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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죽었다. 믿기지 않지만 다들 내가 죽었다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언젠가 죽을 줄은 알았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이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지금 막 세상을 떠난 이가 심판받는 천국의 법정이야기이다. 오늘 재판의 피고는 아나톨 피숑. 방금 전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중년 남자다.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나톨 앞에 변호사, 검사, 판사가 나타나 그의 지난 생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죄의 유무를 따진다. 아나톨이 자평하는 그의 생은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고, 좋은 가장, 좋은 가톨릭 신자, 좋은 직업인>이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선량한 시민인데 검사의 반론을 들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타고난 배우의 재능을 무시하고 판사 직업을 택하고,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도 않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행복에 소홀했던 모든 일을 죄라고 주장한다.
베르트랑: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p.128)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면 최소한 죄는 짓지 않는 거라는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다. 그는 이제 벌을 받게 될까 변호사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카롤린: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외도보다 신의를, 거짓보다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예술 분야의 직업보다 진지한 작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 그들은 거시적으로 보지 못해요. 바로 코앞의 것만 보죠. 만약 피숑씨가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풍속과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해요. (p.142)
변호사는 아나톨의 선량함을 강조하면서 생전 남을 많이 도왔고, 혼전임신으로 생긴 자식을 책임지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도 하고, 직업도 안정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론한다. 희생과 선량함이 중요하다는 변호사의 상식적인 발언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은 죄가 크다는 검사의 티키타카 끝에 판사가 최종판결을 내린다.
삶의 형! 의아스런 판결이다. 다시 살아야하는 형벌이라니. 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인간으로, 그렇지 않으면 축생으로 환생한다는 믿음을 가진 종교도 있는데 ‘인간의 삶’이 벌이라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나는, 우리는, 모두 전생의 벌을 받는 중인건가.
다음 순간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아나톨이 판결에 불복한 것이다. 환생하면 다시 무지해져 또 다른 죄를 지을 거라며 ‘삶의 형’을 거부하며 천국에서 판사일을 돕겠단다. 천국은 정말 모든 면에서 인간 세상보다 좋은 곳일까? 작가는 이상적으로 포장된 천국의 실체를 판사의 입을 빌어 폭로한다.
가브리엘: 여기서 일하고 싶지 않을걸요. 우린 끔찍한 노동 강도로 인해 과로에 시달리고 있어요. 휴식도 없고 밤도 없고, 은퇴도 없어요. 노동조합이나, 하다못해 점심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아요. (p.162)
지상이 지옥과 같다는 아나톨과 천국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고 말하는 판사. 병든 육신의 괴로움을 말하는 아나톨과 건강한 몸이 주는 즐거움을 그리워하는 가브리엘 판사. 둘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디가 진짜 천국인지조차 모호해진다.
죽음 이후의 세계. 아무도 확답을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상상만으로 존재하는 곳. 언제나 고정관념을 깨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즐겁게 하는 베르베르의 필력으로 그려지는 《심판》속 사후세계는 기존의 권위와 공포가 지배하는 저승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순교자 출신의 마음약한 판사와 틈만 나면 언쟁을 벌이는 전생에 이혼한 부부였다는 검사와 변호사가 있는 곳. 천국의 법정은 죽은 자의 운명을 정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가볍고 유쾌하다 못해 어수룩해 보이기도 한다. 사후세계가 이 정도만 된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겠다할 정도로 말이다. 주인공 인생의 공과를 따지는 부분도 재밌지만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고 천국에 머물지 못하고 ‘삶의 형’을 받는 부분은 생각을 곱씹게 한다. 영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고, 진정한 인연을 찾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선의를 베풀면서 행복하게 살기. 모두가 원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처음엔 희곡 형식이 낯설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책을 펴는 순간 빠져들었다. 묵직한 주제를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내는 작가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지치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한여름 밤, 꿈같은 연극 한편을 본 듯하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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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는 수많은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글을 통한 작가와의 소통을 꼽을 수 있다. 오로지 글만으로 작가의 삶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면 독자는 물론이고 작가에게도 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현재 내가 글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작가 중 하나는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일 것이다. 1961년생인 그가 1991년에 『개미』를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한국에서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도서 대여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빌려 읽게 되면서 이후 그에게 매료되었다. 