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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by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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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신지 6개월 채 지나지 않았다. 며칠 전만해도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곁을 떠났고 가족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할머니 영정아래서 자리를 지켰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서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간적 흐름의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로 나를 채워가던 내게,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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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신지 6개월 채 지나지 않았다. 며칠 전만해도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곁을 떠났고 가족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할머니 영정아래서 자리를 지켰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서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간적 흐름의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로 나를 채워가던 내게, 이 책은 할머니의 장례식과 함께 죽음이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해주었다.

 

 

삶을 마감하기 전, 나는 무엇을 고민하게 될까. 질문을 했던 백만장자가 죽기 전 했던 철학적 질문들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는 틀림없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후세에게 남겨둔 짐에 대한 걱정을,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헤아릴 수 없는 고마움에 감사함을,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고통을 앓기 바빴을 텐데, 그는 단지 죽기 전까지도 철저히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탐문하기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 죽기 전까지 아무런 걱정과 남겨진 고민 없이, 자신이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바빴으니, 이보다 행복할 수 있었을까 싶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가족들을 생각하시기 바쁘셨던 때와 비교하건데, 그는 병실에 누워 겸허히 홀로 퍼즐 맞추기를 하며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가 질문했던 내용들은 꼭 죽기 전에야 다루어지는 질문들은 아니다. 삶의 매순간 우리는 죽음을 비교적 가까이서 마주하기도 하고, 신을 위한 경배, 선과 악이 혼재된 사회에 대하여 우리는 혼란과 회의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구태여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을 들어보았을 것이며, 지구 종말에 대하여 생각해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신학적이고, 과학적인 대답들로 가득했고, 그러한 대답들로 하여금 독자들이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통찰을 돕고자 했다. 챕터마다 실린 질문들의 형태는 단순했지만 무게가 잔뜩 실렸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백만장자의 질문이 지나치게 신학적인 부분으로 초점이 실려 있다는 점과, 질문에 대한 답변 또한 인문학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한정적이고 제한적으로 설명했기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내는데 다소 버겁게 느껴졌다. 예컨대, ‘영혼이란 무엇인가’라는 형태의 질문에서 영혼의 무게를 실험한 과학적 해석과, 성서를 기반으로 한 신학적 해석,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적 해석, 인간에게 영혼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등의 대한 대답들로 구성했는데, 읽고 난 후 느끼는 것은, ‘그래서 영혼이 무엇이라는 거지?’ 라는 의문을 낳았다. 저자는 이처럼 일부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을 이론적으로 끌어내는 한편, 사방팔방 분산되어 있는 답변들의 방향을 합치시키지 못했다. ‘사랑과 영혼’처럼 죽음에서도 지속되어지는 영혼의 실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보완하거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과 같이 인간형태의 몸에 영혼을 부여하거나 옮기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철학적인 내용 등을 통해 ‘영혼을 가진 로봇, 영혼 없는 인간’을 풀이했더라면 독자들에 이해를 보다 흥미롭게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는 12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작가는 천국과 천국이 이상적인 낙원으로써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해석했는데, 이를 지나치게 기독교적으로만 풀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타나토노트’에서는 영계의 세계, 즉 천국으로 향하는 과정들을 불교, 코란, 그리스, 히브리, 이집트 신화 등과 함께 묘사해냈는데, 이는 천국이라는 사후의 이상적인 세계관을 두고, 종교들이 서로 상이한 점들이 무엇이 있는지 보여준다. 백만장자의 질문은 단편적으로 사후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을 어떻게 가는가에 국환된 것이 아닌, 근원적인 질문으로 사후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진 만큼, 작가는 ‘천국에서도 성생활을 할까’ 와 같은 세부 답변을 하기 보다는, 천국이 갖는 이상적인 의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종교가 가진 입장들을 보여주었다면, 더욱 인문학적인 답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백만장자의 15번째 답변으로 천주교가 많은 나라에서 왜 범죄율이 높은가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해석했는데, 논리가 다소 비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화심리학자 마크 하우저(M. Hauser)가 <무신예찬>에 실은 <도덕성에는 왜 종교가 필요 없을까>라는 글에서 이 문제와 연관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그는 예컨대 “얕은 웅덩이에 어린애가 빠져 허둥대고 있는데, 근처에는 당신밖에 없다. 아이를 끌어 올리면 그 아이는 살아남겠지만 당신의 바지를 버린다. 이 아이를 끌어 올리는 것은 ( )” 와 같은 도덕적 딜레마 문제 3개를 만들어 웹사이트에 올렸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의무적이다‘, ’허용될 수 있다‘, ’금지된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괄호 안에 적어 넣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전 세계 참가자 1500여 명이 3개의 딜레마 문제에 대해 거의 같은 대답을 했다. 즉 참가자의 97퍼센트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가지리 않고-’의무적이다‘라는 말을 골랐다.

