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도서의 제목처럼 진지하게 고민스러웠고, 배워도 배움은 끝이 없었기에 부족함을 항상 느끼고, 어느 단계가 되어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상은 공부에 치여서 해야'만'하는 상황보다 이미 현역시절은 지났거나 공부에 미련이 남은 이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지어 본다. 나 역시도 공부를 해야'만'했던 시절을 빽빡하게 보내지 못한 탓에 공부에 대해 간헐적인 노력으로 내 미련과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고, 그랬기에 이 도서의 제목은 나의 공부에 대한 생각을 결론지어 줄지도 모른다는 깊은 바램을 담은 도서였다.
도서를 읽기전 김영민 교수님의 그 유명한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칼럼을 읽었고 지적이지만 엉뚱함으로 표현되는 문체를 보며 <공부란 무엇인가> 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공부가 무엇인지 손에 쥐어주기 보다 여러 지식의 문을 통과하여 그의 속내를 파악해야 이해가 되는 도서란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터 학생들과 '대머리'에 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내용부터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헷갈리는 대화의 장이 벌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등의 전개가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정신차리고 집중하며 숨은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다보면 공부의 의미는 물론 더 많은 지식을 깨닫기에 아주 탁월한 도서였다. 개인적으로 읽어서 보람을 느끼고, 무언가 남기고 싶고, 남에게 나눠주며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소소한 바램 등이 독서를 하고 얻고 싶은 결과인데 그 목적을 충족해 주면서도 유쾌한 언어들을 비틀어내는 방법이 부모의 부부싸움을 중간에서 해결해 버리는 만렙 내공의 자식이 될 것 같은 기분도 들게 하는 비유로 꽉 찬 도서였다.
'지적 성숙의 과정인 공부에 대해 알려면 공부에 대한 삶과 기초를 터득하고 생각을 정교하게 목마른 사람처럼 배움의 기회를 찾기를 권유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의 함축이라 조심스럽게 단정해 본다. 대충 알고 있는 단어를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에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곡해하기에 정확한 개념을 알아가는 것과 모호함에서 헤어나오길 바라는 서두 부분은 공부의 기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평소에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착각한 척 하며 사용한 말의 습관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중요한 읽을거리였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이 공부하는 삶이라고 설명한다. 무작정 공부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거나, 목적없는 공부를 제시하는 뒷심 부족한 주장으로 끌고 나가지 않고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간접적인 응원을 잊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공부에 대한 기대효과의 하나인 '섬세함'의 장, 단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고 또 다른 기대효과인 '간지가 난다'는 내용은 공부가 즉각적인 쓸모와 거리가 멀수록,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라틴어나 초서 읽기 등은 현실적으로 무슨 이득을 가져다 줄지 불분명한 것들이 자기 통제력을 놓지 않은 파계승 같은 '간지'가 맴돈다는 것은 현실적인 공부에 대한 대안을 꼬집기도 한다.
도서의 중반이 되면 공부의 능동성과 창의성을 다루는데 공부의 기초로 질문과 맥락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흥미로운 것은 '책을 왜 읽는가?'란 질문에 대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기 위함'이라는 프랑스의 비평가 에밀 파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는 즉, 사회로부터의 도망이 독서이고, 자아로부터의 도망도 독서가 될수 있다는 의견은 결론적으로 독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것이다.
참 반짝거리는 문장이라 생각되는데 이것저것 머리에 넣어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부딪히고 가슴 깊숙하게 발효되어 다채로운 상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강요와 허울뿐인 설명보다 스스로가 공부에 빠져들고 싶은 문장이 아닐까 생각되어 굉장히 인상깊던 구절이다.
