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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는 전 세계의 독재자들의 재산 은닉과 부자들의 조세 회피 그리고 마약밀매업자 등의 자금 은닉의 온상지였다. 스위스가 이른바 '검은 돈'이 모이는 곳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비밀주의'에 있었다. 스위스 은행은 고객 정보를 절대로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밀주의를 통해 각국의 세무 당국이 도피, 탈세, 범죄 자금에 관한 계좌 정보 요청을 해도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1934년 은행 비밀 주의가 법제화 되면서 고객의 정보를 누설할 시 중형에 처하게 될 정도로 스위스 계좌의 비밀은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하지만 이런 스위스의 비밀 주의는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자국민 탈세 추적으로 비밀주의 완화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2014년 스위스 정부가 자국 금융기관 계좌정보를 다른 나라와 자동으로 공유하겠다는 성명 발표와 함께 2015년 유럽연합과의 최종 협상을 통해 2018년 비밀계좌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스위스에 검은 돈이 몰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비밀주의 덕분인데 검은 돈이 스위스로 몰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세계 기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검은 돈과 기아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처음엔 그저 부도덕한 상류층의 민낯을 보며 그들의 정직하지 않음에 분개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검은 돈은 누군가의 권리이자 식량을 빼앗은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자들의 부정한 자금 횡령은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와 아이들의 안전을 빼앗는 행위이다. 기업인들의 조세 회피 또한 마차가지이다. 스위스는 그러한 독재자와 부자들, 범죄자들을 지켜주며 그들의 재산에 기생하는 범죄의 공모자이다. 책의 들어가는 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브라질 외채 문제로 스위스 국민회의가 열렸는데 브라질은 당시 외채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브라질 전체 수출량 총액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는 브라질에 다시금 막대한 액수를 대출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투르가우 주 국회의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해야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총재는 브라질의 우라늄과 망간 광산이 발견된 것을 언급하며 그것이 곧 믿을 만한 담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36. 이건 해적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 였다. 브라질이 외채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거의 지불불능 상황인데다 출혈이 너무 심하다고?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우리는, 폭력적이고 냉소적이며 강력하고 효율적인 우리는 그 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영토를 유린해서라도 마땅히 우리 몫이 되어야 할 부를 손에 넣기만 하면 되지! 스위스를 움직이는 소수 집단, 은행의 횡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약 자금 세탁 형사처벌이 없는 스위스의 허술한 법 규제를 등에 업고 마약으로 벌어들인 검은 돈을 세탁하는 스위스 은행들은 도덕 불감증에 걸린 것만 같다. 또한 독재자들이 빼돌린 국부를 반환 받으려는 시도에도 은행들은 비밀주의를 내세우며 그들을 감싸준다. 그들이 빼돌린 돈으로 말미암아 세계 각국에서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오고, 빈곤과 불안을 야기했다. 파괴되는 가정에서 아이들은 적절한 보살핌과 학업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도피성 자금의 예치로 돈이 넘쳐나는 스위스이지만 그것이 곧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보장은 아니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은행들이 부동산 투기업자들에게 건물 구입비 전체를 대출해주며, 심지어는 구입 관련 세금들까지 대납해주어 스위스의 대도시들은 부동산 투기로 몸살을 앓았다. p177. 그러므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도급 인사들의 부패는 이중으로 불행을 초래한다. 제3세계의 가난한 자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동시에 스위스 사람들로부터 거처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장 지글러는 이 책에 언급된 모든 문제, 모든 갈등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정의를 위해 항거할 것. 꺼져가는 잿더미 속 정의와 자유를 향한 공동체적인 꿈의 불씨를 피어 거대한 항거의 불길로 되살리는 것이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금융 범죄를 막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결국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은 돈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도덕적 힘과 분노하는 역량,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을 뭉쳐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것이다. 스위스의 어두운 민낯과 부패된 돈의 파급 효과를 여실히 볼 수 있었던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를 읽고 나의 시민의식을 되돌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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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알프스의 나라, 융 프라우, 웅장한 자연들, 요들송까지. 어쩌면 가장 순결해보이고 가장 순수해보이는 그 웅대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스위스. 하지만 그런 스위스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숨어있다. 세계의 기아 문제와 식량 문제의 민낯을 낱낱히 밝힌 장 지글러는 가난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스위스의 이면을 보여준다. - 우리나라에는 2013년에 출판된 이 책,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는 사실 상당히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다. 1989년에 출판되었으니 30년도 더 지난 책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너무도 생생히 오늘을 살고 있는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세계의 검은 돈들에 대한 이야기다. 