 

저자는 이 예시를 통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답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는데, ‘의무적이다’, ‘허용될 수 있다’, ‘금지된다’ 중 ‘의무적이다’ 외에 문맥상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 질문의 대한 답은 종교적인 소관 이외에, 성악설, 성선설, 성무성악설적인 개별적인 견해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만장자가 신부에게 질문을 했던 만큼 질문들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띄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신학적인 해석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따져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작가가 빅뱅이론이나 진화론 초끈이론과 같은 과학적인 입장도 고려한 흔적을 보였지만, 더 많은 영역들을 다루고 보여주었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책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에서 ‘신이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과 기쁨 이 존재하는 가운데 인간이 겪는 슬픔과 고통들이 왜 혼재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토머스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맥락과 비슷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분배받고, 근로의 시간을 동등하게 받는 세계. 근로 후 오락시간을 가지며, 최소한의 법으로 범죄의 예방을 위한 세계를 통하여 토머스모어는 책에서 그 나름대로의 이상적인 세계를 묘사하고자 했으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공공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타락에서 비롯하여 사회적인 악습과 폐단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성경이 역사를 보증하고 있고,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하더라도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같은 의미로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행복한 가운데 불행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한 가운데 행복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불행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게 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된 이유라며 설명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현재의 비도덕적이고 혼란스러운 사회와 그로 인한 메시아의 재림을 기대하는 세계는 다른 한편으로 서로 다른 양극의 필요관계에 의하여 균형 잡힌 세계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 절대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오고 있었다. 특히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읽으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회적인 악습과 폐단을 산산조각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만 절대적인 행복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과거와 현재로부터 겪는 고통과 슬픔이 너무나 큰 나머지,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포기해야만 절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흔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쁨, 사랑, 행복과 같은 감정들도 무엇인지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버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책에서 앞서 말하고 있는 대로, 행복과 불행이 혼재되어있는 사회를 균형 잡혀있다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내가 그려왔던 이상사회는 틀림없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과 행복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삶은 애초에 아무것도 존재할 필요도 의미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듯, 이미 나는 존재하고 있기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이상적인 세계라고도 말할 수도 없을 듯 싶다.

 

 

아주 오래전 형과 함께 길을 걷던 때,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를 보며 형은 말했다. “왜 기독교인들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쁜데, 죽어서까지 잘 사려고 하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건데, 사람들은 절대적인 영역-신, 죽음, 삶 등-앞에 무기력해지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광신도도, 죽음을 마주하고 앉은 백만장자도, 아직은 젊지만 하나 둘 내 곁을 떠나보내고 있는 나도, 모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직 완전한 ‘나’의 존재만으로 남게 되어 ‘죽음’ 앞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삶의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읽어가면서, 무엇보다도 나만의 길을, 나만의 답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무거운 생각들을 했던 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오늘의 생각을 마쳐본다.

 

w******b 2020.06.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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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친숙하고 익숙해서 부자라는 느낌조차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부자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백만장자가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닐까한다. 백만장자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을 만든 이병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적수가 없다. 이병철이 무엇인가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책의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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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친숙하고 익숙해서 부자라는 느낌조차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부자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백만장자가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닐까한다. 백만장자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을 만든 이병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적수가 없다. 이병철이 무엇인가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책의 저자가 한다는 구성인데 제목에 백만장자라는 문구가 있어 호기심이 갖고 철학자가 이를 답변한다는 것에 또 다시 흥미가 동했다.

 

책을 얼핏 볼 때마다 - 꽤 오래도록 도서관에서 잡았다 놨다를 반복한 나날이 1년 정도 - 철학적인 내용을 풀었다는 느낌은 있었고 죽음이나 종교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백만장자의 질문이라 당연히 금전적이고 부자의 관점에 대한 문답이 이뤄질 것이라 예측했다. 비록 선문답의 내용이 이어질지라도 어느정도는 나올것이라 예상한 내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이 책은 이병철 회장이 말년에 천주교의 신부에게 전달한 24개의 질문이 차동엽신부에 의해 밝혀졌고 이에 대한 답변을 책의 저자인 김용규가 하는 것인데 중복되는 질문을 제외한 총 22개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라는 책이 항상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그 책의 저자다. 이 책의 내용은 정확하게 신과 종교에 대한 물음을 답변하는 형식이다. 종교와 신은 호불호가 갈리는 형상과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 종교와 신은 절대적인 권력과 충성심을 보이는 대상이었지만 인간이 신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한 후에는 종교와 신에게서 자유로운 사상을 갖게 되었다. 이제 신은 없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증명되지 않았고 아마도 앞으로도 증명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이야기를 책은 함께 담고 있다. 이병철회장의 질문 자체가 신은 있느냐 신이 있다면 세상은 왜 그런가와 같은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한 - 유교는 종교는 아니지만 이병철회장은 논어를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 - 질문을 종교인에게 물었고 철학자는 답변을 철학적으로 풀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데 신이 있다는 입장과 신은 없다는 입장을 나란히 배치해서 독자들에게 읽으면서 가치판단을 하도록 했다.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대상은 하나님, 예수, 교황, 주교, 신부,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신이 있다는 편과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해리스,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데이비드 밀스를 비롯한 무신론자편과 진화론을 이야기했지만 신을 믿고 있는 다윈과 같은 파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은 다 읽고 리뷰를 쓰고 있지만 각 질문의 답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고 풍부하게 제대로 해체식의 리뷰를 쓸 수 있었으리라 판단되지만 귀찮아서 이렇게 몰아서 쓰게 되는데 그렇게 할 것이라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인간의 탄생은 창조론을 믿고 탄생 후는 진화론을 믿는다. 신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지구의 역사를 볼 때 진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절충안이라 생각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책은 철학자가 쓴 신에 대한 이야기다. 무신론자가 쓴 책이 아니다. 무신론자가 이병철 회자의 질문에 답했다면 어떤 답을 했을지에 대해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의 책을 통해 답변을 하고 있고 유신론자들의 답변은 마찬가지로 그들의 책과 성경을 통해 알려준다.

