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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6권에서 막부의 제2차 조슈 정벌은 1866년 쇼군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1867년 1월 30일, 고메이 천황의 죽음과 함께 그의 아들인 무쓰히토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메이지 천황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미 1868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었음을 알기에 1867년부터 1868년까지 짧은 기간에 무수히 많은 사건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실제 이 책의 대부분은 이 짧은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모리 가문이 많은 봉토를 삭감당한 채 조슈 지방으로, 시마즈 가문이 사쓰마 지방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도쿠가와 막부 체제에서 이들은 변방의 번 취급을 받다가 이제 격변의 시대에 주축 세력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존왕양이'를 내세우면서 막부 타도였다. 1867년 1월 10일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30세의 나이고 정이대장군, 즉 쇼군으로 취임하니 요시노부는 이제 조슈와 사쓰마와 같은 도막파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이미 선대의 쇼군 아래에서 실무를 담당한 인물이었다.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는데, 그가 쇼군에 취임하였으니 조슈와 사쓰마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고메이 천황이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였다는 점이다. 분명 '존왕양이'와 '도막'을 주장하는 조슈와 사쓰마로 기울어야 할 것 같은데, 천황이 오히려 막부를 지지하였다는 점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황 입장에서 일단 조슈와 사쓰마는 반란을 일으킨 역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동안 실무를 막부가 담당하였고, 요시노부 역시 교묘하게 천황을 떠받들고 있었으니 고메이 천황으로서는 굳이 막부와 척을 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메이 천황이 급사하고 무쓰히토가 15세의 나이로 천황의 자리에 오르니 분위기는 급변한다. 일단 메이지 천황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지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11월에 이미 '대정봉환'을 통하여 통치권을 천황에게 바치게 된다. 이는 막부체제의 멸망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막부에게 상당히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요시노부는 천황에게 통치권을 줘도 교토의 조정은 그동안 실무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결국 막부에게 의존할 것임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대정봉환'을 단행했던 것이다. 실제 '대정봉환' 이후 교토의 조정은 오히려 친막부파가 득세를 하였고, 막부는 여전히 일본을 통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천황을 등에 업고 통치를 하였으니 형식적인 부분에서만 막부가 사라진 것이지 이는 삿초(사쓰마와 조슈)가 원하는 막부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정봉환' 이후 삿초는 그러한 문제를 꿰뚫어보고 크게 반발한다. 비록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막부 체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각 지방 영주, 특히 강대해진 조슈와 사쓰마 번의 영주들을 조정의 정책을 정하는 회의에 참석시켰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쓰러져 가는 막부의 희망처럼 유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정봉환'으로 오히려 명분을 획득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열강 세력으로부터도 그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육군과 해군의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사쓰마와 도사, 히로시마, 에치젠, 오와리의 5개 번의 병력은 1868년 1월 3일 새벽에 왕궁을 점거하였고, 어전 회의에서 이와쿠라는 "왕정복고의 대호령"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을 단행한다. 개혁의 주된 내용은 막부의 완전한 폐지였으니 막부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요시노부는 무력 충돌을 최대한 피하면서 열강의 지지와 교토 조정의 친막부파를 동원하여 어전 회의를 다시 장악하면서 이 쿠데타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쓰마 번은 1868년 1월 17일 막부의 중심인 에도 성에 방화를 저지르면서 막부를 자극하였고, 결국 막부 역시 병력을 동원하여 에도의 사쓰마 번저를 전소시키면서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한다. 이를 빌미로 결국 요시노부는 1868년 1월 25일, "사쓰마 징토의 표"를 선포한다. 이로써 1868년(무진년), 전쟁의 막이 오르니 이것이 바로 '무진전쟁(보신전쟁)'이다.