독재자들이 유출한 국부, 죽음을 판매하는 마약으로 만들어진 돈들, 기업의 수장들이 숨겨놓은 비자금 등. 이런 돈들이 어떻게 스위스로 들어오고 어떻게 세탁되는지, 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를 슬프고 무섭게 드러내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는 마약이다. 마약을 통해 생성된 검은 돈들이 스위스에서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지 말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은행의 비밀 보장법. 장 지글러는 이렇게 말한다. "은행의 비밀 보장은 스위스라는 나라의 최고법이다."라고. 즉, 스위스의 은행으로 들어온 돈은 그 돈의 출처가 어디든, 그 돈을 누가 가져왔든 비밀이 보장된다. 그렇기에 검은 돈들이 스위스로 몰려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마약을 직접 거래하는 인물, 그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 그런 유령 회사를 적발해야 하는 사람과 변호 해야 하는 사람도. 그들을 고객으로 맞이하는 은행들도 물론 나온다. 이런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는 절망스럽게 화려하다. 저자 특유의 반어적 표현들은 그러한 절망감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스위스의 은행들은 은행 비밀 보장법 뒤에 숨어있고, 스위스 법원은 그 법을 아주 유용하게 휘두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통해 은행은 세계 각국의 고객을 잃지 않고 고객은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돈을 잃지 않는다. 무언가를 잃는 사람들은 그 '세계 각국'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정당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잃고 그들의 노력의 대가를 잃으며, 끝내는 삶을 잃기도 한다. 마약 다음으로는 독재자들에 대해 말한다. 이들도 죽음을 파는 사람들-마약 거래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다. "두 가지 모두 동일한 은행에 의해, 동일한 기법으로 세탁되고 재활용된다" 이런 형태의 금융약탈은 제3세계에서 더욱 가혹하게 발생한다. 무엇이 먼저인지도 알 수가 없다. 금융약탈로 인해 국가의 성장이 정체 되는 것인지, 국가의 성장이 정체되어서 금융약탈이 발생하는 것인지. 유럽, 미국 등 국제 사회가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스위스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음에도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는 꼬리만 잘라낼 뿐 이러한 약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가 세번째 장에서 나온다. 스위스의 연방 검사들과 판사들은 마치 스핑크스처럼 은행을 지키고 서있다. 스위스의 판사들, 검사들, 경찰들이 서로의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며 협조해야 하지만 정보들은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전달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도 이럴진데, 외부와의 협력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런 스핑크스들은 너무도 당연히 외부의 협조 요청에는 시늉만 한다. 이런 정부기관 뿐만 아니다. 민간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스위스가 연방정부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한 장 지글러의 말은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각기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어 (...) 일상적으로 심리적 갈등만이 불거진다. (...) 그 결과 스위스인들은 모든 형태의 갈등에 대해 (...) 두려움을 품고 있다. (...)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은 공공의 적으로 손가락질 당한다" - 이 책에는 많은 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있다. 분명한 건 그 이야기가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슬픈 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세회피처, 페이퍼 컴퍼니 등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표현들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기업이나 한 사람의 부패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장 지글러의 이 고발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먼저는 제3세계의 측면으로 볼 때 스위스로 들어오는 검은 돈들은 그저 '부패'의 결과인 것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파괴한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아 등 특히 제3세계의 사회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마약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든, 지도자의 부패로 인해 국민들이 거리로, 가난으로 내몰리는 것이든. 그리고 또 다른 부분으로는 블랑코 밀라노비치의 [홀로 선 자본주의]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문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자유자본주의의 결과가 바로 부패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문제는 스위스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장 지글러가 이 책에서 고발한 모습이 우리 사회, 나아가 이 글로벌 사회의 모습으로 확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이 책을 접근해야 할 것이다. - 이 책은 30년도 더 전에 쓰인 책이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심화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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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세계적인 조세피난처이자 돈 세탁의 중심지인 스위스의 금융시스템을 고발하는 책. 기업이나 개인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반출한 자금은 물론, 국제적인 마약상들이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파괴하며 긁어모은 돈이나 부패한 독재자들이 국민들로부터 훔쳐낸 돈까지도 가리지 않고 받아 관리해 주는 상황. 이를 제재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협박과 린치, 그리고 무엇보다 합법적인 반대를 통해 저지시켜버리는 스위스의 암담한 상황에 관한 묘사가 실감나게 그려진다.
