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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불붙기 시작한 복지논쟁은 기어이 지난 대선에서는 핫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그리고 그러한 복지논쟁의 끝은 언제나 세금문제로 귀결된다.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그에 필요한 재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득세 문제 또한 복지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회보장망을 확충하여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케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할 때, 나 역시 기꺼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단서가 있다. 나보다 더 버는 사람은 세금을 더 많이 내어야 하고, 덜 버는 사람은 그만큼 세금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단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는 소득이 훤하게 들어나는 월급 생활자들에 대한 세금인상 만으로 손쉽게 그 재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더 많이 버는 사람들, 도대체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하긴 그런 사람들의 소득세를 올리겠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 될 게 분명하니, 또 정작 자신들의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과 같을 테니, 그들의 입장에서 말이 없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세상은 엄청난 불평등의 세계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IMF사태 이후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청년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88만원세대라는 암울한 이름표를 달고 있음에도, 돈 있는 자들은 그 돈이 벌어들이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문제나, 전직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막대한 부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핏발이 설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ich don’t always win. 이고, 부제는 ‘슈퍼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적 제언’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볼 때, 금권주의자들이 항상 승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20세기 초반의 미국인의 삶과 반세기후 미국인의 삶을 비교할 때,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거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20세기에서 반세기가 흐른 후 미국은 슈퍼리치들이 자취를 감추고 보다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갔다. 소득분포가 밑이 넓은 피라미드형에서 가운데가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다이아몬드 형으로 바뀌었다. 금권주의자들이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경제적 불평등이 나타나고,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더니 21세기에 들어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슈퍼리치들이 다시 등장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둘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경제는 파국을 맞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미국정부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다시 이긴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부자들은 항상 이기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제 단 몇 퍼센트의 금권주의자들과 빈곤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노동자들로 나뉘어 그 간격을 벌려만 가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1896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막대한 재력을 가진 부자들과 거대한 산업제국의 실세들이 버틴 공화당과 노동자와 농민 등 평범한 국민이 주를 이룬 민주당의 싸움에서 부자들은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들의 금고를 열기 시작했다. 이때 쓰인 선거자금이 그 후 110년 동안 쓰인 선거자금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자들은 승리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부자들을 위한 정치 즉, 금권정치가 시작되었다. 부자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치세력을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선거제도에 손을 대고, 소득에 대한 세금을 없애고.. 간혹 입법기관이 부자들의 바램을 외면하면, 법복을 입은 동업자들이 해결해 주었다. 이제 미국은 5%만이 편안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95%는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버틸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가 10년쯤 지났을 때, 사람들은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국가의 핵심부가 썩었고, 이런 곳에 부가 집중되면 언젠가 국가 자체가 파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당대의 보편화된 상식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변화는 시작된다. 먼저 변호사들이, 종교인들이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상류층의 막대한 부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조는 파업으로 힘을 보탰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이란 구호로 유명한 로렌스 방직공장의 파업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그들 개혁파들은 소득에 대한 누진세와 상속세의 도입 등 세금만이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제시하였다. 이후 미국 정계는 이들 세금의 도입과 관련하여 보수파 즉 금권주의자들과 개혁파간 싸움의 연속이었다. 금권정치를 두고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란한 개혁의 북소리에 비해 보잘것없는 승리에 불과했지만, 누진소득세의 도입을 가져온 1912년 대선은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부자에게도 세금을 물린다는 상징적인 가치를 가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전시세입법안은 이들 개혁파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처럼 보였다. 소득에 대한 누진세율이 확대되고, 상속세에도 누진율이 적용되어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슈퍼리치들은 세금을 내고도 전쟁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적색공포 히스테리에 빠져 들었다. 때마침 일어난 러시아대혁명은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적색탄압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부자들은 다시 우의를 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금권을 내세워 연방규제당국을 길들이고, 사법부의 도움을 얻어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주와 연방당국의 기도를 무력화 시키기 시작했다. 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 세금에도 손을 대어 세율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데 성공하였다. 바야흐로 부의 천국이 되었다. 개혁파들이 주장했던 부의 분배는 신기루였던 것이다. 모두가 가난한 세상에서 슈퍼리치들이 가진 돈은 갈 곳이 없어졌다. 이는 투기로 나타났고, 종래에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가져왔다. 1929년 금융시장의 붕괴는 부의 분배가 없이는 모든 것이 사상누각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1930년대의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은 슈퍼리치들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대규모 저항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소득에 대한 큰 폭의 누진세, 상속세, 증여세 등이 부활되면서 부자들에게는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일자리와 더 좋은 임금과 부가혜택이 돌아갔다. 아래쪽은 끌어 올리고, 위쪽은 끌어 내리는 진보적 평등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사법부와 보수파들은 적색공세와 세금에 대한 공격으로 반격을 시작했지만,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섰다. 마침내 노동자들이 제도권내의 존재로 자리잡았고,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부를 공유하고, 부가 한곳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효율적으로 활약하였다. 1970년대 들어 전후 세계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미국의 주도권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원인을 평등화에서 찾았다. 근로자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경영진에 대한 인센티브가 많아지고, 노조의 힘이 줄어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찾아낸 것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인식의 변화이었다. 이는 기업들의 탐욕을 자극시키고, 미국 경제의 금융화를 가속시키기에 충분했다. 1970년 들어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세금삭감 운동으로 이어졌고, 당시 대통령이던 레이건은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조는 퇴출위험에 처해졌다. 중산층 기반의 미국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반은 누진세와 노동계의 입김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에, 금권주의자들이 환호하고 그들의 돈을 여기에 쏟아 부은 것은 불문가지였다. 마침내 금권주의들이 귀환 한 것이었다. 