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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표지에 대한 호감으로 구한 책이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1장을 읽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 몇 장까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18장이다. 그 뒤에는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번역가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나는 이 글을 한번에 주루룩 읽은 게 아니라 한 장 한 장 끊어서, 다른 일도 하면서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나누어 보았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회씩만 본 건 아니었고.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을 퍽 좋아했다고 한다. 쓰게 된 배경을 참고해 보니 당사자에게는 썩 유쾌한 처지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험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했다고 하고. 쓰고자 하는 갈망은 결국 다른 핑계나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일에서든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할 일을 하는 사람은 해내고 마는 모양이니.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채리티. 작품 속 열여덟 살의 여자 주인공이다. 중심 사건은 단순하다. 시골에 살고 있는 여자 주인공이 도시에서 온 젊은 남자에게 반해서 사귄다는 것. 이 단순한 줄기를 작가는 엄청나게 천천히 그리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그것도 여름 한 철이라는 시간 안에서.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먼 미국 땅, 백 년 전 어느 시골의 풍경 안에서 오래 머무는 느낌을 받았다. 채리티가 오가는 길을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 받으면서. 그래서 꽤 힘들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떨 때 생길까. 새삼스럽게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짐작해 본다. 이런 인물이 이런 일을 겪었어요, 이런 생각을 했다는군요, 그러면서 쓰고 있는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한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기어코 드러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은, 못 살 것 같은 간절함으로? 표현의 본능이 그리하여 문학 본능 중 하나가 되었던 걸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 마음으로 해내는 예술가들의 모든 활동을 봐도 그렇고.
백 년 전 미국 사회가 여성에게 그토록 억압적이고 차별적이었다는 데에 좀 많이 놀랐다. 막연하게 평등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의 처지나 별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니.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을 써 내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이 작가가 그때 그랬다는 거고 그 작품이 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백 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는 '설마 이 정도로?' 싶기만 하건만.
주제도 주제였지만 내가 이 작품에 더 빠져든 것은 낱낱의 문장들에 있었다. 어느 한 줄도 소홀히 넘길 수가 없었다. 넘겨지지도 않았고. 원작도 번역도 훌륭하다는 게 이런 글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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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은 시대의 상징성을 배제할수 없다지만 여성 성장소설의 원형이니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다뤘다는 식으로 마담 보바리의 여주 엠마와 견주기엔 다소 많이 떨어지는 여주 채리티... 차라리 엠마처럼 대놓고 속물이라면 나았으련만. 그냥 자의식과잉이 넘쳐서 오버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선 쓸쓸히 정신승리하다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은 너무나 매력없는 여자의 전형으로 느껴진다. 고전에서도 스칼렛 오하라처럼 매력적인 여주들이 많지만 채리티는 내취향은 아닌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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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봄처럼 투명한 하늘이 마음의 지붕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목초지와 낙엽송 숲에 은빛 햇살을 퍼부었다. 산들바람 한 줄기가 언덕 등성이에 걸린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불어와 들판을 기 로질러 풀이 우거진 노스도머 거리 아래쪽으로 그림자를 몰고 갔다. 이 마을은 지대가 높고 탁 트인 곳에 자리 잡아 좀 더 아늑한 뉴잉글랜드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늘은 눈에 띄지 않았다. 6월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 보여준 첫 문장부터 저는 여름에 반할 준비를 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여름>은 한 여성의 삶에서 일어나는 성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장 소설이에요. 주인공 채리티, 하니, 후견인 로열 이들의 삼각관계(?)가 쨍한 여름의 낮과 밤 같기고 했고 장마철 축축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엔딩에서 조금 실망(?)도 했지만 여름에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고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처럼 아직 고전을 어려워 하는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 중 재미있었던 내용은 #브람스를좋아하세요 에서 '로제' #포스트맨은벨을두번울린다 에서 '닉' #여름 에서 ' 로열' 이 세 남자 중 가장 최악은 누구일까? 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놈놈놈(나쁜놈 vs 더나쁜놈 vs 진짜 나쁜놈)의 대결이었던 우리들의 이야기 친구들의 다양하고 위트 있는 이야기에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진짜 혐오스러웠던 '로열'이 여름을 끝낼 무렵엔 최악은 아니었다. 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어요. 과시욕 많고 무례한 로열이 유일하게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채리티였거든요. (그러고 보니 말은 함부로 했네요🤣) 마지막에 채리테에게는 #자발적호구 를 마다하지 않았던 '로열' (이 부분은 순전히 저만의 생각입니다. 