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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햇빛에서부터 시작되어 만들어진 무수한 피조물을 먹고 활용하고 에너지를 쓰고 살아간다.
사실, 우리 세대만 큰 탈 없이 살면 된거지.. 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힐링캠프에 나온 스님과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의 한 대사가 참 인상깊었는데, "부모가 되면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아나? 바로 자녀의 안전이야" 라고 했던 그 대사..
우리의 바로 아래 세대가 될 우리의 자녀와 그 아랫 세대가 살게 될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나아가야할지 나침반이 되어줄 책인것 같다.
역사란 대체로 승리자 위주로 바라보기도 하고, 역사를 현재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1인칭에서 바라보느냐, 2인칭 3인칭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의 에너지적 관점에서 바라본 콜럼버스의 만행이 아주 인상깊었다. 유명하지만 대륙을 발견한 1492년도가 거짓에서 시작된것은 아주 자명한 일이다. 그 전부터 지구는 둥글다는걸 알고 있었던 자료도 많을뿐더러 처음 발견한 자가 콜롬버스가 아니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픈 흑인 노예의 역사를 되짚는 구절에서는 참 슬프기 짝이 없을뿐이었다. 콜럼버스는 흑인들의 건강한 신체를 잘 에너지화 시켜 국가 개발에 힘썼다는 대목이 말이다. 몇년 전 진도 9가까이 되는 지진으로 아이티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뜩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큰 지진까지 겹쳐 안타까웠는데, 콜롬버스의 잔해로 인해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는게 너무 슬프고, 또 무섭기까지 했었다. 에너지를 가지지 못하는 나라, 햇빛에서부터 시작되어 자라난 울창한 숲과 다양한 종이 어우러진 나무들을 잃은 아이티. 기름 한 방울 안나는 우리 나라이기에, 자칫 에너지를 가지지 못하면 이렇게 언젠가 아이티처럼 쉽게 무너져 버리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는데 무거운 마음이 한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요즘 광고에서 보면 해외 유전을 개발하러 가는 대기업, 수소나 탄소로 물질은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는 tv 광고와 사람의 체온과 바깥 온도 차이로 핸드폰 충전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는 우리나라 명문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 등..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중요시 여기고 있고, 발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에 안도감도 생기고... 또한 우리의 과학 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함을 다시 한 번 와닿았던 계기였다.
이 저자는 태초에 자연과 함께하고 더불어 살아가는것을 수천년동안 해왔던 중에서 급작스런 최근 몇백년 혹은 몇십년간의 물질만능주의와 부의 집중, 권력의 집중이 되는 현상이 가중되고 그것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배경이 바로 TV로 가장 크게 꼽았다. 언론사와 대중도 광고료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이것을 구매하면 당신이 더 행복해질 거라는 교묘한 유인책으로 더불어 살아가기보다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고, 돈을 쓰게 만드는 구조로 이끌어나가고 있다면서 당장 TV를 끄라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동시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가치관 변화를 가장 크게 염두해 두고 태초에 있었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를 알리려고 피력하는듯 했었다.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드는 생각은 실제로 우리 사상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게 당연히 여겨졌던 덕목이 우리에게도 있었다는걸 자부심이 들기도 하면서 서구 사상으로 물들어져 우리의 기존 가치를 우리가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경복궁은 뒤에 북악산과 조화롭게 지으려 했었던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가장 높고 화려하게 건축물을 지으며 자랑하는건 우리의 고유의 문화 사상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 살려 자연과 더불어 살고 특히 이웃간 상호부조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걱정없이 사는 생활 풍토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것이 지금 우리는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성장을 위해 서구 문명이 우리나라를 너무 갈라놓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툭하면 동서간 다툼이 있고, 경제적 부가 편중되어가는 현상이 심해지고, 지역간 차별 또한 심화되어가는것이 안타깝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자연을 멸하지 말라고 이 저자를 계속해서 일침을 가한다. 에너지 고갈이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가장 크게 해야 할 덕목이 우리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는 점이 쉬우면서도 너무 어려운 시험문제인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서부터 조금씩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베풀고, 미움은 줄이며, 부의 재분배와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지녀야할 것이다. 다소 뻔한 문제 해결 방법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 자체가 우리의 탁해진 마음이라는것을 저자는 알리고 싶어 하는것 같았다.
