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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는 학문적 목적이나 문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는 걸 밝힌다. 물론 내 전공이 문학과 관련이 있지만 문학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여러 문학사 책을 뒤적이다가 가장 끌린 책이 이 책이었을 뿐이다.
문학사를 공부하기에 적절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대학 세미나 강연과 토론을 전사한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 수준이 논문 수준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자가 기존의 문학사를 잘 알고 있다면 나처럼 흥미롭게 읽었을 수도 있고, 이쪽 전공과 관련해서 연구의 길을 나서는 사람이라면 여러 연구거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사에 대한 지식이 고등학교 수준 혹은 그것조차 전무하다면 이 책의 내용은 글자는 분명 한국어인데 뭥미? 할 수도 있다.
읽으면서 이 방대한 내용을 내가 왜 리뷰 쓸 생각을 했나 하고 좀 후회도 했지만 표시하고 싶은 내용을 한글 파일로 정리했더니 20페이지 이내로 나와서 조금 놀랐다.
전체 내용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는 다시 세 파트로 나뉘어 교수님들이 한 파트씩 한 강의를 맡아 문학사 내의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그 후 청중(이라고는 해도 전문가들로 추정)들과 토론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내용 개관은 책머리에 부분에 전부 실려 있으니 개략적인 것만 알고 싶으면 그 부분만 읽어도 될 듯하다. 내게는 그 부분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였다.
문학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로 시작하는 1부는 문학사를 싫어하는 내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문학사가 사조 중심인 이유.(사실 그 때문에 싫어한다.) '나가수'식 절대적 다수결을 문학사에도 도입한다면? 1910년대와 1920년대(문학사 공부할 때 지긋지긋하게 보고 나가 떨어지는 부분)의 사회적 비교. 문학사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등등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풀이되어 있어서 이 파트는 슥슥 읽었다.
'나가수'식 절대적 다수결을 문학사에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애독자가 많은 텍스트를 무조건 높이 두는 식으로 말이죠. 당연히 문학의 가치는 그런 걸로 정해지고 있진 않습니다. 염상섭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여러 편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개 동의할 텐데, 예컨대 국민투표 결과 염상섭이 위대한 작가로 뽑힌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염상섭은 끝까지 읽어내기 고단한 작가입니다. 찬찬하고 집요하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요. 식민지시기의 작가란 연예인 비슷한 면도 좀 있지만, 염상섭은 딱히 생애가 흥미롭다거나 한 경우도 아닙니다. 생애가 신화화됐다면 독서의 동력이랄까 이런 게 훨씬 커졌을 것입니다만.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신문사의 섭외 우선순위에 있던 작가이긴 했지만 널리, 오래도록 대중적인 작가였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염상섭이 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우뚝합니다. (37~38쪽)
염상섭 작품은 읽을 때마다 인내를 요구해서 정말 이 부분이 공감되었다.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면 문학의 가치는 뭘로 정해지는 걸까? 왜 문학사에서는 염상섭을 중요시하는 걸까? 답을 찾지 못한 채 책을 계속 읽었더니 놀랍게도 2부에서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식민지 시대 소설 다시 읽기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염상섭이 그린 식민자-일본인 친일파를 통한 역설적 환기 전락과 몰락의 서사 총독 또는 총독이 이야기되는 공간 카페, 유곽 그리고 경찰들
위에는 식민지 시대 소설 다시 읽기 부분의 소제목들이다. 염상섭 소설들의 공통점이며, 실제 상황을 많이 반영하여 그 가치가 높은 듯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읽었던 염상섭 소설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읽지 못한 <광분>은 꼭 읽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후의 1960년대나 문학사와 영화사 부분은 좀 지루했다. 너무 전문 용어가 난무한 것도 있었고, 문학사보다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쪽에 초점이 맞춰진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다른 예술과의 접목은 글쎄, 문학사를 폭넓게 보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관련 전문가들이 이미 통합할 생각이 없는데 무리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서로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데 말이다.
문학성이란 뭘까. 문학사란 뭘까.. 뭐 그런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내가 든 생각은 지금 내게 당면한, 리뷰란 뭘까. 나는 뭘 위해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걸까.. <-전공자지만 문학사를 연구할 일이 없는 사람...;;;
1부에서 또 흥미로웠던 건 문학사의 범주에 하루키나 톨스토이의 영향력을 감안해서 집어넣어야 되지 않은가 하는 문제. 그리고 팬픽과 글쓰기 문화. 청소년 문학 등이 있었다. 다른 예술 분야를 문학에 넣는 건 무모하다고 여겨져도 외국문학이 우리나라에서 파급을 일으킨 것과 팬픽 및 인터넷 공간에서의 글들을 문학사로 넣으려는 시도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굉장히 좋고 신선해 보인다. 어쨌든 그것도 한국에서 일어난, 한국인이 쓴 글이니까 고고한 문학사가 아니라면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3부에서는 사극과 관련해서 역사소설과 팩션에 관한 것이 재미있었다. 이것은 현대와 관련해서 이 책 제목 그대로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가 어떻게 되어 왔고, 왜 그렇게 되어왔는가를 잘 보여준다.
퓨전 사극은 '우리가 보고 싶지만(혹은 되고 싶지만), 볼 수도, 될 수도 없는 인간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상의 시공간을 탄생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실, 주몽, 선덕여왕 등 퓨전 사극 속의 영웅들은 '정말 그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리얼리티에 주목하기보다는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대중의 욕망을 투사한 상상의 캐릭터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그때 그 시절의 그 인물의 '현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물'을 꿈꾸는, 현대인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환상의 인물로서 이순신, 미실, 선덕여왕, 주몽, 계백 등이 끊임없이 호출되는 것이지요. (451쪽)
책을 읽으면서 등장한 참고 문헌이나 권장도서들도 꽤 되어서 읽고 싶은 책들 목록으로 작성해두었다.
다 읽고 나서 앞으로의 문학사가 갈 길이 멀었음에, 그 아득함에 좀 진이 빠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뭔가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동안 문학사를 어떻게든 숙지해야 한다는 골치 아픈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아서 기뻤다.
사실 문학은,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만드는 통로이다. (162쪽)
문학 교육 현장에서 한국문학만을 가지고 문학 교육을 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죠.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략) 중학교 이후에는 한국문학만을 가지고 문학 교육을 하는데 그 순간부터 문학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기도 하지요. (163쪽)
지방에서 독학하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공부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옆에서 보면 무슨 이런 이상한 책 읽고 있냐고 할 정도로 특이한 책들을 읽고 있는 상황과 그 구조, 그게 무얼까. 그 마구잡이의 독서,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도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독학자 장정일의 마구잡이 독학의 의미가 뭘까. 거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지적인 모델이나 제도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는 마구잡이의 독서를 통해 자기 나름의 뭔가를 만드는 거예요. <삼중당문고>의 전 과정이 그걸 너무나도 흥미롭게 보여준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27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