한국 시장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대부분은 한국에 꾸준히 출간되었고, 거의 모든 그의 작품들을 읽은 나로서는 언젠부터인지 글 너머에 있는 그의 생각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60대에 접어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예전처럼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 그의 작품들은 추상적인 미지의 영역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이를테면 아무도 밝히지 못한 6단계 잠의 비밀을 통하여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을 넘어서 소통하는 내용을 다룬 『잠』이라든지 죽은 다음에 자신을 누가 죽였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의미를 다룬 『죽음』, 최면을 통하여 심층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전생의 수많은 자신과 소통하는 것을 다룬 『기억』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초기에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靈界) 탐사단을 소재로 한 『타나토노트』도 있었지만 유독 요즈음 그러한 소재에 집중하는 느낌이 든다. 주로 과학적인 분야에 대한 내용들을 소재로 삼던 그가 무의식과 전생, 죽음과 같은 것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 역시 생애 전반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에 대하여 고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출간한 『심판』 역시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심판』은 희곡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이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작품 중 처음 접하는 희곡이다. 가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긴 하지만, 솔직히 희곡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다. 연극을 위하여 쓰여진 글이니 아무래도 연극이 아닌 글로 읽는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소설로 출간되었는데, 왜 하필 이 작품은 희곡으로 쓴 것일까? 아무래도 이 작품이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피고인이 펼치는 설전을 다루고 있다보니 오로지 대화로 이루어진 희곡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법정에서는 오로지 진술과 증언을 토대로 결과를 내려야 하니 각 인물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배제한 채 오로지 대사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희곡으로 쓰여진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이 작품의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죽음 이후에 사후 세계가 없다고 단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이 작품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큰 흐름에는 쉽게 공감대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저마다 다른 사후세계에 대한 세부적인 것들을 어떻게 납득시키냐에 대한 고민으로도 적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든다면 주인공인 아나톨 피숑이 폐암 수술 도중 죽음을 맞아서 천국에 갔는데, 그곳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무죄이면 천국에 남고 유죄이면 다시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설정 역시 애초 유죄가 있다면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그러한 논란이 오히려 자신이 다루려는 이야기의 본질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라는 의미에서 다소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막에서는 주인공인 아나톨 피숑이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천국에서 변호사와 검사, 판사를 차례로 만나면서 죽었다는 것과 자신의 삶에 대한 법정 다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2막에서는 아나톨 피숑 스스로가 생각하는 삶과 검사가 지적하는 삶의 괴리를 보여주며 3막에서는 다음 생을 결정하는 절차로 이어진다. 죽음과 삶에 대한 심판, 환생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심판』은 시종일관 긴장보다는 오히려 유쾌하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검사인 베르트랑이 유죄로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로 그것이 유죄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면서 우리는 이내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가브리엘(판사) :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중략)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롤린(변호사) :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예요. - p. 54 中에서 - 판사인 가브리엘이 말하는 태어난 해와 죽은 해 사이를 채우는 과정이 삶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지만, 삶의 미세한 차이를 통하여 판결을 내리는 가브리엘이 그러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왠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생각이라면 과연 자신이 내리는 명확한 판결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변호사인 카롤린이 피고가 된 아나탈 피숑의 수호천사로서 조언하는 장면이 더욱 납득이 된다.
하지만 변호사인 카롤린과 검사인 베르트랑의 관계를 보면 과연 누군가가 걸어온 삶을 심판하고 그에 맞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온전히 이루어질지 걱정된다. 이들은 원래 이승에서 부부였다가 이혼한 사이였으며, 이후 천국에서 각각 변호사와 검사로 남게 된 상태였다. 하지만 베르트랑은 여전히 카롤린에게 집적대는 상황이고, 카롤린 역시 그러한 베르트랑을 싫어하면서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는 모호한 관계였다. 우리가 봤을 때에도 왠지 천국의 법정에 참여하는 인물들에게 허술한 느낌이 드는데, 인간 세상에서 판사로 활동했던 아나톨 피숑에게는 그들이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2막에서는 '생의 대차 대조표'를 통하여 아나톨 피숑이 걸어온 길에 대한 변론과 추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좋은 학생이었고, 좋은 시민이자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자 가톨릭 신자, 좋은 직업인이라 스스로 자부하던 아나톨 피숑은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검사인 베르트랑은 그의 생애 전반을 짚어가면서 조목조목 그의 죄상을 밝히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충격을 받게 된다. "저게 유죄라고?"라는 물음과 함께 검사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갖게 된다. 저것이 유죄라고 한다면 아마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이 모두 유죄에 해당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사는 스스로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아나톨 피숑을 어떤 점에서 유죄라고 말하는 것일까?
