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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자기 탐사, 여성, 엄마, 작가에 대해서...
"치열한 자기 탐사, 여성, 엄마, 작가에 대해서..." 내용보기
“마음은 몸의 어떤 기관이 지배하는지”에 대한 물음?, 마음의 생겨먹은 꼴들의 탐색?, 식자연하면 자의식의 탐사라 할 수 있을까? 거울을 들여다보고(「남은 교육」), 눈동자에 들어가고(「검은 눈 뜬 눈」), 가만히 누워 지나간 시간의 목소리를 듣는(「엄마도 아시다시피」)행위는 저 깊은 본질의 우물을 길어 올려 그것을 살피는 어떤 대상을 그리게 한다. 그것은 여성이고, 엄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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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의 어떤 기관이 지배하는지”에 대한 물음?, 마음의 생겨먹은 꼴들의 탐색?, 식자연하면 자의식의 탐사라 할 수 있을까? 거울을 들여다보고(「남은 교육」), 눈동자에 들어가고(「검은 눈 뜬 눈」), 가만히 누워 지나간 시간의 목소리를 듣는(「엄마도 아시다시피」)행위는 저 깊은 본질의 우물을 길어 올려 그것을 살피는 어떤 대상을 그리게 한다. 그것은 여성이고, 엄마이며,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익숙한 대상이 낯설고, 이질적이다.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인식에 매몰된 대중적 고정관념 탓일 게다.

 

이 낯섦의 세계가 가장 극적인 작품은 소설집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이 아닐까 싶다. 마치 연작 소설처럼 줄거리가 이어지는 「검은 눈 뜬 눈」과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전통적인 엄마의 관념, 소위 모성성이라 일컫는 자식에 대한 헌신과 배려와 자비의 자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혐오와 가증스러움과 두려움과 증오의 눈빛만이 무성하다. 방치된 어린 아이의 손아귀에 쥐어진 눈알, “내가 원해서 낳은 애들이 아냐”라고 소리치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롱과 위선과 기만, 인간의 심연에서 깨어나 활개 치는 짐승이 있을 뿐이다.

 

이와 대비되어 단편,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자식들을 위해 삶을 살다간 엄마가 있다. 망자를 그리며 자신이 불현듯 고아임을 자각하는 아들로부터 살아 있음, 존재 자체의 의미로서 엄마를 생각게 한다. 그리곤 낯선 애도의 제의(祭儀)를 목격하게 되는데 어머니의 쇳소리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들의 기이한 행위에서 진짜배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성에 대한 이 상반되는 형상은 어디서 근원하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되는데, 아마 작품,「남은 교육」에서 모녀의 감정이 공감되고 회귀하는 지점에서 그 답을 어렴풋이 발견하게 된다. “그 인간은 나쁜 놈이었단다.”라는 그 놈이라는 대상으로서의 남성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여성적 관점의 문제가 아닐까하고.

 

한편 블랙유머로 풀어 쓴 「스물세 개의 눈동자」, 즉 애꾸눈 개를 포함한 12마리의 개 아빠가 된 치졸함과 무지의 무례로 무장된 50대 남자의 비루한 욕망의 넋두리에서 여성성을 횡단한다. 그러나 이 소설집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작품은 「젓가락 여자」이다. 머리를 틀어올려 젓가락을 비녀의 용도로 찔러 고정시키는 행위를 한 인물의 이미지를 투사한 것인데, 이것을 말하는 화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유명작가가 된 대학 시절 선배에 대한 이 묘사에는 은근한 비아냥, 허풍, 친근함이 교묘하게 섞여있다. 이것은 소위 파워리뷰어로 불리는 화자의 입을 통해 기성 작가의 곤혹스러움을 그림으로써 그 반대편을 보게 한다. 온라인서점에 달리는 댓글과 리뷰의 양을 마치 문학작품의 가치인 양 왜곡하는 시장(市場)화된 현실의 문제뿐 아니라 파워 리뷰어라 불리는 이들 역시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이 왜곡에 일조하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물론 소설은 시장의 왜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을 한 때 공유했던 많은 다수의 기억이 작가적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실상에 대한 고뇌에 있다. 창작의 고통이여! 악의가 없는 듯 뱉어내는 순수로 가장된 혐오의 말들이 쓴다는 것의 격렬함, 피투성이의 처절함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이 소설집은 이처럼 현재의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창조자라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바로 나를 가르치는 엄마였다.”라는 ‘작가의 말’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장차를 말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이미 좋은 엄마이다. 진정 낳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가 무엇인지, 창작이 무엇인지를 같이 공모하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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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 일까?―천운영의 「젓가락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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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젓가락여자」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은 김미경, 공대 출신인 남편과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독서토론회의 회장이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소설가다. 본명은 양영은, 필명은 서진. 주인공의 선배였고, 총여학생회의 편집부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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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영의 「젓가락여자」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은 김미경, 공대 출신인 남편과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독서토론회의 회장이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소설가다. 본명은 양영은, 필명은 서진. 주인공의 선배였고, 총여학생회의 편집부장으로 있었으며 주인공과 함께 사 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다시 전문대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스페인에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을 주제로 산문집을 냈으며, 자신의 소설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줄곧 주인공의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이 소설에는 두 인물의 인적사항과 함께 팽팽한 감정도 함께 들어 있다. 이를 두고 「젓가락여자」가 수록된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의 말미에 붙어 있는 「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대결 구도(p.263)’나 ‘선배의 배신과 후배의 복수 이야기(p.263)’, 나아가 ‘자기모독(p.268)’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이 작품을 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처럼 읽을 수도 있다.