읽는 분들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여름 이후 채리티와 로열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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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딱 이 계절에 맞는 책. 여름. 이디스 워튼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해본다. 민음사 유튜브를 보고 재밌겠다싶어 읽어봤는데 생각했던것보다 더 재밌다. 자존감 낮은 채리티가 마을에 찾아온 낯선 젊은 훈남에게 사랑에 빠지며 겪는 심리 묘사가 진짜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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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서, 책 제목인《여름》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6월의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이었으므로 더 그러하다. 젊은 여자 하나가 노스도머의 거리 한 끄트머리에 있는 로열 변호사의 집에서 나와 문가에 섰다. 주인공 ‘채리티 로열’이다, 열여덟 살이다. ‘산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그녀는 자신도 스프링필드에서 이따금 해처드 부인 집에 다니러 와 일주일 씩 머물다 가는 애너벨 볼치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 그녀가 중얼거렸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산만하기는 해도 ‘해처드 기념 도서관’의 먼지 덮인 책들을 열심히 뒤졌다. 마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전에 느껴보지 못한 정보에 대한 갈증을 알게 되었다. 매정스러울 만큼 이 마을을 저울질하던, 그녀의 눈앞에 도서관장 조카이면서 도시 출신 건축가 루시어스 하니가 나타났으니……. 채리티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데다 감각이 무뎠는데, 그런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며 공기, 향기, 색깔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몸속에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투박스럽게 느껴지는 산자락 마른 풀이며, 얼굴을 짓누르는 백리향 냄새, 머리카락과 면 블라우스 속을 스쳐가는 바람, 솔송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 언덕에 올라와 바람의 감촉을 느끼고 풀밭에 뺨을 비비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혼자 그곳에 누워 있었다, 가끔. 그럴 때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그녀에게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답답한 도서관이 감옥 같다면 햇빛, 공기와 온갖 식물이 자라는 대자연은 낙원인 셈이다. ‘이렇게 수액이 부글부글 끓고 잎집이 훌훌 옷을 벗고 꽃받침이 터질 듯 차오르는 모습이 온갖 향기에 실려 왔다.’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이렇듯 매우 감각적이면서 채리티의 자아 성장과 함께 성적 함의를 던져준, 한여름을 맞이하여 한껏 무성하게 자라는 자연처럼 열여덟 살 된 채리티의 육체도 점차 성에 눈을 뜨게 됨을 암시한다. 한여름 동안 루시어스 하니를 사랑하고 이별의 고통과 절망을 겪어야 함을 같이 암시한다. ‘사람들은 저 애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두 알고 있어. 저 애 어머니가 네틀턴 출신의 소도시 여자인데, 저 산에 사는 녀석 하나를 따라가선 이교도 처럼 거기서 산 거지. 지금으로부터 십육 년 전 내가 저 애를 데리러 갔을 때 그 여자를 보았거든. 그냥 짐승 소굴에 내버려 두는 편이 더 좋았을 걸.’ 이렇게 로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은 하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창문에 몸을 기댔다. 채리티는 반항심이 이는 순간에 늘 그러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난 저 ‘산’으로 갈 테야……. 내 가족들한테 갈 거란 말이야.” 전에는 한 번도 진심으로 말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자기 처지를 생각할 때는 이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 채리티, 신분과 계급 그리고 교육의 견고한 격차를 실감한다. 하니를 기꺼운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신분의 벽이 무척 두껍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채리티의 성숙함도 놀랍다. 더구나 로열 변호사를, 그토록 증오로 가득 차 있던 대상에게 마음을 여는 기특함은 대자연이 가르쳐 준 선물은 아니었을까? 고전이란 세월의 풍화 작용을 좀처럼 받지 않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여름》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넘었다, 1917년이었으니. 그럼 이 작품은 고전으로서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 채리티가 로열 씨와 결혼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나? 만약 임신하지 않았다면 채리티는 로열 씨와의 결혼을 선택했을까? 당시 사회적, 아니 마을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은, 채리티의 자유 의지였을까? 작가 이디스 워튼은 ‘삶이란 죽음 다음으로 가장 슬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니, 우리들은 그토록 슬픈 삶을 참고 살아갈 용기는 있기나 한 걸까?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채리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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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채리티의 불꽃 같은 로맨스에 몰입하게 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가 던지는 현실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랑 하나만으로 신분과 계급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대가가 여성에게만 유독 가혹하다는 점이 큰 씁쓸함을 남긴다. 찬란했던 한여름의 기억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차가운 현실만 남는 과정에서 밀려오는 상실감이 잔인하게 다가오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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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선사한 야성을 간직한 소녀. 설레고 빛나는 여름을 지나온다. 운명이라 해야할까? 여러 운명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때로 매혹적이고 때론 비참하다. 