베르트랑(검사) :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 p. 128 中에서 - 검사의 이러한 지적에 과연 나는 거기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삶에 있어서 진정한 사랑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지나칠 수도 있고,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과 상관없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검사는 이것을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지 못하고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려는 그 자체가 유죄라고 단언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아나톨 피숑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놀랍게도 검사의 말대로 결국 유죄가 선고된다.
가브리엘(판사) :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 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예요. - p. 104 中에서 - 유죄의 근거는 가브리엘이 말하는 삶의 구성 요소인 카르마, 즉 무의식의 소리에 아나톨 피숑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억울할 수밖에 없다. 저런 논리대로라면 아나톨 피숑은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의 유죄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런데, 『심판』의 배경은 천국이다. 유죄라는 단어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천국에 있는 이 법정에서 죄를 가리는 것은 피고가 살아온 삶이 올바른지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주어진 삶에 충실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유죄의 의미였다면 애초 천국의 법정에 오기도 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을 것이다.
3막에서 유죄에 따라 다시 인간의 생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더욱 확실해진다. 태어나면 기억할 수 없지만, 자신의 부모는 물론 자신의 재능과 단점, 직업까지 모두 선택을 한 뒤에 다시 인간 세계로 향하는 것이 이 법정의 유죄에 따른 처벌이다. 즉, 태어나기 전에 자신이 정한 경로대로 산다면 다음 심판에서 무죄가 될 것이고, 벗어난다면 또 다시 유죄가 되어 다시 인간의 생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러한 설정은 살아가면서 무의식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자유 의지를 통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초반에 검사인 베르트랑의 지적이 어이없다가도 어느새 뼈를 때리는 팩트로 작용하는 것은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 p. 133 中에서 -
『심판』이라는 제목이 마치 판결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을 읽으면 오히려 심판에 다다르기 전에 생애 전반을 되돌아보며 지금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통하여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가 정한지 알 수 없는 그 획일적인 삶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마냥 현실과 유리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에 의하여 빚어진 다양한 장면에서 의료계와 교육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포착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기발한 상상력과 특유의 반전으로 많은 재미를 선사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에 눈을 돌린 느낌이다. 그러한 생각들을 여전히 활발한 글쓰기를 통하여 만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그의 팬으로서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스스로 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무의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유의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천국에서 준비한 삶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팬으로서는 그 역시 천국에서 유죄를 받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그의 글을 다음 생에서도 또다시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무죄라고 하더라도 가브리엘처럼 스스로 다시 작가로서 자신의 다음 생을 선택하여 환생하기를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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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걸 선택해서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다. 내가 정말 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지루하지도 무겁지도 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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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은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54페이지) 가수 나훈아는 테스 형에게 물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떠냐고,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나훈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테스 형에게 대답은 들었을까? 글쎄. 나도 궁금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저세상이, 천국이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이 대답을 다음 세상에서나 할 수 있을 듯한데, 전생의 기억을 완전 삭제하고 태어난다면 또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때 다시 궁금해질 것 같다. 천국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심판을 받으며 천국을 경험하고 있을까? 눈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다. 그 천국을, 이제 막 천국에 입성한 아나톨만 모르고 있다.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워대던 아나톨은 폐암에 걸렸고, 수술하다가 사망했다. 눈을 떠보니 몸이 가뿐하다. 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군. 한참 착각에 빠진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천국에 머물게 할 것인지 다시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재판이었다. 처음 그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인생에서 이보다 더 고민에 빠진 선택과 몸부림이 있었던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아나톨은 이제 그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온 힘을 다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천국의 법정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상의 재판과 같은 모습이다. 죽기 전 판사였던 아나톨은 피고인이 되어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 앞에 서 있다. 그는 지나온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판사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좋은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에게 천국에 머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가 '삶의 형'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천국에서 죄를 논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거였다. 그들은 그동안 아나톨의 모든 생을 지켜본 이들이다. 검사는 그의 신호 위반, 속도위반, 음주운전, 욕설 등 모든 위반 사례를 들었고, 심지어 그가 제대로 판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언급했다.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아나톨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심각해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상의 소소한(?) 위반들이 천국의 심판대에서는 굵직한 죄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점 우리가 저지른 죄의 크기는 살을 찌운다. 왜 그가 자기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저격한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판사라는 직업에 아내와 아이들, 크게 모자라지 않은 경제력이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나? 검사가 들춰내는 그의 죄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가 계속 콕콕 쑤시는 거 같았다. 행복을 누리지 않았다는,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르고 놓친 채로 살아왔던가.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중략)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133페이지) 아나톨은 학창 시절 연극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 판사로 살면서 우리가 아는 평범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연극으로 당시 밥벌이의 부족함을 알았고, 지금 아내와 만났으니 그냥 살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재능을 죽였고, 그가 좋아했던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톨 자신도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핑계로 치부하고 그의 죄명을 외친다. 