 

 미경과 영은은 학교 앞 지하민속주점에서 처음 만난다. 젓가락 끝으로 김칫국물을 찍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영은은 별안간 고개를 들고 ‘깃발을 꽂아, 깃발을!(p.83)’이라고 소리친다. 그걸 보고 미경이 영은에게 말을 걸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미경은 둘이 마주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날 그 술집에서 우리는 서로 뭔가 통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거지.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것처럼. 언니는 나를 찍고, 나는 언니를 찍고. 그런 거 알죠? 전기가 통하는 거. 정말 전기가 짜릿하게 올라오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죠.

한참 동안을.

그래요, 그때 우린, 뭔가 통했죠. 그래요. 통했어요.1)

 

 몇 번이나 서로가 통했음을 강조한 뒤, 미경은 '아휴, 이 사람들은 어째 이런 얘기에 더 신 나 해. 꼭 교생 첫사랑 얘기 듣는 여고생 표정이잖아(p.88)'라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건 미경의 첫사랑 이야기다. 이어 그녀는 '멋있다구요? 멋있죠? 그래요 멋있어요. 나도 완전 반했잖아. 언니가 묘하게 사람 끌어당긴다니까. 남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싸악 끌어모으면서 단번에 잡아채.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지. 그러니까 매력이랄지 마력이랄지, 암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p.88-p.89)'라는 말까지 한다. 그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통했고, 또 반했다고. 이후 둘은 함께 총여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거도 하면서 '딱 붙어 다녔다(p.91)' 그러나 곧 둘은 좋지 않게 끝을 맺는다. 영은이, 서진이 미경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비밀조직에 미경을 가입시키는 날 영은은 탈퇴를 선언한다. 미경은 거듭 배신이 아니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서토론회 회원들과 독자에게 말하고 있지만, '조직 입장에서 당연히 배신이지. 나한테도 배신이고. 타이밍 한번 절묘했잖아? 나를 조직 안으로 들여놓은 때, 언니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걸 그냥 공교롭다고만 볼 수도 없고(p.95)'라며 본심을 저도 모르게 털어놓는다.

 

 이러한 미경의 속내가 제대로 드러나는 건 둘이 재회한 후다.

 영은, 혹은 서진 앞에서 미경은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을 줄줄이 늘어놓는데, 그 행동이라는 것이 묘하기 짝이 없다. 영은의 첫 책이 나온 날 미경은 '괜히 서점 기웃기웃하면서 사람들이 좀 사가나 살펴보고, 언니 책 잘 보이는 데다 얹어놓고(…) 선물할 곳 있으면 다 언니 책으로 했(p.98)'으며 '학교 사람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언니 책 나왔다고 알려주고(…) 인터뷰 기사도 오려서 스크랩도 해놨(p.99)'다고 말한다. 두 번째 책이 나온 뒤 미경은 조심스럽게 영은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영은은 '김미경?(p.99)'이라는 말로 한 번에 미경을 사로잡는다. 미경은 이에 '언니가 아는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던 그 흔한 미경이들 중에서, 내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단박에, 이 김미경이를, 알아내주다니(p.99)'라며 감격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슬쩍 영은을 떠본다.