그들은 또 한번의 승리를 맛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세기 초반 기세 등등했던 슈퍼리치들이 만든 불평등의 세계에 저항했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때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벌어지는 부의 불평등에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역사가 주는 제언이다.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그렇기에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오늘과 내일의 역사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부를 지켜내기 위한 부자들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았다. 돈 앞에 정의란 무용지물이고, 이념이나 사상 따위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돈을 지켜줄 수 있는 세력이라면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지 않았고,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승리했다. 오늘날 까지도.. 그러나 그들이 항상 승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당대의 보편화된 상식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변화는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이 더 와 닿는지도 모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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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는 수천 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횡령·배임·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CJ회장은 비자금으로 수억대의 수퍼카나 클래식카, 한정판 시계 또는 미술품을 구매하였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보관 상태만 좋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면서 값이 올라 지하경제에서 많이 찾는 것들이다. 이런 고가의 제품들은 비밀리에 수입되고 등록도 안 한 채 현금으로 여러 차례 거래되면서 소유관계가 불투명하여 비자금 형성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압수한 미술품역시도 같은 이유로 부의 축적수단이었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 횡령·배임 사건, 저축은행 비리 사건, CJ그룹 이재현 회장 비자금 사건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미납 추징금 사건까지, 검은돈 수사의 핵심에는 고가의 미술품과 고급차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당장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모 기업 회장들의 취미는 몇 억대의 수퍼카와 고가의 미술품 구매라는 사실은 사회적 반감을 낳는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바로 세금이다. 나라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돈을 국민들로부터 걷는 돈이 세금인데 그 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 나라의 살림살이는 어떻게 될까? 부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경제의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민주주의의 목표는 기회의 평등이다. 금권주의의 목표는 특권이다." "물과 기름처럼 두 사상은 섞일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IMF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사회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각 나라마다 소득에 따른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럼 이 불평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불평등의 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과거 세계를 제패하였던 헤게모니이자 세계화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정치사’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저자 샘 피지개티는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미국의 정치사 속에서 ‘부’의 역사를 짚어내고 있다. 20세기 미국의 소득 분포의 역사는 피라미드형에서 다이아몬드형으로 다시 피라미드형이라는 순환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이 흐름을 통해 대다수의 국민이 가장 평화롭고 안정을 누렸던 시기의 ‘중산대중’이 존재하였던 1950년대의 미국 경제가 저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핵심이다. 50년대의 미국이 가장 황금기이자 호황을 누렸던 배경에는 정부가 세금을 부담할 여력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 상승률이 급격한 누진세율 제도의 방침과 미국 전역의 모든 직장에서 활동을 벌인 노조의 존재때문에 가능 한 것이었다.
2011년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분노가 폭발하며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었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시 맨해튼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적은 시위가,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 시위가 중동지역을 넘어 스페인까지 상륙하였다. 이 시위의 원인은 ‘소득 불균형에 따른 경제 불평등’이 도화선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년에 읽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떠올랐다. 그 책의 공저자들은 미국이 부유해진 것은 시민이 권력을 쥔 엘리트층을 무너뜨려 정치권력을 고르게 분배했고, 시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며 일반 대중이 경제적 기회를 균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든 덕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가장 불평등한 나라 상위층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극심한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대 미국 또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사회가 부유해지려면 근본적인 정치적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성공적으로 정치변혁을 이루어낸 나라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이 가장 호황기때 중산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바로 일반 대중에게 경제적 기회가 균등하게 배분되었기 때문이며 사회적 운동, 즉 노조의 역할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미국의 역사를 통해 방증해주고 있다.
오늘날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은 착취적 경제제도가 국민에게 인센티브를 마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뒷받침해준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는 국가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수 밖에 없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중에서 -
인간의 탐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헤프닝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싶어 안달하고 없는 자는 가지려고 해도 기회가 오지 않는다.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저자는 미국이 더 평등해지고 과거 50년대의 호황기를 누리려면 노조와 누진세가 기초한 정치제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월가의 점령이나, 아랍의 봄이 국민들 각자가 국가에 기여한 만큼 배분되는 구조였다면,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시민이 권력을 쥔 엘리트층을 무너뜨려 정치권력을 고르게 분배하며 시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며 일반 대중이 경제적 기회를 균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같은 염원이기도 하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사회 문제의식을 일깨우기에 탁월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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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의 독점은 부자 스스로의 의지와 사회 구조적인 해결책이 함께 제시되어야 된다고 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최고의 권력이다. 권력의 속성은 불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핵심에 닿으려는 욕망에 가득 차 있다. 이런 부자들에게 당신들의 재물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막 단맛을 경험한 아이에게 사탕을 나누자고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복되는 현상을 보다 지혜롭게 처신하기 위해, 혹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이 책이 비록 미국의 경제사를 짚어가면서 부의 독점을 막으려고 하는 개인의 서술이라고 하더라도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미국과 우리 사회의 관계는 예상외로 가깝다. 그들이 지금 가고 있는 역사의 길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가지 않아도 좋은 길은 피할 줄 아는 타산지석의 현명함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어떤 사회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왔다. 부자가 있어야 가난이 뭔지 자각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과 살아야 자신이 가진 부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진 부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착취해서 얻는 것이다. 공평한 분배가 있었더라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의 사이가 이렇게 벌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1950~60년대의 미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 일어났다. 