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을 마치고 교내 서점 앞을 지나다가 서점 앞에서 책 할인판매를 한다고 해서 잠시 멈춰 섰었다. 거기서 우연히 송희복의 '영화, 뮤즈의 언어'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장을 들춰보다가 책을 그 자리에서 사버리고 말았다. '영화가 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책 설명도 흥미로웠지만, 책 속에서 '안소니 퀸'이 등장했다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이라는 영화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에 나갔던 퀴즈쇼에서 나를 탈락시켰던 바로 그 문제의 정답이 영화 '길'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 영화의 주제음악이었다는 미노레타 작곡의 '젤소미나'의 선율이 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그 이탈리아 영화 '길'을 언젠가 어렸을 적에 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자 어릿광대 '젤소미나' 역을 맡았던 줄리에타 마시나의 순수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지만 티없이 맑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의 얼굴에서 묘한 슬픔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비평서인 송희복의 '영화, 뮤즈의 언어'는 저자의 화려한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탄탄한 글솜씨와 풍부한 인용자료가 돋보이는 책이다. 그는 '조선일보 문학평론'(1990)과 '스포츠 서울 영화평론'(1995)에 당선되었으며,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그 동안 그가 발표해 온 '한국 서정시의 이해', '김소월 연구', '시학 인문', 한국시: 감성의 계보' 등의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영화 비평보다는 문학비평, 그 중에서도 현대시 비평 위주로 활동해 왔다. 따라서 그가 전세계의 수많은 종류의 영화들을 '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장 르누아르, 페데리코 펠리니, 오즈 야스지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레오스 카락스 등 프랑스, 러시아, 인도, 일본 등 수많은 나라들의 수많은 영화 거장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아우르려는 그의 시도는 신선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가 정의하는 바에 따르면, "영상시인이란 창작적 재능의 영감을 통해서나 장인정신에 입각한 몰아적인 직관의 세계에 의하여, 탁월한 화면구성, 귓전을 두드리는 사운드의 청감, 영상언어의 투명한 세공 등을 실현하는 자"이며, "영상시(cine-poem)는 시적 이미지를 빚어 낼 수 있는 영화감독이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의 산물이며, 동시에 시와 영화를 최대치로 종합한 경우"(282)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둘 수밖에 없는 주관적인 영역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영화들을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들로 구분 지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좋은 영화에 반드시 시성이 내재되어 있다"(83)고 그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호하다. 적어도 내게는 '좋은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외국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영화학도들이 선호하는 현학적인 기술비평보다, 스크린에 반사된 황홀의 빛을 생체험의 현장으로 인도하면서 스스로 감동의 도가니 속에 빠져드는 인상비평이 오히려 영화읽기의 적확성"(39)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 문학비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의 영화 읽기는 다른 글들보다 더욱 현학적이다. "이그조티시즘에 심취하면서 생의 또 다른 멋을 관조하게 하는 영화이지만, 왠지 모르게 서구인의 우월적인 시각인 오리엔탈리즘의 씁씁한 뒷맛을 남기고 있는 듯한 영화"(79)라든지, "그의 영화는 비판적 리얼리즘, 혁명적 로맨티시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등을 두루 공유하고 있다"(242) 등의 문장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영화비평 용어사전' 뿐 아니라, '문학비평 용어사전'까지 들쳐보도록 강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에 대한 그의 시각은 또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인 랭보의 일생을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그는 "10년 연상의 베를렌과 함께 부화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정상적인 궤도를 일탈한 육체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하고, "시인의 명성을 더럽히거나 욕되게 했다"며 "사전에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을 것"(277)이라든지 "어쨌든 나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영화"(93)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성정체성까지 이야기하면서 '동성애'를 비판하고 있는 그의 글은 그가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는 글의 '품격'과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교묘하게 포장된 표현들 속에 숨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주지하다시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는 동성연애자들이 많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것을 뛰어넘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142) 예술가들에게는 사회가 이미 정해버린 성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그들의 숙명적인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영화, 뮤즈의 언어"는 주위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전세계의 저명한 영화거장들의 작품들을 풍부한 자료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문학비평을 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그의 영화비평은 지나치게 '도도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현학적인, 그래서 '상아탑에 갇혀버린 영화비평'이 되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