 

(…) 그런데 언니 결혼은 안 해요? 사귀는 사람 없어요? 왜 없겠어. 남자들이 줄을 섰겠지. 그런데 언니 아직 거기 살아요? 녹번동인가? 그쪽 언저리 지나갈 때마다 언니 생각했는데. 혹시 언니가 장이라도 봐서 지나가지는 않을까 하고.2)

 

 이외에도 미경은 '언니의 소설은 내가 다 따라 읽었으(p.102)'며, '인터뷰 기사랑 평론이랑 어디 강연 나가서 한 말까지 다 알고 있(p.102)'고 '또 개인적으로 취향이랑 성격이랑 이력이랑 다 잘 알고(p.102)' 있다고 자랑(?)한다. 지나치게 집착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경이 영은에게 이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 후우. 언니는 그 좋은 시절 보내고, 나 막차 태우고 도망가고. 나 배신하구 가서 언니는 소설가 되구 나는 인생 꼬이구. 뭐 특별히 꼬인 건 없지만.

언니가 배신이 아니라면 아닌 거죠. 물론 저도 언니가 배신했다고 생각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봤다는 거지. 언니 졸졸 따라다니더니 배신당해서 안쓰럽다고. 나더러 언니 추종자래. 추종자가 배신을 당했으니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지. 아니지, 연도 없는 끈을 붙들고 있는 거지. 그게 멍충이지 뭐야. 언제 적 일인데요. 저, 다 잊었어요. 3)  

 

 물론 미경은 잊지 않았다. 그 일과 함께 영은을 만난 뒤 모든 일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잊지 않은 채 그녀는 영은의 주위를 맴돌았고, 마침내 재회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 언니네 집에 간 적 있어요. 언니는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더라? 녹번동 그 집. 전복 한 바구니 들고. 왜 얘기 안 했냐고요?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지. 맞아요,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

그게 그러니까 전복 때문에. 전복이요. 어느 날 신랑 거래처에서 전복을 선물 보내온 거야. 근데 그게 큼직큼직한 게 꽤 먹잘 것이 있겠더라고. 너무 많기도 하고 언니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화를 했지. 전복 얘기는 안 하구 그냥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되겠느냐고. 서재 구경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언니가 마감 중이라 안 되겠다는 거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그래 알겠다고 했지. 가만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잖아. 소설이 뭐라고 밥도 못 먹고 써? 그래서 일단 싸 들고 집을 나섰어. 전복만 얼른 전해주고 오려구. 괜찮으면 조용히 전복죽이나 끓여줄까 하고. 그런데 막상 언니 집 앞에 도착하니까 괜한 방해가 되려나 걱정이 되더라구. 원래 우리, 글 쓰는 사람들, 중간에 흐름이 흐트러지면 신경질 나잖아요. 내가 잘 알지. 어쩌나 싶어서 그냥 차 안에 앉아 있는데, 언니가 딱 오는 거야. 양손에 뭐 잔뜩 사가지고. 어떤 머리 허연 남자 팔짱을 끼고서.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이?

기분 참 이상하더라. 이게 뭔가 싶고. 아무튼 그래서 그냥 집으로 왔어요. ()4)

 

 이로서 미경은 영은, 또는 서진에게서 두 번째 배신을 당한다. 두 번 배신당한 미경의 공격 앞에 영은은 별다른 역공도 하지 못한다. 미경은 이윽고 쐐기를 박는다. '어쨌거나 언니는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분이세요. 언니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그야말로 나의 깃발, 이시죠. 정말이에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 이번엔 제 믿음을 배신하지 마세요. (…) (p.114)'

 

 그렇다. 영은 그리고 서진은 미경을 배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경은 그런 영은과 서진에게 끈덕지게 매달릴 것이다. 우리는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영은은 미경이 남긴 저 마지막 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그녀 덕분에 자신이 있을 수 있었고, 자신의 깃발이었고, 늘 고마워하고 있다는 저 말만은 미경의 진심일 거란 것이다. 

 

 

 

1) 천운영, 「젓가락여자」, 『엄마도 아시다시피』, 문학과지성사, 2013, p.86-87.

2) 위의 책, p.100.

3) 위의 책, p.104-105.

