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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 여름을 좋아했다.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어 거리는 텅 비고 열기만 가득한 계절을 좋아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름 안에서 생명들은 축축 늘어졌지만 생명들 또한 여름을 살고 있었다. 참외가 익고 수박이 익고 복숭아가 익었다. 조금이라도 햇살 기운이 약해질라치면 저마다 자신들의 열기를 뿜어냈다. 달맞이꽃은 낮에 움츠렸다가 밤이 되면 활짝 피어났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여름이었다. 자고로 세상은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넘쳐나고, 넘쳐난 생명으로 다른 생명도 자극을 받아 더 넘쳐나고, 그렇게 서로 넘쳐나서 세상이 온통 뜨겁게 달아올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생애 또한 여름에서 정점을 찍을 터, 여름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여름은 어쩌면 생애 단 한 번뿐인지도 모른다 여름이 올 때마다 간절히 바라지만 지나고 보면 어느 여름이나 생애 한 번인 여름은 아니었다 정거장에 멈췄는데도 내릴 역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릴 수 없는 건 마중 나온 이들이 스쳐 지난 적도 없는 타인이기 때문일까 - 다니카와 슌타로, 「여름이 왔다」, 9쪽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는 1990년, 쉰을 넘긴 중년의 나이로 결혼한다. 각자 아이들이 있었다. 『두 개의 여름』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쓴 연작으로 짧게나마 부부로 살았던 1995년 발표했다. 제1장 「못」은 두 사람이 아직 작가와 화가라는 동업 관계로 만나 작업하던 1982년 잡지에 실린 작품이다. 그런 까닭일까. 두근거리는 사랑의 예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제2장 「안심하고 이곳에 있다」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녀가 등장한다. 너무나도 무더운 나머지 유난히 사위가 조용하게 느껴지는 어느 오후, 낯선 남자가 유골함을 들고 집을 찾아온다. 제3장 「도시코의 묘」는 20대 젊은 주부에게 묘지를 미리 사 두라는 기이한 무덤 세일즈 전화가 걸려 오며 시작한다. 제2장과 제3장이 죽음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는 『두 개의 여름』을 발표한 이듬해에 헤어진다. 그들은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서로를 사노 씨, 다니카와 씨라고 불렀다. 불같은 사랑하고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런 까닭일까. 세 작품 모두 여름이 배경으로 두 개의 여름이 있지만 「못」에서만 인생의 여름을 느낄 수 있다.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가 아직 같이 사는 사이가 아니었을 때의 작품이다. 작품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거침없는 소녀가 나온다. 별장에 사는 남자가 판 구멍에 들어가는 아이. 옷을 벗고, 팬티도 벗고, 그 위에 모자를 올려두고, 모자 위에 돌을 얹고는 알몸이 되어, 구멍으로 들어가, 구멍 속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은 뒤 따뜻하다고 느끼는 아이. 오랜 시간 뒤 지적인 초로의 학자는 그때를 기억한다. 그이가 쓴 편지의 일부를 옮긴다.
어슴푸레한 이미지가 있다, 먼 과거의 물속에서 흔들리는 이미지. 태양이 그 물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짙은 갈색의 가녀린 몸.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짙은 갈색의 가녀린 몸. 그 몸에서 뙤약볕에 달궈진 낙엽 냄새가 난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그 몸에 다가간다. 나는 그 몸에 나의 몸을 포갠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 그 몸에는 이름이 있었을까. 강 언저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 어디인가였다. 아니 그곳이, 그곳이야말로 우주였다. 나와 그 몸은 우주 한가운데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말없이.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마치 죽은 뒤에도 그럴 것처럼. 갑자기 나의 몸이 한 점으로 수축한다. 