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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어느날 문득 늙어 있는 게 아니라 한 가지씩, 낱낱이 확인 도장을 받듯이 스스로 늙음을 증명하게 되는구나' (p16)
"이 글을 쓴 그이와 내가 다른 게 있다면 그이의 엄마는 여기에 부재하고 내 엄마는 아직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알고 있다. '언젠가'라는 단서가 붙어 있을 뿐 그이의 슬픔과 상실감이 곧 내게 당도하리라는 것을." (신경숙 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170여페이지 짧은 에세이다. 저자는 영화인이자 명필름 회사의 대표이사다.
하나의 영화를 떠올리면 제일먼저 주인공이 생각난다. 주인공과 스토리, 그 다음으로 영화를 본 느낌과 감상이 맴돈다. 조금더 애정하는 영화라면 영화감독 정도를 기억한다.
영화를 만든 제작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를 위해 뒤에서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이다. 세상에 엄마들도 묵묵히 뒤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애쓴다. 박수받고 꽃다발 받는 전면에 나서는 법이 없다. 자식을 위해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루게릭병을 앓다가 떠난 친정엄마를 그리워하며 써내려간 엄마에 대한 기억들, 엄마와 싸웠던 어린시절의 회상이다. 나이가 들고 힘들었던 젊은 엄마의 나이에 딸이 도달하면서, 또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이해하기 시작한 엄마. 엄마의 희생과 사랑, 부지런했던 성실함이 결혼하고나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가끔 엄마의 부재를 상상한다. 그저 잠깐의 상상인데도 마음이 '쿵' 내려앉고 눈시울이 뜨겁다. 상상은 몇 초를 넘기지 못하고 급하게 다른 생각으로 페이지 넘기기를 한다. 멀쩡하게 있다가 느닷없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친정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어떤식으로든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어도, 바쁜 일상으로 함께할 시간이 없었어도 그리움의 양은 비슷하다. 그리움만 있으면 그나마 나은데, 미처 해드리지 못한 후회까지 겹치면 더 힘들어진다. '그때 그렇게 할걸~, 더 많이 자주 웃을 걸~, 자주 찾아볼걸~' 후회의 종류는 비슷하다.
함께 하지 못해 후회할 일은 최소화 하자. 좋았던 추억을, 그리워할 일을 많이 만들자.
자주 못 보면, 전화라도 자주 하면 되는데. 참 쉬운 일인데, 그 쉬운 걸 자꾸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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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에필로그 영화인 심재명의 속 깊은 이야기
어제 여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회사, 가족, 쇼핑, 동계 올림픽 등 온갖 주제를 넘나들며 수다를 떨다가 아들, 딸 이야기가 나왔다.
부장님은 아래 남동생 둘이 있는데, 부장님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고 많이 아프셨을 때 속내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태도가 자신과 많이 달라 놀라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부장님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시댁쪽 사촌 여동생이 유방암 선고를 받고 병원문을 나섰을 때 자기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하는지 억울하고 슬퍼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쩌나하는 생각으로 펑펑 울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딸과 엄마는 - 특히 딸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보면 - 둘의 관계가 친한 정도를 넘어서 동일시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그만큼 경험하는 일들이 비슷하고 공감할 수 있는 폭이 깊고도 넓을테니까.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한다.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무엇을 간절히 꿈꾸었는지, 언제 가장 기뻤고 슬펐는지, 엄마는 어떤 생을 살고 싶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자기 자신은 숨겨두고, 자식들만 바라보았다.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엄마는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쓰는 것으로 그나마 대신하고 싶었다. 그러면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나의 슬픔도 좀 옅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마치고 서문을 쓰는 지금도, 전과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엄마 이야기를 격하지 않게, 현실적으로, 자분자분 털어놓는 글을 읽고 있자니 지하철에서건 침대 위에서건 엉엉 울어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침착하고 담담해서 더 슬픈 엄마 이야기.
'친정엄마'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극 시작하자마자 흘러 나오는 '엄마가 섬그늘에' 노래 한소절만 듣고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던 일. 엄마가 본인이 결혼할 때 외할머니가 많이 늙어보여 할머니같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고보니 외할머니가 한참 젊은 나이였다는 말, 몇해 전 지금 엄마 나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 아이랑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아이가 커서 나를 떠올릴 때 이렇게 젊은 날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하며 아쉬워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의 사십대 중후반에서 오십 대 초반까지의 시간은 내 질풍노도 시절인 십 대 중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과 딱 맞물리며 부딪친다. 엄마와 내가 좀 더 지적이었다면, 먹고살기에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훨씬 무난한 모녀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섯 식구가 좁은 집에서 사는 가운데, 갱년기의 여자와 사춘기의 여자가 맹렬하게 부딪친 이유를 좀 더 여유 있게 성찰했으면 좋았을 시간이었다.
엄마의 주름 많은 얼굴도 손으로 만져 확인하고, 엄마의 너그러워진 마음씨와 나이 들어 느려진 말투로 우리 지난날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내 옆에 없다.
딸아이가 커가면서 함께 겪어 갈 많은 시간들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언젠가 내 옆에 엄마가 안계실 때를 대비해야하는 복잡한 마음.
회사다닌다고 평일에 엄마한테 아이를 맡기는지라, 주말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친정에 안가려고 한다. 아무래도 친정에 가게 되면 아이를 돌봐주시거나 우리 끼니 챙기신다고 부엌일을 많이 하게 하는게 죄송해서.
나들이나 여행갈 때 어머니 시간 되시냐고 물어볼까 말하는 쪽도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평생 두고두고 고마워할 일.
앞으로는 엄마가 귀찮고 피곤하다 말하실 정도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난 엄마를 위한다고, 엄마 쉬게 해드린다고, 연락 안하고 안찾아뵙고 하는거지만 혼자 계시는 엄마는 얼마나 적적하고 무료하실까.
그리고 얼굴 마주보고 앉아, 늙어서 사진 찍어도 안이쁘다는 엄마한테, 오늘 지금이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라 얘기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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