또다시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평이란 무엇인지'를 다룬 부분이다. 독서 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서평에 관한 관심은 기본적일텐데 저자의 서평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다. 더군다나 저자의 말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독자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서평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나의 조악한 글이 책에 대한 세계를 열어준다고 생각하니 성장이 더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
도서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그렇다면 저자는 공부란 무엇이라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으며, 독자의 머릿속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 그의 의견을 알 수 있어진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방대한 지식을 현란한 미사여구로 표현하였기에 독자는 여기에 홀려 목적을 잊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원했던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거부감이나 당황스러움이 생길수도 있겠다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이 도서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로,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기에 배울 것이 많은 것이고 그것이 대부분이 이 책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나의 새로운 지식의 확장으로 다양한 카테고리가 생기며, 아는 즐거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째로, 현란한 미사여구에 현혹되어 목적을 잊더라도 읽어야 하는데, 저자의 의도를 다시 생각하며 공부에 대해 어떤 답을 원하는지 스스로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의 문체를 보면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족을 단 것 같고, 듣고 싶은 답보다는 재치있는 표현이 더 많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정신차리지 않으면 챕터마다 길을 잃을 수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공부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해 줄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이것은 영화를 볼때 감독이 열린 결말을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며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어차피 자기 식대로 이해한다. 따라서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으며 그 속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공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로, 다양한 공부의 갈래와 생각을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좀 더 나은 것을 바라는 나의 단선적인 생각을 바꾸어 준 도서로 목차를 읽어보기만 해도 글쓰기, 단어, 공부의 기대효과와 체력, 독서와 서평에 관해, 토론과 사회의 기능 등 다양한 방면의 공부에 관해 알게 되니 시간 낭비가 없는 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단순함을 넘어설 수 있게 되는 도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글을 많이 쓰는 이유를 인터뷰한 내용도 담겨있는데, "한국어로 쓰면 좋은 산문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라는 답변이다. 이 말은 자신이 쓰는 산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이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동료들과 고급 서평지를 내려는 계획 역시 "좋은 글을 다량으로 유통시키기 위해서라고"하니 많은 정보, 글,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회적 공헌을 생각하고 뚜렷한 목적을 갖고 실천한다는 것이 충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가 평소의 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학생들의 변화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독자 역시 변화되는 일이 생길테니 그것으로 더욱 공부에 대한 명확한 나만의 답을 얻을 수 있는 가치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
|
|
흔히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입시공부나 취업공부 등 시험을 위한 공부를 떠올린다. 하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해왔고,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변함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군다나 국어사전에도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간혹 요즘 무얼 하느냐는 물음에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어김없이 무슨 시험 준비하느냐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그럴 때면 더 이상 피곤한 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마음공부중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농사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도대체 공부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민 교수는 그의 첫 산문집이라고 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로 만났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에 반하여 논어에세이인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으면서, 그가 그 책에서 말 한대로 논어에세이가 이어진다면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이 출간되면서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책 한 권 읽는데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지만, 요즘은 달리 하는 일도 없으면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 게을러진 탓 일게다. 그러다보니 예전 같으면 일단 읽고 보았던 책들도 요즘은 꽤나 망설인다. 내 취향에 맞는 책일까 혹은 읽고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까 하는 생각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간신히 의문들을 억누르고 책을 읽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좋았다는 생각도, 괜히 읽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는 날까지 공부에 힘써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숙한 시민으로써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소양을 쌓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하는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82쪽)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자기 갱신의 체험을 위한 공부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생각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 공부의 기초부터 심화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는 먼저 모순이 없는 글쓰기, 단어의 정확한 개념 등 지적성숙의 과정으로 가기위한 기초에 대해 논하며, 그러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읽기, 듣기, 질문하기, 그리고 나의 공부를 남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써 쓰기, 말하기, 논쟁하기와 같은 표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질문과 맥락을 만들 수 있으며, 이를 가지고 논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책의 구성이 교양강의 형태로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공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공부란 지적변화를 위한 것인 동시에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을 펼치는 과정이며, 모호함을 벗어나 명료함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의 전작에서는 그의 글들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그러한 공부의 의미와 방향, 방법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을 생각할 때 나의 공부는 어떠한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될 것도 같다. 