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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웬만하면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읽은 국내 소설이다. 김영하라는 이름은 2000년대 중반, KBS 1라디오 프로그램 <김영하의 문화 포커스>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매일 저녁 10시 10분이면 공연 예술을 포함해서 문화계 전반의 소식을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문학에 관한 내용을 좋아했다. 이후에는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그가 소개하는 책을 만났고, 최근에는 TV 오락(?)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작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 국내 문학에 관한 반감 때문이었으리라...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원신연 감독, 2017.) 개봉을 이유로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p.7) 어느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함께 작가의 말을 포함해서 173페이지 분량을 출, 퇴근 지하철에서 이틀에 나누어 보았다. 첫인상은 유려하고 유연하면서 담백함이 물씬 느껴진다. 너무 힘을 가하지 않으면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문장은 절제미가 돋보이고... 나는 시끄럽고 복잡한 환경에서도 술술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책상 위의 원고 노동자로 얼마나 많은 글을 썼다가 지웠을까? 고생의 흔적이 여백마다 묻어난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아니 남이 아직 오르지 않은 산을 먼저 선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는 먼저 산에 올랐고, 땅을 선점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해서... 반야심경이 손에 잡힌다. 펼쳐 읽는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의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p.11-12) 여기에는 작가의 독서, 종교, 사상, 철학, 음악, 예술, 역사, 의학...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마치 고전에 등장하는 현자의 목소리처럼, 그의 글은 머릿속을 오랫동안 울리게 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보면서였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 그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퇴행성 치매로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p.14)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25~26년 전이다. 살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살인을 멈췄다. 희생자의 딸 은희를 입양해서 키웠다. 다른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나와 비슷한 놈이 나타났다. 박주태,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은희의 남자친구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 생의 업, 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은희가 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먼저 그를 죽여야 한다. 선수를 쳐야 한다... 치매 노인의 시각으로 서술하는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죽기 전에 바보가 될 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테니까.(p.52) 공(空),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마음속의 모든 것을 비우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조차 비워야 하나? 하지만 주인공은 비움으로, 잊어버림으로 또 다른 고통을 맞이한다. 비웠으면 새로운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고통 없이 바보로 죽는 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사는 게 아닌가...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p.57) 나는 조용한 세상이 좋다.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너무 많은 표지판, 간판,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무섭다.(p.94) 책장에서 괜찮은 시를 발견했다. 감탄하여 읽고 또 읽으며 외우려 애썼는데, 알고 보니 내가 쓴 시였다.(p.96)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p.98)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엔 별들이 찬란하다.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p.119) 오늘은 정신이 너무 또렷하다. 내가 알츠하이머라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p.123) 미지근한 물속을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p.148-149) 시간과 기억의 싸움은 이미 정해진 승부이다... 약을 쓰고, 메모하고, 녹음해도 시간은 막을 수 없다. 나이 들어감이 서글프다. 김영하의 소설을 더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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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영화가 개봉을 했다는 소식에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후 책을 다시 구매했다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힌다는 것이다 너무나 잘 읽어서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70대의 고독한 노인 김병수 그는 연쇄살인범이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이기도 하다 그는 30년 동안 꾸준히 살인을 해오다가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이기도 하낟 그에게는 은희라는 딸이 하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딸 주변에 박주태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김병수는 그가 연쇄살인범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고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와 싸우며 박주태와의 싸움도 시작한다 게다가 딸 은희도 지켜야 한다 김병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기억과 싸우며 어떻게든 은희를 지키려 하지만 점점 기억이 그를 더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과연 김병수는 딸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박주태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김병수의 기억에 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고 또 다른 연쇄살인범 박주태에 대한 것도 존재여부가 혼란스럽다 김병수는 이렇게 알츠하이머와 싸우며 어쩌면 자신의 기억과 싸우고 있다
독특한 소재와 함께 단숨에 읽히는 이 이야기는 결말에 약간 실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조금은 결말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내 예상보다 다르게 흘러가는게 좀 놀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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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부터 하자면, 나는 영화속 김병수를 통해 <테이큰> 시리즈의 리암 니슨 아빠를 보았던 것 같다.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하고 또 기억하려 애를 쓰던 설경구의 김병수에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부성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꼈었다. 한국판 <테이큰>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깝게도 이번 건은 시리즈로 못 만들겠네.. 이런 아쉬움도 느꼈었다. 해서 원작 읽기를 더, 더, 더, 원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받았던 여운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하지만 원작은 영화와 달랐다. 똑같을 순 없다라는 걸 인지하고 읽었지만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중요 설정만 같고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읽는 내내 영화속 김병수와 소설속 김병수, 그리고 영화속 은희와 소설속 은희를 자꾸 비교하고 왜 다르냐고 따지게 되고 급기야 실망까지하고 말았다. 소설을 먼저 읽었으면 좀 달랐을까. 문장의 호흡이 짧은 소설이라 쉬이 읽히기는 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건 소설속 김병수가 말했던 것처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해보다는 감정적으로 아쉬웠다. 아무래도 정말 나는 설경구의 김병수와 설현의 은희가 너무 좋았었나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내 눈앞의 이 이야기들이 낯설고 또 낯설다.
