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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떠들썩 했던 밤이 기억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해당 사건은 그 이후가 더 논란의 불판이었다. 사건은 철저한 규명과 피해자 보호가 이루어져야한다는 피해자측 변호인 및 지원단체의 입장과 사건에 대한 명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인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이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라며 추모의 입장을 밝히는 입장이 첨해하게 대립하였었다. 나는 진실을 모르기에 시민으로서 침묵하였다. 이 사태에 대해 다루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빨리 이 책이 발간된 것에는 꼭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위력에 의해 일어난 다수의 성폭력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사건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건들은 사건일지와 판결문, 피해자의 최후진술서와 그 후의 상황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현역 의원들의 성추문이 크게 대두되었을 때 한 언론은 근무지 내 직원들의 조사를 통해 의회 내 상.하원의원들의 위계에 의한 강압적인 행위가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밖으로 쉬쉬해도 그들 사이에선 암묵적인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져 특정인들을 피해다녔다고 밝혀지며 크게 이슈가 되어 결국 화살은 특정인들을 지칭하게 되었고, 정당을 가리지 않고 수 많은 의원들의 사퇴선언이 줄을 이뤘었다. 그들 대부분은 성추문 의혹은 강하게 부인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묻겠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들은 당사자들에게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곁가지를 계속 쳐 나가며 주위에서 묵인하는 이들도 비난하기 시작했었다. 시민들은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인근 지인들까지 모두가 입장을 표명하기를 원했고 침묵하는 이들은 같은 부류로 취급하였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일을 언급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조하고 가담한다는 행위에 침묵까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지정할 수 있을까? 당시 그 사태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는데 우리나라의 일은 더 마음이 쓰인다.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 한 사람의 구제뿐 아니라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국가에서 방치해서는 안되며, 위력 앞에서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는 구조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당위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을 깨달으며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책은 학교, 체육계, 영화계, 예술계 전반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태를 다루고 있다. 원고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토론 직전 거절의 입장을 표명한 사람도 있고, 익명을 요구하며 토론에 참석한 이도 있다. 현 사건에 대해서는 마음이 복잡하다. 전문적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시민의 일원으로서 어떤 말을 전해야 할 지 아직까지도 어렵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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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일탈행위를 넘어선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성범죄 관련 기사와 뉴스들, 믿었던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성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이 빗어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현재의 상황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선 고통스러운 나날일 것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몰락, 유력 대선후보의 민낯, 이들을 바라보는 기준이나 입장은 달라도 잘못된 행위임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민감한 시기,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책이 출간되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자칫 피해를 2번 죽이거나 잘못된 소식을 전할 수도 있기에 우리는 항상 신중한 자세로 이 같은 사건과 인물을 접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존재한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 그들의 잘못된 성의식이 여성들에 대한 보복이나 공격성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는 미투운동, 각종 성범죄에 대한 피해고발 뉴스, 그리고 여성인권 문제로 연결되어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침묵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재발견이자 고발일 수 있을 것이다. 왜 피해자만 침묵해야 하며 또한 이런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이제는 변해야 한다. 가식적인 행위로 대중들을 기만한 그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을 착취한 악질적인 행위까지, 어디까지 개인적 일탈로 취급하며 그들에 대해 옹호하거나 침묵해야 하는지,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이런 무조건적인 관용적 자세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만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단호한 법적 대응이나 대중들의 냉엄한 심판과 관심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책의 읽는 동안, 일련의 사건과 과정들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로 유명인들이 언급되어서 그렇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범죄라는 강한 인식과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알지만 지키지 못한 사람들, 무엇이 문제이며 이 같은 사태의 본질을 통해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배울 점과 버릴 것을 구분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 판단해 보길 바란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용기있는 사람들의 행동적 결심이 빗어낸 소중한 책이다. 많은 분들이 읽으며 느껴 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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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지식공작소
