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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다. 대부분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책이란 것이 묘하게도 같은 책이지만 읽는 시점에 따라서 참으로 많이 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읽을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다른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들이 대부분 양서 혹은 고전의 명작으로 일컬어진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또한 그런 책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동물농장의 기본 줄거리는 인간의 지배하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동물들이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권리를 찾기 위하여 인간을 몰아내고 스스로를 위한 동물농장을 구축하지만 이후의 동물농장은 또다른 지배계층인 돼지들에 의하여 인간이 착취했던 것과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배계층을 대표하는 인간에게서 권력을 뺏은 돼지들은 결국 내분으로 함께 권력을 뺏은 돼지 동료들을 제거하고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는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둔갑하여 여전히 피지배계층인 다른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또한 돼지에 길들여진 개들은 돼지의 충복으로 활동한다. 대학시절을 이 책을 접하였을때는 노동자 계층을 탄압하는 전제주의나 독재주의를 동물 사회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기억되었다. 특히 다른 동물을 무력으로 억압하는 개들은 마치 당시의 군부세력들로 여겨졌다. 개와 돼지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무지하게 묘사되어 있고, 일부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도 개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습에 더 중점을 두어서 이해했었다. 시간이 지나 중년이 되어 다시 읽게된 지금에서는 개들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돼지들의 사실에 대한 왜곡에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가되어 보인다. 집권당이 변화가 되면서 국민들에게 복지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실제는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동등 수준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비슷한 수준의 복지가 유지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을 통하여 수많은 정보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핵심 정보는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소규모 회사의 경우에 있어서도 특정한 정보는 소수의 경영진만 공유하고 있으며, 경영진은 온갖 감언이설로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마치 작은 동물농장을 보는 것만 같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동물농장의 돼지와 개를 경멸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조직에서 더 충성을 다하여 개나 돼지와 같은 그룹에 속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물농장의 초기에는 돼지들은 동물의 권익을 대표하는 집단이었지만 동물농장이 안정화되면서 동물의 권익이 아니라 돼지그룹의 권익만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현대사회의 빈익빈부익부 혹은 부의 집중화 등으로 사회의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는 모습과 너무 닮은 듯이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모든것을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때 그것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이미 초심을 잃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베풀수 있는 것은 베풀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돼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의 위치에 있기전 인간의 지배아래에 있던 그때를 기억하고, 돼지의 위치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금의 상황을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물농장의 최종 목적은 동물이 서로 공존하는 평화로운 농장의 모습이지 어느 한쪽이 지배하고 나머지는 그 지배층을 부양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노동자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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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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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동물농장은 어렸을 적 우화소설로만 알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어보니 새삼 느낌이 다르다.
1984년은 디스토피아 작품으로써 유명하다는 점에 언제가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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