4) 위의 책, 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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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2016.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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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시다시피]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다
"[엄마도 아시다시피]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내용보기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요즈음의 작가인 천운영. 천운영, 한강, 김애란. 세 명의 여성 중 누구 하나가 책을 냈다 하면 다른 두 명의 책까지 읽고 싶어지곤 한다. 사실 최근에 신간 소식을 접한 건 한강 작가였는데, 꽤 오래 전에 사 두었던 천운영 작가의 소설집이 생각났다. 그 날 귀가하자마자 책장 구석에서 잊고 있던 이 소설집을 꺼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느낄 필요도 없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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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몇 안 되는 요즈음의 작가인 천운영. 천운영, 한강, 김애란. 세 명의 여성 중 누구 하나가 책을 냈다 하면 다른 두 명의 책까지 읽고 싶어지곤 한다. 사실 최근에 신간 소식을 접한 건 한강 작가였는데, 꽤 오래 전에 사 두었던 천운영 작가의 소설집이 생각났다. 그 날 귀가하자마자 책장 구석에서 잊고 있던 이 소설집을 꺼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느낄 필요도 없는 건데, 어쩐지 엄마가 보면 불편해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구석에 넣어두었었다. 천운영의 글을 읽어 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조합된 표지는 어쩐지 너무 도발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래도 그녀의 글을 읽어 보았고, 그 나름대로 애독자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볼 정도는 될 것 같다. 나는 그래서 그 도발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운영의 이 소설들은 모두 나이들어가는 여성을 그린다. 모두 객체로 등장하는 이 여자들은 엄마의 역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 사회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역할들을 나름대로 충실히 수행하는 이들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평균도 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엄마의 역할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영 엄마의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다.

 

 

흔한 드라마들이 반증하듯 우리 사회의 이목으로부터 자식 새끼를 버리는 어미가 달아날 곳은 적지 않다. 오늘 날 교육의 가면 아래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만큼 모성애를 중시하는 사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모성애와 거리가 있는 여성들을 작가는 실컷 그려냈다. 이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미 노릇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내 엄마를 사랑하지만 내가 그 엄마의 역할을 맡고 싶진 않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들의 어미답지 못한 모습을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저들을 닮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못된 걸까. 그렇대도 어쩔 수 있긴 할까. 적어도 모성애가 모두에게 존재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으로부터 조금 가벼워지긴 했다.

 

 

누구나 엄마가 있지만, 모두 따뜻한 엄마를 지닌 건 아니다. 모두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엄마로 살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분명 그네 자식들의 엄마였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한 순간 이상 노력했을 것이고, 만약 내가 엄마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엄마가 되더라도 나 역시 엄마가 되어 좋은 엄마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모성애의 편차가 나쁜 엄마들에게 주어진 면죄부는 아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더 빠르게 나이 들어버리는 여성들을 위한 격려 정도랄까. 작가가 애초에 담으려 했던 메시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일지라도, 내게 이 소설들은 꽤 진한 의미들로 읽힌다. 개인적으로는 어미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고, 더 넓게는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을 향한 동료애의 표현 같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로라기에는 날이 서 있고 독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속내를 간파하여 짚어주는 느낌이, 천운영의 소설들에는 늘 있다.




손수건은 매일 아침 어머니가 그의 양복 뒷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서랍장에서 하나 꺼내 주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빨아 새벽에 다린 따끈따끈한 손수건이었다. 그것은 그가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계속되어온 어머니의 배웅 방식이었다. 포옹처럼 따끈한 손수건은. (15쪽, 엄마도 아시다시피)

 

 

항상 추종자들을 조심하세요. 추종자들이 추격에 나서면 진짜 무서운 사냥꾼이 되는 법이거든요. 왜냐, 너무 잘 아니까. 그럼 추종자가 무서운 사냥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종이 아니라 함께 가고 있다고 믿게 해줘야 한답니다. 가끔씩 자리를 내주기도 하세요. 정 자리를 내주기 싫으면, 그냥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내리는 시늉이라도 해주세요. 명심하세요. 추종자들을 조심하라. 추종자들은 잠재적인 사냥꾼이다. (112~113쪽, 젓가락여자)

 

 