부자들이 가진 부의 두께가 얇아진 대신 중산층이 두터워진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들이 평범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면 대부분 예전에는 아주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부의 자산들이었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부가 사회적인 존경을 받기는커녕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서 중산층이 세력을 얻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소득의 90%까지 과세했다. 노조가 활성화되면서 노동자의 임금이 적절히 보장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서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쪽으로 개선되어갔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바비큐 요리를 먹고, 승용차로 휴가를 즐기는 중산층의 모습이 흔해졌다. 대학교수의 월급 이상을 엔지니어들이 받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도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일을 하는 중산층들이 두터운 층을 형성하자 사회는 안정되어갔다. 그러나 부자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적어도 소득의 7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하던 부자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치권을 설득해서 그들에게 무자비했던 부자세를 덜어 낼 기회를 얻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산층이 두터운 안정된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살다보면 1920년대의 대공황을 다시 맞이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저자는 그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소수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있는 한 사회의 금권주의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2011년 9월까지 금권주의가 중산층의 희생을 강요하며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금권주의에 대한 저항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다시 한 번 중산층 위주의 삶을 선택하려고 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황금기를 이끌어 나간 것은 강력한 노조활동과 누진세였다. 그러나 바뀐 세법으로 인해 현재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은 역대 최소인 15%에 불과하다. 저자의 해결책은 단순하다. 최고 세율과 최저 임금을 함께 묶는다는 것이다. 과거 금권주의 경제에서 부자들의 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해서 생긴 거라면 최고 세율을 최저임금과 묶음으로써 부자들이 더욱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가장 가난한 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부자들은 금권주의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 사회의 존경을 받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미국의 경제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입해도 어색한 부분이 없다. 우리 사회 역시 많은 부분이 미국과 일치하거나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일례로 사회가 안정 되었을 때는 미국의 많은 복지가 국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복지 부분까지 민영화되자 미국은 더 이상 복지 선진국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민영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은 것이 서민들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미국은 지금 다시 한 번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이렇게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면 실천은 정치인과 국민들의 몫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개인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에게 표를 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자신이 그런 상황일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을 무작정 참기 보다는 의무는 다하고, 권리는 스스로 찾는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야 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체념을 좋아한다고 한다. 부자에게 착취당하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살려는 뚜렷한 의지가 필요하다. 결국 부의 독점은 보통 사람들의 살아있는 정신이 막아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100년 동안의 미국의 경제사를 펼쳐낸 뒤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설득력이 있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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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1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95퍼센트를 갖고, 99퍼센트가 남은 5퍼센트를 갖는다고 생각해보라. 우리가 아니라도 어떤 체제가 그런 기반위에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99퍼센트의 인구가 생산한 95퍼센트의 재화와 용역은 1퍼센트의 인구가 소비하기에는 너무 벅찬 규모이다” (360쪽) 이 문구는 부의 지독한 편중이 정치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문구이다. 구매력을 가진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어야 그 구매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것은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이다. 한사람의 소비는 아무리 많이 써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수의 소비가 밑받침이 될 때 경제는 원활한 순환구조를 가지게 된다. 부의 편중으로 인한 순환질서의 왜곡은 마치 우리네 혈관이 동맥경화에 걸려 피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의 유지가 어려운 것처럼 전체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친다. 나아가서 이는 모든 정치및 사회구조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8일 박근혜 정부는 복지예산의 충당을 전제로 세법개정안을 내어놓았다가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세법개정안의 중요골자는 봉급자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복지에 필요한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국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이전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소득세 2% 감면과 법인세 3~5%의 감면으로 2008~2012년 동안 줄어든 세수가 약 88조 7천억원이었다. 이중 대기업의 고소득자 층의 감세분이 52조 7천억원이었다.(2013.8.14. 조선일보 사설 참조) 이는 연간 세수로 따지면 약 1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번 2013년 세수개정안으로 인해 한해에 추가적으로 걷어들일 세금이 약 2조 5천억원임을 고려해볼 때 이는 서민들의 지갑을 털어 부자들의 세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에 추진했던 법인세 인하정책만 원상복구 한다고 해도 약 3조 8천억의 세수증대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자감세 정책은 그대로 두고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에게 세수부담을 증대시킨다는 세법 개정안은 그런 이유로 인해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세법개정안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볼 때 유리지갑인 급여생활자의 소득세를 늘리기보다는 이명박 정부 때 실시한 부자감세정책에 의해 낮아진 슈퍼리치 및 고소득자에게 부과된 낮은 세율을 원상복구만 해도 복지에 필요한 세수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미국의 조세정책에 대한 역사이다. 부자와 빈자에 대한 세수정책을 국가가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따라 한나라의 경제와 사회제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밀히 분석한 책이다. 1900년경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기반으로 한 대지주로 구성된 슈퍼리치들은 산업혁명과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새로운 슈퍼리치로 탈바꿈하게 된다. 미국의 역사에서 부자에 대한 세금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부자의 세부담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에 금권주의자들이 어떤 논리와 전략으로 저항했는지, 부자에 대한 과세 및 최고세율의 적용으로 미국경제가 어떤 흐름을 거쳤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그 시대에 행한 세금정책과 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인들이 발의한 법안과 그들이 행한 연설 및 그들의 활동 등을 추적하여 마치 역사책을 기술하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에서 중산층이 가장 활기를 띠었던 때는 바로 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했던 누진세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시절 큰 효과를 발휘한다. 고액소득자에게 물린 최고소득에 대한 90%의 세금은 그 전례가 없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항으로 인해 그동안 세금의 인상에 극렬하게 저항했던 금권주의자들도 더 이상 대항할 근거를 잃었다. 부자증세를 통한 소득 분배정책이 한나라의 경제와 국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액소득자에 대한 누진세율은 부의 평등 및 재분배 효과를 가져왔고,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최고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그 세원을 근거로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했으며, 많은 중산층을 양산했다. 