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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담긴 조선의 자화상 한 시대를 바라볼 때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어느 하나의 측면만을 중요시한다면 자칫 편협 된 시각으로 그 시대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비교적 가까운 조선사회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통해 접근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대중매체를 통해 비교적 자주 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흥미를 넘어선 무엇이 되자고 한다면 역사의식을 가진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시대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중주요한 시각으로 왕조사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향배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는 점은 어쩜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에서 권력이 가지는 시대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만 조선의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온전히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을 이해하기 위한 바탕을 제공해 주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그 중 한 분야로 조선 선비와 화원들에 의해 구축되었던 그림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시대를 반영한 화가의 정신과 열정에 의해 완성된 문화이기에 그림을 통해서 한 시대를 바라본다면 그 시대의 다양성이 함축된 바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 이종수의 '그림문답'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주목받을 만한 책으로 생각된다. 먼저 '이야기 그림 이야기'(돌베개 I2010)로 만나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 공감했던 터라 이 '그림문답' 역시 기대를 가지고 대했다. 그는 '그림이 시대의 정신을 담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조선 사회를 대표할 만한 시대를 선정하고 그 시대에 대표적인 그림을 통해 그림에 반영된 화가와 시대상황을 면밀히 추적하여 한편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저자의 시각을 사로잡았던 그림으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작가미상의 '독서당계회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조희룡의 '홍백매팔폭병'에 이어 장승업의 '귀거래도'까지 이른다. 각기 그림들은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큰 흐름을 대표하는 시대에 그려졌던 그림들이다. 그림이 시대의 정신을 담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매개로 활용할 만한 대표성을 가진 그림으로 선정하여 그림을 대상화시켜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이 아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시각으로 시대와 그림을 바라본다는 독특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어느 책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림을 별지로 하여 본문에 삽입해 그림에 담긴 화가의 정신을 느끼도록 기획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본문에서 그림에 대한 편중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학문을 하는 학자로써 자신의 학문영역에서 애정을 달리 쏟는다는 어색함은 그림을 학자이전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저자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그림에 주목하여 다양한 책을 구해보고 있는 독자로써 그런 저자의 고백이 반갑다. '그림문답'에는 좋아하는 그림이 몇 작품 있다. 그중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를 좋아한다. 조희룡의 매화도 좋지만 그 '홍백매팔폭병'에는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지만 '소림명월도'에는 한없는 친금감을 느끼기에 가까이 두고 자주 보고 싶은 그림이다. 당대 화원으로써 최고의 자리에 있던 김홍도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심정을 따라가는 저자의 시각이 그래서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 중 무엇 하나 역사성을 거부하지 못한다. 자신을 만들어온 시대와 그 시대의 전재가 되는 과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함께하기에 개인은 온전히 개인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하여, 조선의 그것이든 현대의 그것이든 시대정신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점의 그림이 가지는 힘은 그림뿐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면 무엇이든 동일한 힘을 가질 것이며 이는 지난 것 뿐 아니라 우리시대 우리가 만들어가는 그 모든 것도 마찬가지리라.
'그림문답',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인의 열정을 모아 완성했던 그림과 그 그림을 통해 한 시대를 살피고자 하는 노력이 엮어낸 조선시대 자화상으로 이끌어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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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고 운치있는 우리 그림을 좋아하는 터라 부산에서 서울 올라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다. 고작 삼십 여분을 보겠다고 정신없이 뛰어서 '송하맹호도' 앞에 서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꼬리를 말아올리고 쓰윽 눈을 내리깐채 그림 밖으로 성큼 걸어나올 것 같은 맹호의 포치는 단연코 압도적이라 다른 그림을 볼 생각은 애시당초 하질 않았다. 장시간의 버스행에도 불구하고 서너 시간씩 줄서는 것쯤은 호사로 여기며 다만 '마상청앵도'의 봄기운 앞에 더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했던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도대체 화가들은 그림 속에 어떻게 저렇게도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을 수 있는걸까?...