그렇다고 책을 읽기 전 들었던 의구심이 명확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부라는 주제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글 중에서 눈길이 머물렀던 글이 두 단락 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 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 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설파하는 사이비 지식인이나 종교지도자나 독재자가 번성하게 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 없는 인정욕구가 남발하게 된다.’(13쪽)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떠오르게 만든다. ‘서평은 서평대상이 된 책뿐만이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이다.’(154쪽) 난 지금 나의 멍청함과 편견을 홍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ㅎ~ |
|
하나의 전체로서 책에 대해 말하기 meta의 뜻
<공부란 무엇인가>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도 서평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제가 쓴 리뷰가 얼마나 부족한지 또 무엇을 보완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공부는 경제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우선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예스24와 인스타그램 등에 자료를 올리고 서평을 공유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쓰는 것. 책을 출간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거나 의미있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기도 합니다. 우선은 서평부터 제대로 형식에 맞고 내용이 충분하게 쓸 수 있게 연습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만약 내 글이 구리다면 표현법 때문이 아니라 진부한 생각 때문이다. 생각의 게으름이 상투성과 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그러다보니 간간이 자기복제까지 하면서 먼지가 풀풀 나는 글을 쓰게 됐다. 낡고 해진 글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보기 좋게 차려진 음식에 손이 가듯 맛깔스럽게 쓰인 글은 읽는 이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다는 요즘에도 자신만의 강고한 세계 위에 뚜렷한 색을 가진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지금도 많다. 달리 작가겠는가. 그러나 예민할 정도의 섬세함과 적확하고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찾자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런 류의 작가로 서울대 김영민 교수를 꼽고 싶다. 만일 그의 글이 이토록 흡입력이 있지 않았다면, 아직도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이 의식이 아닌 접속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가, 독후감도 아니고 서평은 더더욱 아닌 조각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글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실은 무의미하고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니까. 김영민은 이 책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본질에 관해 말한다. 덧붙여 공부가 주는 효과와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함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활발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학생들도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 같으니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처럼,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11쪽 프롤로그) 오래도록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요즘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가 드물어 지는 건 계층의 고착화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보여지는 진입 장벽의 강화로 계층 상승이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이토록 입시에 많은 것을 쏟아붇는 것도 막차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 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12쪽 프롤로그) 성과를 위한 공부는 라면과 비슷하다. 라면이 일시적 허기는 면케해 주지만 영양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용함의 공부는 무용함의 공부를 포괄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좋은 영양식조차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공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눌려 살고 있으니 너무도 측은하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 1,2부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과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한 공부를 다른 이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알고 체득해야 할 과정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글은 쫄깃하고 탄성 가득하며, 공부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섬세하고도 주의 깊게 독자를 이끈다. 개성 뿜뿜하며 재치 가득한 김영민의 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공부란,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인 동시에 모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중 제일 빵 터졌던 글은 " '설레다'와 '설레발'의 관계는 무얼까. 설사는 항문이 오열하는 것일까. 영어마을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감옥을 만들면, 학부모들이 앞 다투어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않을까." 등이다. 할 것 많고 볼 것 많은 세상에 이미 살만큼 살았고 급한 대로 늙을 만큼 늙었는데 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해야 한다니 애통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 듯 김영민은 이렇게 써 놓았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니, 그걸 언제 다해요? 이 짧은 인생에 책만 읽다가 죽으란 말인가요?" (142쪽) 그래 놓고는 이런 말로 시치미를 뗀다.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듯이, 공부라는 긴장을 해본 사람만이 휴식이라는 이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쉬는 일은 쉬워집니다." (265쪽 에필로그) ![]() |
|
"이 수업은 여러분들의 지적 변하를 목표로 합니다." 이 말이 그냥 광오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 책. 구입해서 읽지않고 빌려서 읽었지만 구매유예 약속만 아니라면 바로 사고 싶은 책입니다.
프롤로그: 낙화암에서 떨어진다고 모두 꽃은 아니다
혹시 '서울대와 기타 대'라는 표현을 아십니까? 그런 표현이 이제는 이렇게 바뀔 것 같습니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과 멈춘 사람들! 사회 초년생일 때는 학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학벌이 주는 차이와 똑똑함을 무시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시간이 다른 것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월급쟁이야 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인가? 가 어느 순간에는 중요해지더군요.
