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리를 죽이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327)
30대 초반 무렵 친구들이 하나씩 ‘부부의 세계’에 입성하는 일이 잦아졌다. 난 축의금을 내면서 툴툴거렸고 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을 보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피로연에서는 열띤 목소리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하면서 결혼한 자들은 ‘반복’이 주는 ‘안정감’으로 도피한 것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비겁한 자들이라고 선언하곤 했다. 그렇지만 어느 쓸쓸한 날에는 그들의 안정된 삶이, 그러니까 더 이상 마음을 저울질하는 혼란에 시달리지 않는 상태가 조금쯤 부럽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랑한다’고 편지를 썼던 여자들이 하나씩 스쳐갔다. 후회의 목록들이 늘어났지만 애써 외면했다.
“삶이란 씁쓸하고 실망스러운 것이며, 우리 둘 다 이미 그걸 충분히 아는 마당에, 추가로 확인하기 위해 과연 굳이 택시비와 식사비를 지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정말로 클레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일까?” (135쪽)
30대의 어느 무렵 하루키의 소설 <다자키 쓰크루>를 읽고, 비슷한 여정을 실행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들을 하나씩 다시 만나보려는, 그런 여정. 대개 헤어질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불쾌한 접촉으로 끝났고, 더러는 지금까지 친구로 남게 된 경우도 있었다. 왜 이런 불필요한 낭비를 자처했을까. “나는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이미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아무런 추억도, 다가올 기적에 아무런 기대도 없는 감정의 동절기로 조금씩 진입하고 있었”(160쪽)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후로도 정말로 놓치기 싫은 사람들을 만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청혼을 한 여자도 있었다. 사랑이 끝난 후 우리는 늘 과거를 응시하게 된다. 정말 보이고 싶지 않지만, 잠재된 공격성과 애써 감추려고 했던 상처들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김없이 드러나곤 한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2. 페니스, 노동, 소, GMO
플로랑은 줄곧 과거의 애인들이 해줬던 ‘구강성교’를 떠올린다. 섹스중독자의 독백은 우엘벡의 소설에서 지겹도록 반복된다. 유난히 ‘페니스’가 강조되는 우엘벡 소설의 ‘섹스’는 이중적인 장치로 읽힌다. ‘살아있다’는 증명과 ‘인간의 동물성’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카미유와 만날 때도 플로랑은 파티에서 만난 흑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애인 유주와 동거하면서도 갈색머리의 스페인 여자에게 성욕을 느낀다. 이것은 섹스중독자의 일면이지만, 그는 자신의 ‘살아있음’을 ‘페니스의 발기’로 확인한다. 캅토릭스의 부작용으로 발기부전이 된 이후에야 그는 자신의 성욕을 분석할 정도의 거리를 확보한다.
플로랑은 농산부에서 꽤 괜찮은 보수를 받는 계약직원이고 부모의 유산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한다. 그에게 농축산물은 ‘숫자와 그래프’로 해석될 뿐이다. 광활한 아르헨티나 농산물 수입으로 프랑스 농부들은 위기에 몰리지만, 플로랑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한다. (‘농업개방’을 ‘매춘시장’으로 바꾸면 그대로 <플랫폼>의 서사가 된다)
일본인 애인 유주의 행동은 플로랑의 업무와 나란히 겹쳐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플로랑은 유주에게서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 유주와의 결별로 ‘실종’을 택한 플로랑은 옛친구 에메릭과 헤어진 애인들을 만난다. 그는 이 여정에서 에메릭의 ‘망한 농장’을 목격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 카미유를 찾아간다. 그러나 에메릭은 죽고, 플로랑은 카미유와의 만남을 접는다.
“에메릭과 나는 거의 같은 지점에 있었다. 우리의 운명은 달랐으나 종착지는 비슷했다.”(245쪽)
한때 수많은 여자들과 섹스를 즐겼던 플로랑의 페니스는 능력을 상실했고, 성실한 노동은 언제나 세상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 에메릭의 소들은 방치되고, 현대인의 위장은 GMO 식품으로 채워진다. 이 세계도, 플로랑도, 모든 인간들도 점차 ‘소멸’을 향해간다. 우엘벡의 자신의 모든 소설에서 “인간사회가 사랑을 파괴하는 기계”(203쪽)라는 사실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사랑만이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211쪽)이라고 말한다.
3. All you need is love
“사랑은 어쨌든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시간들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세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유일무이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194쪽)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섹스중독자의 이런 독백은, 난감하다. 단지 문장으로써만 아름다울 뿐이다. 세계가 폭력적일수록 사랑의 가치는 더욱 절실해진다. 하지만 우엘벡은 사랑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닮았다. <소립자>의 변태성애자 브루노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만, 그 관계는 금방 파국에 이른다. <플랫폼>의 섹스관광중독자도 마찬가지. 플로랑도 카미유와 재회하지 못한다. 기묘한 것은 이 실패의 서사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랑의 의미와 방법론을 여백으로 남겨 놓는다.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섹스중독자의 거북한 독백을 걷어내면, 그가 그리는 세계는 잔혹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우엘벡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불가능성’은 ‘이미 망해버린 세계’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서구사회에서는 누구도 더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오늘날 사람들은 행복을 옛날의 꿈쯤으로 치부하는 듯하고, 그건 바로 역사적인 행복의 조건들이 더는 규합되지 않기 때문이다.”(118쪽)
이 세계에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을 한국으로 전환시킨다면 어떠할까.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은 플로랑, 유주, 클레르, 에메릭이 있지 않은가. 이미 당신들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
태그 |
|
2015년에 발표한 미셸 우엘벡의 여섯 번째 소설인 《복종》이 출간되던 날,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이 있었다. 《복종》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정권을 잡는 이슬람교 기반의 정당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현실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비슷하게 작가의 일곱 번째 소설인 《세로토닌》에는 목축업자들의 총기 시위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농촌 지역의 지지를 받은 ‘노란 조끼 시위’와 매칭 되면서 화제를 이어갔다.
미셸 우엘벡 Michel Houellebecq / 장소미 역 / 세로토닌 (Serotonine) / 문학동네 / 413쪽 / 2020 (2019) |
문제적 작가라고 불리우는 우엘벡의 한국어로 번역된 가장 최신 소설이다. 주요 전작들에서 다루었던 세계화된 시장자본주의와 허울 뿐이었던 68혁명의 실패가 어떻게 서구인들을 고립시키고 소외시켜서 결국 회생불가한 상태가 되어 버렸는지에 대하여, 성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한껏 냉소적인 어조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인류절멸계획까지 세웠던 작가가 이제는 스스로도 늙어서 고작 과거에 얽매이고, 자살을 고민하는 쓸쓸한 중년남 이야기를 쓰다니 이 책의 주인공처럼 씁쓸한 마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