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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 나도 이러한 할아버지와 같은 계통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문화재 수리 속에서도 나무에 대한 수리가 생성된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존 수리 속에서 어떻게 분리가 되었는지를 나무 할아버지인 강전유 님께서 거룩하게 해내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분의 일대기를 넘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분같은 사람들이 더 영향을 받아서 사명감으로 병들어가는 유형문화재를 치료해주시길 바라는 맘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모든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지구를 지켜나가는 나무가 그저 아프면 뿌리째 뽑아 버리거나 잘라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달리 볼수 있는 것으로 나무 치료라는 것이 있다. 나무는 그냥 나무 한그루가 아니다. 나무 의사 강전유 선생님의 나무 살리는 일은 단지 나무 한 그루를 살리는 것이 아닌 분으로써 생명을 살리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기본 바탕을 형성해주시고 또한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면서 역사성을 계속 유지해주는 정신적인 분이다. 무를 보살피는 나무 의사가 떠나서 그분의 일대기를 찬찬히 보고 있으니 쉽게 갈수 있는 길을 포기하시고 단지 나무를 사랑하시여서 귀한 나무 일반 나무 상관없이 병이 들면 전국 곳곳을 다니시면서 치료에 열중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인 강전유 할아버지라는 인물이 살아온 이야기를 동화처럼 흘려 내면서 그분께서 조용히 앞으로 그런 인재 양성에 매진하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인생의 멘토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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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족이 산에 갔다가 은행나무에 링거액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딸아이가 나무도 주사를 맞느냐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나무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나무 의사가 와서 진찰해보고 치료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줬어요. 우리교육의 우리 인물 이야기 국내 최초 나무 의사 강전유선생님의 이야기 '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가 이 상황에 딱 맞는 책인 것 같은데요. 사실 잘 알지 못하고 설명을 대충 해줬는데 아이와 함께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아이도 쉽게 이해를 하게 되어 좋았어요.
날이 갈수록 환경도 오염되고 푸르렀더 산이 파헤쳐지기도 합니다. 올해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해에는 홍수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요. 나무가 이 모든것을 많이 막아준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 나무들이 나날이 발전하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다보니 병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나무는 잘 몰라도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에 관해서는 많이 들어보기도 했지요. 정이품송 나무를 강전유 할아버지께서 외과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인공 나무 껍질로 성형도 했다니 놀랍니다. 저도 나무가 성형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릴적 부유한 집안의 강전유 할아버지가 대학을 가지않고 농사를 짖겠다고 했으니 정말 온 집안이 난리였겠지요. 그래서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했답니다. 대학 졸업 후 결혼 자금을 부모님께 미리 받아 농사지을 땅을 구입한 후 흙집을 짖고 살면서 황무지를 일구어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농촌진흥청 임업시험장의 임시직과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나무가 병드는 원인을 찾아내며 참고할 서적도 없어 스스로 연구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나무 치료를 위해 나무종합병원을 세우고 거리의 나무조차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후로 유명한 나무들을 치료하고 천연기념물들도 할아버지의 손에 오래도록 살게 되기도 했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으 지지대도 할아버지가 설치한 것이라도 하네요. 할아버지는 북한에 가서도 나무 치료를 하기도 했답니다. 나무 의사로서 북한에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나무가 잘 살지 못하면 우리 인간도 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만큼 환경이 중요하기도 한 것이지요. 나무에 대한 고마움 강전유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다시금 느끼며 아이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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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점자 만든 박두성,민속극 할아버지 심우성 우리말 지킴이 이수열,여성운동의 큰어머니 이이효재 ......