영리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최대한 무력 충돌을 피하면서 도막파에 전쟁의 명분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쓰마 번은 게속 막부를 자극하였고 막부 내부에서도 무력을 주장하는 상황이었으니 요시노부 입장에서는 피하려던 전쟁의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비록 2차 조슈 원정에서 막부가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막부가 동원한 병력은 막부의 주력군이 아닌 여러 번의 군대를 모은 것이어서 실제 막부가 패배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진전쟁'은 육로로는 막부군 1만 5천이 오사카에서 교토로 진군하기 시작하였고, 바다로는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이끄는 신식 해군이 나섰으니 '무진전쟁'은 곧 직접적인 막부의 참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기세 앞에 도막을 주장하는 신정부는 막부의 위세에 관망의 분위기가 나타났다. 조슈의 군대는 아직 교토에 입성하지 못하여 소수의 선발대만 존재하였고, 도사 번은 이번 전쟁이 사쓰마의 단독 도발에 의하여 벌어진 것이기에 참전을 거부하였으니 막부의 1만 5천에 대항하는 교토의 병력은 사쓰마 번의 3천을 포함한 4천 정도의 병력이 전부였다. 누가봐도 막부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868년 1월 27일 무진전쟁의 실질적인 전투인 '도바-후시미 전투'가 시작되면서 그러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게 된다. 초반부터 막부의 선봉은 붕괴되었으며, 심지어 막부의 사령관 다카가와는 총성에 놀란 말 때문에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막부군은 동요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미 시작부터 막부군은 사기가 저하되었고, 실제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신정부군이 승리를 거둔다. 더구나 신정부군은 천황의 깃발인 '금어기'를 앞세우면서 전진하였으니 명분에서도 막부를 압도하게 된다. 또한 이 전투 이후 관망하던 세력들은 대거 신정부군에 가담하면서 막부에 등을 돌렸으니 막부로서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막부는 무력으로 다시 저항하려고 하지만 문제는 그토록 유능한 모습을 보였던 요시노부가 오사카에서 에도로 탈출하면서 이제 막부의 본거지인 에도가 신정부군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애초 요시노부는 무력 충돌을 피하고자 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재림이라 평가받던 그도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이에야스와 같은 결단력이 부족했으니 막부는 이제 200년 넘게 이어오던 그 명맥이 끊길 상황이었다.
결국 1868년 4월 7일, 에도 성 개성 협상 타결이 되면서 에도에 대한 무혈 입성이 결정되었으며, 4월 26일 요시노부는 도쿠가와 당주를 5살의 이에사토에게 내주고 미토로 낙향하여 은거하였고, 5월 3일 신정부군이 에도 성에 무혈 입성을 하면서 결국 도쿠가와 막부의 260년의 통치 체제는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비록 막부의 수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부를 지지하는 '좌막세력'이 저항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역적 2호로 지명된 아이즈 번주의 가타모리는 동북지역 번들과의 연합을 주도하였고, 에도 한복판에는 쇼군 호위를 명목으로 '창의대'가 등장하였으며, 막부의 신식 해군을 이끌던 에노모토 함대 역시 신정부의 함선 반환을 거부하면서 신정부의 저항 세력과 협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선조'를 비롯한 막부의 신식육군인 '전습대' 역시 북상하면서 우쓰노미야 성까지 점령하면서 저항의 의지를 내비치게 된다. 또한 신정부군에 투항하려다가 그들의 가혹한 동북지방에 대한 정벌에 분노한 센다이가 이끄는 14개의 열번이 아이즈 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제 동북지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게 된다. (참고로 센다이 번은 일본 전국시대 유명한 무장이었던 다테 마사무네의 가문이 다스리던 지역으로서 나름 자존심이 강한 지역이었는데, 이를 대하는 신정부군은 무례하였기 때문에 센다이 역시 아이즈에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신정부군의 동북 지방 원정은 '아이즈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 지역은 쇼나이 번과 같이 적극적인 열강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슈와 사쓰마와 같은 신식 군대를 양성하기도 하였지만, 이외의 번들은 구식군대였다. 비록 전투에 임하는 자세는 용맹하였지만 이들 지역은 차례로 신정부군에 의하여 격퇴되면서 1868년 10월 28일, 센다이 번 항복, 11월 6일, 아이즈 번 항복. 마지막으로 11월 9일 쇼나이 번의 항복으로 '동북 전쟁(아이즈 전쟁)'은 마무리된다. 전쟁의 결과로 이들 지역의 번들은 대부분 봉토가 삭감되는 '개역'을 당하게 된다. 또한 원래 이 지역에서는 좌막 세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도막 세력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면서 서로에 대한 피를 부르는 보복과 복수가 이루어졌으니 1868년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신정부군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발표하였고, 메이지 천황이 1868년 11월 막부의 본거지였던 에도에 입성하니 이제 막부는 일본의 역사에서 그 명맥이 끊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은 이제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우는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근대화의 끝이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일본 역사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근대화와 같이 기존의 체제와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인 이들의 역사 역시 우리로서는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본의 방식이 꼭 맞다고는 볼 수 없으나, 당시 조선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아예 겪지 않기 위하여 체제 유지와 결속만을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개혁과 변화에 뒤지지 않았던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혁과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반대급부를 마주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을 읽어 본다면 우리로서도 염두에 두어야 할 역사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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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황한 서론을 끝내고 '일본의 부흥'을 알리는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이신)이 시작된다. 