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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 들어있는 책을 보는 일도 그림을 보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에 있는 그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평안해질수 없다. 쌓인 스트레스도 날릴수 있는 그림을 보는 방법이다. 그림을 바라보며,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이해하며, 어느 순간 그림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림을 보는 방법 중, 자신만의 상상 박물관을 그려 그림을 보고, 그림을 설명하는 이가 있다. 바로 필리페 다베리오라는 이다. 필리페 다베리오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예술평론가이다. 그는 이번 그림들을 그가 상상속으로 그린 박물관 속에서의 그림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는 일단 커다란 박물관을 스케치 한다. 그 다음 각 방들을 배치한다. 안티카메라가 있는 방, 생각하는 방, 도서관, 그랑 살롱, 점심식사 방, 프티 살롱, 놀이방, 부엌, 그랑 갤러리, 침실, 음악실, 예배당과 정원으로 방을 구성한다. 그 다음 각 방에 있는 그림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이 가진 상상력으로 우리를 그림을 보게 만든다. 그의 상상력 속으로 우린 여정을 떠난다.
그림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림은 오래 바라보야야 제맛이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1434년
먼저 그는 우리에게 그림을 보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위의 그림을 보았을때, 우리는 그림속 인물들에게 집중하기 마련인데, 인물들 뿐만 아니라 바닥에 놓인 슬리퍼, 벽의 장식물, 유리창 속에 박힌 못 하나 까지도 세세하게 보는 법을 알려준다.
또한 상상 박물관 속의 그림 배치 또한 세심한 스케치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를 들면 안티카메라가 있는 방의 그림을 배치할때, 그림의 각 벽마다 맞는 그림들을 배치했다.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와 함께 작가의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를 한다. 저자의 그림에 대한 상상력을 엿볼수 있다.
![]() ![]() 헨리 레이번「더딩스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워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사르뎅「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
전체적으로 그림을 보여주고, 그림의 부분부분을 확대해 우리에게 그림에 관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위의 그림처럼 커플 그림처럼 보이는 이유, 시선의 맞은 편에 있게 배치해 우리를 그림으로 인도한다. 미처 우리가 발견해 내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말처럼 그림은 오래 보아야 세세한 부분까지도 발견해 낼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림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림의 모델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낼수 있는 것. 그림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힘들어하는 우리의 삶에 시름을 잃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프랑수와 부셰 「퐁파두르 부인」
그가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말 하듯이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보러 갔을때,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머릿속에 더 쏙쏙 들어오는 것처럼, 저자 필리페 다베리오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지은 박물관에서 방을 하나 지날때마다 오래도록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그림을 보려는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하는 큐레이터처럼 설명을 해준다. 그가 설명하는 그림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바라본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도록 그림을 들여다 본다.
![]() 산드로 보티첼리 「봄」
그림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말하는 저자들의 시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림을 설명하는 이의 객관적인 사실과 개인의 시각으로 말하는데, 우리는 그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한것처럼 자신만의 상상박물관을 짓고, 우리도 우리만의 상상력으로 방을 배치하고, 그림을 각 방마다 다르게 배치해 놓는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만의 이상적인 박물관을 지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책 한 권이 그야말로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필리페 다베리오가 안내하는 상상의 박물관. 우리는 그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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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풀 떄, 상상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정해진 것만 딱딱 외우면 되지, 요구하지 않는 것을 구태여 생각할 필요도 없고, 풍부한 상상은 오히려 그런 식의 정답 맞히기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 도움이 되는 분야도 많다. <상상 박물관>은 그림 감상 역시 상상력이 도움이 되는 분야라고 말하고 있는 책이다. 요컨대 그림에는 정답이 없고, 본인이 감상하는 것이 본인의 정답이 되는 것이며, 상상이란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상상 박물관>은 유명한 명화를 다수 보여주면서, '상상'을 유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상상한 방향을 강요한다든가, 어떻게든 상상해서 쥐어짜내보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그저 "흐음, 이 그림의 이 부분은 과연 어떤 걸 이야기하려는 걸까? 