특히 난 두 가지를 가슴 깊이 새겼다. 우리 고유의 문화가 결국 우수한 사상이었다는 것과 우리의 과학 기술 발전이 더욱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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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다 읽기도 전에 내려놓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반드시 끝까지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인데,-물론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서(정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책을 읽기 바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약간은 자극적인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인류 문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충격적이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과학적인 사실들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또 요즘처럼 모든 것을 ‘경제’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까이꺼’라는 반응을 보이거나 그저 ‘대안이 없다’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우리 인류가 저자가 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막다른 절벽으로 말이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은 한 그루당 잎사귀 표면적이 40에이커나 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표면적을 가진 나무는 햇빛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식물성분으로 바꾼다.... 열대우림의 나무 한 그루가 평생 동안 뿌리를 통해 끌어올려 대기권에 수증기 형태로 방출하는 물의 양은 무려 300만 갤런이다. 나무가 흙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과정은 땅이 사막으로 변하는 걸 막아주는 첫 단계다. 지역 대기 속에 몇 백만 톤의 수분을 내뿜는 숲이 없다면, 공기 중에 수분이 부족하여 비가 내릴 수 없게 된다.” “빈농들이 미국으로 수출할 소를 기르는데 필요한 농경지와 목초지를 만들려고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서 사라지는 열대우림이 1분에 72에이커씩이나 된다고 한다” “산림을 훼손시켜 소를 키우는 목초지로 만드는 행태가 전세계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진행된 나머지, 나무가 특히 적은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나무로 만든 숯 대신 소뼈로 만든 숯으로 강물을 걸러서 수돗물을 공급한다.” 저자는 단순히 환경재앙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의존한 환경 파괴는 결국 가까운 미래에 인류에게 대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대안도 함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문화’다. 소비를 장려하고 문명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문화 말이다.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성장위주의 문명은 제한된 자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성장(주로 경제 성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인류를 지지해주고 있는 자연을 파괴해서 인간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WHO는 1993년 4월 폐결핵을 ‘지구촌의 위기요소’로 선언했다. WHO사상 이런 선언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개발도상국에서도 결핵균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긴 하지만, 의사들의 결핵약 남용으로 치료 불가능한 신종 결핵균의 등장을 불러온 것은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다중 약물저항체 변종’이라고 명명된 이 신종 결핵균에 감염된 환자들은.....아직 치료방법이 없다.” “미국의 살충제 사용량은 2차 대전 이후 현재가지 3천% 이상 늘어났지만, 살충제를 더 많이 써도 병충해가 감소하기는커녕 1945년에 비해 20%가 넘게 증가했다.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해충이 늘어나고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농부들은 오히려 경제면에서 살충제 산업에 중독되고 말았다.” “'페트로 컨설턴츠’보고서는 석유가격의 상승과 이로 인한 세계불황으로 석유소비가 한풀 꺾인다 해도 2050년의 석유 공급량은 세계인구가 30억에 불과하던 1960년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인구통계학자들이 추산하는 2050년의 세계인구는 100억이 넘는다! 상상해보라. 100억의 인구가 사는데 30억이 살아갈 연료만 공급되는 현실을!” 소비와 성장을 장려하는 현대의 문화는(TV를 보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계속 소유해야만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원주민들의 문화를 문명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압하고 말살했다. 