이 민감한 시기에 이 책이 이렇게 빨리 나와도 되는 건가? 염려스러웠다. 이 책을 받은 독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책을 읽는 나도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모여서 담화를 나누고 책이 나오기까지 참여했던 토론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책을 가지고 얼마나 갑론을박이 오갈 것인가? 부디 그들이 감내한 것이 빛을 바라기를 바란다. 말이 칼이 되어 돌아오는 세상! 우선 용기있는 토론자 이일영, 이인미, 이재경, 도이, 황인혁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맨 첫 장에는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폭로 후, JTBC 출연부터 오늘날까지 역순으로 사건 일지가 수록돼 있다. 사진과 표를 보는 순간 훅 다가오는 무게감. 최영미 시인의 고은 시인에 대한 폭로, 이윤택 감독 성폭행 사건(본인은 성추행만 인정했던), 배우 조재현, 조민기의 성폭행 사건, 안희정 지사 비서 김지은 씨의 성폭행 폭로, 김기덕 영화감독 성폭행 사건,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심석희 선수의 폭로, 국가대표 최숙현 선수의 투신자살, 그리고 최근의 박원순 시장의 일까지. 짧은 내용이었고 몇 페이지 안되는 일지였으나 한 군데 모아놓고 보니 사건의 죄질이 워낙 무거워 읽는데 한참 걸렸다.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이름들이지만 적어 보았다. 이들 가해자들의 공통점은 권력이다. 힘을 가졌다.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가장 죄질이 나쁘다. 1장에는 박원순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2장에는 그 외 안희정, 이윤택, 고은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서지현 검사 그리고 기타 사건들, 가장 최근인 오거돈 시장 사건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더러운 이름들을 입에 올릴 때마다 자판 내리치는 기분이 몹시 불편하다. 결국 이 리뷰를 읽는 사람도 불편해질지도. 그러나 인간은 다면체라서 이 글은 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미리 공지한다. 책을 거꾸로 뒤집어서 가장 마지막에 실린 스쿨 미투를 먼저 언급해본다. 십 대 청소년,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이다. 2018년 4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창문에 '위드 유' '위 캔두 애니씽' 등의 종이가 붙었다. 스쿨 미투의 시작이었다. 이후 전국 각 100개 학교에서 스쿨 미투에 동참하였다. 관련 교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스쿨 미트의 시작이 된 용화여고의 가해 및 연루 교사들도 징계 권고를 받아 18명 중 15명이 정직, 견책 등 징계를 받았고 1명 파면, 1명 해임, 1명 계약 해지되었다. 파면된 교사는 유일하게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결론은 18명 중 15명이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다. 악마들이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러 학교로 돌아갔다. 악마들이! 과연 재판부는 정의로운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의심스럽다.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고발이 있은 후 이어지는 가해자들과 주변의 반응을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성폭력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졌는지. 성폭력을 가능케 하는 구조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느끼는 바이다. 고은의 성폭력 사건이 아직 재판 중일 때 최영미 시인이 모 행사에 오셨을 때 만나 뵌 적이 있다. 내겐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암울했던 내 이십대를 달래준 시집이다. 최영미 시인이야말로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다. 시작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을 고은을 상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용기 있는 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박수를 치기는커녕 조롱하거나 묵인한다. 언급하기 난감한 사안일 때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그 역시 인간이 본성이다. 먼저 이 토론의 사회는 이일영 교수가 나머지 참여하신 분들은 신학연구원, 정치학 박사, 편집자로 구성되어 있다. 토론의 내용을 다 올릴 수는 없고 다만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는 굉장히 충격이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니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토론자의 발언 중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인정할 수 없는 발언도 있었다. 분노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고 본인들은 스스로는 다 정의롭다는 것이다. 그 정의는 저마다의 정의라서 서로 다르다. 박원순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 화가 난 건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 많은 방법 중에 왜 '죽음'을 택해야 했는지. 미투 사건은 미투 사건이고 추모나 애도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안희정 사건에서 피해자 김지은 씨의 1심, 항소심 최후 진술서가 실려있다.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유부녀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잣대. 현실은 가혹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미투를 외친다면 막고 싶을 정도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윤택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윤택이 각본을 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늦은 밤 귀갓길에 두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주인공이 키스를 시도하는 남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해 상해죄로 재판을 받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영화를 각색한 이윤택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위력으로 성폭력을 휘두르고 낙태까지 하게 하는 파렴치한이었다니. 사건 재판 일지와 피고 항소심 판결문은 적나라했다. 차마 여기다 올릴 수 없을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숨어서 우는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검사도 성추행을 당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들의 분노는 심각하다. 사건 초기부터 실시간 왜곡된 보도와 사건의 피해자 신분 노출 등 제 2, 제3의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모를 정도다. 미투 운동이 폄하되고 일부 편견을 가진 시선에 위축되고 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이 무엇인가? 성폭력을 방조하는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자 함이다.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이 시대. 성, 종교, 장애, 나이,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적 발언은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인권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자는 시도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되며 그 어떤 권력이 성역이 허락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연대의 힘은 강하다. 혼자가 어렵다면 여럿이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꿀 것이다.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달라졌다. 달라진 우리는 너희들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우리의 구호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변화를 만들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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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사람이 사회에 무수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 속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슬픔 속에 남겨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행했던 일은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2)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7월 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문구다. 7월 10일 오전이 기억난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뉴스를 보던 남편이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알렸다. 