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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Der Augensammler (2010년)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책 제목을 본 어머니가 질색을 하신다. 세상에 눈알수집가라니! 끔찍하다고 하신다. 음, 문득 언젠가 보았던 재미있는 글이 생각난다.
![]() 만약에 내가 부재중에 택배를 받았으면, '고객님의 집에 눈알수집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지도.
엄마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아빠에게 45시간 내에 아이를 구하라고 말한다. 그 시간이 넘으면 아이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눈알 하나가 없어져있다. 그래서 범인의 별명이 ‘눈알수집가’가 된 것이다.
기자인 초르하프는 인질을 구하기 위해 유괴범을 죽였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직 경찰이다. 그는 ‘눈알수집가’를 잡는 일에 열정을 보인다. 그런데 놈이 활동을 재개했는데, 현장에서 뜻밖에도 초르하프의 지갑이 발견된다. 설상가상으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경찰 무선을 듣고 현장으로 갔지만, 경찰은 그런 내용의 무선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졸지에 일급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맹인 안마사인 알리나가 초르하프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연락을 한 적도 없었다. 이건 그를 노리는 함정이고 음모였다. 초르하프는 수습기자 프랑크의 도움을 받아, 알리나와 함께 범인과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정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경찰은 포위망을 좁혀온다. 병원에 있는 아픈 아들은 자신의 생일에 아빠가 오길 바라지만, 그는 갈 수가 없다.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 맺음말로 시작해 첫 장으로 끝이 난다. 그 이유를 아는 순간, 욕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며 허탈해할지도 모르겠다. 범인은 중반 이후부터 짐작이 가지만, 이런 마무리일 줄은 몰랐다.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해서 소설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 'It Ain't Over Till It's Over'처럼 말이다.
주인공이 경찰에 쫓기는 누명을 쓴 용의자라서 그런지, 경찰이 상당히 난폭하게 나온다. 특히 수사관인 숄레는 프랑크의 귀에 연필을 꽂아 넣겠다고 협박을 한다거나, 초르하프를 지하실에 가두고 고문을 하려고 한다. 욕설은 기본에 근거 없는 단정과 확신은 옵션이었다. 거기다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얼마 전에 본 ‘영 블론드 데드’의 경찰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했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같은 독일 작가의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행동이 다르게 설명되나보다.
범인의 행위는 상당히 잔혹했다. 책에는 그냥 덤덤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따라 읽다보면 저절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떠올린 장면들은 구체적이고 선명해서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아, 난 왜 이리도 상상력이 좋단 말인가…….
소설은 각각 인물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그러니까 1인칭 시점으로 대개는 초르하프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가끔 맹인 안마사 알리나, 경찰 스토야, 수습기자 프랑크 그리고 납치당한 아이인 토비아스의 시점인 장도 있다. 그래서 각자 어떤 상황에 어떤 심정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몰입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매 장마다 토비아스를 구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더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은 자꾸 줄어드는데 다른 곳에서 삽질하는 경찰이나 갈수록 함정에만 빠지는 초르하프를 보면서 화도 나고 안타까웠다. 하긴 너무 쉽게 찾으면 읽는 재미가 없겠지.
작가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경찰에게 조언을 해주는 교수가 한니발 렉터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한니발 렉터는 잊어버리세요. 그건 어느 작가의 발명이고 현실과는 대충 나와 육상 선수 사이만큼의 공통점밖에 없죠.” 홀포르트는 휠체어 바퀴를 가볍게 찰싹 때리며 자기 농담에 혼자 빙긋이 웃었다.-P.142
그리고 구글 어스를 사용하여 범죄 장소라 예상되는 지역을 찾는 프랑크의 재치에는 놀랐다. 역시 현대 추리 소설은 이런 최신 기술을 사용해야 제 맛이다. 너무 어려운 과학 기술을 사용하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구글 어스 정도는 기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영화에 대한 알리나의 대사에 공감했다.
“예전에는 수사반장 연속극을 꽤 잘 따라갈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처음 십 분간 항상 음악과 소음만 들려요. 영화가 점점 영상 위주가 되는 것 같아요.”-P.104
난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을 무자비하게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희생자들의 상태도 그렇고, 인정이나 자비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살벌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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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시작은 독특하게도 끝맺음으로 시작한다. 더 읽지 말라! 내 말을 믿어야 한다.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책을 치워버릴 수가 없었다. 이건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나의 운명이다. 나의 삶이다. 고통의 최정점에 서서 죽음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 그 남자가 나다. 그렇다. 이 책은 정정하건데 <눈알 수집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남자의 이야기다. 경찰관이었던 알렉산더 초르바흐가 운디네 신드롬(호흡병)을 앓고 있는 아기 톰을 유괴한 여자 앙겔리크를 총으로 쏜 이후 , 죄책감과 고통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범죄 전문기자가 된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세 명의 여자와 네 명의 아이를 죽이고, 왼쪽 눈알을 파 가는 눈알 수집가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시작된 네번째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살인과 유괴! 나의 운명은 눈알 수집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었고, 이 끈은 나를 매분 더 죄어오는 듯 했다. 과거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않았던 알렉산더는 정기적으로 정신 치료를 받고 있으며 병원에 호흡기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계시고 이혼 직전에 있는 아내 니키와의 사이에 이제 막 열 살이 된 율리안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 들렸다가 눈알수집가가 나타났다는 무전제보에 한걸음에 달려간 살해현장은 사실 경찰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일급비밀 장소였으며 그곳에서 엉뚱하게 알렉산더가 하루 전 잃어버렸던 지갑이 발견되고 , 범인이 찍혀있다고 믿었던 CCTV에는 알렉산더와 똑같은 옷을 입은 또 한명의 알렉산더가 찍혀있다. 사건의 모든 정황은 알렉산더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었으며, 동료 프랑크의 전화로 알렉산더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가 있는 곳으로 도피하는데 그곳에서 자신을 찾아 온 정체모를 묘령의 여자 알리아를 만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된다.
