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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산다. 거울 또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만 얼굴을 볼 뿐이다. 거울을 통한 자신의 얼굴은 상이다. 맨눈으로 보는 자신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른다. 남의 얼굴은 맨눈으로 잘 볼 수 있고 진짜 얼굴을 보는 것이므로 비교적 자신보다 남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할 가능성이 더 있다. 자신의 얼굴이 박힌 사진을 보고 낯섦을 겪은 사람이 많은 이유, 생각한 자신이 사진 속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나라에 파묻혀 산다. 따라서 이 나라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이름으로 저자는 시종일관 비판적 태도로 끝을 달린다. 우리가 이 나라에 파묻혀 제대로 볼 수 없는 진상이라면 비판이라도 신랄하게 퍼부어 허상을 알리고픈 마음. 저자의 눈에 비친 이 나라의 허상은....
1.자력갱생도 할 수 없는 처지다. 2.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도 쉽지 않다. 3. 지금 보다 더 외국 기업의 현지 고용인으로서의 우울한 삶? 4. 그렇다고 되지도 않는 강대국의 꿈만 꾸고 있을 수도 없다. 저자는 한 가지를 제시한다. 약소국이며 강대국도, 선진국도 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현지고용인으로서의 우울한 그림 대신에 5. 약소국이면서 주체적인 나라. 이것이다. 하지만 약소국이 주체적이기는 어렵다. 힘없는 사람이 세상 살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다. 주인은 1.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하고 2. 자급자족이 아니라면 남과의 교류에서 예의를 지키고 3. 자존감이 위협을 받을 때 이를 지킬 힘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디 하나 주인 된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저자는 내면의 주체성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몇가지를 제안한다.
어느 것 하나 논란거리 아닌 게 없는 것들이고 극단적이기 까지 하다. 저자는 처절하리만큼 절절히 주장에 대한 논리를 펴고 있으며 전혀 엉뚱하지도 않고 일리도 분명 있어 보인다. 하지만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주체성 하나만에 따른 고민의 결과물이라 생각이 든다. 강대국의 논리를 깨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글을 마치면서 이러한 자신의 주장에 따른 논란과 논쟁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포용도 보여준다. 직접적이고 극단적 주장의 책이 출간되고 또 리뷰도 올릴 수 있는 지금, 그만큼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주인 된 삶과 국가. 주체적인 삶과 국가. 주인과 주체성. 이 나라 한반도에, 내가 나로, 숨이 멎는 날까지 가슴에 품어야 할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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