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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책 제목에 속아서 이 책을 샀다. 컴퓨터에도 역사가 있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책이 아니던가하는 지식의 증식을 위해서였다. PUF에서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시리즈라면 예전에 탐구당 문고를 통해 익히 아는 있는 그 유명한 문고가 아니던가. 거기다가 그간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던 컴퓨터에 대해 이 참에 한번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렇지만 책을 사고 나서 한 장 한 장 펼쳐보니 책의 원제는 '컴퓨터의 역사'가 아니었다. Histoire de l'informatique의 정확한 번역은 '전산학의 역사' 혹은 '정보처리학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왜 책의 표제를 '정보'가 아니라 '컴퓨터'라고 한 것일까? 그야말로 출판사의 판매전략에 나는 완전히 속은 것이다.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몰고 온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지식은 당신에게 꼭 필요합니다라는 이면의 전략하에 책의 제목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정도의 내용이나마 담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한 쪽 한쪽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 사람들은 다르다는 느낌을 주면서 책은 시작한다. "어원상 '인포메이션'(information)은 라틴어 '인 포르마'(in forma)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한 객체가 보낸 자료들을 받은 주체가 편집을 위해 그 자료를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p. 10) 판단컨대, 한국의 독자는 분명 아마도 장-이봉 비래앵이 왜 서술의 대상과 서술방법의 어려움에 대해 그렇게 많은 양을 할애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보라는 말의 어원을 따지고, 정보발달의 연대기로부터 지식 체계, 처리체계,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통해 정보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하나의 시론(試論)으로 여기는 필자를 왜 이해하려고 해야 할까? 물론 최초의 컴퓨터 게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프로그램의 '버그'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전에는 몰랐다. "MIT의 민스키가 PDP I으로 프로그래밍하여 손잡이를 통해 그림으로 된 공간에서 전투를 벌이는 최초의 게임을 개발한다."(p. 91) "그 유명한 버그를 발견한 사람은 여류수학자 호퍼는 전산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p. 50)
그렇다면 장-이봉 비래앵의 작은 논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백오십쪽에 불과한 소책자에 나오는 작은 정보들은 물론 이 책보다 훨씬 두껍고 세밀한 책들에 비하면 정말 장난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터넷하면 ADSL이니 두루넷이니 국가경쟁력을 말하면서 '속도'를 부추기고, 컴퓨터를 말하면 벤처 강국을 말하는 사회에서 프랑스에서만 쓰는 특수한 용어인 '엥포르마티크'(informatique)를 강조한다면 웃음거리밖에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인터넷(internet)의 우리말이 없는 것은 정말이지 가장 기본적인 공백에 불과하다. 정보와 데이터(data)의 차이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0과 인쇄술의 의미에 대해 컴퓨터와 관련하여 의미를 분석해주는 글도 보지 못했다.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울 수 있지만, 인터넷도 그렇고 컴퓨터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개념 정의없이 어떻게 정보를 만들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최초의 컴퓨터가 에니악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는 폰 노이만의 [에니악에 대한 보고서]를, 사이보그가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는 인공 두뇌학의 원조 이론가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를 아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컴퓨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정보'의 양은 보잘 것 없다. 하지만 그 작은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문화'가 있어야만 한다. 장-이봉 비리앵의 책에 미덕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원상 '인포메이션'(information)은 라틴어 '인 포르마'(in forma)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한 객체가 보낸 자료들을 받은 주체가 편집을 위해 그 자료를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