남은 시간 45시간 7분 그를 찾지 못하면 그가 당신을 찾아간다 알리아는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신체 접촉을 통해서 특정인에 한하여 그 사람의 과거를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의 물리치료실에 하루 전, 눈알수집가가 다녀갔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전화로 알렉산더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눈알 수집가의 허리를 치료하면서 보게 된 광경은 ‘한 여자가 전화를 받고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중이었다는 말과 남편으로부터 지하실에 가지 말라는 대화와 동시에 여자와 아이가 순서대로 살해당하는 장면'을 영화의 솔로모션처럼 아주 느리게 보게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또한 이 장면은 이 소설에서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결정적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예견조차 하지 못하게 긴박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용의자 신분이 된 알렉산더와 유령의 존재와 같은, 어디서도 존재하지 않는 알라이 또한 의심 투성이의 존재이다. 알라이의 진술에 따라 유괴당한 아이들의 위치를 추적해가며 범인이 남긴 유일한 단서이자 실마리인 ' 살해장소에 남긴 타이머'가 가르켰던 ‘45 시간 7분‘이라는 시간안에 유괴당한 아이들을 찾아야 하는 압박감과 긴장감으로 팽팽한 전율이 흐른다. 나 역시도 알렉산더의 정신분열을 의심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알렉산더가 용의자일 것이라 어림짐작하다가 아무도 알라이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다시 또 알라이가 범인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범인과 함께 하는 숨바꼭질을 하는 듯 미궁투성이들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들로 인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행간을 무작정 따라 읽게 되었다.
한동안 독일 스릴러의 대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독일 스릴러 작가에게는 무한 신뢰가 형성되곤 하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사이코스릴러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이코스릴러라는 장르를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예리한 심리 묘사와 독자의 무의식까지도 활용하는 치밀함,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반전이 ‘피체크 표’ 스릴러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으로 '피체크'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일요일에 너무 추워진 기온탓에 꼼짝도 하기 싫어 이불을 돌돌 말아 누워 머리만 내밀고 읽기 시작한 《눈알 수집가》는 제목 때문에(너무 무셤) 미뤄만 두고 있다가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읽을 생각에 집어들었는데 흠, 이 책은 킬링타임용이 아니라 45시간 7분동안 아찔하고도 아슬아슬한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하면서 숨소리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킬링타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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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추리소설을 많이 봐왔고, 시체를 훼손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지만, 눈알 수집을 하는 살인자는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눈알수집가』라니,, 너무도 잔인한 살인자를 지칭한 이름이 아닌가. 그런 제목때문인지 책을 맨처럼 받아 들었을때 조금 거부감이 든것도 사실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너무 잔인한 내용이 있는 소설은 그다지 읽고 싶지는 않다. 살인자의 심리나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관들의 심리를 다룬 소설이 사실 더 좋다. 표지만 봐도 오싹하지 않는가. 일부러 밤에 읽는 시간을 피했다. 자면서 꿈에 나올까봐.
하지만 책을 막상 읽었을때는, 나의 그런 우려를 씻게 해주었다. 눈알을 뺀 것은 맞지만 수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그러했다. 다만 숨바꼭질처럼 게임을 시작할 뿐이다. 제한시간 45시간 7분의 숨바꼭질 게임. 자, 아이를 찾아야 한다. 제한시간 45분 7분안에. 살인자는 먼저 엄마를 죽이고, 엄마의 시체를 발견한 아버지는 아내의 손에 쥐어진 스톱워치를 발견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아이. 아이가 죽기전에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독일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새로운 전개로 소설을 썼다. 맺음말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에서 1장까지로 거꾸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처음 책을 읽었을때 마지막 이야기부터 거꾸로 전개가 되는건지 헷갈렸다.
우리 주변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 사건이 생길때,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또한 우발적인 살인이나 계획적인 살인도, 살펴보면 살인자는 그리 먼곳에 있지 않았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전혀 의심이 가지 않는 사람이 눈알수집가 였다니. 난 사실 경찰관들이 의심했던 것처럼 그 사람이 눈알수집가가 아닐까 싶었다. 다른 아이를 살리려다 아이를 유괴한 여자를 죽여버린 트라우마에 경찰 일도 그만두고 신문기자로 있는 초르바흐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접촉한 사람의 과거를 보는 능력을 가진 맹인 물리치료사인 알리나도 조금쯤은 의심스러웠고.
