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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그러나 ‘시작’이라 부를 법한 시점은 분명 존재한다.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의 시작과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의 처음>은 왠지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됐지 싶다. 도구부터 과학, 예술,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진 분야가 실로 방대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걸 다 다루기 위해서는 적잖은 수고가 필요했을 거다. 나 같았으면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부터 쳤을 텐데,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끝에 저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들어가는 글을 통해 저자는 중구난방식 접근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기울인 노력을 소개했다. 한 계통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걸 주목했으며,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법한 내용을 선별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자와 같은 선택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곁가지들을 쳐내는데 유효했을 것이다. 카메라의 경우, 필름 카메라만 해도 흑백, 컬러로 구분이 가능할 테고, 디지털 카메라만 해도 우리가 똑딱이라 부르는 소형 카메라에서부터 DSLR, 미러리스 등의 언급이 가능하다. 여기에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까지 더해야 한다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쉽다. 후자는 독자를 위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저자 자신을 위한 것인 듯도 하다. 저자 스스로도 관심이 가지 않는 내용이라면 출발은 거하게 해도 이내 지쳐 더는 글을 전개할 수 없을 테고, 쓰는 이가 지루해 하품이 날 법한 무언가라면 독자 또한 온몸이 베베 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베스트셀러의 가능성이 높은 부류의 책은 아니나 서점에서 먼지만 뿌옇게 쌓여갈 운명이라면 차라리 아니 저술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흥미로웠다. 동시에 주제가 광범위해 한결 같은 집중력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치 사전을 접하듯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부터 순서를 상관 않고 택해 읽었다. 그러면서 든 감정 중 하나는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분명 학창 시절 기원전, 기원후로 나뉜 역사에 대해 배웠다. 무려 4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에 걸쳐 존재하는 이 땅에서의 삶이 대단하다고 당시에도 느꼈는데, 그 때와 같은 느낌을 이번에도 받았다. 막연히 ‘그랬다더라’가 아닌, 무언가 입증이 가능한 기록 따위가 존재하기에 역사가 될 수 있었던 일들이 이토록 많을 줄이야. 앞선 시대를 살아 보지는 못했지만, 태초에 가까운 시점에 도달하면 아마도 아무것도 존재치 않아 암담한 마음에 시달리게 될 듯했다. 처음이 힘들다. 인류는 수많은 분야에서 ‘처음’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 것 일궜다. 당시로서는 참으로 더딘 속도에 한숨이 절로 나왔겠지만, 그들이 이룬 바를 토대삼아 오늘날 우리는 우뚝 섰다. 그들과 내가 유전학적으로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등을 따져 본다면 유의미한 수치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끊이지 않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인류의 문명은 그들과 내가 결코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란 걸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상당히 최신 분야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지닌 의외의 긴 역사에 놀라기도 했다. 자원 고갈이나 환경 오염 등은 인류가 한껏 경제성장에 매달리던 시절에는 등한시 여겨졌던 분야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지구를 돌봤으며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지엽적인 형태의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차원에서 힘을 쏟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진 것은 반대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 같다. 전쟁의 폭력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이 곧 무기의 감축과 같은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특히 오늘날에는 자본이라는 요소가 가미됨에 따라 평소 품어온 생각에 반하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일도 잦다. 이론과 실재 간의 괴리를 어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앞날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조금은 뜬금 없을 수도 있으나 부족한 지식 덕에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해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끔찍한 치료를 받아야만 했던 이들과 지금은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인해 사망해야만 했던 이들, 다름을 차별 기제로 활용하는 사회 분위기에 희생당했던 이들의 넋을 위로해본다. 그들은 그리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은 그들이 살았던 시절보다 여러모로 나아졌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안식을 선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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