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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뒤에 잊혀진 이름들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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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뒤에 잊혀진 이름들 최재형 선생님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을 읽으며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재형 선생님은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러시아로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러시아 학교에 보내셨고,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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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뒤에 잊혀진 이름들


 최재형 선생님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을 읽으며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재형 선생님은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러시아로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러시아 학교에 보내셨고, 그곳에서 최재형 선생님은 러시아어를 익혔습니다. 하지만 어린 최재형의 타국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형수에게 심한 구박을 받아 집을 나와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항구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쓰러진 어린아이를 선원들이 발견해서 발로 차며 장난치는 모습을 본 선장이 막아섰다고 합니다.


 그 선장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어린 최재형을 아들처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책을 읽게 했으며, 6년 동안 배를 타고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문물과 세상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은 훗날 최재형 선생님이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가감없이 펼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초년기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랐던 점은, 선생님은 그렇게 번 돈을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아낌없이 후원하셨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유학을 보내며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사용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지원한 인물 가운데에 최재형 선생님이 계셨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당시에는 재무총장까지 맡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신 분인데, 저는 왜 지금까지 최재형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요? 책을 읽을수록 감탄보다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독립운동가 분들의 삶을 공부하다 보면 ‘독립’이라는 멋진 단어 뒤에 감춰져 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배고픔과 추위, 폭력과 도망쳐야 하는 삶, 가족과의 이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두려움. '독립운동'이라는 단어 하나로 함축해서 묶어버리기에는, 그 속에 너무 많은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최재형 선생님은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다가 결국 일제에 의해 순국하셨습니다. 연해주 참변 당시 끌려가서 목숨을 잃으셨고, 일제는 선생님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선생님의 유골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특히 마음 아팠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살았는데, 마지막에는 자신의 무덤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부인이신 최엘레나 선생님의 유골을 어렵게 모셔와 최근 우리나라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함께 돌아오지 못한 채, 아내만 고국으로 돌아오신 겁니다.


 최재형 선생님께서는 살아생전 안중근 의사가 총과 사격 연습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셨습니다. 최재형 선생님의 든든한 후원이 없었다면, 항일운동은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도 결국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일제는 뤼순 감옥까지 찾아온 동생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지도 않고,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나라를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었지만,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분들은 배고프고, 춥고, 맞고, 쫓기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독립운동가’ 분들도 우리처럼 배가 고프면 힘들었을 것이고, 맞으면 아팠을 것이며, 가족을 잃으면 슬펐을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았습니다. 최재형 선생님에게는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독립과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어쩌면 최재형 선생님의 삶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제대로 선택하자는 사실입니다. 사업가로 성공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가족과 재산만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더 어렵고 고된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최재형 선생님의 생일은 8월 15일, 우리가 광복절로 기억하는 바로 그날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오래 남는 날짜입니다. 저는 앞으로 8월 15일이 오면, 대한민국의 광복과 함께 최재형 선생님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세대를 거치며 이제는 이름조차 많이 잊혀진 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재산을 내어놓으며 지켜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독립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아무리 간접경험을 해도, 제가 그분들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이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것임을. 그리고 최재형이라는 이름을 몰랐던 제가 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더 그분의 삶을 알 수 있게 독후감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youtu.be/ZmQIWNUREsg?si=p4AZ10ROsHjmHxAf

최재형 순국 103년 만의 해후, 그들은 왜 기다려야 했나? / 비머실록 / 비디오머그

최재형 순국 103년 만의 해후, 그들은 왜 기다려야 했나? / 비머실록 / 비디오머그


비디오머그 채널에 최재형 선생님 영상이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요!



t********d 2026.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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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공부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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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공부가 너무 힘들다. 곧 중학생이 된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6학년이 되면서 문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외울 것도 많아졌다. 엄마는 중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가끔은 문제집을 풀다가 이런 생각도 한다. ‘도대체 이걸 배워서 어디에 쓰지?’  그런데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다가 엉뚱하게도 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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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공부가 너무 힘들다. 곧 중학생이 된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6학년이 되면서 문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외울 것도 많아졌다. 엄마는 중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가끔은 문제집을 풀다가 이런 생각도 한다.