<공부란 무엇인가>는 건강과 공부를 포함해서 평생 학습을 하려고 할 때 도대체 공부가 뭔데?에 대해 답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되는 책이라고 판단합니다. 아직도 '공부'에 대해 많은 책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공부는 참 어렵기도 하고 시시때때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랜드투어가 유희가 아니라 공부였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요즘은 더욱 그러합니다. |
|
다른 사람에게 가치관을 전하고 싶다면 스스로가 먼저 정확히 아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이 밖에도 어떤 가치관을 전하고 싶은지 고민해볼 수도 있다. <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 中- 류쉬안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거만해 보이는 이 제목은 그만큼 독자의 관심을 끈다. <중앙SUNDAY>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일부와 추가적인 내용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매력적인 글쓰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현재 한국어로 통용되는 글 다수에 '깊은 빡침'이 있고, 그 분노가 다른 글을 쓰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무언가에 '빡친'저자가 위에 인용한 글처럼, '스스로 공부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있는' 저자가 공부에 대한 가치관을 전하고자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쓸모가 쉽게 증명되지 않는 공부의 기대 효과가 기껏 까다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라니, 정녕 기대할 건 그것뿐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공부가 즉각적인 쓸모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묘한 '간지'가 난다는 것이다. - 본문 中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사람들이 입시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 교육은 계층 간의 이동을 촉진하기보다는 계층을 고착화한다.'라고 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경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교육열이 강함에도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 공부의 간지를 모르는 현실에 '깊은 빡침'을 느꼈나 보다. 독서는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데도 유용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데도 쓸모가 있다. 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떠나 책 내용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서는 자기에 취하는 일이 아니라 책에 취하는 일이다. -본문 中 본문의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장에서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뿐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다.'라며 으름장을 놓아서, 서평 쓰는데 잠깐 주저하긴 했지만, 뭐 '내가 멍청해 봤자 얼마나 멍청하겠어' 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물론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나왔으니 말인데, 평소 내가 생각하는 내가 쓰는 리뷰의 문제라던가 어떤 식으로 앞으로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참고가 되었다. 이런저런 요건을 갖춘 '학식과 비판과 문체가 어우러진 글'이 좋은 서평인데, 그것은 저자의 기준이고,-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 뭐든지 합合 목적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참고만 하기로 했다. 물론 저자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저 기준에 부합해야 하겠지만. 너무 안온한 환경에 자신을 방치해두면, 새로운 생각을 할 역량 자체가 퇴화해버릴 것이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유충 시절에 물속을 떠다니는 멍게는 뇌가 있지만, 성체가 되어 적당한 장소에 고착된 멍게는 자신의 뇌를 먹어버린다고 한다. 우리는 멍게가 아니므로 흥미로운 험지를 기꺼이 찾아다녀야 한다. -본문 中 대학교수이다 보니 아무래도 학생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인지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낸다. 저자는 정확한 언어의 사용을 강조를 하지만 말이다. 하긴, 저자의 그런 표현들이 부정확한 언어는 아니니까 오히려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걸 수도 있겠다. 저자가 글에 썼듯이 '자신의 목소리가 독백에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대가 무엇인지, 그들의 배경지식이 무엇인지, 그들이 책을 덮을 때, 그들의 머리와 심장에 무엇이 남아 있기를 자신이 원하는지.'를 고민했을 테니. 내 수준이 딱 그 정도인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너무 단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다소 동의가 안되는 그런 부분은 저자의 말마따나 '아 그러시군요.'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 본문 中 상당히 많은 공부 또는 공부와 관련된 것들에 저자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해서 좋다. 예컨대, '토론의 목적은 다양성을 무한정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좀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타당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라던가 '대부분의 공부 분야에서는 늘 관련 자료를 모으는 자세,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끔 정리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와 같은 공부에 임하는 자세 또는 팁들이 도움이 된다.