소비능력을 갖춘 중산층의 증가는 소비증가로 이어지고, 소비의 증가는 바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물론 거기에는 노조의 창립과 더불어 성립된 디트로이트 조약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산층의 양산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중산층의 기반은 영원히 견고할 것 같았다. 금권주의가 다시 세력을 얻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1960년 존 F. 케네디에 의해 슈퍼리치들에게 부여되던 40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한 세율은 91%에서 70%로 하락했고, 이후 레이건 대통령시절에 와서는 70%의 세율을 28%까지 하락시켰다. 다양한 면세제도도 인정했다. 이로 인해 슈퍼리치들의 금권주의가 다시 세력을 얻었다. 그 이후 미국의 빈부격차는 다시 심해졌다.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는 그 후 금융위기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20년대 부자들에 대한 세금삭감이 투기열풍에 불을 질러 경제를 무너뜨렸다는 사실과 최고 소득에 세금을 물린 이후 20년동안 미국경제가 대폭 성장했다는 사실을 명확한 근거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보여준다. 지난 이명박 정부시절 부자감세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한다던 논리가 금권주의의 논리와 슈퍼리치들을 대변하는 일부정치가들의 말장난이었으며 잘못된 정책이었음을 이 책은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현대에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지상과제로 삼는 미국 기업문화의 확대로 인해 소득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최상위 20퍼센트가 미국 부의 84포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부의 편중현상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흐름을 위축시켜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다. 최근에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단순한 금융위기로 파급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부자감세정책이 그 원인이 되었음을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우리의 빈부격차는 미국보다 더 심각한 상태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국가 전 재산의 50%를 보유하고 있다. 소득불균형지수는 IMF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의 편중현상과 소득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자증세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바탕으로 최저생계비등을 지급하는 등의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가용소비능력을 갖춘 중산층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러한 소비의 증가는 경제의 활성화 및 성장으로 이어진다. 부의 재분배와 사회안정을 이루기 위해서 최고의 방법은 형평성을 고려한 조세정책이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의 조세정책은 직접세보다는 간접세 위주이며, 고액소득자를 위한 급격한 누진세율보다는 완만한 누진세율 및 부자감세정책위주이다. 이러한 조세정책으로 소득의 불균형과 부의 편중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IMF이후 중산층은 갈수록 몰락하고 있다. 경제는 저성장궤도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잘못된 조세정책에 의하고 있음을 이 책을 보여준다. 잘못된 조세정책이 부의 편중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있고, 경제를 침체에 빠지게 하는 원흉임을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의 조세의 역사도 이 책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역사적인 배경만 다를뿐 그동안 변화되어온 조세정책을 대입해보면 유사성이 많입 발견된다. 저자의 주장에 맞추어 우리의 조세정책이 경제와 제반사회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재조명해봐야 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일부 금권주의자들의 로비에 의해 그릇된 정책을 수립하는 정치가나 잘못된 논리로 국민을 오도하는 위정자들이 설득력 없는 조세정책으로 국민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 전에 말이다. 우리의 부의 독점의 역사를 살펴봐도 정치의 격동기나 6.25전쟁등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슈퍼리치들은 그들의 재산을 이용해 더욱 부자가 되었고, 서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그러한 소득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격차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지난세월 미국이 걸어왔던 잘못딘 길을 답습하고 있다. 고액 소득자에 대한 누진세율이 거론될 때마다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논리인 경제 활성화는 얼마나 허황된 논리이며 있는 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에 미국은 91%의 소득세로 부자들을 쥐어짜서 번창일로를 달렸다. 이런 누진세율을 적용한 부자증세는 보통사람들뿐 아니라 부자들도 번창했다. 윈-윈 경제가 활성화 된 것이다. 소수 금권주의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조세정책이 왜 다시 도입되어야 하는지 저자의 상세한 자료를 곁들인 설명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의 조세제도를 다시 검토해보고 현재의 조세제도가 단순히 세원확보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경제 및 사회의 제반 현상을 좌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조세제도를 다시 재검토하여 무엇이 모두를 위하는 정책인지, 현재의 부자감세 정책이 최선의 선택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이 책에 기록된 미국의 조세의 역사와 부의 편중으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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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아 물질적인 부를 거머쥐고 정치적,사회적 힘과 권력까지 갖으며 행세하는 이들이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고 있다.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냐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로 흔들 것이다.왜냐하면 부를 어떻게 쌓았든 (인간의 속성상)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다.부자일수록 더 부를 쌓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편법과 탈법을 이용하려는 부류가 많다는 것을 작금 한국사회에서 자주 들려온다.이러한 치부를 한 자들에 의해 또 다른 파행적인 사회구조,시스템마저 조장하고 있기에 스스로 없다고 생각하는 서민층에게는 허탈감과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개인적 자산이 몇 십억까지는 바라지는 않지만 먹고 쓰면서 생활하는데 고달픔이 없어야 할 텐데 요즘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IMF의 경제위기가 오래도록 사회의 밑바닥까지 파고 들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은 날로 심화되어만 가고 있다.매달 납부해야 하는 공과금부터 엥곌지수,교육비,의료비,각종 경조사비 등 불가피하게 나가야 할 돈도 만만치 않다.경제위기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가장의 어깨는 축 늘어지고 한참 돈이 들어갈 자식들에게는 제대로 지원을 못해 마음 한 켠 미안하기도 하다.'그 많던 돈이 어디로 갔을까'라는 자조와 탄식이 절로 나온다.듣기로는 한국의 10% 미만이 90%의 대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황에서는 사회구성원간의 화합과 상생은 극히 요원할 뿐이다.지난 정권에서 부자들을 감싸왔던 '즐푸세'의 문제도 위화감을 주고 현정권에 들어서서도 중산층 이하에 대한 세금혜택 등의 실질적인 조치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레이거노믹스에 의해 탄생되면서 부의 이동이 갖은 자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기업가 및 일부 계층으로 부가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지난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정책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반면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말미암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위화감과 거리감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이다.이러한 문제를 정부,여권에서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부자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부를 쌓았고 가난한 자는 게으름과 나태로 말미암아 빈곤을 면치 못한다는 항변 아닌 항변이 들린다.어느 사회나 부모를 잘만나고 줄을 잘서게 되어 부자가 된 사람이 많은게 사회현상이라고 본다.집안환경,사회적 배경이 약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올라갈 선은 딱 정해져 있다.그 이상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자리 아니면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부의 독점은 갖은 자들의 의식변화와 상생하려는 마음가짐 밖에 없다고 본다.갖은 자 중심의 시대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사회양극화의 해결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암담함이 쓰나미처럼 밀려 온다.이 도서가 미국사회의 부의 독점문제를 189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상황과 부의 정책 등을 세밀하게 잘 들려 주고 있다.금권주의 시대가 팽배한 시대에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샘 피지게티저자가 밝히고 있는 부의 독점해결 방법 중에 "최고 세율과 최저 임금을 묶는다면,최저 임금이 계속 오르는 한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고 굳는돈은 더 많아질 것이다.그 결과 부자들과 힘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는 대목에 관심이 간다.이러한 연대 고리를 통해 연대경제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자와 빈자가 더욱 연대하고 상생하는 분위기가 태동하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옹호하여 더욱 부자가 된다는 희망섞인 논리는 지켜 볼 사안이다.