추리소설을 꽤 읽었고, 좋아해 웬만한 내용들은 파악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추리소설을 더 선호하는 내게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은 꽤 탄탄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제한 시간을 둔 것 때문에 한 장이 끝날때마다 제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에 긴장감을 갖게 했고, 아이가 있는 곳을 얼른 파악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속이 탔다. 애먼 사람만 잡는구나 싶었달까.
다른 사람과 접촉 했을때, 그 사람의 과거가 마치 환영처럼 보이는 알리나의 역할을, 더 강력하게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TV에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그 사람의 눈을 봤을때, 그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다. 법정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한 살인자의 집요한 면면을 그린 게 좋아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해 즐겨 보고 있다. 현재에서는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어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곧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도 같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책은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고통이 드러나는 부분. 자 이제부터 운명은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뇌까리는 부분. 또다른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에서 우리는 또다른 이야기를 상상한다.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제한 시간은 45시간 7분. 아이를 찾아야 하는 그 시간.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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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당신에게 누군가가 물어본다. 사랑하는 아이의 생일이,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먼저 일까? 아님 그렇게도 잡고 싶은, 혹은 그렇게도 원하는 성공의 길이 먼저 일까? 대부분의 아버지라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성공의 끈을 이을 수 있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버지가 잡은 성공의 끈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의 역할 또한 오랜 시간 지속될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사랑이 필요한 시기를 제외하면 너무 긴 사랑과 관심도 아이들에게는 구속이 될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사랑은 과연 무엇일지...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를 가진 전직 형사이자 범죄 전문 기자 츠르바흐. 그는 아이를 죽이고 눈알을 잔인하게 파낸 연쇄 살인마 눈알 수집가를 취재한다. 그러던 중 사건 현장에 츠르바흐의 지갑이 발견되고, 그가 살인마로 몰리게 된다. 과거를 보는 맹인 물리치료사 알리나를 만나게 되면서 사건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과연 누가 엄마와 아이들을 죽였는가? 눈알 수집가가 암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 만큼은 건강하고 똑똑하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가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아이를 골라서(?) 낳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듯이 아이들 역시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는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꼴이 되고, 누군가는 지옥 불에 떨어진 꼴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너는 내 아이가 아닐 거라는 추측 혹은 판단으로 학대하고, 무시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서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들. 사실일지는 몰라도 외국에선 4명 중 한 명은 내 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운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눈알 수집가는 아버지가 거부한 아이들을 골라냅니다. (166)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의 사랑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사랑은 하셨겠지만 그 사랑을 대 놓고 표현하지는 않으셨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고, 아버지들은 다 그렇고 그런 가부장적인 모습에 지독하게 고집 쎈(?) 집단이라고 생각했었다.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준다거나 아이들과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던 우리 시대와 달리 요즈음 아버지들은 참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전폭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들과 친구같이 대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엄마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존재하게 된다.
나는 시험관입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시험하는 사람입니다. (434) 엄마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의 사랑도 중요하다. 엄마의 사랑이 자잘하고, 세세한 것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크고 울타리 같아야 한다. (뭐 이것도 내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특히나 남자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은 본받아야 할 밑그림 같아서 부모 사랑의 길잡이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마저 무관심으로 점철된다면 아이는 어떤 생각으로 자라게 될까? 그래서 시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일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욕심을 우선시하는 아버지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는지도...
45시간 7분 동안... 츠르바흐는 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준 기회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었다면.. 아픔이 덜 했을까? 아이를 잃고 나서, 혹은 아픔이 있고 나서,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되었을까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인생엔 ‘만약에’가 없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일이 많고, 아무리 성공이 좋아도 아이들에겐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나 이제 사랑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간섭이 되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해주고 아낄 수 있을 때 많이 표현하면 좋겠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다시 오지 않듯, 아이들에게 사랑이 필요한 시기 역시 다시는 오지 않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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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준비해놓은 위험들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용감해지는 걸까? 아마도 그녀 장애의 유일한 축복은 그런 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273p)
시작하는 번호는 반드시 1부터라고 정해진 규칙도 없는데 우리는 1부터 시작하도록 교육되어져 온 것일까. 분명 시작하는 부분에 나와있는 '맺음말'이라는 단어를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다. 내 책만 잘못 편집이 된 것인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그러고나서야 이해한다. 이 책은 [옥토버리스트]처럼 역순으로 편집된 것이라고 말이다.
읽어가면서 위화감은 없다. 단지 남아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못마땅할뿐. 사건 발생후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초시계로 인해서 점점 초조해지게 된다. 이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사건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나는 이 사건을 풀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미 작가가 다 구상해 놓은 허구 속에 던져져 있으면서도 독자들은 이것이 사실인냥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라도 폭발하거나 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는 냥 불안해지게 된다. 작가는 그런 심리적인 면을 교묘하게 아주 고단수적으로 이용했다.
