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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오래된 미래』와 비슷한 제목, 대상 장소는 달라도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체적인 수치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기록해둔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이대로 두면 안 되지, 리뷰를 결심했고, 떠올려보다가 다시 책을 들춰본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이 새록할 때 도서관 코너에서 환경과 역사를 통합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듯한 좀 어렵고 복잡해보이는 책을 빌렸었다. 영화 <미션The Mission,1986>을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아마존 강가 원주민들이 외부로부터 점차 스며들어오는 위험을 위해 싸우거나 아쉬워하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대개 다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있는 부족들의 문화와 역사=문명, 환경문제를 통계와 수치로 피부에 와 닿게 한다. 잉카, 아스텍, 투피. 브라질 투피족은 아메리카 열대숲이나 온대 숲에 살던 아마존 강가 원주민들을 일컫는다. 그들에게는 동물 희생의 풍습이 있었는데 동물이 사람의 불운을 안고 갈 것이라는, 그래서 동물이 굶으니 사람이 굶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얻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를 지키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베리아 사람들의 무자비한 잔인성과 무지막지한 착취, 전쟁, 학대와 광산으로 강제로 보내는 인구 이동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출산율이 감소한다.
구세계와 신세계. 그리 나누는 것 같다. 원래 원주민들의 세계가 구세계라면 바깥(그게 누구든) 세력에 의해 파헤쳐진 세계를 신세계라고. 구세계의 병원균은 돌림병이었고 이후 천연두, 유행성 감기, 홍역,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으로 원주민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기에 이른다. 세균이 사람을 죽이면서 득을 본 것은 야생 생물 번창과 재규어, 벌새, 물고기 번식 같은 생물 다양성이었다. 과일,견 과류 나무, 야자나무, 짐승 떼와 칠면조 , 개, 야마는 말할 것도 없다. 사람과 생사를 함께 하던 집짐승은 몰락했다. 이때도 왕과 지주들의 욕심은 끝없었다. 원주민들은 설탕과 수수의 노예가 되었다. 은과 광산 지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열대 환경결정론자들은 농업, 광업, 임업 생산품을 나라 밖에 내다파는 길이 있다고 주장했고, 바나나, 구리, 커피 공화국을 만들었다. 면화, 주석, 고무, 구리, 가죽 등 라틴아메리카의 자연 자원 요구하는 바깥 세력도 있었다. 병, 벌레, 기후 재난, 자연재해는 똑같이 왔다. 자연은 인종의 지혜로움을 결정하지 않았다.오히려 황열병은 백인에게는 치명적이었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무난한 병이기에 침입자들이 더욱 두려워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지리적으로도 변화무쌍한 곳이었다. 기후. 지진. 화산 분출로 수많은 생명을 잃어야 했다. 1970년, 1972년, 1985년, 자연재해로 죽은 숫자가 미국에서 두 세기 동안 자연재해로 죽은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자연 재해가 망친 물질 자산의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수백 년의 사회 기반 시설이 무너졌지만 공포를 이겨내고 멕시코시티, 리마, 마나구아의 사람들은 도시를 다시 세웠다. 자연은 황무지가 되고 파나마병이 도는 바나나는 수출 농업조차 방해했다. 자연과 한몸이 되어 세운 문명이 자연재해로 무너져내리자 그들에게는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경제의 성공과 인구 증가와 이민 유입은 그 나라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흙의 비옥도와 관련. 석유를 얻기 위한 집착과 갈등과 같은 현상. 하수구, 쓰레기 운하로 도시에 질병이 돌지만 이를 잘 이용하여 경제의 성공을 거둔다. 이로인한 인구 증가와 이민 유입은 그 나라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흙의 비옥도와 관련이 있다. 석유를 얻기 위한 집착과 갈등이 같은 현상이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75%가 도시에 산다. 그들이 조상 때부터 고수하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멀어졌다.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가 60개 이상이며, 연립주택과 광장이 일반화 되었다. 인구 거대도시순으로 보면 멕시코시티,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우데자네이루, 리마, 보고타, 산티아고, 벨루오리존치, 과달라하라, 포르투알레그리, 카라카스, 몬테레이, 헤시피, 사우바도르, 과야킬, 메데인, 포르탈레자, 쿠리치바, 산토도밍고 등이다. 오늘날 멕시코시티 인구는 오스트레일리아 인구, 칠레 인구, 헝가리 인구, 볼리비아 인구보다도 많다. 캐나다와 미국의 주 중에도 캘리포니아를 빼면 멕시코시티보다 인구보다 더 많은 주는 없다. 필연적으로 환경 문제를 떠안게 됐다. 물, 하수, 쓰레기, 주택에 자동차, 오염된 산소까지. 멕시코시티에서는 해마다 4,000여 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호흡기 질환으로 죽는다. 주로 노인들이다. 해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이보다는 적다. 하수 처리, 정수 처리 및 급수, 교육, 법 집행, 건강보험에 관한 소위 문명국들이 떠안은 문제를 그들 역시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하다. 출퇴근 시간만 다섯 시간 이상 걸리는 이들도 허다하다. 쿠리치바의 혁신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변화였다. 자가용 소유자들보다 대중을 우선하는 모범을 보이며 버스길, 고속버스 체계, 메트로 버스 등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회자본 이용의 효율성을 그들 역시 고민하게 된 것이다. 멕시코시티 면적은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만 하지만 인구는 그 10배다. 인구 혁명 뒤늦게 시작되었지만 인구 성장 속도는 더 빨랐다. 삼림 파괴는 지속적인 성장과 문명화의 길이 올바른지 뒤돌아보게 한다. 여느 문명권이 그러하듯 그들 역시 개발과 성장, 보호와 유지 사이에서 갈등한다. 환경개발론자 대 환경보호론자의 갈등이 치열하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1962년 이래 대중 환경주의의 출발점이다. 카슨은 합성 살충제를 마구 써서 아침에 새 지저귀는 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된 미래를 내다보고 침묵의 봄이란 제목을 붙였다.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수치와 설득력 있는 증거로 사람도 결국은 자연 생태의 일원이며 벌레와 새를 해치는 것은 사람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주었다. 카슨은 화학이란 이름의 소리도 형체도 없는 악령의 위협을 보여주었다.
이제 자연은 단순히 문명이 정복하고, 자원 보호주의가 부리고, 소풍객들이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자연을 인간의 자만심과 무절제한 행동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렇게 원주민의 터전에서 외부의 침입과 욕망, 타고난 기후와 자연환경으로 문명국이 되었다. 다시 농업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정녕 불가능할까. 칸쿤의 야생성을 더는 보지 못하는 것일까. 욕망과 환상을 부추기는 광고 대신 풍부한 자원이 담긴 바구니를 더는 얻을 수 없을까.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땅은 이제 수입 의존도가 현대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농업 전망이 어둡다. 작물 가짓수도 적고 땅심이 약한 탓이다. 그들은 녹색혁명을 준비중이다.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