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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를 생활화 하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은 어떻게 진화하고있는가? 기술이 발전한 만큼 감정도 가속도를 내며 변화하고있다. 무제한적인 연결로 인해 자기만족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만,공허한 외로움을 깊게 경험하기도 한다. 온라인이란 편리함 속에 당연히 누려야할 존중과 효능감을 잃어버리지 않고,감정 배출구를 넘어 진정한 연결문화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 허영심 & 자아도취 >
19세기는 개인주의 시대였고 자아도취가 담긴 자기자랑과 이기주의,허영심,자부심에 대해 조금만 표현을 해도 비난을 받는다. 19세기에 등장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전국 우편체계로 편지 전달이 원활해지고 사진발명, 거울 대량생산으로 개인의 존자감을 드러내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스스로의 감정표출의 자유가 허용되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유튜브등이 직접 만남보다 익숙해진 지금의 시대에 비하면 과거는 상상속 이야기처럼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온라인 기술력의 가속화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린걸까? 편리함속에 자아도취로 스며든 일상의 허영심을 당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무한대로 주어진 풍요로운 자기표현의 무대는 사람들의 개성과 표현의 욕구를 한껏 뽐내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 셀카를 찍어올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며 '좋아요'와 '댓글' 공감을 받으며 자기만족의 정서가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악플과 선플들이 공존하지만 최근에는 고통을 수용한다는 분위기가 떠오르고 있다. 있는 그대로 현상을 바라보고 물 흐르듯 감정들을 흘려보낸다면 내면의 충돌과 번뇌들이 하나, 둘 해결이란 통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관심이 일상을 가득 메운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감정을 조절할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몰려왔다 쓸려내려가는 감정들에 관찰자로서 살아간다. '나'라는 주체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방대한 덩보 덩어리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질 뿐이다. 불안증을 언제나 공존한다.
진정한 만남과 진짜 공감력을 잃어버린 어른들과 놀이터,산,바다등의 자연과 함께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학원에서 또 학원으로 이동하는 삶에 놓여진다. 막상 야외로 나와도 신나게 뛰어노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모습들을 볼 때가 있다. 초등학생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잠깐씩 나는 틈에 중학생 아이들이 그네를 타거나 보드타기,공차기를 하는 모습들을 지켜볼때면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게 된다.
< 고독 >
마음속의 괴로움이나 혼자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으로 SNS를 반복한다. 여기저기 들여다보며 비교로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은 컨텐츠를 소비한다. 연결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온라인의 한계점인 직접 만남을 대체한 가상모임들이 증가한다. 소통의 탈출구로 등장한 커뮤니티 속 '미소일색,칭찬가득,언제나 좋아요'는 현실의 괴로움,외로움을 덜어내 줄 수 있을까? 링크 영상이나 사진은 연관검색을 통해 또 다른 링크로 이어진다. 무한하게 주어진 도파민 중독을 부르는 정보들이 쏟아진다. 함께 하는 동안 고독은 나와 무관한 듯하지만 휴대폰을 닫는 순간 극도의 고독 절벽을 맞이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가짜 만남, 가면속 얼굴말고 진짜 만남,직접 대면된 너와 나의 얼굴을 마주하고싶다.
< 지루함 >
단조롭게 반복되는 삶에 대한 감정배출구가 아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연결을 갈구한다. 키보드 속에 갇힌 언어가 아닌 마음의 목소리가 담겨진 대화를 나누고자한다. 온라인으로 충분한 교감이 된 상태라면 오프라인으로 독서모임,달리기,티타임등 실제적인 만남을 이어간다변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반대로 지루하지만 혼자있는 시간에 대한 익숙함을 느끼도록 해야한다. 계속되는 연결은 어느 순간 스스로 일어설 시간을 잃어버리도록 돕는다.타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삶은 나라는 알맹이가 빠져있다. 지루함이란 감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혼자만의 명상,기도,묵상,독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내적뿌리가 견고해지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란다.