[눈알사냥꾼]과 더불이 눈알 시리즈로 불리는 이 책은 처음 나왔을 때 강렬한 제목과 더불어 누구라도 무서워할만한 표지로 인해서 더욱 관심이 갔던 책이지만 어느샌가 뒤로 밀렸다가 이번에 읽게 된 책이다. 피체크가 워낙 유명하고 그의 책을 몇권 읽어온 터라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덤볐으나 오히려 뒤로 갈수록 약간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데 열중을 기하기 보다는 작가가 의미한 이 범인이 맞는지를 자꾸 뒤돌아 보게 되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에 대한 반항도 들었다. 그것이 아마도 처음 서문까지 다 읽고도 책을 덮지 못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맺음말을 다시 읽게 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스릴러 라고는 하나, 사람이 죽어간다고는 하나 일단 심리스릴러에 가깝다. 그의 책은. 그래서 휭하니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기보다는 하나하나 조곤조곤 뒤따라가 가면서 사람의 생각을 읽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재미를 느낄 수가 있게 된다. 그 부분을 놓친다면 자칫 지루할수도 있는 스릴러가 된다. 그런 부분을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전직 경찰이었으나 지금은 기자를 하고 있는 초르바흐. 그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으나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경찰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런 그가 사건현장에 나타난다. 경찰 무전을 듣고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그의 지갑. 이것은 필히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증거가 된다.
거기다가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증거는 계속 나오게 되는데 일단 이 상황에서 발을 빼서 몸을 숨겨야 겠다고 생각한 그의 은신처에 앞을 보지 못하는 물리치료사가 등장을 한다. 물론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으나 그녀는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이곳을 정확하게 찾아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눈알사냥꾼을 만났다고 이야기 하는데 대체 범행을 저지르고 떠난 사람은 누구이며 누가 초르바흐를 범인으로 심고 있는지, 또한 이 물리치료사와의 관계는 어떻게 진전이 되는지 흥미로운 설정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쳐놓은 흥미 위주의 거미줄에 걸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발버둥쳐봐야 계속 조여들기만 할테데 잠잠히 즐기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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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우리나라 미스터리 장르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다. 오래도록 우리나라 미스터리 장르는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이 지진을 만들어내고 있는 나라는 바로 독일이다. 처음엔 그저 갑작스런 신예의 등장으로 인한 가벼운 여진 같은 게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그게 바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소설로 국내에서 뜻밗의 히트를 친 독일의 여류 작가 넬리 노이하우스였다. 그저 한 순간 일어난 돌개바람이려니 했는데 왠걸, 그녀를 시작으로 독일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봇물 터지듯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사라진 소녀들'의 안드레아스 빙켈만이 나오는가 싶더니 '신데렐라의 카니발'을 쓴 안드레아스 프란츠도 상륙했다. 이 두 안드레아스에 이어 지금은 '너무 예쁜 소녀'의 얀 제거스도 등장했다. 이렇게 독일 스릴러의 새로운 작가가 늘 소개가 된다는 것은 분명 지축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명의 새로운 독일 스릴러 작가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제바스티안 피체크다.
이번에 나온 '눈알수집가'는 1971년생 작가의 여섯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의외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뭐랄까, 참으로 스토리텔링이 놀랍다. 마지막의 반전이 그야말로 놀라운데 훌륭한 반전이 좋은 작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충격적인 반전 같은 것을 찾으셨던 분들에게는 이 '눈알수집가'가 좋은 경험을 주리라 생각된다. 잠깐 줄거리를 소개해본다면,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지금은 기자지만 원래는 형사였다. 그가 형사로 마지막 일했을 때는 한 정신나간 여자가 갓난 아이를 납치하여 동반 자살하려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유괴된 아이가 호흡하는 걸 의식하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 희귀병인 운디네 신드롬에 걸려있었다. 치료가 급박한 상황인데 설상가상이라더니 초르바흐와 대치중에 여자가 자꾸만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게 아닌가! 그 자장가로 인해 아이가 잠들면 그대로 사망인데도 말이다. 초조하기 그지없는 초르바흐는 아랑곶하지도 않고 여자는 계속 자장가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의 생명이 급박한 위기에 처한 순간, 초르바흐는 그만 여자의 머리에다 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그 일로 인해 더 이상 경찰 일을 할 수 없었던 초르바흐는 급기야는 아내와 이혼까지 하고 아이마저 그녀에게 뺏겨 버린다. 전직 형사라는 경력 때문에 겨우 사건 기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 사건으로 인한 상처는 그에게 늘 현재형이다. 그러던 중, '눈알수집가'의 네 번째 게임이 시작된다. 벌써 세 번의 범행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살인마 눈알수집가는 항상 엄마와 아이가 같이있는 것을 노리며 엄마는 죽이고 아이는 납치해 죽은 엄마의 손에 남겨놓은 타이머로 남은 시간을 알려 그 시간이 지나도 찾지 못하면 아이의 눈 하나를 도려내 살해하는 참으로 엽기적인 게임을 벌이는 살인마다. 그런 살인마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초르바흐는 이것이 자신이 진 빚을 갚는 일이라 생각하고 맹렬히 그를 추격중이다. 하지만 단서는 잡히지 않고 오히려 잃어버린 자신의 지갑이 범행 현장에서 나오는 바람에 용의자가 된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과 엄마만 아는 오두막으로 피신하는데 거기서 뜻밗에 알리나라는 한 맹인 여성의 방문을 받게 된다. 어떻게 그녀가 엄마와 자신 단 둘만 아는 오두막을 찾아왔는지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랄 일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가 사람에게 손만 대면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사이코 메트리'였다는 것이다. 알리나는 초르바흐에게 범인이 어떻게 여자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며 반신반의하던 초르바흐는 그녀가 경찰들마저 모두 모르는 극비의 정보까지 안다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와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믿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전직 동료 형사에게 그 정보를 말했다가 더욱 용의자로 몰린 초르바흐는 이제 본격적으로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그런데 점입가경. 알리나와 함께 밝혀내는 단서들은 자꾸만 초르바흐 자신이 바로 눈알수집가라는 걸 나타내고 있는데. 도무지 기억에 없는 그런 일들로 인해 초르바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 빠진다.