지금까지는 잘알지 못했지만, 꼭 알아야 할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우리교육의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로 이번에 만난 분은 나무의사 강전유 박사이다. 사실 의사라고 하면 아픈 사람이나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 정도만 생각을 했지 나무의사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었다.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게다가 수술까지 하는 나무의사가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의 주인공, 강전유 박사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찌보면 정말 독특한 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몰라도 정말 독특한 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박사님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사짓기에 도전을 한다. 농사짓기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개척을 해나가다가 생활비가 없어 부모에세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농사를 포기하고 '농촌진흥청 임업연구원' 이 되어 병충해 관리를 하면서 나무의사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농사짓기도 그렇고 아픈 나무를 치료하는것도 한순간에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 법이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터인데 박사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점이 있지 않을까? 부모의 강요로 시작을 했다면 어려움이 많아도 쉽사리 포기를 안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강전유박사는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찾았기에 나무의사가 되어 많이 알려지지 않아 먹고 살기도 어려웠지만 쉽사리 그 일을 놓지 않았기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 소나무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식들에게 부모의 바람보다는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찾아 꾸준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부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국내 최초의 나무의사 강전유 우리 인물이야기 시리즈 국내 최초의 나무의사인 강전유 할아버지를 만나보게 되었어요. 나무의사라고 하니 좀 생소하게도 느껴지지만 국내 최초의 나무의사가 되기까지의 강전유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나무를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는지 느낄수가 있었어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어린시절 하지만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기 보단 자신이 원하는길을 가기위해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볼수가 있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과대학을 나와 땅을 일구며 살다 농촌진흥청 임업연구원이 되어 나무의 병충해를 연구하다가 나무가 아프면 고쳐줄 나무 의사가 필요하단걸 깨닫고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되네요. 수많은 역경을 뒤로하고 수많은 나무들을 살리고 이름을 알리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지네요. 모든 생명력들을 품고있는 나무 그런 나무가 있어야 우리가 살아갈수 있다는걸 알게해 주네요. 강전유 할아버지가 치료한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 석송령, 쌍향수등 다양한 나무들의 모습과 나무줄기 외과 수술 과정도 사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요. 나무와 관련된 지식과 함께 나무도 풀도아닌 대나무와 세금을 내는 나무인 석송령등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네요. 나무는 그냥 나무이기전에 지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걸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강전유 할아버지는 인공나무껍질로 만든 기술을 특허까지 받게 되고 문화재 수리 기술자와 수목 보호기술자 자격시험도 치뤄질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걸 알수가 있어요. 나무의사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속노력하는 모습에서 많은걸 배워나갈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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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이들 책을 손에 잡아본다. 하지만 나도 몰랐던 인물 이야기인지라 호기심 넘치게 책을 펼쳐든다.
우리나라 최초 나무의사 강전유 그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 29 이다.
누군가의 일생을 함께 되돌아가서 거슬러 올라온다는 것은 참 설레이는 일이다.
까마중과 민들레 홀씨..노을.. 자연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강전유 할아버지의 어린시절을 보고 있노라니 왜 이 분이 나무와의 한 평생을 선택하셨는지 과히 짐작되고도 남음이다. 어느 하나 헛으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참 어여삐 보인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꿈 꾸었던 그는 농과대에 진학을 하고 결국 자신의 땅을 갖게 되고 그 힘들다는 농사일을 밤낮으로 하면서 행복해한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누구에게는 꿈과 행복이 될 수 있다니 ... 세상만사 모든 건 맘 먹기 나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였다.
택지개발로 인해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어 산림과학원에서 일하게 되는 강전유 할아버지 일을 하면 할수록 나무를 제대로 치료해줘야 할 사람이 꼭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15년동안 일한 산림과학원에서 나와서 스스로 나무병원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나무병원이라니... 사람들의 인식이 좋을리가 없고, 나무가 몹쓸 병에 걸리면 그냥 베어버리면 되지~ 그걸 왜 치료해줘야하나? 하는 생각을 갖던 시절인지라 직접 찾아다니면서 홍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무치료가 충북 보은 정이품송, 경북 예천 석송령, 천남 순천 쌍향수,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등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들을 비롯해 수 많은 나무들이 그의 치료와 진단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으니 책장을 넘기며 읽는 모든 것들이 그의 흔적이자 업적이다.