우선적으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스위스 특유의 느슨한 연방제다. 범죄 수사마저 각 주 정부에 속한 수사판사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어서 중앙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고, 그 수사판사들은 주 의회의 추천으로 임명되니 필연적으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정당별로 할당된 각료들로 구성되는 연방정부는 제대로 된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법무장관이나 검찰의 수장마저 은행가들과 커넥션을 갖고 (돈 많은) 범죄자들이 자국을 활보하게 놔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견제할 야당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평온한’ 정치, 모두가 끼리끼리 현재만을 보전하려는 최악의 상황.
저자는 결국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의식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척결하는 혁명 수준의 새로운 변화를 촉구해 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2. 감상평 。。。。。。。
스위스는 중세 말 종교개혁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제네바는 유명한 종교개혁자 중 하나였던 장 칼뱅이 프랑스로부터 박해를 피해 온 이민자들과 더불어 그의 신정(神政)국가적 이념을 한동안 실제로 적용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또 한 명의 종교개혁자인 츠빙글리 역시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활동하기도 했을 만큼, 스위스는 종교개혁적 정신의 세례를 일찍부터 받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랬던 스위스가 오늘날 어째서 세계의 더러운 돈을 세탁해주는 돈세탁소로 전락해 버렸을까?
책을 읽으면서 우선적으로 드는 생각은 당연히 분개다.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백주 대낮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데도 누구도 나서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소수의 저항자들은 이내 살해되거나 협박과 각종 압력에 의해 - 실제로 이 책을 쓴 저자는 국회의원이자 교수임에도 이 책을 쓴 뒤 각종 협박과 살해 위협, 고소 고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만다. 돈을 쥔 사람들은 권력까지 손에 넣은 지 오래라, 정부와 의회 안에 그들의 뜻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사라져버렸으니,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빛나는 전통은 사라져버리고 천박하고 오직 힘의 원리만 지배하는 정글로 다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또 한 편으로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스위스의 의원들은 봉급을 받지 않는 대신,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적은 회의비, 그리고 각종 문서 검토비 정도만을 받는다. 어찌보면 대단히 부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봉급을 받지 않는 정치인들은 대신 수십 개의 기업과 은행 관련 직함을 갖고 회의 때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하는 거수기 노릇을 한다.
과도한 지방분권적 구조도 문제다.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덜 될 수밖에 없는 지방정치는 얼마든지 조작과 협잡이 가능한데다, 갈수록 저조해지는 투표율에서도 알 수 있듯, 시민들은 나서서 뭔가를 감시하려 하지 않으니 끼리끼리 판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정치의 문제는 단지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의 수준을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스위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기득권층도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언제나 거슬리고 귀찮은 제도이고, 종종 위협이 되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도 고위 공직자들의 회전문 인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게 되고 있고, 대기업 회장들이 하사하는 떡값 한 번 안 받은 입법, 사법, 행정부 인사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뭐 대통령이 나서서 대기업 회장 하나만을 위한 특별사면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지경이니 말 다했다.