여기에서 보듯이 '눈알수집가'는 독자의 눈을 빼앗을 수 있는 장치라면 뭐든 다 갖추고 있는 소설이다.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범행, 미드 '24'처럼 시간이 정해진 살인 게임(소설은 그 시간이 지금 얼마나 남았나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해서 더욱 긴박하게 읽을 수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같은 구성이다.) 거기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하며 또 추적자가 혹시 자신이 진범은 아닐까 여기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스러움까지 구비할 수 있는 건 다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사전엔 지루함이라고는 없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속도전'의 소설이다. 하지만 정작 재미는 읽을 때가 아니라 다 읽고나서이다. 비로소 소설의 진짜 재미가 가동되는 것은 마지막의 반전이기 때문이다. 아마 아무리 반전이란 것에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이런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반전이 더욱 아프고 오래 여운이 남는다.
한편, 반전을 보면 이 소설은 미국의 영화 감독 토드 솔론즈의 데뷔작 '인형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가 그랬듯이 상처의 궁극적인 치유는 영원히 불가능하고 인간은 그저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상처는 상처 그대로 남고, 일단 한 번 상처를 가졌으면 영원히 그것을 낳게 한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초르바흐는 바로 그것을 위해 형상화된 인물이다. 이걸 좀 무리하게 보다 멀리 나아가 생각해 본다면 이건 어쩌면 2차 대전 전범국가로서의 독일에 대한 자기 반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된다. 초르바흐의 잘못은 2차 대전을 낳은 과거 독일의 잘못을 은유한 것이고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한 노력이었던 범인 추적은 독일이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지우려는 것의 은유라고 말이다. 어쩌면 최근 날로 부상중인 독일 우익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이 소설에 녹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아무래도 반전이 그렇게 설정된 것이 심상치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반전을 읽고나면 분명 지금 독일 우익이 하자는 대로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방기해 버리면 장차 어떤 비극을 초래할 것인지 그것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문제작이다. 소재로나 읽는 재미로나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깊이 모두를 통틀어 그렇다. 제목이 좀 촌스럽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어쩌면 제대로 무더위를 잊게해 줄 작품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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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눈알수집가>는 사실 지난 7월에 이북으로 출시되었을 때 구매해서 이미 읽었었다. 평소에 아이패드를 끼고 살기 때문에 이북으로 가지고 있는 책들만 이백 오십 권이 넘지만, 그 중에 아주 극소수의 작품들만 종이 책도 함께 가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요 네스뵈의 작품들이 그렇고, 제바스티안 피체크 작품 또한 그 리스트에 추가된 작가이다. 이북으로 가지고 있는 걸 굳이 뭐 하러 또 구입하나 싶겠지만, 묘하게 이북과 종이 책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좋은 작품은 둘 다 보고 싶기 때문이다. <눈알수집가>는 그래서 이번에 종이 책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고, 당시에 생략했던 리뷰를 간단히 써볼까 한다. 몇 개월 만에 다시 읽어도 이렇게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니, 왜 이 작가를 이제야 발견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말이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게 되면, 그의 전작들도 모조리 찾아서 읽어보는 습관 때문에, 당연히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들도 찾아보았다. 올해 이 작품이 출간되기 전에 이미 국내에 세 작품이나 출간이 되었었다. 무려 세 권이나 출간이 되었는데, 왜 그 동안은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걸까. <파편>, <테라피>,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이렇게 세 권인데, 아무래도 올해 출간된 <눈알수집가>를 통해서 좀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우선 <눈알수집가>라는 다시 거부감부터 드는 제목 때문에 더 화제가 되지 않았나 싶긴 하다. 나도 읽기 전에 이놈의 제목 때문에 읽을까, 말까 한참 고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목의 어감 때문에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으로, 너무 재미있고, 지나치게 잘 쓰인 작품이라는 거. 올해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독일 사이코 스릴러의 대명사라고 불리우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 리스트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보았다.