부의 독점과 관련하여 미국의 정치정책이 시대마다 각정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누가 권좌에 오르느냐에 따라 부의 이동은 판이하게 달라졌다.민주화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부에 대한 시행착오를 통해 어느 정도 부의 독점을 막으려 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의 편향,소수에 의한 물질적 힘과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렬하다.자신이 쌓은 부를 사회에 적극 환원하는 선량한 기업가,투자가가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중산층이 살아나고 빈자들에게 일자리와 더 좋은 임금과 부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보수파,진보파를 떠나 사회구성원간 상생의 길을 걸어가는 첩경이다.누구나 태어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다만 금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사회의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황에서는 건강과 행복도 도로무공일 뿐이다.사회의 불평등 요인을 제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의지야말로 사회의 응집력과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길이기도 하다.사라진 중산층을 70% 이상 복원하고 부자와 빈자가 모두 번영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역사의 제언서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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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와 나란히 두어야 할 책'이라고 했던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처럼 실제 미국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물론 그 책처럼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 본 미국의 역사를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관점인가? 이 책의 원래 제목을 보면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관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한국어판의 제목이 그다지 썩 좋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선명한 대립 구도가 어쩐지 좀 희석화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선명한 대립 구도라니 어떤 대립구도 말인가?'라며 궁금하실 분도 있으실 것 같아서 미리 말하자면 이 책에는 부자와 빈자 간의 뚜렷한 대립구도가 있다. 이 책의 '들어가기 전에'의 제목은 '부자와 빈자, 그 투쟁과 승리의 역사'이다. 이 말 그대로다. 이 책은 부자와 빈자간의 참으로 치열한 투쟁사가 전면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원제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원제는 'THE RICH DON'T ALWAYS WIN'으로 그대로 우리 말로 풀이하자면 '부자들이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말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고픈 핵심이기도 하다. 이 원제에서 이 책이 취하고 있는 두 가지 관점이 저절로 드러난다. 하나는 'ALWAYS WIN'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미국 자본주의 역사는 내내 부자들이 승리를 해 온, 그렇게 부자들 중심으로 움직이던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DON'T'에서 알 수 있듯, 그런 부자들의 대대적 공세 가운데서도 부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1%가 아닌 99%를 위한 역사가 펼쳐졌던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샘 피지개티의 이 책은 그러한 특정된 두 가지 관점을 독자들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런 의미에서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이라는 이 책 표지의 부제처럼 나와 있는 문구는 틀렸다. 행여나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당신이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사회가 호수 위를 떠 다니는 백조와 같다는 것이다. 수면 위의 백조는 참으로 우아하게 물살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아래서 물갈퀴가 달린 두 다리가 쉴 새 없이 헤엄치고 있듯이 우리의 사회 역시도 겉으로 보면 평온한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 부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쉼없는 계급투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많이 가진 자는 하나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렇지 않고 그들의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은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찾기 위해 펼쳤던 미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악전고투를 담고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정말 정말 확인하게 되는 건, '역사의 제언' 이런 따위가 아닌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여기서 세 가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부자라면 미안하지만) 부자들은 참으로 악착같이 자신의 것을 지키려 든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더이상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속담은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예수가 '부자들이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을 때의 그 모습만 보여준다. 실로 가진 것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대단했다. 어떤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유층에 대한 세부담을 늘이거나 임금 인상을 불러와 자신의 것을 사회에 내놓게 하려고 들면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설령 그것이 유권자 매수와 백색테러와 같은 불법이나 유언비어 유포나 흑색선전과 같은 협잡이라 하더라도 자행하여 악착같이 막아내는 걸 우리는 이 책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 때 우리에게도 '정글'이란 소설로 이름이 알려진 업톤 싱클레어가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부유층들이 어떻게 나왔던가가 이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업톤 싱클레어는 당시 대공황 아래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꽤나 부유층에 속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수입이던 5만 달러 이상에 대해서 누진세를 대폭 적용한다는 것을 공약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헐벗고 굶주리던 대공황 시절이었지만 자신의 부를 조금도 희생하길 싫어했던 미국의 부유층들은 업톤 싱클레어가 주지사가 되는 걸 막기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취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들을 통해 업톤 싱클레어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으며 별도로 온갖 지저분한 소문마저 이런저런 경로로 유포시켰다. 그 뒤엔 실력행사였다. 만일 업톤 싱클레어가 주지사에 된다면 이 땅엔 한 푼도 투자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박했던 것이다. 업톤 싱클레어가 주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곳은 캘리포니아였는데 헐리우드 거물급 제작자들은 업톤 싱클레어가 되면 다시는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톤 싱클레어의 인기가 서민들 사이에서 날로 높아지자 이번에는 가지고 있는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유권자 금권 매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토록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한 결과 업톤 싱클레어는 아깝게 주지사에서 떨어졌다. 