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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보니 철창에 갇혀있는 표지 속 침팬지의 표정이 나를 슬프게 했다. ‘동물 해방’ 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이미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실천 윤리학의 대가 피터 싱어가 저술한 ‘동물해방’이라면 단순히 문제제기의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주장하는 동물 해방, 종차별주의란 개념에서부터 불매운동이나 채식주의를 실천하라는 방안에서나 논쟁의 소지가 충분했다.
‘동물 해방’이란 말이 주는 어감은 상당히 강렬하다. 일단 동물의 복리를 노예나 여성, 노동자와 동일선상에서 해방의 대상으로 선정한 관점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의 이익에 우선해 동물들을 대하는 것을 종 차별주의라고 규정하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도 그렇다. 어느 정도 동물의 희생을 당연시돼 왔던 인간 중심적 사회 통념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물애호와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관점을 주장하고 있는 점은 상당히 눈길을 끌었고, 그런 만큼 논란꺼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종 차별주의가 꽤 오랜 동안 사회적으로 통용돼온 것은 철학적, 종교적 분위기에 근거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사상 등 철학적,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 우선시 되는 경향은 역사적으로 종차별주의를 합당하게 뿌리 내리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종 차별적 사고와 행동은 로데오 등 동물을 인간의 오락거리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종 차별주의와 대량생산 체제가 결합한 공장식 동물농장이 탄생하는데 일조했다. 피터 싱어는 공장식 동물 농장 시스템의 잔혹함에 대해 날을 세워 비판하고 있다. 그럴만했다. 축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성행되는 공장식 동물 농장, 동물들의 도축 시스템을 담은 부분에선, 육식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라도 그 내용을 읽어가는 것이 괴로울 지경이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 속에 동물의 복리는 커녕,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면 누려야할 기본적인 배려조차 하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과 종 차별주의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피터 싱어의 관점과 입장에 동조하게끔 만들었다. 더욱이 공장식 동물 농장은 단순히 동물 해방의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과 식량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지적할만하다. 종 차별주의의 문제야 말로 환경과 식량문제와 연결 되는 생태의 문제가 되는데, 그래서 피터 싱어는 일찍이 본인부터 채식주의를 실천하면서 채식주의와 불매운동을 실천하라고 권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종 차별주의는 시장과 결합돼 작동되고 있고, 그런만큼 자각과 실천이 맞물린 불매운동과 채식주의가 대항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실천윤리학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울 것이다. 며칠 전 허리우드의 유명배우 킴 베이싱어가 우리나라 유명 디자이너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를 흥미있게 읽었다. 베이싱어가 그 디자이너에게 더 이상 모피를 소재로 디자인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 했다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모피 사용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채식주의가 꽤 활발하고 공개적으로이루어지고 있다. 이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 동물 해방이라는 문제가 인간에게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물론 동물 해방의 개념이나 그 실천 방식을 두고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육류뿐만 아니라, 일체의 유제품도 거부하는 엄격한 의미의 채식주의나 동물 실험 반대에 대한 반박도 불거지고 있고 갈등의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동물 해방'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이책은 동물에 대한 인간 중심의 잔혹함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가 하면 인간에게 동물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일깨워주고, 인식을 전환하게 한 것으로 기억되고 평가받을만 하다. |
|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알수 있는 책입니다. 동물 해방론자는 아니지만 왜 수많은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을 위해서 일하는지.. 그래야만 하는지 알수있는 소중한 경험이된 책입니다. 인간을 위해 가축되어 사육되어지고 있는 단순히 인간의 식요만을 위해서 그나마 그과정의 잔임함이란... 인류의 건강과 학문을 위해서 사라지고 배양되고 있는 실험용 작게는 생쥐부터 침팬지같은 영장류까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자신의 생존만이 아닌 행복추구를 위해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최소한의 선은 지켜주어야 할테데.. 동물들의 희생이 끝마쳐지는 죽음의부분에서도 그 방법은 잔인하고 형용하기 조차도 힘듭니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분이라도 어렸을때 개한테 물려 동물을 싫어하신다해도 피터싱어 교수의 말을 들으면,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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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동물을 애호(love)하는 이면에는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말은 낯설지는 않지만 친근하지 않다. 저자인 피터싱어는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이다. 200년 전 ‘여성에게도 권리가 있다!’라고 외치는 여성해방론자에게 캠브리지대학의 저명한 철학 교수는 ‘뭐? 여성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그럼 개나 돼지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왜?’라고 반박했다는 성차별주의(sexism)에 관한 문제제기로 시작하여, 인간이 뭐 별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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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 동물을 인간의 탐욕에서부터 독립시켜라. 집 주변을 거닐다. 마주한 풍경 보신탕 집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하는 개, 그 개를 끌고 들어가는 사람. 우리에 넣어진 개, 개 우리 옆에서는 보신탕 가계의 사람들, 무언지 모를 슬픔을 약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상관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며 가던 길을 간다. 