<그림문답>은 그림이 시대의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그 답을 구해가는 여정 속에 있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림은 시대의 물음에 답을 할뿐만 아니라 설레거나, 혹은 불편하게 그림 앞에 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다. '몽유도원도'는 꿈으로 끝나버린 이상국가에 대한 통한과 함께 권력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며 단호한듯 매서운 눈빛으로 상대를 꿰뚫어보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피비린내나는 당쟁으로 출사의 뜻을 접어야했던 고고한 선비의 절망을 붓끝으로 풀어낸다. 꿈 꾸었던 이상향은 어디인가? 권력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온 이야기 구조는 해석과 상상의 중간쯤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딱딱한 해설서가 아니라 조선문화사를 다룬 이야기책을 보는 것 같아 가독력과 재미 역시 뛰어난 책이다. * 꿈을 꾼 자 누구인가? - 안견의 <몽유도원도>
중앙박물관에서 처음 <몽유도원도>를 마주하던 날, 화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히려 길게 이어지는 반듯한 서체의 제찬으로 눈길이 먼저 갔다. 안평대군을 따랐던, 세종의 치세를 이끈 선비들의 글씨를 눈으로 더듬으며 계유정난의 참담함을 떠올려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울밖에... 집현전에서 밤세워 학문을 논하던 벗들이 적을 달리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 호탕한 성격에 학문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도화원의 화원에 불과한 안견을 친히 부른 안평대군은 벗들과 함께 거닌 꿈을 그려달라 부탁하고 친히 '몽유도원도'라 이름을 붙인다. 그림은 화가가 그리지만 보아줄 이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속으로 들어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길을 벗들과 함께 거닌다. 현실에서라면 감히 함께 할 수 없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와 더불어 조선이 꿈꾸어야할 미래를 이야기 했던가?.... 우리네 그림이 대부분 우상방에서 시작해 좌하방의 대각선 구조로 감상하는 반면 몽유도원도는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좌측에서 시작해 기암괴석이 둘러싼 중간세계를 거쳐 비로소 신선들이 노니는 무릉도원에 도착한다. 해질 무렵의 복사꽃 위에 금분을 풀어 화려함을 더했다고 하는데 세월 탓인지 붉은 복사꽃의 기운만 짐작할 뿐이다. 언덕 아래에 있는 집 두어채는 찾았지만 시냇가에 매어둔 조각배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감히 신선의 세계에서 노닐고자한 탓일까? 결국 찾지 못한 조각배를 아쉬워하며 남의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된 그림을 찾아오는 날 제일 먼저 달려가 조각배를 찾아보리라 마음 먹는다. 꿈에서 본 도원동과 꼭 같은 세계를 찾은 안평대군은 그곳에 '무계정사'를 짓고 도원을 꿈꾸지만 권력을 탐했다는 구실로 강화도로 압송된다. 피를 나눈 형제 수양에게 사약을 받고 눈을 감던 그에게 무릉도원은 어떤 세계였을까? 현실에서 도원의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을까?.... 다시 몽유도원도 앞에 선다. 꿈 속에서는 분명 벗들과 함께 거닌 길이지만 그림에서는 인적조차 없다. 화려하게 핀 복사꽃과는 대조적으로 폭포와 기암 괴석에서 풍기는 서늘한 기운과 안개때문인지 쓸쓸함마저 감돈다. 꿈을 꾼 사람의 운명도, 함께 꿈을 꿨던 사람들의 운명도, 꿈을 그린 화가의 운명도 꿈처럼 사라진 순간 아름답지만 쓸쓸한 몽유도원도의 세계도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 그날의 독서당을 기억하는가? - 작자 미상 <독서당계회도>
![]() 저기 어디쯤, 날이 저무는 것도 잊은채 책에 빠져 있는 선비가 있다. 당대 최고의 인재에게만 주어졌던 독서당의 사가독서라는 명예의 현장을 그린 <독서당회계도> 좌목에서 반가운 이름을 확인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서애 류성룡!! 8월 불볕 더위에 안동을 찾으며 행복했던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병산서원을 거쳐 옥연정사로 향하면서 누구보다 뜨겁게 백성을 사랑하고 조선을 사랑했지만 주화오국의 죄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고향으로 돌아와야했던 서애 류성룡의 아픔과 고통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왜적에게 던져진 조선이 어찌 되었을까?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어가를 돌려 세우며 부복하던 사내의 뜨거운 눈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독서당계회도를 그린 화원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저자는 '무명'이라는 이름을 빌어온다. 화가 개인의 상상력이나 창의성보다는 기록 보존에 초점을 맞춘 '계회도'는 회화로서의 가치는 부족하지만 저자의 독특한 시선과 신선한 시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무명이라는 화원을 통해 들여다본 16세기는 아직 붕당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곧 불어닥칠 전쟁의 회오리와 당파간의 권력 암투 속에서 정치참여와 은둔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사림들의 한숨을 느낄 수 있다. 이이와 정철, 윤근수와 류성룡은 훗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무명과 류성룡의 만남은 소설처럼 시작된다. 퇴계 이황을 통해 서애의 이름을 들었던 무명은 계회도 속에 고고하고 단아한 서애의 푸른 젊음을 담아내고자 애쓴다. 화면 중앙의 기운찬 산세며 독서당을 둘러싼 짙푸른 수목의 기운이 젊은날 서애의 모습이었을까? 임진왜란이 끝나고 공신 책봉이 이루어지면서 서애는 자신이 떠나야할 때가 온 것을 직감한다. 