업톤 싱클레어의 공약은 루즈벨트 정책과도 연계된 것이었기 때문에 업톤 싱클레어가 당선되었다면 루즈벨트에게도 꽤나 막강한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테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하고 말았다. 어째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소위 진보 후보들에 대한 조중동과 새누리의 공격이 많이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더욱 확실히 알게되겠지만 사실 그들이 취하는 모든 방법들의 모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답습 혹은 응용인 것이다. 30년대나 지금이나 복지와 증세처럼 조금이라도 그들의 부를 위협하는 것이 있으면 일단 이념 꼬리표부터 붙이고 보는 건 여전히 변함없다. 무려 8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던 종합부동산세가 있었다. 소유 부동산에 따라 누진세를 적용하는 법률이었는데 고작 2%에 불과한 부유층들만이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 조중동이나 한나라는 마치 대다수가 그 대상인듯 '세금폭탄'이라고 물타기를 했다. 물론 이념 공세도 빼먹지 않고 말이다. 대대적으로 그렇게 공세를 취하자 순진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말 자신이 2%에 속하다고 생각했는지 홀라당 넘어갔고 당시 그 법률안을 추진했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 심판론과 맞물려져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렇게 그들은 이익을 지켜냈다. 덕분에 여전히 지금도 우리나라는 겨우 1%가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의 87%를 차지하고 있다(2005년 통계인데 그 비율은 지금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제대로 종합부동산세가 시행되었더라면 지금처럼 부동산 부채가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부세' 때 벌이가 꽤나 쏠쏠했기에 그들은 무상급식이 전면에 부각되었을 때도 비슷한 논리를 들이대었다.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난다는 식으로 공격해 들어갔던 것이다. 사실 당시 오세훈이 온갖 실정으로 낭비해버렸던 세금은 이야기하지도 않고 아이들 밥값만 세금 폭탄이라는 둥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얼마전 경기도가 무상급식 예산 책정을 전부 누락시켜버렸다. 표면상으로는 돈 없음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이유도 이 책에서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부유층은 복지를 싫어한다. 복지는 두 가지 면에서 이들에게 부담이 된다. 하나는 복지의 확충은 필연적으로 증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금이 늘어나는 걸 싫어한다. 미국 역사 전체에서 그들이 가장 총력을 기울여 싸워왔던 것도 소득세, 소득에 따른 누진세 즉 세금이었다. 누릴 것만 누리고 의무는 이행하지 않겠다는 이 얌체적 속성이 부유층의 보편적 본성인 것이다. 증세의 경우 우리는 좀 시각을 달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증세는 '세금폭탄'이라는 말처럼 보편적 희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재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많이 가진 쪽이 많이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부유층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언론은 이 문제를 탈색시켜 버린다. 오로지 '보편적 희생' 차원으로만 몰고간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이 있다. 세금과 관련에 그들이 어떻게 대중들을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교묘한 공작을 펼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대중들의 눈을 다른데로 돌리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조작은 그들의 일상이다. '종합부동산세' 때처럼 그들에게 현혹되면 결국 희생당하는 건 우리의 이익이다. 이와 관련해 부유층이 복지를 두려워하는 두번째 이유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대중들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지키고 추구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부유층은 사실 이것을 더욱 두려워한다. 복지의 혜택을 받아 그들이 누리는 것이 사회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찾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무서워하는 것이다. 복지에는 그런 힘이 있다. 대중들을 사회의 주인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힘이. 지금 보편적 복지가 잘 이루어진 북구 유럽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자리잡은 확고한 평등 의식은 복지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부유층들이 그토록 무상급식을 저지시키려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복지 경험에 익숙해지면 사회에 자신의 몫을 당당히 주장하는 주체로 성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동적 주체의 보편적 출현을 그들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무상급식을 그토록 막으려 하는 것이다. 이 책이 미국 역사를 통해 보다 분명히 보여주듯이 능동적인 주체의 보편적 출현이야말로 부자들이 승리를 거둘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들이 나타나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그들의 대의를 주장했을때 부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거둬들여야 했다. 결정적으로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그런 승리의 기록들이다. 하지만 그 승리가 빛이 바래지도록 부유층들은 또 어떤 역습을 감행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어디든 빛과 그림자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 이런 변화는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초래한 것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그건 바로 일반 서민들의 의지였다. 사실은 그들이 빛과 그림자를 가져왔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주체가 되려고 했을 때, 그래서 그 어떤 부유층이 퍼뜨리는 언론 공작이나 유언비어 같은 것에 현혹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루즈벨트 시대에 대해 말했듯이 '유토피아'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그 주체되기를 포기했을 때, 즉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부유층이 퍼뜨리는 언론 공작이나 유언비어에 순진하게도 현혹되었을 때 그들은 패배했다. 루즈벨트가 만들었던 모두가 더불어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유토피아는 무너졌고 미국은 다시금 금권주의에 영혼을 빼앗겼다. 지금 미국의 빈익빈부익부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루즈벨트라든가 아이젠아워 시대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지금의 미국은 다시는 도래하지 않을 지옥에 불과했다. 당시의 그들은 이제 부자들이 마음껏 자신의 탐욕을 부릴 수 있는 시대는 가버렸다고 믿었다. 언제까지나 부자와 빈자 모두가 잘 사는 미국이 이어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정말로 의료비 때문에 자신이 직접 부러진 팔을 치료해야 하는, 정 안되면 스스로 절단해야 하는 미국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렇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샘 피지개티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건 바로 대다수 서민들이 정말 무엇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길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부유층이 그저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에 현혹된 결과라고.
그러므로 이 책은 말하려 한다. 당신의 것을 더 이상 빼앗기기 싫은가? 그러면 현명해지라고. 이런저런 말에 현혹되지 말고 무엇이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인지 끝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또한 이를 행동으로 옮기라고. 오로지 그것만이 당신의 것을 다시는 잃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책은 한 마디로 당신에게 '저항하라!'고 가르친다.