확실히 독일 작가들이 스릴러 장르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는 것 같다. 사회분위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유독 스릴러 장르에서 놀라운 재능을 선보이는 작가들이 많다는 데에는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나 피체크는 정신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서 극적인 긴장감과 반전을 만들어내는 걸로 유명한데, 무엇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와 색깔을 가지고 있는 점이 장점이라 하겠다. 작품의 순서 상 <눈알수집가>는 <파편>이 쓰여진 바로 다음의 작품이다. 기존에 출간된 작품들도 모두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으로는, <눈알수집가>이후의 작품이 더욱 궁금해진 참이므로, 앞으로 단숨에서 출간될 다음 시리즈 세 편이 매우 기대가 된다. 아래는 곧 출간이 될 <눈알사냥꾼>, <갈기갈기 찟긴>, <몽유병자>이다. 피체크의 작품들은 특정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시리즈 물은 아닌데, 이 중에 <눈알수집가>와 <눈알사냥꾼>은 같은 캐릭터인 초르바흐와 알리나가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에 푹 빠진 지금도 이 제목은 확실히 당황스러운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 이 작품의 리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 아마 구성일 것이다. 맺음말부터 시작하여 서문으로 끝나는 뒤집힌 구성부터 호기심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구성 때문에 내용이 복잡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피체크는 이와 같은 구성을 전작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모든 사건이 다 끝나고 난 시점에서, 누군가(독자)에게 처음 그 사건의 시작부터 과정을 설명하면서 결론이 이르는 구성인 셈이다.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낼 때의 장점은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이미 나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이라는 선택에 대한 후회,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한 행동으로 인한 파급효과들은 결론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안타까움으로 인해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감정이입 능력과 타인의 아주 미세한 감정 변화조차 알아채는 능력은 전설적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결국 다리 위에서 그를 불운에 빠뜨렸다> 라든가, <사람들은 돈을 벌 기회는 매번 새로 생기지만 아들의 열한번째 생일을 축하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지금 놓치고 있다> 라는 부분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끝을 잡고 돌아가고 싶은 회한의 선택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생에서 하는 수많은 결정들로 인해,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처럼, 미리 조심하지 못하고 물이 엎질러진 다음에야 우리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늘 그렇지 않은가. 피체크는 데뷔작인 <테라피>를 출간하고 했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긴박감을 무너뜨리는 모든 것을 삭제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종 수정해 원고의 3분의 1을 버리고 나니, 다음 장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원고가 잘 마무리된 것 같다>고. 바로 여기에, 피체크 작품만의 독보적인 스토리텔링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렇게나 매끄럽게 잘 빠진 스릴러물이 탄생한 배경에는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최대한 쳐내고, 꼭 필요한 대목들만 남겨둔 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지루하거나, 늘어지거나, 불필요한 상황 묘사가 길어지거나, 중언부언 설명조의 대사가 있거나, 이런 요소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요소인데, 피체크의 작품에선 거.의. 이런 대목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작품들마다 여타의 스릴러 물에 비해 두꺼운 편이 아니며, 한번 페이지를 잡기 시작하면 내리 끝까지 멈출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보통 ‘스토리’가 탁월한 작가들은 그에 비해 ‘문장’은 좀 약하기 마련인데, 피체크는 둘 다 만족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이다. 에둘러서 표현하는 단어 몇 개가 온 우주를 담고 있을 때가 있다. '나는 널 사랑해'나 '우리는 가족이야' 같은 것들. 당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몇몇 평범한 글자의 결합. 그런가 하면 당신에게서 생의 의미를 앗아가는 문장들도 있다. '다리 위 그때'는 명백히 후자다. 해리 포터 이야기 속의 인물들처럼 사람들을 제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게 그렇게 슬픈 일만 아니었다면. 앙겔리크는 내게 볼드모트다. 멋진 플롯이 돋보이는 놀랍도록 용의주도한 스릴러이지만, 이런 대목들은 마치 문학 작품을 읽을 때처럼 내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고 아이들을 죽이고 눈알을 파내는 잔인한 연쇄살인마가 등장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의 잔인한 장면 묘사가 많지 않다는 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따라가며 의식의 흐름에 맞춰 서술되는 방식도 마음에 드는 점 중의 하나이다.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도를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지나쳐 온 모두가 복선이 되어 만들어내는 멋진 반전도 헉. 하는 비명이 저절로 나올 만큼 무시무시하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반전 그 자체보다도,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데 매력이 있지만 말이다. 사실 읽는 동안 너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된 건지, 마지막 결말 이후로는 반전에 대한 충격보다는 앞으로 그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로 마음이 아프고, 무섭기까지 할 정도이니 얼마나 몰입 감이 좋은 작품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건 바로 제목. <눈알수집가>도 그랬지만, 출간 예정작 중에 <갈기갈기 찟긴>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대체 왜 제목을 이렇게 지을까. 거참..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작품이 너무 기다려지는 작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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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표지도,,, 참으로 직설적이다. 독자를 노려보고 있는 손가락 안 저 눈알(?)을 어쩌란 말인가! “나,,, 섬뜩한 스릴러 소설이야~~~ 무섭지?”를 외치고 있는 [눈알수집가] 독일 사이코스릴러의 제왕이라 불리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했지만,,, 스릴러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2006년 데뷔작 <테라피>가 <다빈치 코드>를 제치고 독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면 말 다한? 