 

‘도대체 이걸 배워서 어디에 쓰지?’

 

 그런데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다가 엉뚱하게도 공부에 대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최재형이 러시아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최재형도 없었을지 모른다.

 

 최재형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떠났다. 그곳에서도 생활은 힘들었고, 형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해 열한 살에 집을 나왔다.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 포시에트 해변에 쓰러진 최재형은 러시아 상선의 선원들과 선장 부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선장 부인은 최재형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고 러시아 문학과 여러 지식을 접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최재형에게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가 이유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알아야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고, 새로운 세상을 배워야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최재형에게 공부는 시험지의 점수를 올리는 일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일이었다.

 

 나에게 공부는 아직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단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외우고, 수학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 공식을 익힐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최재형의 공부가 나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러시아어를 배운 최재형은 나중에 통역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말을 하지 못하는 한인들의 말을 대신 전하며 한인 사회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다.

 

 그때 처음에 내가 가졌던 궁금증이 조금 달라졌다. 최재형이 러시아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최재형의 인생만 달라졌을까? 아닌 것 같다. 그의 통역이 필요했던 한인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최재형이 사업으로 도운 사람들, 그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한 아이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한 사람이 배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최재형은 사업에 성공한 뒤 한인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고 연해주 한인 마을에 32개의 학교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여기에서 또 궁금해졌다. 굳이 왜 학교였을까? 나라를 빼앗길 위기라면 총을 사고 군인을 모으는 것이 더 급하지 않았을까? 내가 최재형이었다면 학교를 세우는 것보다 일본군과 당장 싸울 방법부터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최재형 자신이 배움 때문에 인생이 달라진 사람이었다. 러시아어를 배웠기 때문에 통역을 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를 배우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다.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사업에도 성공했고 다른 한인들을 도울 힘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최재형이 나라를 되찾으려면 총을 들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라를 이끌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책을 읽는다고 당장 나라가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 교실에서는 총소리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글을 배운 아이가 어른이 된다. 세상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중에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학교를 세우는 것도 아주 오래 걸리는 독립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형은 학교만 세운 것도 아니었다. 동의회를 조직하고 큰돈을 군자금으로 내놓아 의병 활동을 지원했다. 《대동공보》를 맡아 신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에도 힘썼다.

 

 처음에는 이 일들이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모두 하나로 연결됐다. 학교에서는 사람을 키웠고, 신문으로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웠고, 독립운동에서는 그 사람들의 힘을 모았다. 아무리 뛰어난 독립운동가라도 혼자 나라를 되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최재형은 자신만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공부는 최재형 한 사람의 운명만 바꾸지 않았다.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왔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위대한 공부’라고 이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독립운동가 최재형》 한 권을 읽었다고 갑자기 공부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내일 수학 문제집을 펼치면 또 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가서 공부가 더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걱정된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은 달라졌다.

 

 지금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공부 하나가 언젠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l*********9 2026.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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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조차 남기지 못한 거인, 독립의 대부 최재형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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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내 심장이 더 차갑다.”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최재형 선생님의 한마디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만난 최재형 선생님의 삶은 나에게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참된 리더가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무거운 결단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었다.  최재형 선생님의 시작은 슬픔이었다. 가난을 피해 러시아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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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내 심장이 더 차갑다.”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최재형 선생님의 한마디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만난 최재형 선생님의 삶은 나에게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참된 리더가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무거운 결단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었다.

 

 최재형 선생님의 시작은 슬픔이었다. 가난을 피해 러시아로 갔지만 형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11살에 가출을 했다. 길가에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긴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를 거두어 준 것은 선량한 러시아 선장 부부였다. 사랑받으며 자란 그는 무역회사에 입사해 통역가이자 청년 사업가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번 돈을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인간은 배워야 인간이다"라는 마음으로 사비를 털어 32곳의 학교를 지었고, 동포들에게 일자리를 주며 삶을 보살폈다. 그 공로로 러시아 황제에게 훈장까지 받으며 '페치카'라고 불렸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전국에서 찾아온 독립운동가들은 그를 독립운동의 대부로 모셨다. 의병단체 '동의회'의 회장이 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후원했으나, 일본군의 기습과 러시아의 압박으로 전투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항일 신문사인 <대동공보>를 설립해 언론 투쟁을 이어갔다.