일상 속 사회는 그저 무색무취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눈에 막상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부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치열한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보도되는 것들을 조금만 훑어봐도 그 증거를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지금 국회에서 심의되거나 통과되고 있는 법률들, 입안되거나 시행되는 정책들 그 모든 게 알고보면 바로 이 투쟁의 구체적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치열한 전장에서 그토록 소중한 우리의 것을 지키는데 우리는 너무도 수동적인 것은 아닌지 혹은 과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휘둘리는 것인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당신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샘 피지개티가 보여주는 부유층은 눈감고 코베어가는데 그야말로 능수능란하다. 뒤늦게 베여진 코 때문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부릅뜬 눈만이 살 길이다. 샘 피지개티의 이 책은 두 눈을 부릅뜨게 하려는 의지를 더욱 벼리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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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력 때문에 말이 많다. 몇 년 째 전력은 모자라고 있다. 공공기관에는 냉방을 끄라는 지시까지 내려질 정도고 각 점포들에게도 전력 사용을 자제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올해 폭염이 겹침에 따라 냉방기를 원하는 곳은 많아지지만 쓰기가 덜컥 겁이 난다. 냉방비 때문이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산업전력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원가보다 싼 전력을 운운하며 누진세를 적용시키지 말고 가정용 보다 훨씬 싼 산업용전기료를 올리라고 한다. 각종 표들로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초기 설비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중화학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정말 지원이 필요한 영세한 기업에서는 생각보다 전기세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돈이 많은 기업에서는 정작 싼 전기를 쓰고 있고 매일 아등바등 사는 서민들은 비싼 전기료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신 자유주의를 이야기 하는 주류 경제학파에서는 파이가 먼저 커져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저자는 대공황의 원인 중의 하나를 큰 빈부격차를 꼽았다. 부자들은 쓸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벌고 빈민들은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시장에는 돈이 마르고 결국 경제는 바닥으로 치닿는다. 대공황을 치료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시작해서 돈을 풀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기로 한다. 중산층을 많이 만들었고 빈부격차를 줄였다.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경제위기가 넘어가고 사람들의 관심이 덜 해지지자 부자들의 힘은 다시 세져서 세금을 줄이고 부를 더욱 불리게 되었다. 고전학파에서는 경제 지표에 관한 몇개의 그래프가 있다. 대부분 일정한 기간동안 비슷한 간격의 파동을 그리는 데 수요와 공급의 흐름에 따라 불황과 호황의 기간을 나타낸 것들이다. 2차 대공황이 왔을 때 경제학자들은 이 그래프를 신뢰했고 (엄청난 돈을 들여 새로운 그래프를 만들기도 했다.) 다시 호황이 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케인즈가 나타나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고 이것은 뉴딜과 마가렛 대처의 국가 주도적 경제론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이 정책들에 대해서는 비판과 칭찬이 교차하고 있다. 칭찬과 비판을 떠나서 부의 흐름을 약간이나마 바꿨다는 것에는 틀림없다. 중산층이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야 건강한 경제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조차도 빈부격차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부의 흐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빈부격차가 적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웬만한 대학교수보다 버스 운전기사의 봉급이 높고 먹고 살고 자녀들 대학교육까지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지금 포기 하지 말하고 하는 메세지를 전한다.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온다면 (돈이 돈을 번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내려져 있는 우리나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산층이 말라가고 있다. 빚이 없는 집이 없고 전 국민이 재테크라는 명목하에 투기꾼이 되어 있다. 심지어 투기꾼들이 tv에 나와서 자신의 재테크 방법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이미 돈을 버는 과정과 관계없이 통장 잔고에 눈이 돌아가 있는 상태다.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를 절판하면서 청년들이 나오기를 바랐는 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당연한 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메세지는 단지 미국 역사가 아니다. 건강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를 보고 주고 싶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도 살짝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통해서 저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미국의 경제사에 대한 책은 생각보다 많다. 경제 입문서나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미국경제의 흐름을 빼먹는 다면 그것은 경제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하고 있는 것들은 때때로 다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세금 정책과 이에 따른 분배 문제에 주목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종착점은 월가 점령 운동으로 향한다.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이 운동은 많은 유명인들의 연설이 이루어졌으며 미국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전 신문에서 세금을 더 내서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설문이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또 얼마전에는 중진국의 덫에 걸린 한국이란 기사를 보았다. 또 온열병에 걸려 병원을 찾는 서민들의 이야기와 전기세 걱정 없이 펑펑 쓰는 대기업의 이야기도 봤다. 촛불시위에 대한 글도 봤고 별 반응 없는 정부의 이야기도 봤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이런 논의들은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이 우리가 나중에 갈 길을 잃어버렸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북극성의 한조각이라 나는 확신한다. 부의 독점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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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원제 - The Rich Don't Always Win (2012년) 저자 - 샘 피지개티
이 책의 원제는 위에 적혀있다시피, 부자는 항상 이기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부의 독점이 무너지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지만, 달리 생각하면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부자는 항상 이기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질 때도 있다. 그들이 질 때가 부의 독점이 무너지는 때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뭐……. 하지만 무너진다는 의미가 재기 불능으로 완전히 무너지느냐 아니면 일부가 망가질 뿐 다시 재건할 수 있느냐는 의미가 다르다.
그럼 이 책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한 걸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에서 부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고,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얘기한다. 그리고 뒤이어 그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어떻게 부자들에게서 권력을 빼앗고자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그러면 위기감을 느낀 부자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서 다시 권력을 가져왔는지 말한다.
결국 그는 미국의 역사를 그 두 세력들이 서로를 공격하여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오르고 정부 각료에 임명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경제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고 그에 따라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한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대 공황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도 주목할 만 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래서 부자는 당연히 부유함을 누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당연히 가난한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정책이라는 게, 부자들에게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기들의 지갑을 털어서 그들에게 나눠준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 이건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
저자는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장에서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 제언'이라는 부제가 붙었나보다. 그런데 사실 내가 경제 쪽은 완전 하나도 몰라서, '최고 세율과 최저 임금을 묶자'는 그의 제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오라버니에게 여쭤봐야겠다.
마지막 장이 없었다면, 이 책은 그냥 미국 역사책으로 분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던 대통령이 그런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는 놀라기도 하고, 의외의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역시 역사는 겉으로 드러난 것뿐만이 아니라, 숨겨진 이면도 봐야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진짜 부의 독점이 무너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재생이 되는 플라나리아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문득 언젠가 웹서핑을 하다가 본 이 사진이 떠올랐다. 아마 이 책의 내용을 단편적이나마 보여주는 사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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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낸 출판사의 모회사가 어딘지 알고 있기에, 뭔가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아이러니라고 하던가? 아니, 모순인가? 아무래도 난 삐딱하게 세상을 보라고 프로그래밍되어 태어난 모양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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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연 뉴욕 할렘가의 흑인들이나 저기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들은 정말 악인들인가?