소설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경찰 알렉산더 초르바흐의 맺음말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맺음말이라니,,, 모호하지만 고통스러운 그의 독백은 트라우마에 시달린 과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낙태수술로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정신이상으로 아이를 유괴한 앙겔리크, 세 번째 유괴한 아이를 안고 다리 위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알렉산더 초르바흐,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다리 위에 올라간 그는 결국 아기를 안고 천천히 두 팔을 벌리기 시작한 그녀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쏘기에 이른다.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확신, 그녀가 자신의 정신이상을 의식하고, 그가 아이를 손에 넣으면 절대 그녀에게 되돌려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아챈 그 눈빛을 그는 모든 감각으로 느꼈고, 그녀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지만, 심리학을 공부한 초르바흐는 경찰청 최고의 협상가이자 감정이입 능력과 타인의 아주 미세한 감정 변화조차 알아채는 능력이 전설적인 인물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도 총을 겨누고 말았던 것이다. 흥미진진하게 시작한 알렉산더 초르바흐의 이야기, 그는 경찰직을 그만두고 범죄기사를 쓰는 기자로 생활을 해 간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을 공포에 빠뜨린 연쇄살인마의 또 다른 범죄가 이어진다. 어머니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하고, 아버지에게 아이를 찾으라고 명령한 후 45시간 7분, 그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은닉된 장소에서 질식해 죽고, 아이 시체 왼쪽 눈알을 빼버리는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 현장 인근에 알렉산더 초르바흐의 지갑이 발견되고 결정적으로 피해 여성과 보통 이상의 관계였음이 드러나면서 유괴된 아이와 자신의 운명을 걸고 진범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해,,, 누가 범인일까 란 호기심은 책장 넘김을 서두르게 만들지만 주인공과 범죄자의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사건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맹인 처자 알리나의 예지력(?)이 혼재하면서,,, 음,,, 몰입을 조금 방해키도 하지만 어찌됐든 잔인한 살인마와의 숨 막히는 게임은 한여름 밤,,, 소름을 돋우기엔 충분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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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음과모음 1기 서평단에서 열아홉 번째 받은 책이다. 서평단의 장점은 평소에는 여간해서는 펼치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생소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이라고 할 수 없는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로서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나는 추리소설을 즐기지 않고, 살벌한 책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있다. 범인을 추적할 능력도 없지만 생각하고 싶지가 않고,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세상인데 책에서까지 험한 사연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 책은 '사이코스릴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추리소설이면서 공포물이기도 하다. 범인이 유괴된 아이들을 살해하면서 눈알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제목이『눈알 수집가』이다. 책띠에 있는 '오싹하고 섬뜩하고 소름끼친다.'라는 표현이 공연한 협박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또한 나는 400쪽이 넘어가는 두꺼운 책은 그리 즐기지 않는데, 이 책은 447쪽이나 된다. 그것도 삽화는 전혀 없이 오직 문자만 나열 되고 있다. 나로서는 설상가상이 아니라 3중고의 강적을 만난 셈이다.
그러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부담스러웠는가? 뜻밖에도 예상만큼 힘겹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일반 책과 달리 서문과 맺음말이 반대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책들이 머리말, 1, 2, 3…맺음말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맺음말, 마지막장, 83, 82, 81…3, 2, 1, 서문 첫장’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결말부터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행적 구조로 전개된다. 왜 서문과 첫장이 뒤에 나오는 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범인이 주인공인 알렉산더 초르바흐에게 새로운 과제-지금까지 사건보다 더 절박한-를 주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강적이었다. 범인이 뜻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는 생각하기 싫어 하는 취향이라서 추리소설을 피한다고 언급했지만, 그래도 읽게 되면 나름으로 범인이 누구일지 추측은 한다. 그리고 나의 예상이 상당히 접근한 적도 가끔은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인물이 범인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수상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범인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나의 추측이 전혀 맞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럴 수가 있는가!’라며 허를 찔린 듯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가에게 멋지게 당했다고 할까? (나는 추리소설 마니아도 아니고, 훌륭한 독자는 더더구나 아니다. 내가 작가에게 속았다고 해서 이 작품이 스릴러물의 걸작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셋째, 읽기가 편안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고 공포물이며 분량도 만만치 않다. 등장인물도 주인공인 알렉산더 초르바흐의 가족, 전직경찰이었을 때의 동료, 신문기자인 현재의 동료, 피해자의 가족,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 등 다수가 등장한다. 게다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애매한 알리나 그레고리에프와 그녀의 주변 인물도 있다. 또한 등장인물의 호칭도 성과 이름(알렉산더, 알렉스, 초르바흐) 등이 혼용되니 50여 쪽까지는 누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등이 혼동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메모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그것이 독자 입장에서 작가의 트릭에 속지 않고, 여기저기 감춰놓은 힌트를 찾아내면서 범인을 예측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장치일 것이다. 