사무실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을 걱정하고, 정치적 의견까지 오갔다. 한 정치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여러 결로 확장되고 추측되는 상황이었다. 지식공작소의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는 그 상황이 고스란히 활자로 녹여져있다. 책은 사회를 맡은 이일영(교수)과 세 명의 패널, 이인미(시민단체 활동가), 이재경(역사학과 정치학 전공자), 도이(정치 활동가)가 2020년 7월 24일 '젠더 좌담회'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좌담회는 박원순 시장 유고 사태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인식, 미투, 페미니즘,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정치적 권력 등에 대해 얘기한다. 가장 먼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전까지,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승소했고, 양성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에 힘 쏟으며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혼동의 감정을 야기했다. 이일영 교수는 좌담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공격을 받는다"며 "(이것은) 이야기를 하면 양 극단으로 맥락이 만들어져 어떻게든 공격이 나오기 때문(p.26)"이라고 말한다. 이재경 님이 경험한 카톡방 사례도 등장한다. 누군가 추모글을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들이 받고, 말이 없던 몇 사람이 우르르 나가는 상황. 이것에 대해 이 교수는 "삼분의 일과 삼분의 일이 싸우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숨는다."며 "우리 사회가 세 쪽이 난 셈"이라고 얘기한다. 한쪽은 박, 다른 한쪽은 피해자, 나머지는 회색분자가 되는 셈이다. 박원순의 죽음과 고소가 함께 회자되며 '사건'에 대한 입장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눠졌다. (1)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성폭력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2)피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것=페미니스트 또는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는 것. 프레임 양 끝에는 박원순과 피해자가 서 있다. 이것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이 보도된 후 더 선명해졌다. 서울시장(葬)이 도마위에 오르며 정치적 색이 덧입혀졌다. 쉽게 생각하려는 걸까? 하나의 논점으로 정리하고 싶은걸까? 혹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패널 이재경님의 "추모와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과 이 피해자 문제를 좀 분리해 생각하고 싶다. (p.25)"고 말한다. 진일보한 정치인이라 믿었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문제와 그 사람이 행한 성 관련 이슈는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대자보의 핵심이 이것이리라. 패널들은 '정치권력'도 논의한다. 이일영 교수는 "뛰어났던 존재가 막다른 길에 몰려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정치권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p.27)"며 "권력이 주어졌을 때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게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는 공포감(p.28)"이 든다고 말한다. 공포감. 이것이 박 전 시장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생명'과 맞닿은 공포였을 것이다. 반면, 안 전 지사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다르다. 그녀는 '언짢게하면 안되는' 사람을 모시는 수행비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면 직장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여러차례 말을 했지만) 쉽게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수차례 언급한다. 이것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다. 결국 정치권력은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박 전 시장의 사건과 안 전 지사의 사건, 유사해 보이는 두 사건에는 두 명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들끓었을 때 정치인과 연관된 사건에 호기심이 생겨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틈틈히 읽으려 책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지나가며 책 제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 "그 사람 책도 냈어? 별일이네" "뭐 그런 책을 읽어?"였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고통이 간접적으로 전이돼 힘들었고, '그저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주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았다. 이게 왜 아무일도 아니지? 묻고 또 물었다. 보통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입막음 시키는 공통적인 의견이 하나 있다. 바로 "그때 얘기했어야지" 라는 것. 책에는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논의도 나온다. 이인미 활동가는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죽여야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양육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고 그걸 행사할 수 있을까? (p.37)"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역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배우며 성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으면서도 피해자로 수렴되는 삶보다는 나아가고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걸까. 얼마 전, 일년간 휴직하고 돌아온 (연차 차이 많이나는) 남자선배가 복직했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있던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는 "혹시 임신했어? 좋아보이네?"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살쪘다고 놀리시는 건가요?"라며 받아쳤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모두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놀림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주변에 있던 몇명의 동료들이 '요즘 그런 얘기하면 큰일나'라고 농을 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됐다. 다수의 눈빛과 웃음이 내내 기억에 남아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몇 시간을 앉아 사건을 복기하다 용기를 내서 그 분을 따로 만났다. 이래저래해서 기분이 나빴고,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내가 이와 관련해 어떤 처분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다며(회사안에는 성희롱 관련 정식 절차가 존재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선배는 왠지 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다. 책에는 '온정적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온정적 차별이란, '저 사람이 선한 의도로 말했다는 게 다 보이지만 나에게는 불편한 차별 (p.57)'이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한 그런 차별. 