체험하게 됐고 사라져버린

걷기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이 책에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 등 많은 도시들이 등장하며

이 곳에서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등을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읽었던 싸우는 여자들의 미술사처럼 억압받는 세상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을 표현해 왔던 여자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런 그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좋았던 책

어디선가 지금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n*****2 2020.09.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