 

 특히 하얼빈역에서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거사 뒤에는 최재형 선생님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딸 최올가님의 인터뷰 영상도 보게 됐는데, 안중근 의사는 최재형 선생님의 집 창고 벽에 이토 히로부미 등 세 사람의 모습을 그려놓고 총을 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대동공보> 직원이 건넨 차비와 권총을 들고 나선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라 옆에 있던 일제 간부들까지 함께 저격하며 거사에 성공했다. 그 후 최재형 선생님은 안 의사의 남아있는 가족들을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그리고 가슴 따뜻하게 만든 것은 안중근 의사의 재판 기록이었다. 안중근은 "최재형은 부유하여 자기 잘난 맛에 우리를 경멸하고, 인색하여 의연금도 내지 않는다"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스승이자 후원자인 최재형 선생님의 죄를 가려주고 그를 살려내기 위해 일부러 거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안중근이 쓴 일기에는 동료들의 이름이 실제와 다르게 기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동지들을 지켰다. 안중근 뿐만 아니라 최재형의 목숨을 건 뜨거운 동지애에 가슴이 울컥했다.

 

 1920년 일제의 포위망이 연해주를 좁혀왔을 때, 선생님은 "동지들이, 너희가 나보고 도망가라 하는데 나는 도망가지 않겠다. 이 아빠, 홀로 죽겠다"라며 동포들을 위해 도피를 거부하셨다. 결국 재판도 받지 못하고 뒷산에서 총살당하셨으며, 일제는 그 흔적조차 지우기 위해 땅에 묻고 삽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설민석의 역사 강의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는 눈물이 살짝 날뻔 했다.

 

 놀랍게도 최재형 선생님의 생일은 8월 15일, 바로 광복절이다. 정작 본인은 광복을 보지 못하고 무덤도 없이 스러져 가셨지만, 그분이 지핀 독립의 불꽃은 결국 8월 15일 대한민국의 빛으로 결실을 맺었다.

 

 모든 부와 목숨을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최재형 선생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나 역시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을 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작은 페치카'로 성장하겠다고 꼭 다짐하게 된 계기였다.

 