불행하지 않으려는 인생을 선택한 죄, 행복하지 않은 죄. 천생배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부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평생 아내와 권태롭게 살아온 죄, 자기와 맞는 배우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차단한 채로 살아온 죄가 크다고 말이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고 몰아붙인다. 그가 타고난 대배우가 될 자질인데 그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느라 연극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의 세월을 탓한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했다면서,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명을 무시했다고, 그의 죄가 무겁다고 외친다. 기억하지 못한 시간의 죄까지 한꺼번에 들춰내니 이건 뭐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된다. 검사의 주장대로 아나톨은 행복하지 않은 죄를 저질렀을까? 그의 변호사 카롤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무죄로 만들어 천국에 남게 하고 싶다. 그의 선택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의 선택 이면의 감정들을 피력한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저지른 실수를 책임지려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배우보다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판사로 최고는 아니어도 직업인으로 나름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재능을 망각한 것은 유죄,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유죄, 천국에 남을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도 유죄. 그래서 아나톨 피숑은 유죄이며, '삶의 형'에 처했다. 천국에 남을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죄를 묻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서 당황할 것 같다.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 항상 원하고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은 있겠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할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나톨의 변호사 카롤린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 그의 죄를 논하는 검사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피숑이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였다. 그의 평생을 지켜본 이가 하는 말이니 어쩌면 그의 죄를 경감하고자 하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바라는 것과 가능한 것의 싸움이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꿈만 쫓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당장 눈앞의 오늘을 보면서 살아가기에 급급한 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선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삶으로 그의 인생을 채웠다. 그랬는데 인제 와서 그 삶을 심판한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까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그때 그 행동이나 선택의 마음이 저절로 읽힌다.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겠지. 이 심판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무죄를 받아서 천국에 머물며 천사가 되거나, 유죄를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말 그대로 '삶의 형'.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유죄의 형벌이 내려진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 별것 없이 고단한 인간 세상 다시 사는 게 힘들겠지만, 어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기회는 아닐까? 아나톨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판사복을 벗어 던진 가브리엘의 선택은, 행복의 기회를 다시 잡은 이의 즐거운 비명이 될 것 같다. 진짜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아는 인생이 되겠지.
아나톨 :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다시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162페이지) 가브리엘 :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197페이지) 현실에 순응하며 선택한 삶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순응보다는 꿈을,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맞으면서, '적당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바람 한 자락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의 선택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가본 천국에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죄를 너무 잘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형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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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었다. 구입한지 꽤 되었는데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조금 늦게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희극책인지 몰랐다. 대화형식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베르베르의 책을 읽고 있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희극'을 위한 책이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하긴 첫 번째 희극으로 출간한 [인간]이라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니 나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희극형식의 책을 읽으면서 1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다 읽고나서도 단순히 '희극'이라는 사실 말고도 책의 내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이게 뭐지? ![]() 사실, 너무 쉽게 쉽게 읽혀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쉽게 쉽게 판단해버린 듯도 하다. 책 소개를 보니 인물들의 대화속에서 '의료계, 사법계, 교육계를 비판한다' 고 설명되어 있던데, 대체 어디 부분에서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딱 하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한게 있다면, 재판을 1심제로 끝낸다는 것. 아무리 영혼들의 심판이라고는 하지만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니!!! '3심제'가 기본이 되어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매우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런 부부은 '사법부'를 비판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심판]은 '아나톨'이라는 판사가 암으로 죽은 후, 영혼계로 올라가 그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다는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여전히 돋보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내가 읽고 싶었던 구성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실망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계속 읽어나갈 것이다! 그의 책은 '영감'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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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연계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전생과 환생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부분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인 것 같다.
[심판]은 "만성적인 의료계 인력부족, 교육 개혁, 법조계 부패 같은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고, 결혼 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위트 있게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대다수 작품이 그렇듯 핵심 주제는 여전히 운명과 자유 의지의 문제다.
죽어서 천국에 온 아나톨 피숑이 마지막 한방으로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던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모든 운명을 빗겨 판사가 된 이유다. 아버지가 깡패 셋에게 무지막지하게 당하고 있는 소녀를 구해주다가 칼에 맞았음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이 깡패들이 무죄 판결을 받고 법정을 유유히 나가는 것을 보고 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나톨: 출발할 때 우리에게 카르마 25퍼센트, 유전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가 우어져요. 베르트랑: 그런데 자유 의지를 가지고 그 각 요소의 비중을 늘릴지 줄일지 결정하게 되는 거죠."