p.86 내 고향 앞길은 벚꽃이 좋았다. 일제시대에 심은 그 벚나무 터널 아래로 봄이면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나는 부러 그 길을 에둘아 다녔다.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사나운 개는 작대기로 쫓지만 꽃은 그럴 수가 없다. 꽃은 맹렬하고 적나라하다. 그 벚꽃길, 자꾸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저 꽃인 것을. p.115 사람들은 악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부질없는 바람. 악은 무지개 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악이지. 중세 유럽에선 후배위, 동성애도 죄악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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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은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
살인자의 기억법을 영화 예고편으로 보고 문득 ‘어, 저 책 어디서 봤던 책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 책에 대해 잠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으나 그때만 해도 이 책을 꼭 봐야겠다라는 생각은 없었다. 막연하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봐야지 정도였을까. 그런데 어디서 문득 영화의 결말과 책의 결말이 다르다는 말을 듣고 비록 영화로는 보지 못했지만 책에서는 어떤 결말로 끝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주변에 이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이 자꾸 재미있다고하니까 더욱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연쇄살인범 김병수의 입장에서 독백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느 책에서도 접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소재에 이끌려 한장 한장 읽어가다보니 어느덧 결말까지 이르게 되었다. 30년동안 꾸준히 살인을 해오다 25년 전부터 살인을 그만두게 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현재는 딸인 은희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계속나서 어긋나는 그의 기억,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그리고 그의 딸 은희에게 박주태라는 남자가 자꾸만 접근하는데, 그는 현재 김병수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의 범인이라 직감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딸을 지키기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살인의 마지막로 박주태를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그와중에 김병수의 치매 증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예전의 살인 본능까지 점점 깨어나고 그는 혹시 마음에 일어나는 연쇄살인이 본인이 저지른 일이 아닐까 의심하기에 이른다. 과연 이 모든 것의 결말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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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일 년 반 만에 펴낸 장편소설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은퇴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로 데뷔한 지 19년, 독보적인 스타일로 여전히 가장 젊은 작가라 불리는 저자의 이번 소설에서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모든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김영하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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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윤리 속에 묻혀 성장해 오고, 그렇게 살아왔던 나에겐 오늘날 벌어지는 다양성의 사회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동성의 사랑이라든지, 살인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가족의 해체 등은 정말 인정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다양성의 사회라고 해도 기본적인 진리는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도 기존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이라면 할 말이 적겠지만, 어찌 보면 몸이 거부하는 그런 일들이 요즘 버젓하게 통용해고 있는 현실이 못내 힘 든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제목의 글이 왜 나올까? 부터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생각들이 분출하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특별한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특성이 이런 기발한 제목을 만들어 내는 촉매가 되는 것이 아니랴 여겨졌다. 글을 쓰는 것은 독자들과의 호흡을 생명으로 한다. 독자들이 엽기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싫어한다면 구태여 이런 제목으로 다가올 필요가 없다. 독자들의 호기심, 그 요소에 마음을 두기 때문에 저자의 호흡 속에 이런 제목이 살아날 것이라 생각되었다. 글의 내용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병자의 일탈된 행위를 기록해 내고 있는, 특별한 소재가 담겨져 있는 글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살인을 하면서 쾌감을 느꼈던 인물이 어느 때부터인가 그 일을 삶 속에서 지운다. 그것은 사고의 현장에서 머리를 다치고, 아이를 한 명 거두면서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살인과는 거리가 먼, 모법적인 시민의 삶을 살아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데 25년이 지난 시점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흔히 말하는, 고령화 사회가 된 우리 주변에도 많은 치매라는 병이다. 가장 가까운 일들부터 잊어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 일로 인해서 자녀로 키운 아이, 은희와 관계도 이상해진다. 은희는 물론 자신이 친 딸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키워준 정으로 그를 아버지로 정성껏 모신다. 그런 가운데 치매로 황당하고 힘 드는 모습을 많이 보이니까, 상의하여 요양원 같은 곳에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대단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든 삶을 기록한다. 그리고 가끔씩 그 기록물을 통해 기억을 재생시키고 한다. 그러다 사고를 통해 어떤 사람을 만난다. 내가 어떤 사람의 차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상한 상황을 목도한다. 그 사람의 차에서 핏자국 같은 것을 본 것이다. 나는 그가 나와 동류인, 요즘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살인자라고 인식한다. 나는 그가 생각해 줘서 그냥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그에게 뒤에 일어날 문제를 위해 이름을 묻는다. 그는 박주태라고 한다. 그러나 그를 잊어버리는 삶이 이루어지고, 은희를 통해 다시 그를 만난다. 