하지만 일본의 부흥은 '막부의 종말'을 뜻하기도 하기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유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시작하게 되었다. 동시에 일본은 다시 '일왕제'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또 다른 아이러니'를 낳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신지사'들이 막부의 권력을 찬탈해서 '정당한 권력'으로 되돌려놓은 곳이 하필이면 전근대적인 중앙집권제 방식인 '왕정복고'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의 왕은 전통적으로 '신의 아들'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일왕이 다스리는 일본은 '인간신(현신, 또는 천손)이 다스리는 신의 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의 부흥을 알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근대화'가 왕정복고에, 신의 나라라니...고대의 건국신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어쨌든, 일본인들은 명치유신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소설을 꽤나 좋아한다. 일본의 국운이 하늘을 찌르고 뭐든 했다하면 통하는 기세가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비록, 1945년에 패망하긴 했지만, 60년부터 90년대까지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며 미국 다음으로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기까지 일본은 최고의 20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허나 그때 쓴 운빨이 다한 것인지, 1991년부터 버블이 사그라들면서 시작한 '잃어버린 30년'째를 맞은 현재에는 영락없이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꼴을 면치 못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새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찾을 것인가? 모쪼록 그 발판이 '우리'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그정도로 어리석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인데...
다시, 명치유신으로 되돌아 간다. '조슈정벌'이 한창이던 때, 쇼군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정벌은 흐지부지 끝나고 막부는 다시금 움츠러들어 버렸다. 때를 같이 해, 일왕도 승하하게 되니, 왕위를 승계 받은 이가 바로 '명치 일왕', 다시 말해, '메이지 일왕'이다. 막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유신지사'들은 모든 권력을 일왕에게 되돌리는 '대정봉환' 계책을 막부에게 들이미니, 당장 손을 쓸 수 없는 막부는 전쟁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받아들여 '왕정복고'를 성사시킨다. 이로써 일본은 '신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명치유신'은 서서히 발효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명치유신'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성사된 것은 아니다. 친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의 힘겨루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반막부세력에 의해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오랜 갈등이 한순간에 쏟아지며 '신정부군'과 '반정부군'으로 나뉘어 '무진전쟁의 시작'을 알렸으며, 서양의 신무기로 무장한 '신정부군'이 막부 사무라이로 구성된 '반정부군'을 토벌하고 승리를 연이어 거두었고, 전쟁 양상은 서남 방면의 신정부군과 동북 방면의 친막부 동맹군의 대결로 이어졌으나 신정부군의 최신무기와 서양식으로 훈련된 군대를 이끌고 손쉽게 전쟁을 끝맺으니, 이른바 '막부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명치유신'은 막부가 종말된 이후에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막부가 종식을 고하기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명치유신'은 일본에게 무엇을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겉모습만 달라진 걸까? 속마음까지 싹 개조한 것일까? 겉으로 보여지기엔 일본의 겉과 속이 모두 싹 바뀐 듯이 보인다. 서구의 근대화에 발맞춰 일본의 사회와 문화까지 빠르게 변하고, 정신까지 '개조'하여 동양적 사고관이 아닌 서양의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바뀐 것은 '일본의 겉모습'뿐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일본의 야만성은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하던, 서양의 신식군복을 입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전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전통적인 동양의 예법을 따르던 시절엔 '도리'와 '예법'을 그나마 따르던 것이 서양의 '이기주의'를 맛본 뒤엔 '무법천지'로 바꾸고, 국가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몰염치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는 얌생이로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이다.