다시 환생을 할 것인지 천국에 남을 것인지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환생을 하게 되면 그쯤 출생할 가정을 물색하고 성격, 단점(예를 들면 지병, 습관 등등), 결혼, 장래 직업, 죽음 등등을 셋팅하고 간다. 물론 부모도 고를 수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결국 환생해서 살다보면 변수가 생기고 그 셋팅에서 벗어나는 자유의지의 비율이 높아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희곡 형식이여서 한페이지에 몇자 없어서 읽기는 편했다. 대화체이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았다.
첫장면에서 의사가 주 35시간이 지났다고 죽어가는 환자를 두고 휴가를 간다. 정말 어의없는 장면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의료계도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음이후 천국에서 심판이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있음직한 스토리에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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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인간 세계와 개미 세계의 만남과 대립, 두 문명의 화해를 다룬 『개미(1993)』를 시작으로 사후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타나토노트(1994)』, 인간의 뇌의 세계의 신비를 다룬 『뇌(200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희곡인 『인간(2004)』, 우주 범선 이야기를 다룬 『파피용(2007)』,신의 세계를 다룬 『신(2008)』,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다룬 『제3인류(2013)』, 6단계 수면의 비밀을 파헤친 『잠(2017)』, 죽음을 통해 자신이 죽음의 미스터리를 푸는 이야기를 다룬 『죽음(2019)』, 최면을 통해 들여다 본 심층 기억의 세계를 다룬 『기억(2020)』 등 인간, 인간의 뇌, 인간의 잠, 인간의 기억, 인간의 죽음, 신인류 등 인간과 신, 잠과 기억, 죽음과 사후세계 등 그의 관심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두번째로 시도한 희곡 작품이다. 첫번째 희곡 작품은 2004년에 쓴 『인간』이다. 이 작품은 희곡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어느 행성 유리 감옥에 갇힌 한 여자와 한 남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서스펜스를 유쾌하고 유머스럽게 표현하였다. 『인간』 이후 다시 한번 시도한 희곡 작품이 바로 『심판』이다.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이 펼치는 법정 싸움을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표현하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2015년 프랑스에서 원제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출간된 이후, 2017년, 2018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서 실제 무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왜 이 작품 『심판』은 특이하게 희곡으로 쓰여졌을까? 사실 지금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희곡을 한 번밖에 쓰지 않았다. 2004년도 희곡 작품인『인간』을 쓴 후 16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희곡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 내용인 천상 법정 싸움을 다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치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들이 내 눈앞에서 천상 법정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또한 이야기 전개가 대사와 지문으로 인해 빠르게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아마 소설이라면 장황하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너무나 유머스럽고 재미있다는 점도 그 특징이다. 희곡이기 때문에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들을 재미있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생각과 목소리가 반영되어서 등장인물을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 『심판』은 천상의 세계, 사후 세계를 다루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고 천국에서 지상의 삶의 죄를 심판한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유죄이면 다시 태어나는 형벌을 받아 다시 태어나고 무죄이면 천상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작품 속에서 '삶이란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이 된다. 각자는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의 삶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똑같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3막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막 '천국도착'에서는 주인공인 아나톨 피숑의 죽음과 그의 천국 도착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나톨 피숑의 죽음의 원인과 심판을 받게 되기 전의 과정을 말하고 있다. 2막 '지난 생의 대차대조표'에서는 아나톨 피숑의 지난 삶을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준다. 아나톨 피숑의 지난 삶에 대한 평가와 최종 판결에 대해 말하고 있다. 3막 '다음 생을 위한 준비'에서는 다시 새로 태어나는 형벌을 받은 아나톨 피숑이 새로운 생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나와있다. 이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은 피고인 아나톨 피숑, 피고인 측 변호사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 재판장인 가브리엘 이렇게 4명이 등장한다. 그들의 역할은 피고인인 아나톨 피숑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심판하고 그 죄에 따른 평결을 내리는 것이다. 죽은 후 시작되는 특별한 심판, 이것이 작품' 심판'의 주된 내용을 차지한다. 1막에서는 아나톨 피숑이 수술 중 죽어서 천국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수술이 잘 되어 회복중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천국에 있음을 알게 된다. 천국에서 그는 변호사인 카롤린, 검사인 베르트랑, 재판장 가브리엘은 차례로 만난다. 그들은 심판이 곧 시작될거라고 말한다. 아나톨: 법정? 뭘 재판하는데요? 난 양심에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이에요. 항상 바르게 살아왔어요. 베르트랑: 과연 그럴까요? 그에 대한 판단은 우리한테 맡기시죠. 가브리엘: 그의 전생들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p.96-