꽃이야말로 한철 아닙니까. 한철이죠. 꽃은 피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지라고 있는 거니까. 꽃이 져야 열매도 맺고, 열매가 열려야 번식도 하고, 번식을 해야 또 그러니까, 벚꽃 참 곱죠? 꽃놀이는 역시 벚꽃이죠. (154쪽, 스물세 개의 눈동자)

l******e 2014.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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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앞선 이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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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로 무장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착각을 자식들은 하곤 한다. 어머니라면 으레 희생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니라는 식의 말도 심심찮게 듣는다. 하지만 어머니라 하여 다른 별에서 날아온 존재는 아니다. 엄마로 불리기 전에 제 이름이 있었고, 엄마 외의 꿈을 꾸며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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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로 무장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착각을 자식들은 하곤 한다. 어머니라면 으레 희생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니라는 식의 말도 심심찮게 듣는다. 하지만 어머니라 하여 다른 별에서 날아온 존재는 아니다. 엄마로 불리기 전에 제 이름이 있었고, 엄마 외의 꿈을 꾸며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이름은 잊혀지고 엄마라는 단어만이 남아 애처로운 그들의 삶을 들추어본다. 과연 그녀들은 완벽한 존재이기만 한가.

작가 천운영의 작품에는 다른 종류의 엄마들이 등장한다. 완벽해야 할 엄마는 문제투성이로 그려진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은 건 맞을지 몰라도 원해서 낳은 것은 아니라는 말로 자신의 차가움이 죄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사랑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제 편이어야 할 엄마의 날카로움에 상처를 입는다. 엄마의 저주를 머금고 큰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해한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도 못한 채 비로소 엄마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강렬히 확신한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사랑을 갈망하기 위해서는 무어라도 할 수 있는 법임을, 끔찍한 사건을 접하며 독자들은 몸서리친다.

‘남은 교육’의 엄마와 주인공의 관계는 ‘감은 눈 뜬 눈’과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의 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해 보일 수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엄마는 무능력했다. 딸 아이를 옥죄면서도 내가 널 낳아 길렀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제 무능력에 순종할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다. 딸 아이의 공간은 엄마의 공간으로 돌변한다. 제 공간을 엄마에게 내어준 딸이 행할 수 있는 것은 가출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출은 비행이다. 이 소설에서 비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딸 아닌 엄마이건만,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딸의 행동을 비행이라 정의할 것이다. 세간의 눈초리는 매서운 법이다. 결국 독설을 퍼붓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면서도 주인공은 엄마로부터 삶을 배운다. 아버지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인생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그 모습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엄마가 아니어야 하는 사람이 엄마가 된다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성이라면 엄마가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 여성들의 숙명이다. 그래서 ‘젓가락여자’의 선배는 무언가가 결핍되었으며 독특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서 세상에 의해 받아들여질 따름이다. 여성에게 드리워진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다른 길을 택하는 순간 주홍글씨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또한 현실이 어떠하건 엄마가 된 여성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에게 이상화된다. 아이를 갖지 못해 강아지로 그 욕망을 대신하는 아내를 둔 남성은 아내를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누군가의 엄마일 다른 여성에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말이 없다.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저자는 언급치 않는다. 투명인간이나 이미 죽은 귀신이라 하여도 좋다. 실재가 아닐지라도 그녀는 한 남성의 고백을 이끌어낸 위대한 존재로서 기억될 것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엄마를 추모하는 한 남성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을 접하고 소리 내어 운 것은 아내였지 그가 아니었다. 장남으로서의 위엄을 차려가며 그는 정중히 제 어머니를 보낸다. 하지만 제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며 그는 제 마음속에서 어머니를 신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목소리를 칼칼하게 다듬고 어머니의 한복을 고이 차려입는 기이한 행동을 하며 신이 된 어머니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만큼은 제 엄마가 실제로 위대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한때 엄마가 있었다는 것만이 엄연한 사실일 뿐이다.

제한된 시간 동안 핫도그를 많이 흡입하는 것으로 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게다. 모든 것은 ‘엄마’라서 가능했고, 엄마이기에 불가능한 행위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과도한 책임감이면에 잠든 여리디 여린 한 여인을 이젠 읽어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상대가 날 안아주길 기다리기에 앞서 내가 그녀를 안음으로써, 엄마를 엄마됨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엄마는 이 사실을 아시려나. 자신에게도 엄마 아닌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을.

이달의 사락 q*****2 2013.09.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