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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된 로마"에 대한, 기원후 직전에서 3세기 초반까지의 분석서
""제국이 된 로마"에 대한, 기원후 직전에서 3세기 초반까지의 분석서" 내용보기
로마를 황제정으로 만든 아우구스투스 이래 폭군 콤모두스가 살해되기에 이르기까지의, 200년간의 로마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로마인이야기 6~11권)     1~2세기의 사회/생활상,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 로마제국에 군림한 황제들 -     특히 클라우디우스(티베리우스~네로), 플라비우스(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5현제와 안토니우스 가문(안토니우스~콤모두스)의
""제국이 된 로마"에 대한, 기원후 직전에서 3세기 초반까지의 분석서" 내용보기

로마를 황제정으로 만든 아우구스투스 이래 폭군 콤모두스가 살해되기에 이르기까지의, 200년간의 로마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로마인이야기 6~11권)  

 

1~2세기의 사회/생활상,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 로마제국에 군림한 황제들 -  

 

특히 클라우디우스(티베리우스~네로), 플라비우스(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5현제와 안토니우스 가문(안토니우스~콤모두스)의 면면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은 클라우디우스 가의 황제 시대는 세습 왕조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화와 음모와 살해와 같은 패륜 가문의 분위기가 황제와 그 주변인들에게 만연해 있었다. 칼리굴라나 네로와 같은 폭군이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니다. ] 

 

[ 1세기 중엽부터 로마제국의 부는 이탈리아인으로부터 이탈리아 밖의 속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으며 2세기에는 에스파냐 출신의 안토니우스 가문이 황제위를 세습하는 한편 갈리아인에 이어 동방인과 북아프리카 출신의 정계요인이 증가하고, 로마군단 내부에서도 (진골) 이탈리아인의 비율이 감소하였다. ] 

 

[ 칼리굴라/네로/도미티아누스의 공통점은 전제군주 성향을 추구했으며, 귀족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여 그들을 적으로 돌리고 민중과 군대의 지지를 등에 업은 선동정치로 국가를 이끌어가려 했으나 결국엔 그들에게 버림받고 죽었다는 것이다. ] 

 

"검투사 황제" 콤모두스의 죽음 이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통해서 황제 자리에 오른 세베루스와 그의 후예들은 원로원을 무력화시키고 군권을 장악함으로 국가를 통제하는 군부정책을 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시작되는, 로마 제국 쇠퇴의 시기입니다.

h***5 2010.02.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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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또한 하루아침에 멸망하지도 않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또한 하루아침에 멸망하지도 않았다."" 내용보기
로마는 게르만인 용병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였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오도아케르는 단지 스스로 멸망해가는 로마를 점령했을 뿐이다. 멸망하기 200백여년전부터 로마는 내부적으로 썩어있었고,사치와 향락이 극을 이루면서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가 꾸준히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훌륭한 황제가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주어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또한 하루아침에 멸망하지도 않았다."" 내용보기
로마는 게르만인 용병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였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오도아케르는 단지 스스로 멸망해가는 로마를 점령했을 뿐이다. 멸망하기 200백여년전부터 로마는 내부적으로 썩어있었고,사치와 향락이 극을 이루면서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가 꾸준히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훌륭한 황제가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주어서 로마 멸망을 200여년이상이나 뒤로 후진시켰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네로나 도미티아누스 등의 폭군등이 자주 등장하는 로마의 쇠퇴기에는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5賢帝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한 오점도 많았지만 훌륭했었다고 칭찬할 만한 황제들-베스파니아누스가 대표적-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베스파니아누스 황제의 통치에 관해서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착취했다고 알려진 그는,심지어 세금을 걷기 위해서라면 공중화장실을 만들어 시민들로 하여금 그것을 사용케하고, 사용할시에는 사용료를,사용하지 않을시에는 사용료보다 더한 벌금을 매김으로써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했다고 기술하는 여타 다른 책에서 단지 세금을 착취하는 못된 황제로밖에 묘사되지 않는다. 나 또한 황제의 세금에 대한 지나칠정도의 집착을 알고 있었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착취하는 황제치고 훌륭한 군주였다는 평가를 받은 이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러한 평가들을 당연시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세금으로 걷은 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쓰지 않고 도로망이나 수로 건설,지진이나 화재 피해 배상-그의 통치시기에는 지진이나 화재등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컸다고 한다- 등의 백성들을 위한 곳에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음을 생각해 볼때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차피 군주인 그는 자신이 생산활동에 종사하여 돈을 벌 수는 없었을터, 그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하므로 백성들의 세금에서 그 비용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고 후세의 역사가들은 단지 세금을 착취했다는 겉모습만으로 그의 업적은 배재한채 혹평을 내린 것이리라.. 로마 관련 역사책들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에는 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쪽 시각에서만 바라볼경우 때로는 매우 편협적인 방향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책을 읽을 때 다양한 관점의 서적들을 접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베스파시아누스는 다른 것들도 잘 복원시켰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두 명령체제를 재조직하고 새로운 귀족을 만들었다. 또한 소송이 늦어짐으로써 생기는 혼잡함을 없애기 위해서 법정을 새로 건축했다.그리고 식민지를 건설하고 에스파냐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에게 라틴인의 권리를 주었다. 10년간의 그의 업적을 통해 위기에 처한 제국은 굳건한 토대와 행정을 위한 새로운 인물들을 찾아냈다. 관습 또한 변했다. 황제를 닮으려는 행동이 서방 전체로 확대됨으로써 전통으로의 회귀가 나타났고, 그 결과 요란스러운 사치가 없어진면서 개인의 공적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가 권력에 대해 다른 의미, 다른 양식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은 존경받았으나 일반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려는 경향도 강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마지막 순간에 '황제는 서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69~79년의 10년간은 1세기의 정치사에서 특별한 시기었다.
YES마니아 : 로얄 p******9 2000.08.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