2막에서는 아나톨 피숑의 전생과 저지른 죄들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나와 있다. 아나톨은 전생에 무용수였던 엘리자베스 루냐크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에 펼쳐질 삶의 시나리오를 결정해 놓았는데 그게 바로 아나톨 피숑의 인생이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유전, 카르마, 자유 의지의 세 가지 영향하에 놓인다고 말한다. 베르트랑: 지금 당신이 당신의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가브리엘: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 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예요. 카롤린: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그 세가지 영향하에 놓인다는 뜻이죠. 유전이라고 하면 부모, 그리고 당신의 성장 환경을 말해요. 아나톨: 그 말은, 내가 엘리자베트 루냐크였을 때 미래에 펼쳐질 삶의 시나리오를 결정해 놓았는 데, 그게 바로..아나톨 피숑의 출생이었다? 아나톨은 1947년 프랑스에서 출생했고 2007년 폐암 수술 중 사망했다. 아나톨은 말한다. 자신은 좋은 학생, 아내에게 충실한 좋은 남편, 좋은 가장, 신실한 가톨릭 신자, 상사와 동료에게 인정받는 좋은 직업인이라고 말이다. 과연 정말 그의 주장대로 좋은 학생, 남편, 가장, 신자, 직업인이었을까? 과연 그는 성공적인 삶과 인생을 살았을까? 이에 대해 검사인 베르트랑은 조목조목 증거를 들어서 반박한다. 아나톨 당신은 좋은 학생도, 좋은 남편도, 좋은 가장도, 좋은 직장인도 아니라고 말이다. 베르트랑: 피숑 씨는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상대에게 충실했어요. 더군다나 그 둘은 서로에게 권태를 느끼면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그가 부정을 저지르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p.103- 그런데 과연 이런 이유로 그가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자신과 결혼한 상대에게 충실한 것이. 그는 말그대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운명적인 사랑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고, 바람도 피우지 않고 운명의 상대는 아니지만 자신과 결혼한 아내에게 충실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남성중심의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베르나르의 결혼에 대한 생각도 살짝 드러나는데 그는 결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베르트랑: 사실 결혼은 남자가 자신의 핏줄을 인정하게 만들어 사생아와 고아의 수를 줄이려고 만들어진 제도예요. 가브리엘: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경험주의적 문제 해결 방식이죠. 베르트랑: 신의의 의무가 만들어진 것은 오랫동안 여성의 경제 활동이 금지돼 왔던 사실을 고려 해서, 혼자 생계를 책임지기 힘든 여성들이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어울리지 않는 상대에게 충실한 것은 그의 삶을 망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망치는 일이기도 하죠. -p.114 이 부분을 읽어보면, 사실 여성의 입장에선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서 이견이 있을 것 같다. 희곡이고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의도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나톨 피숑은 판사였다고 말하면서 그가 잘못 처리한 사건들을 예로 들어 그는 좋은 판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원래 그는 판사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전생은 무용수였고, 그녀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내 몸을 노출시켜서가 아니라 말로써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말로써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직업은 무엇일까? 원래 아나톨은 고등학생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많은 작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순간 딴사람, 웃음과 감동 선사했다. 그는 배우가 될 수 있는 소질과 재능이 있었지만, 그는 배우 대신 판사가 되었다. 물론 '판사'라는 직업도 보람있고 멋진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의 소명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죄를 지었다. 그는 유죄이다. 베르트랑: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즉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말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운명적인 사랑에 실패하며 삶에 순응해서 사는 삶은 자기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서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서 예전 전생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사는 삶이야말로 성공한 삶이라고 말이다. 그는 우리의 삶이란 그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미리 시나리오로 짜여있다. 우리 이전의 전생에 의해서. 이런 관점은 그의 소설 『기억(2020)』에서도 이미 다룬 바 있다. 자기 자신을 배신한 아나톨 피숑, 그에게는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그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피고인이 자신의 재능을 망각했는가?> 그렇다. <피고인이 위대한 러브 스토리를 그르쳤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의식적인 행동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을 잘 교육시켰는가?