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섬광
살아있는 매 순간이 지옥이어서 |
|
시인의 말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은 아름답다 그런 추억일수록 현실을 누추하게 관통해야 한다 모든 기억은 추억으로 죽어가면서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윤성택 해야 한다,라는 말에 오래 걸리네요. 내가 살아온 날들의 기억은 누추하고 낡기만 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빛나고 환했던 시절은 없었니라고 물어온다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기억은 추억으로 죽어가고 별 볼일 없던 시간은 지구 여섯 바퀴쯤 돌아 다른 별에 가 있을 것이라고 바라봅니다 푸른 음악 -윤성택 더 높아져야 한다 여기저기 벽을 향해서 피아노 소리가 좁은 골목을 나와 대문의 건반을 누르며 걸어간다 불 꺼진 보안들의 음계를 따라 은행잎 쏟아진 자전거 앞이나 금 간 벽 틈을 지나 두근두근 한 음씩 어두워진다 바람이 휘청휘청 걷고 있는 빨랫줄 막다른 곳에 이르러 도돌이표처럼 시작되는 계단이 둥근 무릎을 짚으며 첫 음을 이을 때 나무는 캄캄하게 매달아놓은 쉼표 담벼락 악보로 지은 음악은 화음이 풍부한 식물부터 벽을 오른다 저녁마다 제 음으로 밝아오는 창문, 긴 손가락의 전신주가 손끝에 힘을 모은다 오후만 남은 일요일에는 어디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복되는 음들이 벽을 타고 전해집니다. 서툰 연주가 일요일 저녁을 채웁니다. 아침에 널어두었던 빨래는 마르지 않고 눈이 올듯한 날씨를 배경으로 음악은 연주됩니다. 건반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빈 방의 불들은 켜지고 있겠지요. 저녁을 준비하느라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 냉장고를 골똘히 들여다보겠지요. 그 일요일 저녁의 음악의 빛깔은 푸른색이거나 푸를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대문의 건반을 두드리고 바람 소리에 실려 음들은 우리를 먼지 쌓인 자전거 앞으로 데려갑니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윤성택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진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의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 붉어지는 봉분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 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 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뿌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다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외롭지 않다고 이대로 혼자 있어도 즐겁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나의 일상을 들려주고 오늘 산 물건들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기도 합니다. 비공개로 사진을 올려두곤 했는데 이제는 전체 공개로 바꿔 놓습니다. 이름도 성별도 알지 못하는 아이디로 존재하는 누군가들이 눌러 주는 하트. 빨간 그 하트는 어쩌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느낌들 그러니까 시인이 말하는 감이 아닐까요. 새벽의 빛을 내뿜는 그 액정에 눈을 두고 나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해주는 그들이 보내오는 하트의 감들. 나는 감들을 간직해 두었다가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가서 몰래 보냅니다. 무수한 감들을 보내지만 광활한 온라인의 세계에서 우리는 주파수를 열어둔 채 신호가 흘러가는 것을 보기만 합니다. 어쩌면 신호를 무시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느낌과 느낌 사이의 생각들을 채집합니다. 나의 감은 계단이 많고 가파른 그 골목 끝의 집 마당에 혼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