혹은 어느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보다 더 선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질문들이 갑자기 머릿 속에 떠올랐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쁜 사람들은 마치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로 생각을 하고 그런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이코 패스를 제외하고) 사실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뻐하고 본인의 고통에 우리와 같이 아파하는, 그런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때문이었든지 간에 - 성장 과정이든 그 당시의 상황이든 - 그 사람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반대로 우리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심지어 아무 것도 모르는 간난 아기들 마저도 자기 자신의 것을 탐내고 집착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즉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 내 평소의 지론이다.
물질, 즉 부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능력때문이건, 시대를 잘 만났 건, 혹은 심지어 부모를 잘 만났 건 간에 본인이 쥐고 있는 부를 포기하거나 나눌 사람은 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나름 신앙심이 깊었던 부자 청년이 예수님 앞에서 구원받고 싶다고 하다가 소유를 나눠주라고 하니 근심하며 돌아갔나는 얘기가 있겠는가?
이것은 비단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 소유의 부가 있다면 그것을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것 보다 어떻게하면 그 부를 좀 더 늘려서 좀 더 안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할까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조금은 놀랐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어느 정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해외 토픽에서 가끔 보는 내용은 빌 게이츠나 여러 부호가 얼만큼 기부를 했네, 자식들에게 상속을 안 할 것이네, 같은 훈훈한 기사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성적일 것 같고 박애주의자일 것 같은 미국 부자들도 사실상 처음에는 부의 독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부자들이 그럴 것이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 정의 실현은 이렇듯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강력하게 제도화, 법제화를 시키지 않는다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최고 세율과 최저 임금 관련 제도를 함께 시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최저 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지만 최고 세율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저 임금을 올리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높여주고 근로 의식을 높여주지만, 최고 세율을 통해 복지를 높이는 것은 유럽의 여러 나라의 예에서 보아왔듯이 좋은 선례만을 남기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의 저자의 주장도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왈가왈부하는 독자의 주장도 실현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책의 의미는 전 세계를 쥐락펴락해왔던 미국의 부호의 역사를 옅보고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정책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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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샘 피지개티: 알키, 2013) 슈퍼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며, 사회적 약자를 돕고, 부정불의에 저항할 줄 알고, 특히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비평지가 하나 이상되어야 한다." 미국의 중산층 기준에 관한 미국 공립학교 교육의 내용 中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하는 중산층 기준에 관한 교육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는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 내용에 빗대어 우리의 현재모습을 점검할때 그다지 틀리지 않은 모습이니까요. ^-^ 하지만 물질적 가시적 조건에 의한 중산층 기준을 제시한다면 미국도 우리나라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중산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사회적 불균형 즉 부의 쏠림현상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2013)는 지난 100여년 동안의 미국 경제사를 연대기적인 순서로 펼쳐놓고 1950년대를 전후로 한 중산층의 황금기는 어떻게 찾아왔으며 왜 몰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역사학자 케빈 스타는 그의 부인이 “살림하고 아이 돌보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낮에는 “뒷마당에 놓은 선탠의자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곤 했다”고 전했다. 풀장은 없었지만 옆집에 풀장이 있어 같이 사용했다. 또한 테라스는 없어도 1년의 적어도 절반, 한 주에 몇 번씩 마당에서 식사를 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웃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고, 주말 오후에는 친구나 이웃을 불러 조촐한 식사를 즐기곤 했다. 멋진 삶이었다. 20세기 중반에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런 생활을 꿈꿀 수 있었다. p443-444
저자인 샘 피지개티(Sam Pizzigati)는 진보적인 글을 쓰는 노동전문기자로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매체에 수십 년간 글을 기고하고 있는 베테랑 언론인입니다. 2004년에는 <Greed and Good>라는 책을 써서 미국도서관협회가 선청한 '올해의 훌륭한 책'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이 책은 개개인의 과도한 부의 축적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용인할 경우 사회가 미치게될 영향력을 설명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앞서도 설명했듯이 20세기 첫 절반의 기간 동안 이뤄졌던 다시 없는 부의 재분배의 평등(적어도 오늘날의 부의 불평등 분배에 비하면 말입니다.)의 시기가 찾아오기까지를 연대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속에서 이뤄진 부를 둘러싼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노조의 결성과 근로자의 권리 확립 그리고 부자에 대한 세제 개편안이 금권주의와의 대립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아 가는지를 탁월한 감각으로 펼쳐내어 '민중들의 소망'의 방향이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고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요즘 이론은 가난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억압하거나 죽일 수 있다는 중세 논리에 못지 않은 한심한 발상"이다-그레이드 토던 레일웨이 회장 제음시 힐의 생각 p65
최근 한국사회의 뜨거운 이슈가운데 하나가 바로 갑과 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특별히 부각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사회적 불평등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에 편승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평등에 관한 피해의식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질서의 확립의 필요성을 가져왔지만 글세요 금권주의와 특권의식은 부자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층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금속노조 OO차 노조 OO공장지회는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단체협상을 앞두고 노조 지부에 ‘현재 장기근속자(25년 이상 근무) 직원 자녀에게 1차 전형(서류 전형) 때 주던 가산점(10%)를 1,2차 전형(면접 및 입사시험) 때 각각 5%씩으로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2007년부터 적용됐던 1차 가산점만으로 자녀 채용에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가산점 분할 적용을 검토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77935.html 한겨례 신문 2013년 3월 13일자 기사내용 인용
이 책은 금권주의와 특권의식을 가진 부자와 정치인들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의 분배를 위한 부자들의 이야기와 부적절한 처신을 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에서 결국 한쪽으로 치우쳐진 책이라는 비평을 받을 우려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들이 이 책을 반쪽짜리라고 말하거나 혹은 이 책의 가치를 폄훼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적어도 이 책은 경제적 평등을 누린 세대가 그 황금기를 거져 얻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획득하였다는 점을 여타의 유사 책들 가운데서다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황과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혹은 누군가 해결해주기만을 바란다면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복잡한 현대사회가 부와 특권층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지 못했다. 그 반대로 지금 우리는 돌이켜볼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는 소중한 교훈을 가르친다. 부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p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