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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었다.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다. 식민지 근대화론, 정말 욕나오는 것을 이유로 마치 우리 위에 있으려는 일본은 정말 싫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왕따가 있었다.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맨날 폭력에 어느날 맷집이 강해졌다. 그래서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그러자 일진이 사과는 안하고 이렇게 말한다. "너 내가 맷집 키워준거야, 나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 뭔 화가 나는 소리인가. 그 왕따는 그 순간이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아팠는데 말이다. 정말 자신들 이익을 위해 철도를 깔고, 수탈했으면서 마치 우리를 위했던 것처럼 말하다니. 그런데 더 화나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대한일본인은 아닐지?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나약했던 사람들, 그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조금 더 선한 말을 하자. 마음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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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여성이 발화하는 목소리를 채록 혹은 기록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 둘째, 기록의 도구로서의 언어, 언어를 번역한다는 행위.
이 시집은 이 두 가지 중요한 이슈가 중첩되어 있고,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고 특별하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저자인 '에밀리 정민 윤'은 1991년 한국에서 태어나 만 열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즉, 그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는 낯선 언어였던 '영어'로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처음에 그녀는 소설 쓰기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학에 진학한 후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에밀리 정민 윤이 일본군 위안부(시인은 '위안부'라는 완곡하고 온건한 표현 대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나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시의 소재로 삼게 된 것은, '한국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고,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의 주류 사회에 한국 역사를 소개하고 이해시키고 싶은 열망에 의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마이너리티'로서 '마이너리티'의 삶에 자연스럽게 끌렸던 게 아닌가 싶다. 아시아인이자 여성으로 미국에 살면서 그녀가 수시로 느꼈던 감정들(차별이나 배제나 폭력 등등)이 아니었다면 그 감정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Part II인 '증언'도 그렇거니와 시집의 도처에서 동일한 제목을 가진 채 불쑥불쑥 등장하는 「일상의 불운」이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시이거나, 그들이 1인칭으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들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시집은 여성들의 (중첩된) 목소리를 채록하고 기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이렇게 여성들의 경험은 맞닿아 있고, 이것이 '연대'의 근거와 이유가 된다. 김혜순 시인이나 이제니 시인이 이 시집에 추천사를 쓴 이유도, 소설가 한유주가 이 시집의 번역을 맡은 이유도 같거나 비슷한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독자로서 내가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에서 비슷하거나 동일한 감정을 경험한 것 역시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Part II인 '증언'이 실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시라는 것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채록'과 '기록'을 통해 지워지고 매장되었던 역사의 한 부분이 복기되고 되살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 의해 전승된다. 한편, '영어'나 기타 다른 언어를 매개로 이 역사는 다른 나라,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번역'의 역할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역사나 한국 사회를 소재로 영어로 쓰여진 시인의 시(이 시집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등 비교적 최근의 일들을 소재로 한 시들도 있다)가 번역을 통해 다시 한국어로 소환되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연시되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읽는 이 시집이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번역되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영어-->한국어'의 과정을 거치면서 무언가 조금은 이질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물스러움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경험은 우리 자신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거리를 둘 때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깐. '우리'의 일부였으나 우리 바깥으로 나간 제3자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시집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시집의 권말에 2018년 하퍼콜린사에서 출간된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의 전문이 실려 있다. 각각을 원서와 번역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동일한 시집), 어찌 보면 두 권의 다른 시집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이 한 권의 책에서 서로 다른 두 권의 시집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집만의 특징이다. 영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시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는지, 그것이 시의 의미를 어떻게 전달하고 (미묘하게) 바꾸는지 등을 살피며 시를 읽는 것도 독서의 한 방법이 되겠다.
사족. 여담이지만 이민자의 삶이나 이민자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하진의 『자유로운 삶』을 권한다.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미국에 사는 중국계 이민자 역시 시를 쓴다. 그가 영어로 시를 쓰면서 경험한 바와, 이민자인 에밀리 정민 윤이 시를 선택한 이유를 떠올려보면, 미국 내(혹은 미국 대학이나 문단, 출판계)에서 시의 정의나 의미도 많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이 두 책들이 출간된 세월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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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정민 윤의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미국의 한국계 이민자 여성인 저자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해 현대 여성들이 남성문화에 의해 겪는 억압과 부조리까지 시로 다듬어 낸 책입니다. 이런 책을 살 때는 항상 제가 불행을 낭만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닐지 경계하고 고민해야 되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참한 아픔이지만 그들이 여성으로서 제게 결코 타자가 아니기에 그들의 증언을 새로이 조명하여 제게 절감하게 해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