저자의 말처럼 문제 해결은 시민 하나하나의 깨어있는 의식과 행동이겠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경찰은 물론 국정원, 기무사까지 동원해 미행하고 도청하고 감시하는 걸 우습게 아는 정권 아래서 과연 그게 쉬울까. 정말로 나쁜 놈들은 복면 대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 여기에서 시작한다면 크게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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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실체 없이 그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지칭하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비롯, 듣고 싶지 아니 한 용어들을 곧잘 듣는 요즘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부디 지킬 것만큼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사회 지도층을 향한 우리의 바람이 왠지 욕심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장 지글러는 온갖 불법 자금의 은닉처라는 불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위스를 주목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에 드는 이 나라와 부패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스위스의 은행들은 검은돈 세탁에 오래 전부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하필이면 왜 스위스일까. 전 세계 비자금의 1/3 이상을 스위스 은행이 관리하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처음 책이 출판된 이래 저자는 의원 면책특권을 박탈당했으며, 스위스의 주요 언론들로부터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향한 협박과 소송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경계보다 더욱 강한 것이 자본이라는 말을 들은 듯도 한데, 스위스에서는 그 말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을 듯 했다. 책이 출판된 게 1990년으로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구닥다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던 건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은 한 우물을 일관되게 파왔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토록 원하던 물을 발견한 거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움직임은 끊이질 않고 있으니, 스위스 사회 하나만을 탓할 순 없겠지만 스위스가 자본에 유리한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법은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무언가다. 그렇다 보니 세상에는 악법도 선한 법 못지않게 많다. 과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가로막았던 악법들을 생각해보면 명확히 이해가 될 것이다.이런 나의 판단이 옳은 진 잘 모르겠으나 현재 스위스가 앓고 있는 것은 일종의 ‘법 만능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타국의 입장에서는 분명 불법 자금이고, 해당 국가의 법에 의하면 형법에 의한 처벌까지도 가능한 경우라고 해보자. 스위스에서는 그에 부합하는 법이 존재치 않는다. 혹 법에 저촉되는 경우에도 형법이 아닌 단순한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자국의 은행에게 어마어마한 부의 축적을 허락하는 거물이다. 미약한 위반을 했을 뿐인 이 인물을 타국에 넘겨주는 것은 손해가 막심할 따름이다. 그렇다 보니 무시해도 좋다,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 등의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자국법 조문을 반복해 곱씹어도 그와 같은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 어느 누구도 책임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한 인물이 스위스로부터 비호 아닌 비호를 받았고, 그 사실이 널리 퍼져 보다 많은 인물들을 스위스로 불러 들였다. 조금은 우스운 표현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곧 스위스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법이 전부는 아니다. 자국법에 기대어 정당함을 인정 받았다고 하여 그와 같은 결정이 어느 곳에서나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불법 자금의 경우에는 이에 얽힌 이해관계가 상당하다. 스위스 은행들이 애써 보호하는 축은 안타깝지만 많은 이들의 피고름을 짜면서 부를 축적한 세력일 때가 많다. 오늘날까지도 필리핀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두 인물 페르디난드 에드랄린 마르코스와 이멜다 로무알데스를 떠올려보자. 이 두 인물이 본격적으로 부패의 길에 접어들기 전까지 필리핀 경제는 분명 우리보다 나았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크레디 스위스를 비롯한 스위스의 은행 40여곳에만 대략 15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예치했다. 그 돈이 마르코스나 이멜다의 것이고 고객의 돈을 보호하는 것이 은행의 책무라고 과연 우린 말해도 좋을까? 마약 분야에서 뼈가 굵은 몇몇 부호들의 재산도 그런 식으로 스위스의 은행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스위스의 법을 어기지 않았으므로 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 하겠다. 유럽의 한가운데, 하지만 유럽에 속하지 아니 한 듯한 행보를 보여 온 스위스를 향해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민주화의 탈을 쓴 채 간접적인 방식이지만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위선을 보여온 스위스 측에 적극적으로 항거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었다. 