선조에게 이순신을 비롯한 전쟁 영웅들은 제거되어야할 정적이나 다름없기에 백성들의 숭모를 받는 류성룡의 탄핵과 삭탈관직은 당연한 수순처럼 이어졌다. 공신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옥연정사를 찾은 무명에게 서애는 시대를 버릴 수 없어서 그저 제 자리에서 견디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묵묵히 견딘 백성들이 있었기에 그 험한 전쟁을 치르고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좌목 끄트머리에 적힌 서애 류성룡의 이름을 가만가만 쓸어본다. 백성들이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언덕이 되어준 시대의 큰 어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서애의 초상화를 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독서당회계도>로 달래는 심정이 화원의 마음과 어찌 다르다 할 수 있으랴. * 나는 누구인가? 나를 보는 당신은 누구인가? - 윤두서의 <자화상>
공재 윤두서의 초상화를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상대를 건너다보는 날카로운 눈빛이며 얼굴만 공중에 떠있는 형상은 귀신의 얼굴이라도 마주한듯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이 사내는 무슨 연유로 이런 자화상을 그렸던 걸까? 피하고 싶은 시선을 견디며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은 시간이 있었다. 초상화에 정신세계까지 담아내는 전신사조의 나라가 조선인 만큼 공재 윤두서의 속내를 감히(?!) 들여다볼 심사로 한참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한 사내가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가 살았던 숙종대는 성리학이 한계를 들어내고 당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출사를 포기한 선비들이 새로운 학문과 문화에 대한 열망으로 술렁이던 시대였다. 시대의 모순은 학문 뿐 아니라 내면으로 옮겨와 실존의 문제까지 고민하게 만들며 내가 모르는 나, 내 속의 나를 들여다보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내 안의 욕망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그려넣은 수염이며 짙은 먹선으로 그려넣은 눈매가 충격적인 자화상 속 사내는 끝내 관모를 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반쯤 잘린 탕건은 입신에 뜻을 두었으나 출사를 할 수 없었던 포의의 쓸쓸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루 아침에 신하와 조강지처를 갈아 치우고 세자의 생모에게 사약을 내리는 임금 앞에 소신있는 신하로 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입신 양명으로 뜻을 펼치고 싶었던 사내와 낙향해 책 속에 파묻혀 있던 사내가 다르지 않듯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돌하는 두 자아를 견디며 살아야 했던 선비의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달밤을 보았는가...아름다움이 이유여도 좋을까... 시대의 끝, 어쩌면 연민이었을까...로 이어지는 <그림 문답>은 여운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달밤의 풍경을 그린 김홍도의 <소림명월도>와 희고 붉은 매화가 눈부신 조희룡의 <홍백매팔폭병>, 조선의 운명과 마지막을 함께한 장승업의 <귀거래도>가 전하는 무게 역시 결코 녹록치는 않으리라. 그림이 묻는 질문에 몇 가지나 답을 했을까?...
답이 이르는 이치에 얼마나 다가섰을까?... 마음으로 묻고 마음으로 답은 했던가?... 두고두고 다시 보리라 마음 먹으며 책장을 덮는다. 지금의 이 충만함이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리라 의심치 않으며 그림문답 속으로 들어가 행복한 호사를 누려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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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점의 그림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처음에는 막연하게 역사를 바탕으로 그림 관련 소설 비스무레하게 쓴 게 아닐까 지레짐작했었는데, 사실 역사적 기반이 굉장히 탄탄하니 소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해야겠다. 꽤 깊이 인용되고 있는 사료들이 여섯 화가들의 내면적 고민과 어우러져 유려하게 서술된다. 한 마디로 문장이 좋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형식적으로 그림 한 점과 한 시대를 매치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한 화가의 솔직한 시선을 통해 그 시대를 엿보는 기분이다.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인물들간 관계와 장면과 그림을 생생하게 살려내니 말이다. 그 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화가,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에 태어난 화가.
읽다보면 새삼 꿈, 이념, 자아, 풍경, 미감, 회고라는 여섯 테마가 굉장히 다가온달까. 개인적으로 윤두서 자화상을 그의 내면과 행장이 번갈아가며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인상깊었다.
아,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정말 공들여 그림을 실으셨다. 몇 번 펼쳐서 꽤 큰 크기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색도 잘 나왔다. 뭣보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색을 이렇게 잘 살린 건 정말 처음인 듯.
여러모로 두고두고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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