 

유신론자의 답변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시해서 탐구하고 알려주는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의 고백론을 포함한 저사를 통해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반면에 가장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보다는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데이비드 밀스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그들의 주장을 알려준다. 재미있게도 과학자로 알려져있고 실제로도 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이 작가로 불리기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꿈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주장한 바가 과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려서 말이다. 이 책이 아닌 다른 인터넷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책을 읽다 문득 든 생각이 분명히 저자는 신이 있다는 유신론자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유신론과 무신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해 주지만 뉘앙스나 설명하는 부분에서 신이 있다는 쪽의 주장에 비해 무신론자의 주장은 잘못된 논조와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그들의 주장이 잘 못되었다고한다. 

 

"오늘날 도킨스와 밀스와 스텐저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적 근거를 동원해 우주에는 신이 없다고 외치며 기독교를 미신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른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fallacy of straw man)를 범하는 것이 된다. 허수아비 논증이란 상대방의 주장을 자신이 공격하가 쉽게 자의적으로 단순화하거나 왜곡해서 허수아비를 세운 다음 그것을 공격해 허물어뜨리는 방식의 논증인데, 그 내용을 불문하고 논리적 오류에 속한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많은 인간의 사상에 대해 밝히고 알려주고 논쟁을 거듭했는데 신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맞는 듯 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과학은 그들이 탐구할 대상이 아니고 인간이 탐구할 대상인데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예전에는 철학자들이 이를 밝혀 알려줬다.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유신론으로 입장을 서는 것이 더 흥미롭고 생각할꺼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입장은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업신여기며 까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기독교(천주교,개신교)를 공부하고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쏙쏙 빼서 주장을 하다보니 의도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신과 종교에 대한 반박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올바르지만 그 대상이 잘못되었고 손가락으로 가르친 지점이 아닌 손가락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은 증명을 해야 하는데 과학은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또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신이 있다는 유신론자들의 주장이 비과학적이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도 과학적으로 풀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구의 탄생을 빅뱅과 여러 우주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정작 탄생 배경은 우연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이 있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발전을 시킨 많은 측면이 있다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반대로 인류를 제노사이드할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도 강하다는 것도 인정된다. 그런데, 종교의 잘못된 점은 종교가 갖고 있는 잘못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종교를 앞세운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종교가 아니라도 정치, 민족, 사상등으로 문제가 된 적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전부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문제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는 지극히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작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위해서 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것이 문제일뿐 종교 자체가 문제이고 신이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그중에서도 정확하게 개신교이다. 개독교라는 표현을 듣는 바로 그 종교이다. 흥미롭게도 신학적이지 않고 기독교를 권하지 않는 철학적인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이 그 어떤 종교서적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읽힌다. 믿음이라는 대상에 대해 무조건 믿으라며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무신론자들의 과학적인 이야기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과학이라 이야기하지만 그마저도 - 물리학 분야에 속하는데 이 역시도 과학이로되 과학은 아닌 학문이 되어버린다 - 애매한 무신론자들의 이야기를 반박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된다.

 

여기서 개인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을 무신론자들이나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읽었을 때 어떤 관점으로 책을 읽게 되고 알게되는지 여부까지는 알 수없다. 이미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믿게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상과 믿음에 길들여져 있어 책에서 나오는 논점이 더더욱 내가 믿고 싶은 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수는 없다. 저자가 정확하게 원한 바와는 다른 방향으로 책을 읽었을 수 있다. 아무리 읽어도 저자는 신이 있다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인으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는 분명히 없다.

 

이병철 회장은 종교와 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신을 믿고 그에 따른 종교라는 매개체로 연결되는 것인데 종교와 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온갖 잘못된 현상과 편향과 편집적인 아집이 생겨 그 점이 문제일뿐이다. 그렇다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들도 신이 있다 없다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니 말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해결될 것이라 믿기에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책을 집어들어 읽을 수는 없지만 책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 움직이고 움직이며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신을 믿는 입장이든 믿지 않는 입장이든 인류에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한번정도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규라는 저자를 알게 되었다는 것도 있다. 이 정도의 지적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쉽게 자신이 갖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풀어내는 능력이 참으로 탁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쪽 분야의 저자들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쓸데없이 어렵게 지적 허영만 글로 풀어내는 저자들이 많은데 아주 괜찮은 저자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펴 내는 저자가 아니라 저자의 책을 자주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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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 2014.09.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