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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수 - 김근수 우리나라 기독교는 번영신학이 수십년간 대세였던것 같다. 교단에서도 교인수가 중요해서 어느정도 이상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듯하다. 결국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서 세상이 바라는대로 복을 선포하게 되고 이는 기복신앙을 우리나라 기독교의 기본 토양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받는다는 번영신학이 대세가 되고 사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고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어버렸다. 교회는 사회의 성공, 즉 금전적 부유함과 세상의 권력과 가까워졌다. 교회는 높은 자리에서 어렵고 낮은자들을 내려다 보는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받은 자, 높은 자와 함께하시지 않았다. 어렵고 낮은자,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자, 죄인들과 함께하셨다. 죄인들에게 죄인이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배푸셨다. 가난한 자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받으셨다. 그들보다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지 않으셨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셨다. 그당시 인정받지 못하던 아이들을 품으시고, 여성들도 제자로 함께 하셨다. 이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많은 돈을 벌어서 풍족함 속에서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사회적으로 높은자리에 올라가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아주 조금 기부하는 것으로 낮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의무는 다했다고 자위한다. 예수님께서 살아내신 삶과 다른 삶을 원하는 듯하다.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그렇게 살아낼 용기가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낼때 세상에서 잃어버릴 재물, 명성등을 포기할만큼 믿음이 크지 못하다. 계속해서 세상의 복과 예수님의 삶을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나의 믿음 없음에 대해 기도할 뿐이다. 나 자신도 살아내지 못하는 삶을 공동체가 살아내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바른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그대로 살지 못하기에 공동체에게 그런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비판하고 예수님의 삶을 살아내길 요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삶을 더욱 살아내지 못할까봐 두렵다. 공동체와 함께 나 자신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낮고 어려운 곳으로 함께해야 한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씌여진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작년 말이 출판된 김근수 선생님의 요한복음 해설서인 평화의 예수를 보고 선생님의 다른 복음 해설서도 궁금해서 고른 책이다. 차일 피일 미루다가 로완 윌리엄스의 마가복음 해설을 읽고 생각나서 집어든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좀 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쉽게 읽어 넘기지 못하는 것은 그 메시지의 무거움 때문인듯 하다. #독서감상 #독서 #기독교 #해방신학 #2019년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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