일본은 철저히 깔아뭉개야 말을 듣는 족속들이다. 애매한 '판정승'으로 일본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순 없다.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패야 겨우 패배를 인정하고,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며 다시는 고개를 빳빳히 쳐들지 않는 '굴종의 심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을 향해 '겸양'을 떨거나 '겸손한 예법'으로 염치와 도리를 가르치려 들면 주인의 등에 칼을 꼿는 배은망덕한 일을 자랑스럽게 저지르고 말 종자들인 까닭에 버릇을 고치려 들땐, 가차없고 단호하게 매를 들고, 당근을 줄 땐 '절대복종의 서약'을 맺은 뒤에 줘야 한다. 우리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정도로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웃나라에 이런 족속이 살고 있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본의 야만성이 '명치유신'이라는 국뽕을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허나 그러기까지 세세하고 조목조목 알아둘 필요는 있다. 역사공부의 진정한 힘은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공부를 위해서 처음엔 두루뭉술하지만 '맥락의 흐름'을 파악할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더라도, '맥락 파악'이 끝나면 중요한 사건별로 '인과관계'를 세세히 따져가면서 '미세한 흐름'까지 이해해야 진면목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는 제격이다. 비록 '만화형식'이라 그 세세함이 띄엄띄엄 나타날지라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상식'보다는 더욱 세분화하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그리고 '세계사'를 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편년체 방식의 서술과 더불어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기사본말체 방식으로 전세계사적인 스펙트럼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기에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사'라고 소개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중역사책 가운데 이 책처럼, 청왕조의 멸망을 일찌감치 부르고 신해혁명의 프로토타입이었던 '태평천국 운동'을 자세히 펼쳐보이고, '막부의 종말부터 명치유신까지' 일본의 변천을 펼쳐보이며, 조선후기 세도정치 이후의 양상을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단언컨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면 그만큼 동북아시아 삼국의 근현대사가 엄청나게 방대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고 중대한 사건이 뻥뻥 터지는 통에 이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사책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는 과감히 손을 댔고, 그것도 '만화형식'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역사서술 관점이 '균형잡혀 있느냐'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저 '완간'이 되기까지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면 어떻게 해서든 다뤄져야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역사책'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두손 두발을 들며 이 시리즈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삼천포에 잠시 갔다왔는데, 암튼, '명치유신'을 통과한 일본은 새롭게 '신일본'으로 거듭났다. 아니, 이제부터는 '일본'이 아니라 '일본제국'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서구열강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게 되었지만, 그 열강으로부터 신문물을 발빠르게 도입해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실력을 쌓은 일본은 '일본제국'으로 거듭나면서 거침없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같은 문화권'을 갖고 있는 동질적인 관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허나 '일본제국'은 첫 수부터 악수를 놓았다. 그것이 초반에는 일본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국 전체로 보았을 때, '패착'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패착'이란 바둑에서 그 돌을 놓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된 나쁜 수를 말한다. 일본이 아시아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한 것까지는 '아시아의 자랑'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 자랑이 끝내 서구열강 뺨칠 정도로 악랄한 침략과 약탈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패착의 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대한민국'의 막판 대역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초반에 펼쳐놓은 대마는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형국인 탓이다. 안타깝게도 그 역전극이 이 시리즈에 담기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못난 모습을 거울로 삼기에 딱 좋은 소재이니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일본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빠르게 치고 오르는 모습도 눈여겨 볼 일이다. 능력이 실력으로 확인된 다음에 그 힘을 어떻게 써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지 말이다. 적어도 일본이 간 길은 옳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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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애초에 시작할 때는 '한국사'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겠다고 밝혔더랬다. 