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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왜 나는 저런 걸 좋아하지? 왜 누군가는 미칠 듯이 싫을까? 우리는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해한다. 이 모든 것. 우리의 생각, 가치관, 마음. 이것들을 우리는 '나'라고 생각한다. 왠지 우리의 몸보다는 이런 것들이 '나'와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하고 있는 나. 바로 그것이 '나'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 즉 의식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나를 나 자신이 연구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연구하려면, 내 생각이 생기는 뇌를 뚝 잘라내어 요리조리 살펴보아야 할 텐데 당연히 이런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과학자들은 동물의 뇌를 연구하지만, 동물의 뇌는 인간의 뇌와 완벽하게 같진 않다. 많은 점이 닮긴 했지만, 토끼의 편도체는 사람의 편도체가 아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의식에 대해 이런저런 가설을 내놓는다. 이것들은 단지 추측들이다. 하지만 이 추측을 따라가 보면 참 재밌다. 철학적이기도 하면서 과학적이기도 한, 그들이 의식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벌이는 멋진 생각들. 실패할 줄 알면서도 날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처럼, 뇌과학자들은 오늘도 도전한다. 의식의 신비를 벗겨내기 위해. 우리가 대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이 책은 '의식' 분야의 유명한 뇌과학자인 제럴드 M. 에델만과 줄리오 토노니가 썼다. 사실 나온 지 20년도 더 된 책이다. 그 사이 에델만은 사망했고, 토노니는 이 가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더 확장해나갔다. 의식 문제란 사실 쉽지 않다. 이 책도 당연히 꽤 어렵다. 하지만 이들 천재 과학자들이 하는 말들을 따라가 보면 의식이란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식이란? 그런데 대체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의식이란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처럼 하나의 연속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의식은 통합되어 있다. 우리가 달콤한 카페 모카를 마신다고 생각해 보자. 초콜릿 향냄새, 입가에 맴도는 우유 거품의 푹신함.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동시에 경험한다. 우리는 먹고 듣고 느끼는 것을 쪼개어서 순서대로 경험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경험은 동시에 일어난다. 각 요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의식은 단일성을 가진다. 우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동시에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 사람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 뇌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처리한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 내부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특정한 지각 상태가 발생함과 동시에 또 다른 상태가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뇌는 컴퓨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의 정보성을 갖는다. 뇌에서는 서로 다른 수억, 수조 가지 의식 상태 중 하나가 1초에 몇 번이나 선택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그러면서도 통합을 잊지 않는다. 아. 정말 뇌는 바쁠 것 같다. 이 무수한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하나의 생각으로 만들어야만 하다니. 세포들 중 뇌세포들이 가장 바쁠 것 같다.
그래서 뇌는 용량에 한계가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생각하지 못한다. 의식은 통합성을 얻은 대가로 용량이 제한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통합성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그 어떤 생각이나 행동도 하지 못한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돈 상태가 되어 그 어떠한 정보도 의식이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이런 특징을 가지는 뇌는 어떻게 의식을 만들까? 요건 솔직히 좀 어렵다. 그래서 저자들은 의식의 발생 과정을 '현악 3중주'에 비유하는데, 이 비유가 꽤 괜찮다. 자. 악보 없이 즉흥 연주를 벌이는 괴짜 현악 3중주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은 악보가 없다.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마구잡이로 연주한다. 그러면 네 명의 멜로디는 서로 조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뇌도 이와 같다. 뇌 속에도 다양한 영역들이 있다. 이들이 바깥세상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제각기 연주를 시작한다. 이러면 음악의 멜로디가 엉망진창이듯, 우리의 뇌도 아직 의식을 만들어지지 못한 혼돈 상태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제멋대로 연주하면 음악이 되지 않으니, 서로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소통하기 위해 여러 가닥의 실로 각 연주자들의 몸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움직임이 실을 통해 다른 멤버에게 즉시 전달되어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멤버들 연주에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훨씬 더 일관되고 통합적인 선율로 변한다. 소음에서 음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럼 음악을 통일성 있게 해주는 '지휘자'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우리 뇌에 이러한 '지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생각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해 주는 중심이 없는 것이다. 그저 일관성 없는 의식의 흐름만 존재한다. 따라서 '연결' 이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소통이 중요하듯, 뇌세포 사이에서도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뇌의 소통은 '재유입'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재유입을 통해 뇌의 각 부분들이 연결된다. 이는 규칙이 없다. 계속해서 관계가 변한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다수의 평행한 경로를 따라 발생한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의식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재유입이 끊어지면 우리는 의식이 사라진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 자체가 '의식'인 것이다.
뭐, 이런 의식이 흐름이라는 걸 알아서 어디에 써먹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듯 우리의 뇌에 모든 것을 조종하는, '단일한 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는 데 꽤 도움이 된다. 그 말은, 나는,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흘러간다. 들어오는 자극이 변하면 변하기도 하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변하면 역시 변한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과거의 나. 기억 속의 나. 내가 생각하는 나. 이런 건 없다. 나는 뇌 속에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뇌에 좋은 자극을 줘야 한다. 좋은 경험, 좋은 생각, 좋은 만남. 이런 것들로 뇌를 가득 채워 의식의 흐름을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의식의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매 순간 새로 태어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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