결은 서로 다르지만 박 전 시장의 피해자도, 안 전 지사의 피해자도, 그리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던 나도, 한 켠에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차이가 있다면 빈도와 강도였을 것이다.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여러 '성'관련한 사건을 담고 있다. 박원순에서 시작해 안희정, 이윤택, 고은 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이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공식발표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사건의 진짜 사안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568p에 달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건관계자들 눈에 안보이는 것 같아 답답했고,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우리나라 성 관련 사건들이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암울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과, 남녀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결은 많이 다른걸까.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걸까. '#피해자와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대신 '한 사람이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
![]()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시민'에 나를 대입했다. 나름 페미니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박원순의 성폭행 사건'은 혼란 그 자체였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진보인사들 사이에도 박원순 사건은 양측으로 갈라졌다. 비록 그의 마지막 행보가 매우 실망스럽긴 하나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가 먼저라는 입장과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속히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피해자 연대 측의 주장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입장을 내세우면 다른 쪽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했다. 이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생각을 말하기보다 침묵을 택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은 멈춰 버린 진실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고 생각을 나누며 그대로 멈춰 서지 말고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하는 기획으로 제작되었다. 처음 이 책은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일지>부터 가장 최근의 진행상황부터 시작하여 역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박원순 -> 문단계 미투 -> 안희정 -> 스포츠 -> 문화계 등 사건의 발생과 진행 상황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어 한국 내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발달되어 있는지 독자의 이해를 돕게 해 준다.
![]() 이 책의 기획의도에 동의하고 참석한 이일영, 이인미, 이재경, 도이, 황인혁 다섯 명의 인사들로 이루어진 이 토론에서는 이 다섯 명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초대되었으나 거부한 사람도 있음을 밝힌다. 참석한 이 분들 또한 주변의 만류와 많은 고심 끝에 참여했음을 말하며 쉽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왜 이 사건에 대해 토론자들은 고심해야 했으며 지인들은 왜 굳이 나가고자 했을까? 바로 박원순이라는 상징성과 죽음 때문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쁜 인간이었다면 이 사건은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며 여성 문제에 대한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던 박원순의 진실과 죽음 앞에서 그를 옹호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 그리고 침묵을 지키는 쪽으로 갈라졌다. 한 쪽이 이야기를 하면 다른 한 쪽이 맞받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침묵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침묵 앞에서 이 사건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서 모인 다섯 명의 토론자들 또한 이 부담감과 그래도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 앞에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토론에 응했다. 하지만 이 다섯 명의 토론자들은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 속에 이들의 토론은 앞부분만을 차지할 뿐이다. 다만 토론자들은 박원순 사건으로 갈라진 현 상황과 왜 진보라고 칭하는 정치인들 사이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예명을 쓰며 참석한 도이씨는 비서실에 근무했던 경험을 통해 안희정, 박원순 비서실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위계의 무거움을 토로하며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변호한다. 또 다른 연사는 처음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박원순 전 시장이 정치의 옷을 입은 후 달라져가는 권위적인 모습을 비추어간다. 무엇보다 정의를 위해 헌신했지만 젠더 평등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진보 정치인들의 괴리 또한 연달아 발생하는 이 사건의 이면을 짚어 준다. 토론자들은 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진실의 양분화를 가장 우려한다. 박원순의 죽음 앞에 갑자기 멈춰버린 이 진실은 진실 추구를 주장하는 측을 매정하다고 비판하고 추모하는 쪽은 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받는다. 서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들의 논쟁만 있을 뿐 토론은 멈춰버렸다. 이에 대한 토론 없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걱정하며 극복하기 위해 어렵게 토론을 이어나간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가 죽음이라는 너무 큰 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잖아 라는 논리 앞에서 이야기는 멈춰버린다. 떼어놓고 보고 싶은데, 미투 사건은 미투 사건이고 공을 추모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서는 이 진실에 반응하는 세대간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의 이면에 드러난 사회혐오 등이 있음을 밝혀준다. 결코 이 사건이 젠더 사건으로만 묻히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박원순 사건을 시작으로 안희정 사건과 여러 미투 사건의 진실과 법정 판결문을 함께 기록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철저히 보여준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답을 말하지 않는다. 참여한 다섯 명의 토론자들 또한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앞에 보여지는 이 진실을 뛰어 넘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토론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 보자고 이야기한다. 침묵을 깨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침묵 상태만을 고수할 수 없다. 말해야 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이 책의 기획 또한 많은 시민들의 침묵 상태를 깨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이유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침묵이 아니고 비판을 위한 토론이 아닌 개선을 위한 토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