하지만 여러 경로의 기록들을 봐도 과거의 부족 단위의 문화가 현대의 도시문화보다 못하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달랐을 뿐이며 오히려 더 훌륭한 문화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자원을 항상 재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이 그들을 탄압 한 것은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소수자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소유하고 타인을 지배하는 문명은 지금까지 여러 번 생겼다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현대의 소유를 중시하는 문화는 소수의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 비난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만 봐도 아주 당연해 보인다. “목축업자와 벌목업자들은 1800년대에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의 귀나 머리껍질에 포상금을 지불했듯이, 용병들을 고용하여 양쪽 귀나 머리껍질을 가져오면 포상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카야포를 비롯한 열대우림의 부족들을 몰살시켰다. 이런 관행은 극히 최근에 이르러서야 법으로 금지되었다(브라질을 비롯하여 전세계의 많은 목축업자와 벌목업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지만).” “태고 선조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안정을 타고난 권리로 누린 반면, 오늘날의 우리는 이 권리를 돈으로 사려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항생제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부족민들이 도시/국가 거주자들보다 장수했고, 유아 사망률도 더 낮았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부족민 화석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도시/국가 초기의 거주민들에 비해 충치수도 적었고 뼈대도 튼튼했으며, 퇴행성 질병의 징후도 적었다.” 이 책이나 이 리뷰를 읽는 분들이 궁금한 부분을 얘기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방법은?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 스스로를 구원할 방법은 바로 의식(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tv부터 끄라고 권유한다. tv가 소비주의 문화를 괴물로 키웠기 때문에, tv를 없애서 상당히 달라진 가정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또 아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과학적인 이론이 등장하는데, 파동역학의 법칙에 의하면 어떤 파동의 일치는 그 파동수를 합한 것의 제곱만큼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8만명이 같은 의식을 갖게 되면 8만의 제곱인 64억의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101마리 원숭이’같은 연구 사례도 있다. 이 책 또는 이 리뷰를 읽은 분들은 이제 그런 의식의 세계로 들어선 것으로 봐야한다. 당장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절벽으로 가고 있는 현재의 인류 문명을 구원하는데 님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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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쯤에 읽었던 책입니다. 깨우침을 주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몇가지 예는 정곡을 찔러서 오히려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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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가 가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 TV를 켜놓고 잠드는 우리 셀러리맨들은 언제나 행복함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교회, 절, 각종 모임에 나가도 그 시간이 가고 돌아서는 그들은 언제나 홀로 서 있다. 뉴스에서 보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앙상한 팔다리와 동유럽 지역간 분쟁으로 전쟁에 휘말려 오물이 흐르는 물을 마셔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을 본다. 반면 주변의 다이어트에 열심인 여자들, 기름진 배에 고민하는 30-40대 직장인들은 자신의 몸을 보면서 항상 불만이고 게다가 이들 모두 직장에서 짤리지나 않을까 상사에게 밉보이지나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그 구성원의 하나인 나는 지금 만족스런 나의 삶을 보내고 있는가? 이미 너무나 일상화되어 버린 '환경'이라는 낱말은 오염, 물고기떼죽음, 상수원 오염, 그린벨트완화 라는 말과 함께 쓰이다가 이제는 더욱 더 자극적인 낱말과 쓰이지 않으면 '관심꺼리'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낱말들을 들으면 누구나 말한다. 아 정말 심각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내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니까. 나는 그냥 보통 직장에서 일하는 소시민이니까. 그러나 토마스 하트만은 말한다. '지금 우리에겐 작은 선행이 필요하다.'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의 바른 생각만으로도 세상은 바뀐다' 라고.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정치 유세나 TV, 라디오에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종류의 식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한표를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도 아니고 책을 팔기 위해 미사여구와 흥미위주 글을 쓰는 일부 몰지각한 소설가도 아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왜 우리가 이렇게 살고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한번 느껴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빈부의 격차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자.