소녀의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채리티가 운명에 순응한 것이라 해야할지 반항한 것이라 해야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의도한 것일지 모르지만 주인공들의 이름과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 또한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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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여름』은 제목만 보면 한때의 찬란한 계절을 담은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것이 얼마나 뜨겁고도 잔인한 성장의 기록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읽는 내내 나는 한 소녀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워튼은 작은 마을 노스도머의 답답한 공기와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채리티 로열의 내면을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상처 입고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깊게 남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채리티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늘 자신이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좁은 마을의 규범과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도 더 넓은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 앞에 도시에서 온 루시어스 하니가 등장하면서 채리티의 세계는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니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 자유로운 삶, 사랑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존재다. 하지만 워튼은 이 관계를 단순한 로맨스로 그리지 않는다. 사랑은 채리티를 눈부시게 만들지만 동시에 불안하게 하고, 희망을 주면서도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읽는 동안 설렘보다도 위태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 아래 오래 서 있으면 아름답지만 결국 지쳐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워튼이 여성의 욕망과 감정을 매우 솔직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채리티는 굉장히 대담한 인물이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하며,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워튼은 그런 채리티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갈망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독자는 채리티의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사랑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분위기였다. 이 소설 속 여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인물들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욕망과 충동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대한 감각처럼 느껴진다. 뜨겁고 눈부시지만 동시에 금세 지나가 버리는 계절의 특성이 채리티의 사랑과도 너무 닮아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독자는 한 계절이 끝나가는 것 같은 허무와 상실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워튼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물의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여름』은 사랑만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계급과 여성의 위치, 사회적 시선 같은 문제도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드러낸다. 채리티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당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조차 자유롭게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채리티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렇기에 그녀의 방황은 더욱 안타깝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워튼은 거창하게 외치지 않지만, 채리티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침묵과 순종의 무게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결말의 감정 때문이다. 『여름』은 독자에게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절망도 안겨주지 않는다. 대신 삶이란 결국 기대와 상처, 욕망과 체념이 뒤섞인 채 계속 흘러가는 것임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채리티는 결국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독자 역시 그녀의 여름을 함께 통과하며 무언가를 잃고 또 조금 성장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디스 워튼은 『여름』을 통해 사랑의 가장 눈부신 순간과 가장 쓸쓸한 순간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사랑을 통해 변해가는 존재인지를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읽고 난 뒤에도 채리티의 외로운 눈빛과 무더운 여름 공기의 감각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여름』은 단순히 오래된 고전이 아니라, 지금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뜨겁게 살아 있는 감정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
| 이상하게 여름이란 단어가 참 좋습니다. 여름만 되면 여기저기서 이 책을 소개하고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표지에 스며있는 녹색도 여름의 계절을 아름답게 느끼게 해줍니다. 주인공 채리티의 사랑을 통해 참 많은 생각을 해주는 작품입니다. 여성이 주인공이든 남성이 주인공이든 성장 소설은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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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입에는 조금은 지루하고 중반은 식상한듯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떤 결말_주인공의 선택_이 있을 지 궁금하게 하는 이야기 전개. 재미나게 읽은 고전 소설 목록에 추가.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삶, 사랑에 대하여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보게 하는 여운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