자신의 직업이 종교이자. 철학이자 취미라고 말하는 강전유 할아버지는 나무를 치료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천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의 팔백년 된 쌍향수를 치료할 때의 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향나무 두 그루가 쌍둥이처럼 생겼다고 쌍향수라고 붙여진 이름인데 천연기념물 제 88호로 지정된 나무이다. 이 나무가 누렇게 변하고 생김새가 이상해지자 치료를 의뢰했는데 스님이 목욕재계를 하지 않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게다. 그것도 보름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강전유 할아버지는 그 나무를 치료하기 위해서 15일동안 계곡물에 목욕재계를 하셨다고 하니 참으로 그 열정이 대단하다 칭송하지 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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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나무 껍질을 만들어 특허를 받고 문화재 수리 기술자격 시험과 수목 보호 기술 자격시험이 생기는 데 일조하셨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그냥 나무가 아니고 그 속엔 커다란 숲이 있고 온갖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고 그 속에 또 우리 인간들이 있다는 강전유 할아버지의 말씀~! 참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 진리가 진리가 될 수 있도록 자연속에서 그 노력을 다 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위나 돈만 보고 우리 아이의 미래를 설계 해주기 급급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말 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해주기 위해서 나는 또 아이에게 어떤 나침반 역할을 해주어야 할까?
지금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짓고 싶어하던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계시다는 강전유 할아버님 아이가 벌써 78 살이라고 하신다. 그의 일생을 함께 들여다보며 스스로 어떤 삶이 가장 값진 삶인지 아이도 미래를 설계하는 폭이 더 넓어지리라 믿어의심치 않으면서 오랜만에 잡은 책에서 손을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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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나무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저는 나무 의사 선생님이 계신걸 이 책을 보고나서 처음으로 알았답니다. 나무 의사 선생님은 말 그대로 나무들을 치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세요. 의사들은 외과, 소아과, 내과 등 분야가 나뉘어져 있지만 나무의사 선생님은 나무의 모든걸 총체적으로 치료해주는 의사랍니다.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해주고, 수술까지도 해준답니다. 나무를 수술한다니 신기하기만 해요.
강전유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게 자랐어요.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셨는데 선생님은 그게 싫어서 농업을 택하고 싶어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다가 밤 늦게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싫었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는 아빠의 길을 걷고 싶지 않아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도 농업고등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의 반대에 일반고를 들어가게 된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거라는 부모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농업쪽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된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에 입학하게 되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결혼 자금을 미리 받아서 시골에 땅을 산 선생님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답니다. 흙집에 살면서 황무지를 일구기 시작하는데요. 농사 짓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기에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온몽이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무거웠어요. 그래도 부모님께 손한번 벌리지 않고 꿋꿋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답니다. 2,3년 농장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비가 떨어져가게 되고, 결국은 농사를 접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임업시험장 임시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임시직이다 보니 월급이 적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고 공무원에 당당히 합격해 '농촌진흥청 임업연구원'이 된답니다.
임업연구원에서 병충해 관리를 하면서 아픈 나무를 많이 만나게 되고 나무가 병드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게 되지요. 선생님은 병든 나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나무 치료에 대한 관심이 막 싹트기 시작했지만 책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어요. 병의 원인을 밝히는 일부터 치료법을 찾아내는 일까지 모두 혼자서 풀어야 할 숙제였지요.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이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병든 나무들을 만나러 다니게 되고 나무들에 대해서 점점 많은 걸 알아가게 되었답니다.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실에서 병든 나뭇가지와 해충들과 씨름하며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어요.
강전유 선생님은 15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무 치료를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무 종합병원'을 세웠어요.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처음 생긴 병원이었는데요. 먹기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나무를 치료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나무병원을 열었지만, 5년 동안 수입이 없었던지라 세무서에서 나무 병원을 폐업하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그러나 밤낮으로 노력한 결과 나무종합병원 강전유 선생님의 나무 치료를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되고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나 희귀한 나무들은 선생님의 손을 거쳐 건강하게 자라게 된답니다.