바로 지금 과거 식민지 쟁탈전의 피해자가 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통해서 유지하던 자신의 삶을 버리고 지금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필요한 일꾼과 소비자가 되고 있다는 것도 넘어가자.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족들이 함께 먹을 것을 마련하고 아침 저녁으로 한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며 밥을 나누어 먹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는가? 공원에서 점심을 얻어 먹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바로 우리의 가까운 미래 모습이 아니라고만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왜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자. 아니면 정말 나는 행복한지 생각해보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내 주변 환경과 생활 조건이 만족스러운지. 나는 진실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의 삶을 베풀고 있는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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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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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은 석탄과 석유을 에너지로서 사용하므로써 발전 했다구 볼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발전될수 있었던 석탄과 석유는 선사 시대에 식물이 번성하여 태양의 에너지을 저장 할수 있을 만큼 번성 했었을 시 지각 변동에 의해서 지하에 파묻였 매장 돠었던것 입니다!! 선사 시대 인류는 태양에서 오는 태양 에너지만 이용해서 식량을 확보 할수 있었구 인구두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동물들두 태양에서 오는 태양 에너지만으로 식량을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농경 사회로 발전 함에 따라 더 많은 식량을 저장 하고 인구두 증가 하였습니다!! 인류는 농경 사회로 태양 에너지을 효율적으로 이용 해서 식량을 두배 세배 이상으로 저장 할수 있는 반면 동물들은 태양에너지에서 오는 에너지가 식물이 받은 것 만큼만 해결 할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감에 따라서 땅에서 석탄을 이용하여 산업 사회로 발전하여 더많은 식량과 인구 증가가 되었습니다 산업 사회의 발전함에 동물들이 멸종해가는 종들이 많았지구 지구에서 동물의 종들이 자취을 감추어 갔고 나무들두 마구 베어지구 지구의 이상기후와 온난화가 되고 있습니다!! 석유 발견과 석유을 사용하므로써 식량은 더 많이 확보 되고 인구두 60억이상의 과잉 인구가 되여 그만큼의 식량을 확보 하기 위해서는 무차별 적으로 지구에 매장 되었있는 석유을 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먹을 거리로 넘쳐 날수 있다구 할수 있지만 석유로 쓸수 있는 에너지는 바닥이 나서 얼마 안 있으면 대체 에너지로의 전환 할수 있는 에너지 없이는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이 생길수 있다구 합니다!! 지구의 환경을 무차별적으로 오염시켜서 우리가 살수 없는 환경에서두 우리가 살고자 해두 석유 에너지 가 바닥이 나면 인류는 식량 부족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비참 한 생활을 할수 밖에 없다 합니다 에너지적 위기와 같이 인류 문명이 신문화에 의해 생존 할수 없다구 합니다!! 신문화는 우리 인류가 모든 자원을 사용할수 있는 권한이 있구 공동 번영하는 문화가 아니구 침략하구 약탈하는 문화로서 자원을 다사용하구 나면 신문화에 의해 자멸 할수 밖에 없다 합니다!! 서구 문명이 신문화에 의해서 발전했 다구 볼수 있습니다!! 신문화에 의해 동화되어 지구적으로 문명이 발전 했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의 문화는 자연과 조화을 이루구 지구상에 사는 동.식물이 같이 공동 번영하는 문화을 이루고 살았었습니다@@ 현대에 이루어 우리의 옛 선조의 문화을 우리의 문화에 접목하여 새로운 문화로 발전 해야 인류가 생존 할수 있다구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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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제목을 적고나니 스스로도 "진짜야?"하는 반문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막연하게나마 여겼던 나의 생각이 진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 우리의 생활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동양이다. 동양하면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다. 우리의 문화에는 종교적으로 보면 불교의 뿌리가 깊다. 모든 만물, 하물며 미물이라고 하는 그런 작은 생명체마저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자비심. 이 자연을 인간과 분리시키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이해하고 생활해온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을 이 책의 지은이는 미래의 지구를 구할 하나의 방안으로 소개하고 있다.