넷째, 불편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이틀 정도면 완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흥미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지만 뒷부분의 결말이 궁금해서 계속 읽고 싶었다. 독자로 하여금 책을 계속 읽고 싶기 한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고, 책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성공작인 듯하다. 다섯째,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함께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인 알리나는 시각장애인 여성이다.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스스로 화장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소설이니 그렇거니 라고 여겼다. 자전거까지는 혹시 모르겠으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화장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나 알리나의 행동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실존인물인 마이크 메이는 세 살에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남의 도움이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학생 교통안내원이었으며, 시속 105킬로미터로 스키를 타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마이크 메이의 생활을 참고해서 알리나라는 인물을 그렸는데, 오히려 실제보다 약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허황하다고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고혈압으로 팔을 못 쓰게 된 서예가가 발가락 사이에 붓을 넣고 글을 썼고,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자 입으로 붓을 잡고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실제로 입으로 붓글씨를 쓰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자신은 두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그 서예가의 얘기를 듣고 입으로 써보았다고 한다. 한 달을 죽기로 연습하니 그것이 가능하더라면서 시범을 우리 앞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위대하고,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것은 이 작품으로 인한 망외의 소득일 것이다. 끝으로 작가가 마지막에 남긴 감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들 중에서는 책의 앞이나 뒤에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의 말이나 헌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기에 언급되는 사람은 몇 명, 많아야 10여 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는 이름이 나온 사람만 50여 명이다. 그들과의 관계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등과 함께…. 그렇게 여러 사람을 배려하는 작가의 인간성이 좋게 느껴졌다. 이런 작품을 계속 읽고 싶은가? 내 생각은 이미 말했다. 이 작품이 흥미 있었고, 어떤 교훈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훌륭한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는 별개로… 이런 장르의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찾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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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의시시하다. "눈알 수집가" !!!! 도서의 목차부터 수상한느낌......목차가 거꾸로 흘러간다. 왜 그랬을까? 주어진 시간이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45시간 7분.... 주어진 시간내에 게임에서 이겨야만 2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질식사하여 죽게 된다. 눈알 수집가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암울한 기분....어두운 곳에서 읽으면 왠지 몸이 의시시해지고 괜한 두려움과 소름을 느끼게한다. 여름에 읽기에는 최적의 도서이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시간속의 스릴러...특히 시간이 한정되어있기에 더욱 독자로 하여금 조바심을 유발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듯 말듯, 다가가면 사라져 버리는 범인의 행적..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슐러, 거리의 음악가, 알리나, 주인공의 멘티인 견습기자.... 메일로 처음부터 눈알 수집가의 의도를 밝혔음에도 진행되는 방향은 게임속으로만 빠져든다. 게임은 게임을 제안하는 사람에게 유리한것이 아닐까? 제안자에 유리한 게임이라면 상대는 이길수도 있겠지만 질 확률도 높을것이기에 남들이 제안하는 게임의 의도와 방식을 잘 파악하여 게임에 참여할까 말까를 결정해야 할것이다. 게임을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약간 비껴난 상황이 주어지면 제안자의 의도에 휘말리게될것이다. 여기서도 게임제안자의 의도를 잘 파악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을것이고 원만하게 해결되었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프로파일러에서 신문기자로 변신한 주인공. 이러한 변신을 하게한 다리위에서의 사건... 신문기자로서 눈알수집가의 쓰게되는 주인공, 이러한 상황을 즉 눈알수집가에 대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드러나는 눈알 수집가의 게임, 게임에 휘말려 끝내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는 주인공, 본격적으로 본인이 게임에 휘말려들어가는 안타까운 상황... 이 스릴러 소설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영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후기에 작가가 말했듯이 시각장애인들의 심리와 그들의 일반인과 다른 능력을 알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을 잃었지만 그외 다른 신체적 감각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시각 장애인의 정신적 분야를 더 뛰어난 능력으로 등장시킨다. 예지력이랄까? 그것이 실제이던 아니든간에 중요한것은 시각 장애인의 측면에서 일반인과 다른 행동을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얼핏 지팡이만 짚지 않으면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는것이다. 심리적인 압박감등의 감정만 제외하면..... 어찌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도 한순간에 게임에 빠지고 만다. 왜? 기자로서의 감각때문일까 아니면 사건을 공론화시켜 게임 제안자의 분노를 삿기 때문일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저널리즘의 발로일까 아니면 더 좋은 기사를 쓰기위해 했던 행동들에의해 빠졌을까? 범인의 마지막 이-메일에서 주인공은 이 사건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에서 45시간 7분만에 끝내야 하는 게임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되는 주인공, 승자인지 패자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습도 높고 무더운 여름을 45시간 7분동안 시원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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