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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내용보기
도종환시인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접시꽃 당신>과 <담쟁이>란 시이다. 매년 봄이 되면 집 울타리를 따라 곳곳에 접시꽃을 심고 앞집 벽은 담쟁이로 푸르게 뒤덮여가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는 것은 담쟁이다. 그러나 시골에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사람들은 담쟁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라고 타고 오를 것만 있으면 무성하게 번식하는 담쟁이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내용보기

도종환시인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접시꽃 당신>과 <담쟁이>란 시이다. 매년 봄이 되면 집 울타리를 따라 곳곳에 접시꽃을 심고 앞집 벽은 담쟁이로 푸르게 뒤덮여가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는 것은 담쟁이다. 그러나 시골에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사람들은 담쟁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라고 타고 오를 것만 있으면 무성하게 번식하는 담쟁이가 마치 칡잎처럼 성가신 존재가 되어간 느낌이 들었다. 허나 내가 <담쟁이>란 시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도종환하면 <담쟁이>가 떠오르고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서늘해지던 느낌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이 책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그동안 시인이 썼던 산문들 중에서 위로가 되는 글들을 모았다고 한다. 예전에 그의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를 읽으면서 나의 삶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숲속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받아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글을 읽으며 눈과 귀가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욕망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비교되어지기도 했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아마 나의 시골살이를 앞당겼던 이유가 되기도 했지 싶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욕망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나무처럼 들꽃처럼 특별하게 가꿀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욕심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분별하는 마음에 심난해지기도 한다. 마치 시골살이 몇 년에 마냥 도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구절에 눈길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단순하고 솔직한, 그래서 한편으론 통속적이기도 한 유행가의 노랫말 몇 구절이 자신도 모르게 며칠씩 입에서 되풀이해서 흘러나오는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비록 혼자사랑일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때처럼 아름다운 때는 없습니다.’(27쪽) 간혹 산에 오르거나 산책삼아 마을길을 걷다보면 비닐하우스 안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곤 한다. 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혼자 일을 하며 그 적막함을 달래기 위해 틀어놓은 것이란 걸 알면서도 처음엔 소음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몇 번 듣다보니 집에 돌아와서도,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같은 노래를 무한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서 인지, 아니면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의로운 마음이 됩니다. 마음이 맑고 순해집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보세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해지는가를 당신은 알게 될 테니까요.’(14-15쪽) 시골살이를 하면서 생활이나 마음이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지 만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욕망과 집착에서 한발자국쯤은 비켜서서 살리라 했던 생각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그런 나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곤 하지만 끝없는 자기암시와 일상에 만족하려는 의식적인 생각이 때로는 또 다른 가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것이 누군가를 사랑해서라면 좋겠다. 욕심도, 집착도 사라지고 분별하려는 마음도 선한 마음으로 바뀔 테니까.

 

이처럼 책에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인의 글들이 박종우 사진가의 자연을 포착한 사진들과 함께 묘하게 어우러진다. 글은 사진과 함께해서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사진은 글이 있어 더 정겹게 다가온다. 그중에는 어디선가 읽어 마음속에 담아둔 글도 있고,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글도 있지만, 그 글들이 주는 여운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내 마음이 흔들리거나,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선한 마음으로 다독여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텅 비어 있는 날이 좋습니다. 내 안에도 내가 돌보고 배려해야 할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60쪽)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서 더욱 빛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골목길 갈림길에 이정표가 되어 서 있는 가로등처럼 젊은 날의 어둡고 긴 방황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 위한 길이므로 아름답습니다.’(115쪽)

 

‘양쪽 날개가 가장 균형있게 펼쳐졌을 때 새는 가장 고요히 떠 있을 수 있고, 그때 가장 깊이 있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겁니다.’(224쪽)

 

산문집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시인하면 떠오르는 시 <담쟁이>를 다시한번 찾아 읽는다. 예전에는 암송하고 있었음에도 이제는 생각할라치면 중간중간 행을 빼먹기 일쑤다. 그만큼 시간이 흐른 것일까, 아니면 삶의 방식이 바뀐 것일까 아리송해지지만 그럼에도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여전하다. 어쩌면 새로운 전염병 앞에 무기력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k*****1 2020.08.28. 신고 공감 20 댓글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