이유는 '한국사'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리즈 초반에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중국과 일본'에 매우 편중된 채 스토리를 이끌어 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큰 줄거리를 이해하기에 '중국사와 일본사'를 오가며 살펴보는 맛이 굉장히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과 일본의 '막부 몰락의 과정'을 정사와 야사의 오묘한 줄타기로 이끌어가는 스토리가 '짤막한데 난해한 교과서' 같은 역사책을 이해하는데 아주 탁월했기 때문이다. 역시 <역사책>은 글쓴이의 '입담'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리즈가 거듭 될수록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 나라는 뭐하고 있었지?' 일본에서 흘러가는 격동의 근대사에서 '우리 나라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역사책'을 참고하면 대략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다른 세계사책'을 살펴보면 역사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듣고 싶은 건 '굽시니스트의 입담'이었던 거다. 그러한 기대에 걸맞게 이 '시리즈 6권'부터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그리고 역시나 '굽시니스트의 입담'이 빛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시기를 장식한 굵직한 역사는 '흥선대원군의 집권'-'흥선대원군의 개혁'-'병인박해'-'제너럴셔먼 호 사건'-'병인양요의 승리'다. 물론, 그 뒤로 '신미양요'가 따라 오겠지만, 그건 다음 권으로 넘겼을 것이다. 암튼, 굽시니스트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프랑스의 행보'였던 것이다. '병인양요'를 일으킨 주역이 바로 '프랑스 군'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군'이 굳이 조선까지 쳐들어오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결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를 처형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무력시위를 하게 된 '원인과 결과'만 배우는 것이 <역사교과서>의 전부였다면, 굽시니스트는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천주교를 박해하고 서구열강에 대해서 '통상거부정책'을 실시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까닭을 [ '흥선대원군'이 아내 말을 잘 들었다 - 흥선대원군의 아내는 천주교인이었다 -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인을 통해 프랑스와 통교하려 했다 - 프랑스 신부가 이를 거절했다 - 때마침 사대부와 왕실에서 천주교 단속을 주문했다 -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과 '서원철폐' 등으로 지지기반이 필요했던 터에 이들의 주문을 뿌리칠 수 없었다 - 그래서 천주교 박해를 했다 - 프랑스 신부 9명이 처형되고 리델 신부 등 3명이 탈출했다 ]..여기까지 '국내 상황'을 선보여준 뒤에, '국외'로 시선을 돌려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온 과정을 술술 이어나간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던 때였고, 3세는 여기저기 식민지를 건설하느라 정신이 없는...약간 '무책임'하게 일만 늘어놓는 타입의 군주였다. 그렇게 일을 벌여놓으니 '자금'이 딸리는 것은 '당연지사'인 셈이다. 그 까닭에 '프랑스 군대'가 당시 청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자금이 부족해서 조선으로 곧바로 쳐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2차 아편전쟁을 마무리 하고, '베트남'에 들렸다가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조선'을 정벌(?)하러 갈 수 있었던 셈이다. 허나 그 사이에 '자금'은 더욱 부족해졌고, 조선은 '서구열강의 관점'에서 보면 얻을 것이 빈약한 땅이었던 탓(!)에 대대적인 침공은 무리였던 것이다.
이를 단박에 감지한 '조선의 스파이'가 바로 '청나라 연행사'의 통역을 맡아 따라갔던 '오경석'이었다. 아니 이 '연행사'의 청나라 출장(?)의 목적이 곧 '흥선대원군'이 진정으로 원했던 '프랑스 정탐'이었던 셈이다. 까닭인 즉슨, 당시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외교라인'은 '조공무역'이었는데, 바로 이 '조공무역'이 중국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중국은 이웃나라를 아우로 모시는 '갈등(전쟁) 방지책'이었던 거다. 그런 까닭에 조선이 '프랑스 신부'를 처형한 일로 프랑스가 쳐들어온다면 '큰 형님'으로서 '아우'인 조선을 보호(?)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부탁 겸 따지러 간 것이었다. 이때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쬐끄만 조선이 감히 프랑스 신부를 처형한 것은 '청'을 믿고 그랬을 것이니 프랑스가 조선을 치더라도 청은 가만 있으라는 협박을 하였고, 조선은 조선대로 그동안 '큰 형님'으로 모셨으니 이제 프랑스 좀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 겸 협박(!)을 한 셈이었다. 이 와중에 '오경석'은 프랑스가 진짜로 쳐들어올 깜이 되는지, 된다면 얼마나 쳐들어올 수 있는지, 언제 쳐들어올지 '감시망'을 쳐놓는 일이 우선적인 목적이었던 거다. 그리고 오경석은 그 역할을 아주 잘 해서 '조선'이 '병인양요'를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셈이다.
실제로도 '병인양요'는 프랑스 군이 열악한 상황에서 쥐어짜듯 '원정'을 온 탓에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도리어 된통 당한 뒤, 쪼잔하게 '약탈'만 하고서 유유히 되돌아간 헤프닝이 되고 말았다. 이 '패배'로 프랑스군은 열강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는데도 두 번 다시 체면을 살리겠다고 조선을 쳐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 프랑스가 얼마나 '여력'이 없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던 것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고, 그 뒤로도 '프랑스'는 위대함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까지 차지한 식민지를 악착같이 착취하는 일 빼곤 말이다.