> 아니다 <그가 옳은 배우자를 찾았는가?>아니다 <그는 좋은 판사였는가?> 그렇다 <피고인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 아니다 가브리엘: 따라서 피고인 아나톨 피숑을 삶의 형에 처합니다. 그러므로 피고인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지상의 태아로 환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법정과 전생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게 될 거예요. 그에 대한 판결의 결과는 유죄이다. 유죄에 대한 형벌은 삶의 형이고 그것은 지상의 태아로 환생하는 것이다. 환생이란 축복이 아니라, 천상의 심판에서 유죄 판결의 결과란 말인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죄를 지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는 형벌을 받은 것이라고. 보통은 죄가 있으면 천상의 재판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인데, 여기서는 지옥이 아닌 지상이라니..그는 생각한다. 오히려 지상이 지옥이라고...아무튼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다시 환생한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까? 성별, 국적, 부모를 모두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3막 다음 생을 위한 준비에서는 아나톨 피숑이 태어나기 전 성별, 국적, 부모, 직업, 재능, 핸디캡 등 출생의 조건 등을 고르는 과정이 나오는데 상당한 웃음과 재미를 우리에게 준다.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모든 요인을 선택할 수 있단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러나...환생의 대상은 아나톨 피숑 그가 아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그는 환생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누군가가 그 대신 환생한다. 다른 누군가는 누구인가? 카롤린: 그럼 아나톨은 어떻게 되는 거죠? 가브리엘: 아직 몇 초 동안은 더, 이 천상 법정의 재판장으로서 그가 청구한 재심을 받아들이겠어요.그는 환생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여기 남아 나 대신 책임을 다하게 될 거예요. -p. 210- 그리고 그는 가브리엘을 대신해 천상의 재판장이 되어 다음 사건을 진행한다. 다음 사건의 피고인은 누굴까? 너무 재미있게도 다음 피고인은 아제미앙 교수이다. 죽은 뒤에 시작되는 천상의 심판 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해학과 유머로 가볍고 심각하지 않게 표현했다. 하지만 대사 속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관점, 죽음에 대한 관점, 사후 세계 등 다소 우리에게 생소하고 복잡한 개념이 존재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니, 아나톨 피숑을 판사로 설정한 이유가 있었다. 가브리엘 대신 천상의 재판장을 시킬려고 말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아나톨 피숑을 환생시키지 않았을까? 이야기의 흐름 상 아나톨을 환생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재판장인 가브리엘을 환생시킨 걸까? 재미을 유발하기 위해서? 아니면 아나톨에게 기회를 준 것일까? 원래 그의 카르마는 배우가 아닌 판사였을까? 마지막 부분 결말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했지. 특히 요즘에 나온 그의 작품인 『죽음(2019)』, 『기억(2020)』에서 그렇다. 그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이번 작품도 그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생각이 돋보였고, 재미와 웃음까지 유발한 작품이었다.
<『심판』 뒷 책커버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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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사는 것도 중요 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 사는 것도 그렇지만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흐름에 맡기고 싶다가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후 세계가 있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열심히는 살았지만, 가끔은 귀찮아서 설렁설렁 살았다고 대답할까? 큰 죄를 지은 적은 없지만 가끔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대답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만났다. 심판은 수술 중 사망한 주인공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천국에 도착해 변호사, 검사, 판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다음 생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 한다. 심판에 따라 천국에 남을 수도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데...
불교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게 죄라고 했던 것 같다. 다시 태어나 꾸준히 수행하고 마음 수양을 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복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 역시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의 기억은 하나도 없이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많으니 그 또한 어떨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천국의 판사 앞에서 어떤 잘잘못을 지적당하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젊은 시절엔 앞만 보고 달리며 살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좀 다르다. 천천히 사는 것, 기다리는 것,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름을 날릴 필요 없고(세상에 이름을 날릴 사람만 날리면 된다. 나는 아니다 ^^), 남과 비교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것. 아 그리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그렇게 늙어가는 것. 저 사람 괜찮게 늙어가고 있어. 이런 말을 듣는 것. 눈을 감을 때 최대한 후회할 일 남기지 말기.