명상을 통해 자연을 느낄수 있고 자연을 활용하되 다시 복구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 예를 들어 안식년을 도입하거나 친환경적 농업을 이용하는 것등.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생산성이니 경제성이니 하는 말들도 효율이 떨어진다고, 수익이 안 맞다고 기피하는 것들이 긴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으로 보면 공동체의식을 들 수 있다. 품앗이니 두레니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막연한 지식들이 그냥 글자로서가 아닌 앞으로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가꾸어야 할 미래에 어쩌면 다시 꺼내보아야 할 좋은 삶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선진국인 서구 문물의 중심에 있는 저자가 썼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미래를 막연히 어느 선진국과 같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는 나라로 꾸려 갈 것인가에 대해 질문과 답을 주는 책이다. 어쩌면 물질적으로는 덜 풍요롭지만 우리가 더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 공감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이번 월드컵을 치르면서 보여준 하나된 모습과 평화를 사랑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모습에서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이 책에서도 여성의 힘을 강조했었다. 파괴의 문화 남성의 문화와는 반대로 여성의 문화는 생산의 문화이고 평화의 문화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생산에 지친 남성들보다 아이들의 교육과 가족의 건강을 많이 걱정하는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하길 바란다. 남편들과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우리 가족부터 생활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경험하자.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과 함께 나아갈 방안을 마련해 보자. 분명 길은 우리 주위에 우리의 부모님의 생활방식 속에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한 번 찾아보자. [인상깊은구절] 인간의 상호관계 속에는 시너지 효과라는 게 있다.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믿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선행위가 많을수록, 자비롭게 행동하려는 사람 역시 많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평화와 신성을 추구할수록, 평화와 신성은 더 많이 이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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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너희와 똑같은 유기체가 있지. 자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바로 바이러스지.’ <<매트릭스>>에서 스미스요원이 모피어스에게 했던 대사이다.
자원과 주위 생물들의 멸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대목에선 정말이지 생각이 멈춰버리는 것만 같았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15~16세기가 아닌 현대에도 (저자가 직접 목격했다고 하니 적어도 1980년대나 90년대이리라 짐작되는데) 이와 비견될만한 학살들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전반에서 보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자박해 가고 숨통을 조여 오는 모든 행위들이 이런 인간내면에 내재해 있는 욕심과 잔인함이 뒤엉킨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환경문제, 자원문제, 더불어 살아가는 멸종위기의 동식물들에 대한 문제... 이 모든 것이 약간의 이해와 사랑만 더해졌더라도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들이 아닌가? 이에 대한 대안이라 저자가 내어놓은 것은 바로 부족문화로 돌아가기이다. 10여명 남짓한 가족중심의 부족문화로 인간이 만들어온 인구문제 환경문제 등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게 저자의 견해이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적극적으로 동조하게도 되지만 아무리 요즘 자치행정이나 다시 지역화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고는 하나 현대 같은 인터넷시대에 부족 중심의 소규모 생활에 안주하고자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듯 문제의 해결은 바로 자기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만큼은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앓아왔는지 환경,자원,사회 문제들을 헤집으며 진단해주고 있다. 제기된 문제들이 모두 사회적인 문제, 제도적 윤리적 문제, 모든 인류가 주목해야할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언제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 시키지 않고는 문제의 중심으로 다가설 수 없는 것이다. 허나 무엇보다도 절망스러웠던 것은 저자가 말한 양자물리학적 세계관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사용하려 하였지만... 과거 어느 책에선가는 양자물리학에 더해 임계질량이라는 개념까지 동원해 인간의 미래가 밝다는 근거로 쓰였었는데, 양자물리학적으로 우리가 서로의 의식과 행동에 동조한다면... 루퍼트 셀드레이크의 형태공명장이론처럼 우리가 서로의 행동과 생각에 공명하는 거라면... 과연 우리가 어느 정도 숫자의 사람이 선을 행한다면 나머지 모든 사람까지 선하게 된다는 임계질량의 이론처럼 천국과도 같을 그런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서로 공명하게 되는 거라면, 이미 이 세계는 악이 임계질량의 선을 넘어 악으로 포만한 지옥이라는 것이 진정한 사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는 우리가 잘못인 것이지 않은가? 우리가 가당찮게 천국을 꿈꾸기에 이 세계가 더더욱 지옥으로 여겨지는 것이지 않은가? 임계질량을 넘어선 이들을 바꾸고자 헛된 희망을 품기보다는 이곳을 지옥으로 바꾸면서도 만족해하는 그들을 위해 그저 우리가 그들을 위한 이 지옥에서 떠나 주는 것이 최선인 것이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공명하지 않을 최상의 선택인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아름다운 이들이 계속해 세상을 버리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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