강전유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뚜렷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기에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먹기 살기 어려워 나무를 치료하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있었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했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었겠지요.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나무도 아프면 치료를 하고 수술도 한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무들은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게 되지요. 어쩌면 강전유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 같은 나무들이 지금보다 더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나무를 살리는 것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이라는걸 알려주는 책입니다. 나무는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키우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지요. 만약 나무가 없다면 곤충이나 새나 다른 동물은 물론 사람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무 의사 강전유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도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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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나무를 보면 아스팔트 위의 나무들이 병들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나 산성비 등 공해 때문에 다른 질병이 더해져서 갈수록 이상한 병들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나무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는걸 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나무 의사~!! 정말 생소한 직업이더라구요. 아무나 나무를 치료하는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전문적인 의사 자격증을 따고서 나무들을 치료해야만 한다는 사실도요. 책에는 나무들의 질병을 연구하고 나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치료하신 강전유 나무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이분이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이신 강전유 할아버지세요~!! 표지의 모습과 정말 똑같으시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끝까지 소신껏 지켜 나가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진정한 우리 시대의 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도전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어린이들도 본받을 점이 정말 많을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자연을 사랑하는 넓은 마음 덕분에 우리는 천년의 세월이 넘은 나무의 모습도 계속해서 후세에 보여 줄 수 있으니 말이에요. 정말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었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피곤에 지쳐 퇴근하는 회사 생활이 어릴적부터 하기 싫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수원농업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후에 농사를 지으며 평생 농부의 길을 걷고 싶었다고 해요. 부모님들의 반대로 농업대학교를 나와서 졸업후 본인만의 땅을 구입해서 농장을 만들어서 열심히 가꾸었다고 해요.
본인의 꿈을 정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우린 할아버지를 통해서 배울 수 있을것 같아요. 좋은똥을 구해서 땅에 비료를 뿌리고, 몸에 똥냄새가 나도 게으치 않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수확하기까지 돈이 많이 들어서 할아버지는 다른일을 알아보게 되요.
경기도에 땅을 구입해서 농장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서울로 편입이 되면서 땅을 내놓아야 해서 결국 할아버지는 농장을 접고 공무원 생활을 15년이나 하게 됐데요. 그러면서 본인이 해야 할일을 찾게 됐다고 해요. 안전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과감히 뛰쳐나와서 <나무 종합 병원>을 차리게 된답니다.
저도 나무 종합병원이 있는줄 몰랐을 정도니 할아버지가 처음 개업을 했을때는 정말 홍보가 부족했을거에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5년간 수입이 없어도 본인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집념을 보이더라구요. 점점 능력을 인정 받으며 나무 종합병원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할아버지 말이 나무는' 베짱 좋은 환자'라고 해요. 아파도 절대로 병원을 찾아 오는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픈 나무에게 가야 하거든요.
할아버지는 아픈 나무가 태풍때문에 날아갈까봐 밤새 나무 곁에서 지키실 정도로 나무에 무한 애정을 보여주시더라구요. 아마 나무들도 이런 할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서 병을 이겨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무가 아프면 그 병의 원인을 밝혀 내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나무를 병원까지 들고 가는 힘든 작업도 할아버지는 힘든 내색 없이 하시더라구요.
