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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탐정 키리카 1권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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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스기이 히카루?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생회 탐정 키리카> 1권은 <꽃피는 에리얼포스>보다 한두 달 정도 늦게 국내에서 정식 발매가 된 것으로 아는데요. 당시에는 <하느님의 메모장>에서 일본 내의 소수 민족 및 이민자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모습과 <꽃피는 에리얼포스>에서 전범을 옹호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모습 사이에서의 갭 때문에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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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스기이 히카루?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생회 탐정 키리카> 1권은 <꽃피는 에리얼포스>보다 한두 달 정도 늦게 국내에서 정식 발매가 된 것으로 아는데요. 당시에는 <하느님의 메모장>에서 일본 내의 소수 민족 및 이민자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모습과 <꽃피는 에리얼포스>에서 전범을 옹호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모습 사이에서의 갭 때문에 스기이 히카루라는 작가에 대한 평가가 이래저래 엇갈리고 있었던지라,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임에도 이 작품을 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꽤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학생회 탐정 키리카>를 구입했던 것은, <하느님의 메모장>에서 일본 내의 이민자 및 약자에 대해 옹호하는 모습이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구사와 케이이치처럼 직접적으로 우익 성향을 드러냈다면 아무리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관련 저작들을 전부 버렸겠지만, 스기이 히카루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극우적 발언을 한 것은 아닌지라 한번 더 믿어보자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다지 냉정한 판단은 아니지만, 그만큼 스기이 히카루라는 작가에 대한 제 애정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입니다.

 

 

2. 본문 ① - 여전한 캐릭터 설정

 

스기이 히카루 작품의 국내 정발은 <하느님의 메모장>, <안녕 피아노 소나타>, <바케라노>, <검의 여왕과 낙인의 아이>, <사쿠라 패밀리어>, <시온의 혈족>, <꽃피는 에리얼포스>, <학생회 탐정 키리카>, <악성소녀> 순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외로 학원물이 많지 않았네요. Boy meets girl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라 당연히 학원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학교를 주무대로 하는 학원물은 <안녕 피아노 소나타> 이후로 이번이 4년만(국내 기준)이더군요. 대부분의 작품들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캐릭터 설정의 유사성은 여전한 것 같네요. 스기이 히카루는 다른 건 몰라도 캐릭터 설정만큼은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작가 중 하나로 유명한데, 그런 성향은 <학생회 탐정 키리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누님 캐릭터(텐노지 코테츠)와 천재 동급생 캐릭터(히지리바시 키리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다재다능한 외톨이형 주인공(마키무라 히카게) 등, 스기이 히카루의 작품에서 자주 나오는 유형의 캐릭터들이 <학생회 탐정 키리카>에서도 그대로 나오는 걸 보면서 "또냐?"라는 생각을 했던 게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변 캐릭터들까지 전작들과 유사성을 띄는 것은 아닙니다. 중심 캐릭터들은 비슷하지만, 주변 캐릭터들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요. 정확히는 작가가 유행을 받아들여 캐릭터 구성에 변화를 꾀하는 모양새라는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는 같은 연애물이라 해도 헤로인의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주인공과 각 헤로인들 간의 관계에 대해 중점을 두는 경향이 더 강했습니다만, <학생회 탐정 키리카>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하렘물들처럼 다양한 헤로인들을 선보이는 데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해 보이거든요.

 

 

3. 본문 ② - 배경 설정 및 스토리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학생회 탐정 키리카>는 학원물입니다. 정확히는 학생 수 8천 명, 학생회 예산 총액 8억 엔을 자랑하는 엄청난 규모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 이러한 설정 때문에 얼마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던 <메다카 박스>나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수 정예 학생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직접적인 싸움보다는 암투가 중심이 된다는 점 등, 위에서 언급했던 두 작품과 유사한 점이 여러모로 눈에 띄는 건 사실입니다.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 어쩌다 보니 학생회에 가입하게 되고 거기서 의외의 활약을 펼치게 된다.'라는 스토리 라인은 학원 러브 코미디 계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이 스토리 라인에서도 스기이 히카루가 선호하는 전개 방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헤로인을 비롯한 유능한 여성 캐릭터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다재다능한 주인공이 나서게 된다.'라는 흐름은 <하느님의 메모장>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스기이 히카루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스기이 히카루 공식'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은데요. <하느님의 메모장>부터 시작해서 <안녕 피아노 소나타>, <사쿠라 패밀리어>, <학생회 탐정 키리카>, <악성소녀>에 이르기까지, 스기이 히카루의 작품들은 헤로인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을 담당하고 남주인공은 조력자 위치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나마 <검의 여왕과 낙인의 아이>에서는 구도 면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데, 그래서 제가 스기이 히카루 작품 중 검낙인을 유독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4. 본문③ - 감상 및 평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학생회 탐정 키리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이름만 보고 냅다 구입을 한 작품인데요. <사쿠라 패밀리어>나 <시온의 혈족>, <꽃피는 에리얼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라이트노벨 시장에 있어서 네임밸류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원작자가 라이트노벨 쪽에서는 비교적 글을 잘 쓰는 축에 속하는 작가라 서술에 있어서는 큰 흠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우위에 설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 많이 아쉽더군요.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을 통해 스토리의 부실함을 메우는 몇몇 작품들과 달리, 스기이 히카루의 작품은 일단 스토리가 살아나야 캐릭터도 함께 살아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작품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이며 캐릭터 설정은 후순위라는 건데, <학생회 탐정 키리카>는 스토리에 있어서 별다른 특징을 보이지 못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매력도 함께 죽어버리더군요. '가벼운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러려면 <빙과>처럼 소재를 보완하는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적어도 1권에서는 그 '무언가'가 상당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패턴에 있어서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인데요. '주요 사건은 헤로인들이 해결하지만, 방점은 주인공이 찍는다.'라는 스기이 히카루 식 패턴은 독자들로 하여금 후반 스토리 전개를 쉽게 예상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데 실패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리 가볍다 해도 엄연히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인데, 그런 장르의 작품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결점 요소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5. 맺음말 -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사실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나 스토리 구성이 계속해서 보이는 것 자체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작가라는 족속은 결국 자신이 경험한 것 외에는 글로써 표현해낼 수 없다.'라는 말은 작가들 세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속담 중 하나인데,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쓰는 작품마다 성향이 많이 바뀌는 게 더 이상한 거겠죠. 다만, 스기이 히카루 같은 경우에는 거의 도장을 찍다시피 해서 캐릭터를 설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작가 본인의 의향인 건지 아니면 출판사 쪽의 의향인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스기이 히카루의 작품에서 이러한 현상이 훨씬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문어발 식 확장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기이 히카루의 작품 중 국내에서 정식 발매가 된 작품만 해도 아홉 작품이나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작가의 캐릭터 설정이나 스토리 구성에 대해 독자들이 식상함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문어발 식 확장을 하면서 개별 작품의 퀄리티는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그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죠.

 

그렇다고 해서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캐릭터나 구성 면에서와 달리, 적어도 소재 면에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모습은 <학생회 탐정 키리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1권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3권 이후부터는 스토리 전개가 이전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띈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기대할 만한 여지가 있지 않나 싶네요. "키리카는 퐁칸의 일러스트 때문에 본다."라는 말도 듣는 모양인데, 그런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라도 작가가 좀 더 노력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0 2013.12.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