l*********9 2026.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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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잃은 차가움을 온기로 바꾼 사람,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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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일본군이 들이닥치기 전, 가족들은 최재형에게 도망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도망치면 일본군이 남은 가족들에게 보복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재형은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갔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이 장면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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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일본군이 들이닥치기 전, 가족들은 최재형에게 도망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도망치면 일본군이 남은 가족들에게 보복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재형은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갔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이 장면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 나라면 무조건 살고 싶었을 것 같다. 돈도 있고 가족도 있으니 더더욱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최재형에게도 분명 가족이 있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남겨질 사람들을 먼저 걱정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책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그리고 역사 선생님의 특강까지 들으며 다시 한번 최재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재형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 주어야만 했던 아이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다. 형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한 열한 살 최재형은 집을 나왔고,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포시에트 해변에 쓰러졌다. 그때 러시아 상선의 선원들이 그를 발견했고 선장 부부가 최재형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었다. 선장 부인은 러시아어와 문학을 비롯한 여러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최재형에게 외로움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생각했다. 자신을 구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그때 받은 따뜻함을 최재형은 평생 잊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른이 된 최재형은 러시아어를 익혀 한인들의 통역을 맡았고 사업에도 성공했다. 큰돈도 벌었다. 그런데 나는 최재형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보다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난한 한인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고 학교를 세웠다. 연해주 한인 마을에 32개의 학교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나라가 위기에 놓이자 동의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에도 많은 돈을 내놓았다. 《대동공보》를 맡아 사람들에게 독립 의식을 알리는 일에도 나섰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최재형에게 돈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시절 너무 가난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돈을 잃는 것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다시 가난해지고 싶지 않아 꽉 움켜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재형은 반대로 했다. 나는 최재형에게 돈이 외로움과 가난을 없애는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학교를 세우면 배우지 못해 힘든 아이가 줄어들고, 일할 기회를 만들면 가난 때문에 힘든 가족이 줄어든다. 독립운동에 돈을 내놓으면 나라를 잃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탤 수도 있다. 그래서 최재형에게 행복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혼자가 아니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생각을 하고 나니 사람들이 그를 러시아식 난로라는 뜻의 ‘페치카’라고 부른 이유도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난로는 추위를 없앨 수 없다. 아무리 뜨거운 난로라도 러시아의 긴 겨울 자체를 봄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난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최재형도 그랬던 것 같다. 그는 혼자서 조선의 가난을 없앨 수도, 일본을 물리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세우고, 한인들을 돕고, 독립운동가에게 돈과 힘을 보태며 자신의 주변부터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 한번 같은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돈도 학교도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이었다. 가족들이 도망가라고 했을 때 최재형은 자신이 피하면 가족들이 일본군의 보복을 당할 것을 걱정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남는 쪽을 선택했다. 아마도 최재형이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오히려 두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어른이 된 뒤에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게 했던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더 두려웠던 것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린 최재형은 차가운 해변에 혼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라서 수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난로가 되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덮으며 나는 영웅은 추위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추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온기를 내어 주는 사람. 내가 이 책에서 만난 최재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l*********9 2026.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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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연해주를 녹인 따뜻한 난로, 페치카 최재형 할아버지
"얼어붙은 연해주를 녹인 따뜻한 난로, 페치카 최재형 할아버지" 내용보기
최재형을 소개하라고 하면 나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먼저 통역가이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한인들의 말을 러시아 사람들에게 전해 주며 두 사람 사이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사업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돈을 버는 사업가는 아니었다. 자신이 돈을 벌면서 한인들도 함께 돈을 벌 방법을 찾았다. 교육가이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다. 한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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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형을 소개하라고 하면 나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먼저 통역가이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한인들의 말을 러시아 사람들에게 전해 주며 두 사람 사이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사업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돈을 버는 사업가는 아니었다. 자신이 돈을 벌면서 한인들도 함께 돈을 벌 방법을 찾았다. 교육가이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다. 한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도왔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이 많은 이름 가운데 최재형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하나 골랐다. 독립운동가이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는 일본군과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재형의 독립운동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니었다.

 책에서 어린 최재형은 가난 때문에 열한 살에 집을 나와 포시에트 해변에 쓰러진다. 다행히 러시아 상선의 선원들에게 구조되고 선장 부부의 도움을 받는다. 선장 부인은 최재형에게 러시아어와 문학 등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최재형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았다.

 어른이 된 최재형은 러시아어 실력을 이용해 통역을 했다. 특히 러시아어를 몰라 억울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한인들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다. 사업에도 성공해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자신만 잘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한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육을 지원했다. 연해주 한인 마을에 32개의 학교를 세우는 데도 큰 힘을 보탰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최재형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러시아식 난로라는 뜻의 ‘페치카’라고 불렀나 보다. 하지만 책을 더 읽자 ‘페치카’에는 따뜻하다는 것보다 더 큰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위험해지자 최재형은 자신이 가진 돈과 힘을 독립운동에도 사용했다. 동의회를 조직하고 의병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1만 3천 루블이라는 큰돈을 군자금으로 내놓았다. 의병들에게는 먹을 것과 무기까지 필요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만 있어서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밥을 먹게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총을 마련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힘을 합치도록 이끄는 사람도 필요하다. 

 최재형은 그 일을 했다. 의병 활동이 어려워지고 러시아의 압박이 심해졌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대동공보》의 사장이 되어 신문으로 일본의 잘못을 알리고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깨우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최재형이 참 끈질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았다. 학교를 세우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신문을 만드는 일도, 의병을 돕는 일도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보니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한인들이 힘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최재형에게 붙였던 이름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통역가 최재형은 말로 사람을 도왔다. 사업가 최재형은 돈으로 사람을 도왔다. 교육가 최재형은 배움으로 사람을 도왔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나라를 도왔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그를 ‘페치카’라고 불렀는지 조금 더 알 것 같다. 난로는 가만히 따뜻하기만 한 물건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열을 계속 밖으로 내보내야 주변까지 따뜻해진다. 최재형도 자신이 배운 것, 번 돈, 가진 힘을 자기 안에 두지 않고 계속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내게 최재형은 단순히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독립운동의 방법으로 바꿀 줄 알았던 사람이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기 전에는 독립운동가에게는 총이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총이 무기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학교가, 신문이,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해 주는 언어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최재형에게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독립운동의 무기였다.