나무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과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무의 상태를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린다고 해요. 링겔도 꽂고, 뿌리에 주사를 맞추기도 하고, 심한 경우엔 외과적인 수술도 해야 한다고 하네요.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인 나무들의 치료도 많이 하셨다고 해요. 천연기념물들은 워낙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라서 병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또한 천연기념물인 나무들은 영묘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 치료를 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절차가 아주 까다롭더라구요. 향나무를 치료 하실때는 차가운 계곡물에 보름동안 아침마다 목욕 재계를 해야 하는것도 마다 하지 않으셨다고 해요.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을 망가뜨리는지 반성해야 해. 나무도 아프면 사람처럼 아프다고 말을 한다고." "가끔 주택 건설을 한답시고 몇 백 년이나 되는 나무들을 베어 내는 것을 볼 때가 있어. 그런 나무들을 볼 때면 속상하고 가슴이 아파. 도로나 집은 다시 만들어도 되지만 수백 년을 산 나무들은 다시 키울 수가 없잖아. 사람들보다 나무가 더 오래 사니까." (본문 p.122..)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지위나 돈이나 그런 것에 욕심이 없으니 참 좋아. 좋아하는 자연을 실컷 볼 수 있으니 인생의 맛이 나는거야. 내 인생,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내 직업은 종교요, 철학이요, 취미야. 대한민국의 이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참, 멋진 인생을 살았어. (본문 p.134)
어린 시절 박목월 선생님의 '나그네'를 읽을 때는 지금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던것 같아요. 전강유 나무 할아버지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하셨다는 '나그네'를 지금 이 나이에 읽어 보니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네요. 아둥마둥 인생을 살아서 뭐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생을 마감하는 나이가 됐을때 내 인생을 후회 안한다고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인생을 잘 살았다는건 바로 죽는 순간에 알 수 있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본인의 자식들에게 뭐가 되라고 강요를 하시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공부가 필요하면 할 것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안할 것이라고 하시네요. 장사에 소질이 있으면 장사를 하고 공부에 소질이 있으면 공부를 하면 된다고 해요. 부모가 참견하고 관리할 성질이 아니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백배, 천배 맞는 말씀에 큰 가르침을 받게 됐답니다.
<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 책을 통해서 정말 우리 어린이들이 많은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것 같아요. 좋은 책을 보게 되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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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무를 보살피는 나무 의사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단지 우리 나라에도 정말 귀한 나무가 있다는 것과 그 나무도 병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있어요.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나뭇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것 같아요. 정이품송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요. 정이품송 나무를 강전유 할아버지께서 외과 수술을 하고, 인공 나무 껍질로 성형까지 했다고 하니 강전유 나무 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호기심이 일더라구요.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 때 유치원을 다녔을 정도라면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을 강전유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을 때 반대하셨던 부모님.
농장을 접고, 산림과학원을 그만두고, 나무 치료를 위해 나무 종합병원을 세웠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란 수식어도 쉽게 얻지는 않았다는 사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예사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예요. 강전유 할아버지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인물 이야기지만, 딱딱하지 않고, 구성이 잘 짜여져 있어요. 그리고, 그림이 군데 군데 많아 저학년이 읽기에도 부담 없을 듯 싶어요. 정말 멋진 인생, 멋진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네요.
강전유 할아버지께서 이 땅에 흘린 나무 사랑의 땀방울만큼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봅니다. 생명들이 오고 가는 나무 이야기도 유익한 읽을거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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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나무의사 강전유님을 아시나요? (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
처음, 이 책 <할아버지! 나무가 아프대요> 라는 책 표지를 보고서, 책표지의 할아버지가 나무의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나무를 괴롭히는 걸로 오해를 했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무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소했답니다.
나무의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에 최초 나무의사 강전유님이 계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나무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지요.
나무의사는 대체 어떤 일을 하는걸까? 아이와 전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답니다.
전문적인 뿌리이식, 접붙이기, 나무가 자라는 모양, 상태파악 등 수목의 병해충, 대기오염, 기상 및 생리적 피해 등으로 인한 나무의 쇠약과 고사원인을 진단하여 나무의 회복, 피해예방 및 확산방지 등의 처방과 조치를 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지방기념물, 사적지, 명승지 및 보호수, 노거수, 당산목, 희귀목, 우량소나무림 등을 관리하며 쇠약한 수목을 회복시키는 업무도 중요한 일 중에 하나지요.
언뜻 살펴보아도 나무의사의 일은 쉽고 편한 일은 아니겠다. 싶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치료하며, 나무와 같은 삶을 동경하며 나무의사라는 직업은 종교요, 철학이요, 취미라고 말하는 강전유 할아버지가 존경스럽고 부럽지 않을 수 없네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왔으니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강전유 할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지위나 돈을 보고 미래를 설계하지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하라고 충고하고 계십니다.
