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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역사는 언제라도 흥미진진하지만, 이처럼 자세한 역사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고생물학자 매슈 보넌이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척추동물의 진화다. 바로 인간이 속한, 그 진화의 역사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역사이니 더욱 가슴 뛰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이 그냥 “척추동물의 진화”가 아니라 “뼈”를 앞세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생물 선생님에게 포유류의 진화와 관련해서 화석 기록으로는 젖도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것들이 포유류인지, 그리고 어떤 진화의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냐고 질문했었다고 한다. 어쨌든지 간에 저자의 기억에는 그 답이 남아 있지 않을 걸 보면 신통치 않았던가 보다(중간에 잠깐의 일화로 스쳐간다). 고생물학자가 되어 그 답을 알게 된 저자는, 바로 그 답을 포유류만이 아니라 척추동물, 아니 척수동물 모두에 비추고 있다. 바로 ‘뼈’다. 화석 기록으로 남은 ‘뼈’를 통해 생물들이 어떤 모양을 했었고, 어떤 생활을 했고,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화를 거듭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걸 그냥 가설이나 추론이라고만 하기에는 상당히 믿음직스러운 것은(적어도 고생물학자들이나 척추동물학자 사이에서는) 그런 해석을 가능토록 하는 증거가 반복적이고, 또한 굉장히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그 반복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해석을 이 책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들과 함께 상식을 뒤엎는 것들의 혼합 덩어리이다. 상식에 부합하는 부분을 만나면 반갑고, 내 생식과 어긋나는 부분을 만나면 갑자기 맥박이 뛴다. 어쩌면 당장은 ‘쓸모없는 지식’일지도 모르는 이 연구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이 지식들은 분명 어디선가 쓸모가 있긴 하겠지만, 그 쓸모를 지금 즉시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라면 분명 가치를 갖는 연구다.
사실 뼈 이름을 비롯해서 여러 기관들의 이름과 그것들이 기능하는 원리 등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나와서 잘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림을 아무리 자세히 그리고 비유를 통해서 이해시키고자 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조금의 차이로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는 생물의 구조와 기능은 그게 진화의 가장 큰 원리임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신나서 쓰고 있지만 독자는 그걸 모조리 이해하면서 넘어가려다간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부분들을 슬기롭게 건너뛰면서(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핵심적인 부분들, 조금은 관심이 가는 부분들을 주의 깊게 읽으면 척추동물의 복잡하면서도 눈부신 진화의 역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진화의 역사는 단선적이지도 않고, 사실 논리적이지도 않다.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그래도 그런 변화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고, 모두 적응적 형질이었다. 그러다 멸종의 길에 이르기도 했고, 또 다른 진화적 후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그런 변화는 꼭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는 우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즉, 인간으로 이르는 길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우연들이 겹치고 또 겹치면서 지금 인간의 모습이, 기능이 된 것이다. 이 우연의 결과는 인간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전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물이 바로 그 결과다. 바로 진화란 그런 것이다.
매슈 보넌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 조심스러움을 독자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걸 느낄 수 있다. 도마뱀의 출현이라고 해서 도마뱀이 그 후에 등장한 영장류보다 하등하다는 시각을 갖지 않도록 ‘공통조상’이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하고 있고, 계통수도 그런 의미로 그리고 있다.
어렵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뼈가 어디서 온 것인지, 혹은 다른 생물들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구조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고, 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냥 호기심을 넘어 우리 자신을 아는 중요한 길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