하지만 '병인양요의 승리'는 프랑스 군의 허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의 '호랑이 사냥꾼'이라고 불리던 '산포수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복궁 중건'으로 재정을 홀랑 말아먹은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첩보에도 '도성'을 지키는 주력군 이외의 병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던 거다. 오히려 '군대의 허약함'으로 봤을 때에는 '조선군'이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의용군 모집'을 했는데, 이때 전국의 산포수들이 집결했던 것이다. 이들의 주력 무기는 '화승총'이었다. 임진왜란 때 쓰던 그 '조총'이 맞다. 프랑스 군이 가지고 있던 총과 대포의 화력에 견준다면 '애들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포는 비교대상조차 되지 않은 정도의 현격한 차이였고, 총의 사거리만 비교한다면 '500 대 100'의 차이였던 것이다. 더구나 '강선'으로 쏘는 총의 위력과 '강선'도 없이 둥근 탄환이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하고 날아간다는 산포수의 화승총을 비유한 굽시니스트의 유머감각은 정말이지 포복절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프랑스 군의 압도적 화력'을 뛰어넘는 용맹함을 보여주어 프랑스 군을 '질서정연하게 약탈만 하고 후퇴' 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한 방이었던 거다. 중국에서 벌인 아편전쟁과 일본에서 보여준 서구열강의 위력을 보았을 때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던 셈이다.
내친 김에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의 승리'를 중국과 일본에 전하며 은근히 '조선이 강하다'는 뉘앙스를 내보였고, 안으로는 '통상거부정책(일명 쇄국정책)'을 과감히 시행하고 온 백성을 단결시키는데 써먹었다. 비록 '권불십년'짜리 자신감이었지만 말이다.
암튼, 이 시리즈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며 읽기 위해선 <역사교과서>를 먼저 탐독한 뒤에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역사적인 '기초'가 탄탄하면 할수록 이 책의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홍장의 본진(자금성) 진입 과정'을 잘 볼 수 있고, 9권에서는 '막부의 몰락과 메이지 유신 이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한국사에서는 '신미양요'와 '흥선대원군의 몰락'을, 중국사에서는 '서태후의 권력 투쟁기'를 아주 잘 보여줄 것으로 짐작한다. 벌써 다음 권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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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라지만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주변국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용면에서 너무 소외된 기분이 드는군요. 같은 시기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세나라의 정세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입해 보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 너무 치우친 느낌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중국과 일본의 근대사를 이렇게 비중있게 다룰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소견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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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으로 ‘고료카쿠’로 검색해보면, 1960년대 별 모양 요새에 자리한 공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 모습을 위성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북해도 하코다테에 있는 요새이다. 여행 가이드 책에서는 일본 최초의 공화국 정부와 관련이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코다테 시에 여행 갔을 때, 일본에 유럽식 요새가 있다는 점에 흥미로워서 가본적이 있다. 요새 옆에 있는 고료가쿠 타워에 올라가면 요새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하코다테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 최초의 공화국이라 불리는 ‘에조공화국’의 실체는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8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공화국은 아니었고, 1866년에 있었던 일본 내전에서 신정부군에 쫒겨 북해도까지 갔던 막부 세력의 마지막 모습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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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책이 10권을 사서 읽고 있으니 이 책은 무조건 구매입니다. 보고 또보고 밥먹으면서 화장실갈때도 읽는 책인데 너무 행복해 하면서 보고있어서 신간 소식만 들려오면 무조건 구매해주게 되네요. 그림체가 귀엽고 화려하지 않는데 내용이 너무 좋은 모양이예요~ 오래오래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데 저는 빨리 완간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너무 끼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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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니니스트의 이런 좋은 책이 나왔다는걸 이제야 알았다니!!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 알게된게 어떤 면에서는 더 다행인 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일찍 알게되었더라면 다음편이 나올때까지 속 태우면서 기다리는 안타까움이 있었겠지만, 뒤늦게 알게된 덕분에 어쨌든 8권 까지는 시원하게 정주행 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정말 제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라는 래리 고닉의 만화책을 본 이후로 오히려 래리 고닉을 훨씬 뛰어넘는 재치와 유익함을 줍니다. 그림과 그래픽의 깔끔함과 귀여움도 보는 즐거움을 주지만, 재치와 유머 속에 날카로운 통찰력과 세밀한 정보들 까지 담고 있어서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다 보면 그 와중에 저는 이미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준 전문가가 되어 있는 희열까지 주네요. 이런 책을 아직도 안보신 행운아들께 이 역사 만화를 강력히 추천드리며, 저 또한 9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
| 시사만화로 유명한 굽시니스트의 역사만화 본격 한중일 삼국사 8권이 발간되었습니다. 구한말 격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보니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8권은 주로 일본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직전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죠 과연 굽시니스트는 어떻게 이 이야기를 다룰지 궁금합니다. 빨리 9권이 나오면 좋깄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