< 주의집중 >
한 곳으로 마음을 집중해본적이 언제인가? 쫓기는 일상을 강박적으로 살아내는 현대인에게 마음이란 여기저기 떠나니는 상태일 뿐이다.여가를 여유롭게 보내는 것을 마비시키고 무엇이든 하나에 집증하기 어려운 상태에 익숙하게 지낸다.어느 날은 존재의 의미가 퇴색한 희미란 자아가 공허하게 모습을 드러낸다.집중하기는 커녕 시간 소비 중독 상태로 시간이 그냥 흐르고 있지 않은가? 한 가지 분야에 탁월한 성취는 집중에서 온다고 했다. 때로는 연결을 끊고 혼자있는 상태를 그대로 녹여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의력을 습관화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잃어가는 시간에 대한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집중과 휴식을 조화롭게 호흡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스스로 몰입하는 자력을 길러 내면을 회복하는 시간들은 꼭 필요하다.
< 경외감 >
감정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에게 감정이 밑바닥을 드러내며 잃어버린 감정의 결핍을 호소한다. 끊임 없이 자극을 받는 현대에는 경외감과 같은 거룩하고 고요속에 빛나는 감정느껴본 지도 오래된 듯하다. 인류는 윌리엄 스프레니 그 목사의 대서양 횡단,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한 신비,이카루스,프로메테우스 신화등으로 경의로움으로 가득한 경외감을 가져왔다. 발전된 문명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 나를 찾는 감정 여행은 가능한 것일까? 자연과 우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온전히 느껴보는 경외감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찾고자한다. 종교,음악,디지털에서 오는 환상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감정들이 살아나도록 마음을 살펴야 할 것이다.
< 분 노 >
식민지에서부터 백인,흑인 인종들간에 분노에 대한 관점을 살펴본다.여성,노동자,흑인은 화를 내는 것조차 수치스럽고 용납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직접적인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감정표출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에는 어떠한가? 보이지않는 가상공간에서 클릭으로 드러난 동선뿐이다.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존재하지않는다. 이웃의 문턱이 낮아 문을 열고 지내던 과거에는 집 앞에서 수시로 마주했기때문에 감정이 쌓일 틈이 없이 서로 금방 웃으며 풀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해소되었다. 가상에서는 비난하지만 만나면 친절하다는 말을 경험한다. 온라인 선상에서 무제한 링크에 개인들이 담긴다. 인간의 뇌회로가 지극히 부정편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니 온라인은 마녀사냥이 일상으로 떠다닌다. 모 연예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당일에도 수천개의 악플에 시달렸다고 한다. 특별히 싫어하지않아도 묻지마 범죄형태로 목숨까지 앗아가는 행태도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기술혁명이 일어나는 만큼 커뮤니티 상 타인을 배려하자는 문구를 넣고 활동을 보호한다. 온라인의 한계를 넘어서 오프라인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진행될 분노를 어떻게 완화하고 탄력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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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sns없는 세상은 상상도 안되는데, 책 초반의 내용을 읽고 흠칫 했습니다. 페이스북을 넘겨보면서 한페이지만 더 .. 한페이지만 더 ...하면서도 끊을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사례가 나오는데,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페이스북 아닌 유투브가 그런 존재 ㅠㅠ 유투브는 정말 한번 들어가면 재밌는게 너무 많아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온라인 세상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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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사서 볼까하다 그래도 책은 책장 넘기는 맛이지 하며 책으로 구매했다. 생각보다 책이 두껍다. -_-; (650 페이지의 압박이란..)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그 말은 인간의 감정은 그가 처한 환경 요소, 언어, 이념, 신학, 기술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은 기술의 변화가 미친 인간의 감정과 해석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특히 기술 관점에서 사람의 허영심, 외로움, 지루함, 분노 등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이야기 한다. 요즘 SNS가 우리 활동의 얼마나 많은 %를 차지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신경쓰지만.. 결국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술이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을 더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따뜻한 기술이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