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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철사장으로 연마한 '만랩 내공' 에세이스트 탄생!
"글의 철사장으로 연마한 '만랩 내공' 에세이스트 탄생!" 내용보기
1.'철사장'이란 게 있다. 40대를 넘어선 사람은 알 것이다. 뜨겁게 달군 불화로 속 모래와 쇠구슬에 손을 반복해 쑤셔가며 단련해가는 중국 무술훈련 말이다. 소년기를 흔들었던 성룡, 이연걸, 원표의 '쿵후영화'에는 어김없이 이런 씬이 등장했었다. 말끔하고 위풍당당한 정식무술도장에서 단체로 훈련을 받는 문하생들은 족보도 없는 초라한 주인공을 얕본다. 물론 주인공은 옴팡 깨진
"글의 철사장으로 연마한 '만랩 내공' 에세이스트 탄생!" 내용보기
1.
'철사장'이란 게 있다. 40대를 넘어선 사람은 알 것이다. 뜨겁게 달군 불화로 속 모래와 쇠구슬에 손을 반복해 쑤셔가며 단련해가는 중국 무술훈련 말이다. 소년기를 흔들었던 성룡, 이연걸, 원표의 '쿵후영화'에는 어김없이 이런 씬이 등장했었다. 말끔하고 위풍당당한 정식무술도장에서 단체로 훈련을 받는 문하생들은 족보도 없는 초라한 주인공을 얕본다. 물론 주인공은 옴팡 깨진다. 절치부심하여 재야에 있는 정체불명 고주망태 사부에게서 물기르기, 외다리타기, 젓가락으로 공기알 줍기, 철사장 등등을 연마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난 어느 날, 자신에게 모욕을 선보인 무도관을 찾아가 당당히 일합을 겨룬다. 마침내 그는 상대를 제압해 설욕한다. 이미 그의 몸과 정신에는 단기속성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ㅡ내공(內功)으로 가득하다. 본래 쿵푸[功夫]란 내적으로 쌓아올린 공부(工夫)이기도 하다.

2.
순전히 내 생각이다. 슬픔은 다양한 입구로 들어왔다가 하나의 출구로 빠져나간다. 즉, 단일한 감정이다. 반면 웃음은 다르다. 표현인 동시에 감정이다. 웃음의 층위는 천차만별이다. 순수한 재미에서 유발되는 것, 울지 못해 터져나오는 감정의 오작동, 세상의 무대에서 선보이는 연기(썩소, 억지미소), 때론 주먹보다 더 강렬한 한방의 해학 등등 웃음은 그 입구와 출구도 다양하다.

3.
"잘 먹고 잘 마시는 것, 형제들이여, 그것은 결코 쓰잘 데 없는 기술이 아니다! 그러니 부숴버려라, 도무지 즐거워할 줄을 모르는 자들의 서판을 부숴버려라!"
ㅡ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37쪽, 책세상

4.
자, 이제 작정하고 책 한 권 읽은 얘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위 잡설 3가지는 이 책에 관한, 아니 이 책을 쓴 작가에 관한 내 단상 내지 인용구이다. 에세이는 결국 글쓴이가 누구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여하튼 신간에 대한 독서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니와, 생존작가의 북리뷰 역시 잘 않게 되는/못하는 나에게 이례적인 경우가 생겼다. 페친이기도 한 작가 황서미 님(이하 존칭 생략)이 숱한 철사장으로 탑재한 내공을 마침내 첫 번째 책으로 펴냈기 때문이다. 이제 번지르르한 무도관의 문하생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황서미는 '그의 전용게시판에 들른 것인가' 싶을 정도로 매일 내 페북 피드를 달구며 엄청난 필력과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이는 작가다. 짧든 길든, 웃음이든 슬픔이든, 그 적중률과 밀도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면서 천의무봉, 입과 눈에 쏙쏙 박히는 문장을 적확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건 결코 단기간에 생겨난 능력이 아니다. 카피라이터에서부터 시나리오 작가, 푸드에세이스트, 고스트라이터까지 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있는 직업적 작가, 돈이 되는 글이란 글은 죄다 섭렵한 집필노동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글에 관한 철사장으로 단련된 글근육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좋은 글은 입으로 되뇌어 읽을 때 막힘이 없다. 그 내공이 깊을수록 글이 쉽고 잘 읽힌다. 그 내공으로 충분히 잘 쓰여졌을 텐데도, 숱한 출판 교정으로 거듭났을 재야 무림고수의 주옥같은 글들이 이제 그의 이름을 단 첫 번째 책에 담겨져 있다.

여기에 그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 바로 웃음이야말로 책의 화룡점정이다. 뒤틀고 에둘러서 웃기는 식이 아니라 정곡으로 찌르고 드러내어 웃긴다. 재미있어서 웃고, 울기에도 애매해서 웃을 수밖에 없다. 독자에게나 출판사의 입장에서나 꽤 근사한 매력이다. 순전히 그가 몸으로 끌고 부딪혀온 시간, 그 경험, 그로 인해 생겨나는 솔직함과 핍진성, 통찰 덕이 8할 이상일 것이다.

흔히 에세이스트라고 하면 고아한 글을 통해 세상과 사람과 관계에 대해 정중히 훈수와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트렌드 속 그 누군가들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의 황서미는 다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마 드러내지 못한 욕망, 섹스, 감정, 경험, 분명히 해봤을 상상 따위를 묵직한 돌직구의 승부사처럼 던져댄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글 뒤에서 유쾌 통쾌 상쾌해하며 대리배설, 아니 대리만족을 하며 웃고 공감하고 감동받고 급기야 감사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고마워, 어쩌면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얘기를 이렇게 찰떡같이 해주지?"

작가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소설로 옮기되 한 개인의 고통과 환희와 욕망을 구체적 보편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 아니 에르노를 좋아한다. 작가 황서미는 에세이계의 아니 에르노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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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피 뚝뚝 떨어지는 본인의 미친 사랑의 경험을 날 것 그대로 이 책에 저며놓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본디 자기의 몸과 생활을 재료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 책도 그 탁월한 결과물이다."
ㅡ황서미,《시나리오 쓰고 있네》, 37쪽, 씽크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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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은 온전히 작가 황서미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스스로의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일 테니까. 아마도 머잖아 더욱 유명해질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을 느리게 읽는 책알못 나에게도 단숨에 익힐 만큼 재미가 있었다. 라디오의 <컬투쇼> 베스트 에피소드편을 들으면서 조금씩 방송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 남은 러닝타임을 계산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의 재미가 딱 그랬다. 책광고를 하는 게 아니고, 정말 그랬다. 밤새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으니,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
s******4 2020.08.30.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