그가 은희와 결혼할 대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박주태가 은희를 죽이려고 하는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살인을 해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된다. 박주태를 죽이는 일만이 은희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희는 그가 착한 사람이고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나에게 말한다. 이러한 옥신각신하는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은희가 사라진다. 나는 박주태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주변을 미행하다가 결국 경찰에 알린다. 경찰들이 집에 몰려온다. 그 가운데 박주태가 있다. 나는 그 즈음에 집에서 기르던 개도 알지 못한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나에게 개가 짓는다. 그것이 못마땅해 나는 개에게 돌을 던진다. 나의 병증이 더 심해져 가는 것이다. 경찰들은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은희가 죽었고, 내가 은희를 죽였다고. 박주태가 죽였는데, 내가 죽였다고 강변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당혹해 한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나의 환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은희는 내 딸이 아니고 노인의 수발을 맡아 뒤를 보아주던 아줌마였다. 그리고 나의 병증은 짙어져 가면서 환상에 젖어 살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무서운 치매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종점을 향한다. 기록물도 아무런 소용에 닿지 않는다. 그 기록마저 잊혀져가는 나의 삶 속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것을 살인과 엮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좀 무시무시하지만, 그 잊음의 삶은 참으로 당혹하게 한다. 잊음과 잊힘은 무척이나 다르다. 잊힘의 현상 속에 살아있다는 의미가 무색해 진다. 타인과 관계 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잊힘의 상태, 그 무서운 삶의 흔적을 살인이라는 과격한, 비윤리적인 일과 엮으면서 우리들에게 황당한 세계를 보여준다. 참으로 인간이기가 무서워지는 세월의 흔적, 내 주변에도 그런 분이 계셔 이 글을 읽으면서 안타까움을 감할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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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님의 책은 나에게 조금은 난해한 책으로,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접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제목이 독특하고 눈에 끌려 관심가던 차에 일단 책이 얇고, 보기 편한 글자수에 부담감은 덜했다. 정말 지인들의 반응처럼, 여느소설처럼 술술 너무 잘 읽혀서 초반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이 이렇게 잘 읽히기도 하는구나'
연쇄살인을 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
그러다 나는 정말 제대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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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문체가 좋았다... tv예능에서 보았던 작가의 모습과 닮은 문체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내용인데 피식~ 웃음이나고 왠지 살인자인 주인공의 편이 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선 뭐지?? 내가 무엇을 놓쳤나? 동명의 영화를 보려하는데 왠지 어떤 틀안에 나의 사고를 꿰어 맞추는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어서 풍부한 감성을 느끼고... 많은 사고를 하고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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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은 무척이나 빨리 읽히는 작품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병수의 기억과 시점을 넘나드는 바람에 더 축약되고 함축적인 전개가 이루어진다. 문득 기억되는 기억의 파편들,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지는 특성들, 그리고 노인이라는 설정에서 비롯되는 시야의 협소함...... 그 모든 것이 병수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회상하는 모든 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으로는 첫 번째 소설이었다. 주로 에세이 작품과 TV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를 습득해 온 나에게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 온 소설이었다. 작가의 의도가 모호함과 정의되지 못하는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독자들에게 확실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뭔가 남겨둔 혹은 놓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의도치 않게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의무감이 생겼고, 평이하게 이해하기에는 작가가 숨겨 놓은 덫에 걸린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은 영화화 되었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소재만 차용하고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변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이 작품을 영상화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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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크게 실망하여 영화의 원작인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을 읽게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가 차라리 나았다는 게 개인적인 평이다. 솔직히 말해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글만 따로 접했다면, 아마추어 장르 소설가의 습작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타 기성작가에 비하여 문장력이 주된 요소가 아니다. 대신 그를 만회하는 소설적 매력과 날카로운 시선에 끌려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적 매력으로 커버하기에는 문장력이 심하게 약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도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다. 반전, 열린 결말 이라고 하지만 사실 읽다 보면 중반부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결말을 예측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도 없다. 다만 사이코패스 치매노인과 그 딸이 있을 뿐이다. 일부러 영화화를 노리고 이 소설을 쓴 건가 싶을 정도로 여타 넘쳐나는 스릴러/범죄 소설이나 영화와 차별점이 없다. 기존 김영하 작가의 글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거나, 타 기성작가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