쉬운 것 같은데 어렵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많이 감사하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행복하기로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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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이 책은 심판이라는 무거워 보이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만약 이 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추천 받거나 호기심에 샀다면 이 책을 보면 놀랄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번째 놀랄것은 바로 책 표지에 적힌 "bienvenue au paradis" 라는 문구를 보고 외계언가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영어처럼 되어있는 듯 하다. 또한 내가 학창시절 때 외운 단어 중 'paradis' 즉 '천국' 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 같다. 아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잠시 앞 두 단어가 뭔지 모른다는 것에 기분이 우울하다. 학창시절때 쫌 단어좀 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것 같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런 괴상한 단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단어를 잘 안 외었다고 자책 할 필요 없다. 왜냐면 이 두 앞 단어들은 모두 '프랑스어' 이니까! 그렇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프랑스어 일 것 같다는 예상은 했다. 왜냐면 작가가 프랑스인이니까!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괴상한 단어의 뜻은 '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 이런 뜻이다. 두번째 놀랄것, 그것은 바로 책의 구성이다. 나는 이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작가) 가 쓴 '희곡' 인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책 자체가 '희곡의 대본' 형태 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구성을 보고 읽기를 포기하거나 읽기를 꺼려 할 것 같다.(뭐 아님 말고) 왜냐면 나 또한 어색했기 때문이다. 누가 책을 대본 형식으로 쓴단 말인가! 하지만 읽다보면 이 책의 구성의 장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은 희곡의 대본 형태 이므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 해당한다. 방금은 앞의 말을 쉽게 표현해 보자면 그냥 모든 인물들의 속마음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시점이 갖는 대표적인 단점이 긴장감과 비밀스러움이 없다는 것인데 작가는 이것을 자신만의 유머로 커버했다. 그렇다 나는 앞에서 이 책이 심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졌다고 말했지만 이 책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유머로 커버쳤다! 얼마나 그의 유머가 재밌냐면 이 책의 한줄평들을 봐본다면 이 책을 직접 안 읽어봐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읽어보아야 그 재미를 직접 느낄 뿐만 아니라 그 감동도 크다) 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의 장점인 전지적 작가 시점이 좋은 점은 바로 내가 책을 읽으면 진짜 한 편의 희곡을 보는 듯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대본' 이다 보니 '지문'이 있다 예를 들면, [심판] 112p [카롤린 : "(가브리엘에게) 입만 열면 저 소리예요."] 이다 방금 예를 책에서 가져와 봤는데 이 '지문' 이라는 것 때문에 일반 소설 책에서 자주 나오는 '누가 말했는가' 오해가 잘 안 생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소설책에서는 '지문'이 없어서 누가 누구에게 말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또한 '지문'으로 얻는 효과는 바로 그 사람의 표정과 행동이 모두 드러나니까 매우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이 책의 구성의 장점이다.
방금 책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을 끝마쳤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 안 해도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이 책을 산다면 자신이 읽고 그 모든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스포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았다(이제부터 스포 할 거라는 얘기), 또한 읽기전에 알아 두면 좋을 것에 초점을 두고 썼으므로 괜찮다.(나도 얼마나 더 쓸지는 모른다) 아무튼 이제 스포 할 것이니 조심 하라는 뜻 이다.
자, 이제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 볼 것이다. 일단 이 책은 감동 포인트가 정해져있다.(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서 공감하고 감동할 것 같단 이야기다.) 이 책의 감동 포인트는 뒤에 있으니 감동 포인트는 나중에 말하고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 책은 처음 부분에서는 세계관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잘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있긴하다. 그래도 읽다보면 앞 부분에서는 유머스러움과 세계관 정리(?)가 있다. 그니까 앞 부분은 웃고 넘어가는 부분이라 생각해도 될 듯하다. 그리고 점차 법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며 배심원이 된듯한 느낌을 받으며 즐기며 볼 수 있는 정도가 되다가 내용이 심화되며 점점 내용의 결말과 등장인물들의 희비가 보일 것이다. 이제 절정의 순간, 역시 빠지지 않는 반전이 일어나며 감동이 밀려온다. 반전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보지만 책에 엄마가 자라고 하는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반전은 상상도 못하고 갑자기 반전을 맞이한 나는 감동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절정과 반전 그리고 감동은 제 5장 마지막 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말고도 다른 사람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할 것 같다.(나는 감성이 풍부한 나머지 감동 포인트를 읽을 때 울뻔했다.)(솔직히 14세 라는 나이는 감수성이 풍부해질 나이 이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말해 보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 2번 하고도 반 정도 읽은 듯하다.(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책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이 책을 반드시 넣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뜻 깊은 책이다(이 책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보고 낭비한 죄가 나오는데 나는 지금 내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죄에 해당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 정신 차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솔직히 천국가서 심판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ㅋ) 이제 내 리뷰는 끝났다. 만약 내 리뷰를 보고 책을 읽는다면 꼭 리뷰를 써주기를 바란다. 또한 자신의 리뷰에 내 이름을 써주거나 내 리뷰에 댓글이라도 달아줬으면 한다. 여기까지 내 리뷰를 읽어준 이 책의 미래의 독자 여러분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