그와 동시에 거침없이 흩어진다. (「못」, 40 - 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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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4.12.17. 푸른책시렁 178 《두 개의 여름》 사노 요코·다니카와 슌타로 정수윤 옮김 창비 2020.8.20. 두 사람이 쓴 《두 개의 여름》을 읽었습니다. 책이름이 좀 얄궂습니다.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자면 “두 여름”이나 “두 가지 여름”입니다. 줄거리를 살핀다면, 두 사람이 다르게 바라보고 품은 여름을 들려주니, “두 사람 여름”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이러한 이름 그대로 두 사람이 두 눈썰미로 어느 여름을 돌아보면서 차분히 풀어낸 얼거리입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가 있고, 짐짓 뽐내는 아이가 있어요. 들숲바다에 해바람비를 고스란히 안는 아이가 있다면, 먹물만 잔뜩 드느라 들숲바다에 해바람비를 멀리하는 아이가 있어요. 오늘 우리 삶자락을 돌아보면, 오늘날 아이어른은 나란히 먹물만 잔뜩 들어요. 손전화나 누리집을 다루는 솜씨는 빼어나되, 막상 하늘을 보며 날씨를 못 읽습니다. 부릉부릉 몰거나 버스·전철을 잘 갈아타되, 정작 숲길과 들길을 호젓이 거닐 줄 모릅니다. 가게에 가서 더 낫거나 싸거나 좋다는 살림살이를 살 줄 알지만, 거꾸로 손수 품을 들여서 짓거나 가꾸거나 일구는 하루는 까맣게 잃습니다. 두 여름 가운데 어느 쪽이 낫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두 아이어른 가운데 어느 자리가 맞다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나란히 놓으니 두 길이 사뭇 또렷하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울이나 시골이나 똑같은 얼개이면서 똑같이 가르쳐요. 시골아이라고 해서 들놀이나 숲놀이나 바다놀이를 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골은 아이들을 모두 부릉부릉 태워서 집이랑 배움터 사이를 슥 가로지릅니다. 서울에서도 걸어다니는 아이는 드물어요. 엄마아빠가 부릉부릉 태웁니다. 이제 아이들은 거의 ‘짐’이에요. 실어서 날라 주는 짐입니다. 배움책(교과서)을 달달 외워야 하는 짐이고, 배움수렁을 거쳐서 종이(졸업장·자격증)를 거머쥐지 않고서는 아무런 꿈을 못 그리는 짐입니다. 이런 판에 다들 무엇을 하는 하루일까요? 아이들이 죄다 일찌감치 늙어가는데, 애늙은이로 뒹구는 아이를 그저 신나게 뛰놀면서 눈망울이 반짝이는 아이로 품으려는 길은 누가 살피고 생각하는가요? ㅅㄴㄹ 아버지는 침에 젖은 못을 가져가 울타리에 쾅쾅 박습니다. “겐타로 아버지는 학자라서 아무하고도 말 안 하는 거야?” 아버지는 말없이 못을 쾅쾅 박습니다. “겐타로는 있잖아, 장수풍뎅이도 냄새난다고 못 만져. 무서운 거겠지.” (14쪽) 나는 잘난 척하는 교코를 흉내 내며 두 사람 뒤를 따라갑니다. 둘이서 돌아보더니 번갈아가며 “워이, 워이.” 하고 나를 내쫓습니다. 나는 그 애들을 제치고 달려가 뱀 허물을 넣어둔 나무 동굴에 숨었습니다. (25쪽) “어릴 때부터 무덤을 좋아했습니다.” “애치곤 섬뜩하네요. 어릴 때 불행한 일이라도 있었나?” “왜요? 평범했어요.” 남자는 운전을 하며 잠든 도시코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귀엽네.” (102쪽) #ふたつの夏 #佐野洋子 #たにかわしゅんたろう + 《두 개의 여름》(사노 요코·다니카와 슌타로/정수윤 옮김, 창비, 2020)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잊었다 → 배웠지만 더 많이 잊었다 → 배웠는데 더 많이 잊었다 → 배웠어도 더 많이 잊었다 9쪽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생글거리게 됩니다 →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얄궂게 생글거립니다 → 생글거리고 싶지 않지만 어쩐지 생글거립니다 21쪽 오후에 산보도 할 겸 → 낮에 마실도 하려고 → 낮에 나들이 삼아 → 낮에 좀 걸으면서 22쪽 너무 지루에서 벼랑 위 나무에 올랐습니다 → 너무 심심해서 벼랑나무에 오릅니다 → 너무 따분해서 벼랑나무에 오릅니다 30쪽 모자가 훨씬 멋있어졌습니다 → 쓰개가 훨씬 멋있습니다 → 갓이 훨씬 멋스럽습니다 37쪽 논문은 예정대로 썼지만 건성으로 작업한 기분이 든다 → 글은 마감에 맞췄지만 건성으로 쓴 듯하다 46쪽 근 한 달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 거의 한 달을 하루글을 안 썼다 → 한 달 즈음 하루쓰기를 안 했다 46쪽 참관일에 늘 엄마가 온다 → 구경날에 늘 엄마가 온다 → 보는날에 늘 엄마가 온다 51쪽 모자 차양을 살짝 고쳤다 → 해가리개를 살짝 고친다 54쪽 나는 한 번도 작문을 쓰지 않았다 → 나는 글을 아예 안 썼다 → 나는 글쓰기를 그냥 안 했다 67쪽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75쪽 게이는 결혼을 못 하니까 → 한꽃은 짝을 못 맺으니까 → 나란이는 같이 못 사니까 8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