이제 와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내 대학생활 초기에 이런 강의를 들었다면, 대학 생활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중간중간에 소개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공부, 뭐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위의 사진을 보면서 다짐하며, 에필로그에 저자가 남긴 공감 가는 글로 마무리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
|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공부에 관한 리드미컬한 조언들. 공부는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
| 나는 글 좀 쓴다는 자기 인식에서 오는 것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저자의 나르시시즘, 이런 글을 글쓴이는 재미있다고, 누군가에게 읽히면 좋을 가치있는 글이라고 생각하며 쓴 것인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도 명문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인가. 독자 입장에서는 전혀 재미없는 말장난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책. 그래서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란 무엇인가. 대학교수로서의 자기 입장에서의 경험을 그냥 쓴 글일 뿐 일반인을 위한 공부의 의미를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비슷한 전공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는 좀 도움이 될까? 이 책이 궁금하시면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보세요. |
|
본론만 말하겠다. 제목처럼 공부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하고 그로 인해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를 논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사셨다면 바로 환불하기를 바란다. 포장조차 뜯지말고 그저 단순히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공부와 엮어서 '썰'을 푸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면서 비싼 돈을 받아먹는 책이다. 추석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접한 뒤 구매했는데 공짜인 그 칼럼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공부에 대해 생각해볼 점인가? 자신의 강의 중 있었던 일화를 썰처럼 푸는게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내용인가? 도대체 무슨말을 저자가 원하는지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평가하기에는 단순히 서울대를 나온 필자의 '다양한 썰풀이와 잡담' 정도일 뿐이다. |
|
김영민 교수는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사회 정체성을 흔드는 질문이 가족간에 나누는 덕담의 해악을 타파할 수 있음을 전파한 바 있다. 이 글은 꽤 전파력이 쎘다. 그리하여 교수는 ‘~란 무엇인가?’로 꽤 많은 구독자 층을 확보했다. 구독자 층에는 나도 포함된다. 교수는 책을 얼마나 더 팔아먹고 싶은 건지, 아니면 공부에 무지한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수할 심산이었던지 새책을 냈다. 책 제목은 무려 ‘공부란 무엇인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공부인가? 출판사가 빅데이터를 돌려보니 제일 팔아먹기 쉬운 키워드가 공부여서? 노총각 대머리 교수의 인생이력상 공부 밖에는 뽑아낼게 없어서? 전작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고 삶을 텍스트 이기 때문’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 하지만 이 책은? 프롤로그를 살펴보자.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 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p.14) 양념인생 목적론은 교수의 말대로 연구계획서에 쓰는 기대효과와 같은 것이다. 전혀 효용이 없을 것 같은. 아무도 실현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 공문서의 기대효과와 같은 것. 책을 완독해보니 교수가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깊은 빡침’이었음을 눈치챘다. 깊은 빡침의 대상은 ‘모호함’이다. “새 정치를 실현하겠습니다!” “새 정치란 뭐죠?” “제가 실현할 정치가 새 정치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새로워야, 새로운 정치란 말인가. (p.48) 정치인이 정치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 사태. 교수는 이 난감한 사태에 분개한 것이다. 그래서 교수는 학생에게 공부가 뭐죠 물었을때 ‘제가 하는 거요’ 라고 답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꺼이 선생의 덕목을 발휘해 이 책을 쓴것이다. 모호함이란 거침, 투박함이라는 속성과도 연결이 된다. 정치인과 같이 상대적 갑의 위치한 사람들이 모호한 언어를 말한다면 을의 위치에 있는 존재, 예를들어 말단 직장인들은 거칠면서 섬세하지 못한 언어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거친 안목과 언어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를 부수거나 난도질 할 수 있을지도 몰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식의 거친 공부라면, 편견을 강화해줄 뿐, 편견을 교정해주지는 않는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p.84) 교수는 섬세한 언어가 정교한 쇄빙선이 된다는 우아한 결론을 내려 독자를 감동시키는 듯하나, 조금만 더 살펴보면 섬세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에 대한 빡침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심지어는 흐릿한 언어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행위를 반사회적 행동에 가깝다는 비판을 하기까지 한다. 그가 모호함에 대해 얼마나 ‘깊은 빡침’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책이 서술하는 모호함의 영역은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꺼이 직업 소명의 영역까지 확장한다. 김영민 교수는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그 학교는 한국에 널리 알려진(하버드)곳이라 교수들이 연구년을 보내기 위해 많이 왔다. 물론 연구의 취지에 맞게 열심히하는 교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음주와 골프와 관광’으로 소진하는 교수들도 많았다며 저자는 분기탱천한다. 과연 교수란 무엇인가? 저자는 정체성이 모호한 혹은 소명없는 해외음주골프관광 교수들을 일갈한다. 공부란 최소한 해외음주골프관광 교수는 되지 않는, 최소한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는 도덕적 교훈 마저 일깨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공부란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자기희생도 감수한다. 눈물겹다. 자기희생은 거록한 정언명령 으로 실현된다. 정언명령은 다음과 같다. ‘대머리를 정의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