이런저런 뒷이야기와 에피소드와 엮어 보면, 어떤 메시지가 나올까?" 라는 식으로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알고 있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아마 알고 있는 만큼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들어맞을지 모른다. <상상 박물관>을 보면서 그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냥 보기에는 허전한 방 풍경 같은데, 당시 살롱 문화나 저택 구조 등에 대해 살펴보면, 풍부한 의미와 암시와 이야기거리가 말 그대로 튀어나오는 식이다. 배경지식이 얼마나 많은 상상의 바탕이 되는 것인지! 아는 만큼 보인다면, 아는 만큼 상상할 수 있다는 말도 들어맞을지 모른다. <상상 박물관>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상하는 감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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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해라’라는 말은 짐 자무시의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 나오는 한 대사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기존의 논리적인면서도 관습적인 서사구조를 탈피하여 인간의 상상력대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한마디로 영화 속의 주인공이 그 상상대로 모든 일이 이뤄진다. 물론 그가 직업에 어울리는 그러한 소망만을 할 때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상상력이 너무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미래희망직업을 이야기 할 때이다. 지금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텔레비전에서 가상적으로 펼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이이돌 혹은 연기자 그런 다음 딱히 그들이 원하는 인물을 찾기란 희박한 일이다. 그런데 우연히 미술책을 뒤적이던중 상상박물관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귀를 의심했다. ‘상상’과 ‘박물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나올법한 조합이 미술장르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다. 이 상상박물관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공간이 있다.생각하는 방, 도서관, 그랑 살롱, 점심식사 방, 프티 살롱 놀이방 부엌, 그랑,갤러리, 침실, 음악실, 예배당과 정원, 이 장소만를 가지고 상상력만을 가지고 미술사를 역어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림의 장소의 묘사는 한정 되있다는 느낌을 그동안 많이 받고 있었다. 이 테마에 거의 벗어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바깥에 화가가 나가가기라도 하면 금지된 사항이라도 된 듯이 풍경의 자연스러운 필체는 드물게 본 편이다. 마마 바깥의 인물을 묘사한다고 하더라고 방안에 인물과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물론 인상주의학파가 도래하기 전에 역사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 첫머리에 소래하고 있는 화가의 그림은 플로방드 지역에서 활동하던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이다. 사실 이 그림은 그동안 많은 미술사학자들에 위해서 너무 많이 소개되어 지루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더 많이 보고 소개해야 된다는 지점에서 응당 합당한 면이 있다. 최근에 이렇게 이 책에 묘사하는 그림처럼 여러 개의 개의 그림을 집약해서 한 편의 시간 안에 모두 보여준 영화가 있다. 바로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이다. 이 영화에서는 순간 보이는 명화들을 마치 숨바꼭질 벌이듯이 찾는 재미가 있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그가 보여준 예술적 야심가 연관이 있다. 말레비치의 <검은 십자가>, 브뢰겔의 <눈 속의 사냥꾼>, <게으름뱅이의 천국>, 밀라이어스 존 에버렛의 <오필리아>, 홀바인의 <그레고리 지제 상인의 초상화>등, 이런 종류의 예술가는 언제나 퍼즐처럼 그림들을 화면 안에 흩뜨려 논 다음 무자비할 정도로 쉽게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름하여 난해한 컽트 영화, 그런데 영화사에는 이 감독뿐만 아니라 예술적 교양을 한껏 뽐내는 감독들이 여러 있는데, 스탠리 큐빅과 데릭 저먼이 순간 떠올랐다. 그들의 프레임은 언제나 그대로 컨버스의 평면 그대로를 차용했다. 화가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기. 이것은 여러 번의 시행 착오 끝에 그들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실패를 결코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라는 말은 광고의 문구같지만 옛 선인들의 격언이기도 하다. 21세기에는 상상의 세기이다. 스티븐 잡스는 아이폰만을 가지고 인간사에 변혁을 불어넣었다.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이 현상을 제 3의 물결이라면 예언한 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그냥 그대로 전통적인 학습 방법 안에서는 이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이 <상상박물관>에 나오는 그림을 가지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적인 의도와 기호들을 읽어내며 자기만의 원칙을 스스로 세운 다음 지금의트렌트와 융합할 필요가 있다. 스카마트 폰의 화면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 시절 꿈꾸었던 세계의 총합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므로 이 중력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키루스의 날개를 만들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 옆에 미술책을 놓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