아니, 스위스만이 그 대상은 아닐 것이다. 약육강식. 힘 있는 자만이 궁극적으로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비정규직을 없애는 싸움에 동참하는 일 등 내 주변에서 그리 어렵잖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을 포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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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궁금하더라고요 스위스에서는 왜 그런돈을 담아두려는가 거기에 관한 책이 있다는걸 이번 이벤트로 알게되네요 ㅎㅎ 스위스에서는 세계공통으로 누군가의 자산이 어떻게 이루어 진것이든 지켜주는 시스템을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꽤 오랜시간 지켜진 룰인 이유긴 있겠죠?? 흥미롭네요 책을 읽고싶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 였어요 이벤트 덕에 알게됐으니 이참에 읽어보려고 합니다 다를 책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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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스위스는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세 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분명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각 나라의 국세청과 검찰청, 경찰청들은 그들에게 적색경보를 보내고 있다. 분명 출처가 불명확한 돈을 계속해서 유보한 다는 것은 상당한 용가가 필요한 법이다. 세계화에 대한 맹렬한 반대자 장 지글러가 새 책을 냈다. 이번에는 조금은 특이하게 홍기빈의 해제가 실려 있다는 점이다. 지글러와 홍기빈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점이 그들 모두 인간에게 무제한급으로 자유를 주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제학자겸 사회학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여타 유럽국가와 같이 스위스는 무려 7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민주주의를 신봉해온 자랑스러운 정통 민주국가였다. 그들의 의회제도는 우리들이 본보기로 삼을 정도로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의회와 연방정부는 은행에 유리한 정책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더 많은 돈 그러니깐 국적이 없는 자본을 원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주체이며 그 자본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게 되면 자본의 흐름이 보다 정밀하게 파악되는 국가들보다는 저개발국가 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이다. 쿠데타로 인하여 세워진 군부정권이 그 어느 대륙보다 많은 아프리카는 거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 그들의 불안정한 정국은 계속해서 총으로 인해 정권이 유지되게 되었으며 그들의 수입,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와 석유의 매출의 금액은 정권의 실세들에 의해 스위스 은행의 계좌로 입금이 돼 버리는 구조를 선척 적으로 지니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는 이상한 현상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개발국이라고 명백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 즉 투표로 인해 세워진 정부도 이러한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자본의 투명성이며 획득 과정 중에서의 정당성이다. 아버지의 돈이 자식에게 단 한 푼의 손실도 없이 상속이 되며 그 부는 계속해서 자손대대로 계승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상당히 위법적이며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멈추지 않고 소득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물론 투표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도 있다. 민주주의가 곧바로 정의사회구현의 뼈대라고 생각하면 큰 착가이다. 구상이 곧 형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권형성과정을 보면 너무 한쪽에 치우친 면이 있는데 자본의 양을 많은 가진 자들과 비슷한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스위스는 제대로 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면에서 아직 멀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지언즉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은 기분을 우울하게 만든다. 여기에 여러 가지 원인도 있지만 대기업이 무법천지로 조세피난처를 만들고 그 자본을 가지고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부당하게 그 자본이 거래된다는 점이다. 정의. 그것은 이미 박제 화된 단어이다. 그 단어를 활용하기에는 이 영토가 척박하다는 이야기이다. 스위스의 정의가 곧 그들에게 곧바로 복지, 사회 형평이기 때문에 그 조세피난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를 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제도에 대해서 드디어 뿌리뽑을 작정으로 덤비고 있다, 우선 미국은 스위스 비밀금고의 계좌의 일부 리스트를 공개요청을 하였고 그 승인이 이미 난 상태이며 이러한 사실이 뉴스를 타자마자 다른 국가들도 앞 다투어 스위스은해에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투명성에 대한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국세청이 아직 조세제도에 대한 개편에 대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먼나라 이야기 같지만 뭔가 기획재정부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