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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적막한 저녁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325)이 궁금해서 구매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아직 두시간 밝기까지는 아직도 두시간이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을때가 기억나네요 .지금은 흥분 상태로써는 도저히 잠을 들 수가 없었겠죠. 그리고 또한 지금의 무시무시한 마음상으로는 두 시간이 몹시 길 것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두시간동안을 두식이는 무슨 재미있을 책이라도 읽어야될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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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순간 뒤에 老子爵의 노염에 불붙는 눈은 휙 돌아와서 아들의 얼굴에 正面으로 부어졌다. “네게는 ― 네게는 ―.” 노염으로 말미암아 老子爵의 숨은 허덕였다 ―. “네게는 아비가 그렇듯 老衰해 뵈더냐!” 일찌기 호랑이 같은 宰相으로서 善政에 虐政에 같이 그 이름을 울리던 老子爵의 面目은 여기서 나타났다. 얼굴은 누렇게 여위었지만 거기서 울려나오는 音聲은 房을 드렁드렁 울리었다. 다시 興奮해 가는 아버지의 앞에 두식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蒼黃하여 할 때에 아버지는 다시 高喊쳐서 저便 房에 있는 忠僕 왕보를 불렀다. “야. 왕보야 ― 왕보야 ―.” 充實한 왕보였다. 비록 잘 때라도 主人에게 對한 注意는 끊치지 않고 있던 왕보는 主人의 부름에 곧 이 房으로 달려왔다. 그 왕보에게 向하여 老子爵은 마치 어린애같이 自己의 處地를 呼訴하였다. “왕보야. 나는 좀 자고 싶구나. 그런데 이 ― 이 ― 이 사람이 귀찮게 굴어서 잘 수가 없다. 날더러 老衰했다는구나. 날 제발 좀 자게 해다구.” 왕보는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老子爵의 寢臺에 가까이 가서 한 番 子爵의 이불을 고쳐 드린 뒤에 천천히 눈을 두식이에게 돌렸다. 두식이는 아버지의 房에서 물러나왔다. 自己의 寢室로 돌아온 두식이는 몸을 커다랗게 寢臺에 내어던졌다. 그리고 다리는 마루 위에 上半身은 寢臺 위에 눕힌 뒤에 卷煙을 붙여물었다. 밤의 困한 잠에서 깨어나고 깨어난 뒤에 連하여 奇怪한 일을 본 두식이에게는 只今이 마치 꿈과 같았다. 短銃 소리에 깨었다. 別堂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氣切하고 電燈은 부서졌다. 彈丸이 여기저기 박혔다. 아버지를 洋館으로 모셔왔다. 아버지에게서는 亦是 理解할 수 없는 說明을 들을 뿐이었다. 그것을 疑心하매 아버지는 성을 내었다. ― 大體 김덕삼이가 누구던가. 김덕삼의 아들이 누구던가. 아까 아버지의 입에서 김덕삼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에 아버지의 얼굴은 몹시 不安한 듯하였다. 分明히 아버지는 그 김덕삼이란 이름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의 不安한 表情으로 아버지와 김덕삼의 새에 무슨 奇怪한 因緣이 있던 것도 疑心할 餘地가 없이 보였다. 七十年에 가까운 生涯를 아직 두려움을 모르던 아버지도 김덕삼의 이름을 말할 때는 分明히 두려운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면 大體 김덕삼이가 누구인가. 김덕삼이와 아버지의 새에는 어떤 因緣이 있나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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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작의 이야기인데 김동인의 작품을 읽다보면 김동인 자신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작품입니다 두식이와 노자작의 적막한 저녁이 왠지 김동인 자신의 이야기가 투사 된 느낌이라 그리고 그 당시 지주 계층의 삶의 한 단편 노쇠해가는 아버지와 그 아들간의 묘한 효도와 서로 다른 이질적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김동인은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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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적막한 저녁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325)을 읽어보았습니다. 두식이는 찬수를 내보낸 뒤에 문을 잠그고 침대로 돌아와서 몸을 내어 던졌잖아요. 지독한 피곤이 그의 몸을 엄습하기까지하고.. 담배를 한 대 붙여물었던 두시이는 그 담배를 다 태우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뜨리고 옷도 끌리지 않고 잠든거보면 참으로 피곤했던것같아요. 몹시 곤한 잠에 빠졌던 두식이가 안쓰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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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적막한 저녁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325)을 구매해서 읽고 바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왕보는 허리를 굽히면서 노자작의 침대에 가까이 가서 한 번 자작의 이불을 고쳐 드린 뒤에 천천히 눈을 두식이에게 돌리는걸 보면서 효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침실로 돌아온 두식이는 몸을 커다랗게 침대에 내어던지는걸 보면 얼마나 피곤했을지 짐작이 가는데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엄지척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