우리나라에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동물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생존자체가 동물 특히 가축들이 주는 산물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기에 그런 기억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물론 과거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고기를 많이 먹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엄청난 량의 고기의 소비 그것이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식문화는 빠른 기간에 변했지만,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에 어쩌면 무분별적인 낭비 이에 따른 공장식 농업의 번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들 언급되는 동물과 식물, 식물을 먹어도 되고, 동물도 먹어도 된다. 식물은 느낌 특히 신경이 없어서 상관없어나 동물은 신경이 있어서 먹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에 기반을 두어서인지 동물을 먹는 것보다 식물을 먹는 것에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식물이 인간 식량의 기반이 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고기는 부의 상징 같은 역할을 했기에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이 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 다 생명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최선의 상황을 고려하면 저 나은 소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는 일반적인 육식에 관한 문제보다는 공장식 축산, 실험동물을 다루면서 동물이나 종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공장식 농장, 어쩌면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온 동물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있겠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현장을 잘 보여준다. 또 실험 동물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낱낱이 밝혀준다. 과거에 동물실험을 해보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실험동물을 단지 과학의 도구로 생각했지 하나의 생명체라고 여기지는 못했다. 동물실험, 불 필요한 동물실험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들어서 동물실험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인간을 대신할 동물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간의 과학에서 많은 부분을 인간이나 인간을 대신할 동물에 의존한 하여 발전하였기에 당분간 없애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게 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육장이나 실험실 등에서 평생은 고통 속에 살아가다 인간에게 육체를 바치는 그런 동물들 을 해방시키자는 것 같다. 또 싱어는 종 차별을 이성에 호소하여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우리도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채식주의에 관해서도 오래된 편견, 강력한 기득권, 체질화된 습관으로 아직은 채식주의자들이 소수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채식주의자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채식주의를 선택한 사람들의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육식 특히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섭취하는 대부분은 고기는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된다. 대부분의 가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오래 살 수 있다. 흔히 먹는 닭은 40일 정도, 돼지는 좀 더 살고, 소는 더 오래 산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적인 수명의 극히 일부분만을 생존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고통 그것도 불필요한 고통을 동물들에게 주는 것 같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고가 지배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이런 동물해방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울림이 되지 않을까? 기왕이면 채식을 하면 좋겠지만, 개인의 기호와 필요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진화된 잡식성 동물이지만, 사회적인 금기와 분위기를 조성하면 채식주의가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다른 종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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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약간 비판적 시각으로 이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가 비난하는 두가지의 큰 영역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분야를 전공했기에 스스로 자기반성의 기회는 되었지만, 저자의 논리의 전개는 솔직히 여기저기 빈틈이 보인다. 윤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인 나의 무식함의 소치인지는 몰라도, 동물에 국한한 또 한가지의 종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완전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저자가 비판하는 대량의 식량생산이 없다면 불가능한 여유있는 생활속에서나 존재하는 부자연스러운 주장이다. 완전채식이 자연스러운 거라면, 따로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보조제없이 완전채식이 가능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구인들의 육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식습관의 부작용이 완전채식의 부족함을 충분히 상쇄한다는 논리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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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는 윤리철학자이다. 좀 의외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아마 생물학자나 동물학자일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피터 싱어는 과학에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것을 진실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다. 아무 반박도 할 수 없게 썼다. 정말 잘 썼다.
역자도 언급했듯이 실천하지 않으면 윤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모티머 애들러는 그의 책, How to read a book에서 윤리, 정치, 경제책을 실용서적으로 분류하지 않는가.
아마 자본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동물학대에서, 인간이 눈꼽만큼의 이익 vs 동물의 생명 이 대립한다면, 인간은 나쁜 줄 알면서도 눈꼽만큼의 이익을 취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그 약간의 편리를 위해 동물이 어떻게 학대되고 죽어가고 있는지.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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