강전유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생물학과를 졸업(1961년)하고 임업연구 원에서 15년간 수목보호연구실에서 수목의 병충해를 연구하였고 1976년에 는 나무종합병원을 개원하여 현재까지 40년간 병든 나무의 원인을 규명하여 진단처방과 치료 및 방제를 실시하고 있답니다.
나무는 인간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인간이 존재하는 한 나무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강전유 선생님.
최근에 인구 증가와 산업의 발달, 병충해의 발생 등으로 나무에 많은 피해가 나타나고 이로 인하여 나무가 쇠약해지고 심하면 고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산림쇠퇴현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나무의 쇠약 및 고사 원인은 생리적원인, 생물적원인(병충해), 기상적원 인, 인위적원인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 각종 원인을 진단 처방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나무를 치료하여야 효과를 기대할 수 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기관이 나무종합병원입니다.
강전유 선생님이 세우신 나무종합병원은 1976년에 개원하여 30여 년간 나무(단목, 집단수림, 산림)를 치료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전문적인 기술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인간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시험에 합격되어야 되는 것과 같이 나무의사는 농과대학 농생물학과, 수목보호학과를 졸 업하고 관계기관에서 일정기간 실지경험(인턴, 레지던트와 같이)을 가진 자, 또는 해당 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자가 시험에 합격하여야 된다는 군요.
나무의사 강전유 선생님은 나무 살리는 일은 단지 나무 한그루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요, 나와 너를 살리는 것이요,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알려주셨답니다.
이 책을 통해 생소했던 나무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게된 것도, 나무와 자연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계신 위인 강전유 선생님을 만나게 된 일도 감사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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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주머니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무가 병이 들어 치료를 하는 것인데 요새는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 책은 나무를 치료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가 강전유 선생님의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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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입구에 서 있는 '정이품송' 세조에게 정이품이란 높은 벼슬을 받은 이 소나무를 애지중지 치료하고 보살핀 끝에 죽음을 앞둔 소나무를 살려내신 분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 1호 강전유 선생님이십니다. 강전유 선생님은 중학교시절 자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수원농고에 입학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장래 희망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농고를 가지못했지만 일반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합니다. 검소하고 털털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강전유는 자기의 소신대로 대학 졸업 후 결혼 자금을 부모님에게 미리 받아 농사지을 땅을 구입 후 흙집을 짓고 살면서 황무지를 일구며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좋은 직장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본인의 굳은 의지는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며 열심히 산만큼 먹고살기는 어려워져서 농장 근처 농촌진흥청 임업시험장의 임시직으로 들어갔습니다. 농장일을 병행하면서 직장에 다녔지만 농장이 개발 예정지로 들어가면서 처분할 수 밖에 없었고 결혼 후 정식으로 농촌진흥청 임업연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때서부터 나무가 병드는 원인을 찾아내기에 힘을 기울입니다. 참고할 서적도 별로 없었기때문에 치료법 찾는 일 등 모든 것이 강전유 혼자 풀어가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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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무 치료를 위해 임업연구원일을 그만두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무종합병원'을 세웠습니다. 수입도 되지 않는 병원이었지만 그는 길을 가다가도 병을 앓고 있는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그에게 1978년 경주시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치료하는 기회가 왔고, 성공적으로 치료를 했습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천연기념물들이 그의 손에 의해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발대발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반대를 설득하여 당산나무를 치료했으며, 송광사의 팔백년 된 쌍향수를 치료하기 위해 15일동안 목욕재계를 마다하지 않았고, 용문사 은행나무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지지대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강전유 선생님은 북한에도 두 번이나 가서 나무 치료를 하고 오기도 했답니다. 나무 의사로서 그의 명성은 북한에서도 인정할만큼 뛰어났다는 증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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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무를 치료하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함을 강조하였고 '수목치료의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는 우리 인간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나무를 아끼는 마음을 온 국민이 가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더우나 추우나 아프나 상관없이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생명을 품어주는 나무처럼 그 역시 수많은 나무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계속 앞장설 것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후회한 적이 없이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강전유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