l*********9 2026.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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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숨쉬는 두 거목, 최재형 할아버지와 백남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역사 속에 숨쉬는 두 거목, 최재형 할아버지와 백남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내용보기
나는 안중근 의사를 알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도 알고 있었고 김좌진 장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재형이라는 독립운동가는 잘 알지 못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왜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을까   최재형은 혼자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관
"역사 속에 숨쉬는 두 거목, 최재형 할아버지와 백남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내용보기

나는 안중근 의사를 알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도 알고 있었고 김좌진 장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재형이라는 독립운동가는 잘 알지 못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왜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을까 

 

 최재형은 혼자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읽은 사람은 안중근 의사였다. 최재형과 안중근은 동의회에서 함께 의병 활동을 준비했다. 최재형은 자신이 번 돈을 군자금으로 내놓고 의병들이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것과 무기를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나는 책에서 ‘의병’이라는 말을 읽는 순간 우리 외고조할아버지 백남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홍범도 장군이나 김좌진 장군처럼 앞에서 일본군과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최재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앞에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쓰러지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내 진공 작전이 어려움을 겪고 러시아의 압박까지 심해지자 최재형의 독립운동 방법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독립운동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대동공보》의 사장이 되어 신문으로 사람들에게 독립 의식을 알렸고, 다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 나는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한 가지 방법이 막혔다고 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 최재형은 안중근을 집으로 불러 권총을 내밀며 말했다.

 

 “의병장, 행운을 비네.”

 

 짧은 한마디였다. 그런데 나는 이 말 뒤에 최재형이 했던 수많은 일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순간은 역사책에도 나오지만, 그 총을 준비하고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돈과 힘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중 한 사람이 최재형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렸다. 나무는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는 혼자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산소를 내보내 다른 생명들이 숨을 쉬게 한다. 가지에는 새가 앉고, 뜨거운 날에는 사람들에게 그늘도 내어 준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이면 마침내 숲이 된다.

 

 최재형의 삶도 나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최재형 역시 처음부터 강한 나무는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왔고 바닷가에 쓰러질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러시아 선장 부부가 그를 도왔다. 최재형은 그들의 도움으로 러시아어와 여러 학문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자란 소년은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지를 내어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인들이 살아갈 방법을 찾도록 도왔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돈과 무기를 지원했고, 《대동공보》를 통해 독립의 필요성을 알렸다. 안중근처럼 앞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재형은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뿌리를 내려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독립운동도 숲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책에는 아주 크고 굵은 나무의 이름이 먼저 보인다. 하지만 숲은 큰 나무 한 그루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싸운 사람, 돈을 내놓은 사람, 학교를 세운 사람, 신문을 만든 사람, 먹을 것과 무기를 준비한 사람이 서로의 가지와 뿌리를 이어 하나의 숲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자 우리 외고조할아버지 백남규 할아버지도 전보다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고 나서는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함께 싸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기를 마련하고 누군가는 밥을 지으며 서로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최 재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임되었을 때도 그 자리에 나아가지 않았다. 책에서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에게 뒤에서 힘이 되어 주고 싶소.”

 

 나는 이 말을 읽고 처음에 품었던 궁금증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최재형은 왜 안중근처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분은 평생 앞에 서는 것보다 누군가의 뒤를 받쳐 주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에 있었다고 해서 작은 독립운동가는 아니다. 나무의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를 세우는 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뒤 나는 최재형이라는 이름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제 내게 최재형은 안중근 뒤에 가려진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쓰러지지 않도록 뿌리를 내리고, 다른 나무들이 자랄 자리를 내어 주며 독립이라는 숲을 함께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백남규의 후손인 나는 이제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이름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숲을 보려면 가장 큰 나무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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