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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고향 집은 추억 속 안식처로 힘들고 지칠 때면 딸이 귀한 집의 첫 손녀로 태어나 사랑을 받았던 손녀의 희로애락이 깃든 마음의 공간으로 밤하늘에 붙박인 별처럼 은은한 향수를 투사한다. 함석을 덧대어 만든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마당을 지나 토담에 신발을 벗고 삐걱거리는 마루를 지나 방에 들어서면 매끈하게 다듬은 나무 위에 허름한 농이 놓인 검박함이 편안함을 주었다. 할머니가 머무르던 큰방은 장판 아래 모래를 덧깔아 딱딱함을 없앴고, 명절이면 사촌들이 몰려 와 베개를 던지며 뛰어놀다 넘어져도 다치는 일이 별로 없어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방학 때면 강가에서 놀다 방죽 위에 풀 뜯는 소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길 해가 짧다며 불평할 때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 땀으로 얼룩진 몸을 씻고 잠들었다가 이튿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던 추억은 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자랐던 여름날의 풍경이다.
방 옆에 딸린 부엌에서 어머니는 손을 재개 놀려 호박을 채 썰고 할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하지감자를 숟가락으로 긁어 저녁을 준비하는 풍경은 그리움으로 응축된 아동기의 추억으로 전설처럼 자리한다. 장성한 오누이는 일가를 이루고 획일화된 공간인 아파트에서 평준화된 삶을 잇고 있다. 맞벌이 부부로 일하며 살기에는 아파트가 제격이라며 자신의 생각보다는 건설업자의 생각이 반영된 집에서 결함을 보수하며 살아온 지 14년째다. 이웃들은 시대의 트렌드를 좇아 베란다를 확장하고 벽지를 갈고 욕조를 깨내는 등 대대적인 공사로 돈을 들이고 있지만 낡고 퇴색한 대로 살고 있다. 명절이면 찾아와 안부를 전하는 제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면 도시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평수를 늘려가는 일이 미완의 숙제처럼 비춰진다. 어떤 이는 집값이 꼭지에 올랐을 때 분양을 받았다가 중도금도 채 넣지 못하였는데 몇 천 만 원이 손해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토로할 때면 휴식의 공간이자 재충전의 공간이 집이 투자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가슴앓이의 주범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가온 건축을 운영하는 건축가 부부가 같은 길을 걸으며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향기로움이 집을 짓는 과정 속에 묻어난다. 부부는 사람의 꿈과 땅의 꿈을 들어주는 일을 주로 맡아 유한한 시간 속에 공을 들여 궁극적으로는 집을 완성해 가는 일에 함께 한다. 실적을 남겨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짓눌려 내면의 소리를 듣는 과정을 간과한 채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게 현대인들의 모습 중 하나다. 집을 짓기 전 집에 담을 나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현재를 점검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찾아 확보해 가는 일이 현안으로 대두된다. 한 곳에 정주하며 살던 공동체 사회와는 달리 필요에 의해서라면 이사를 다니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시대에 오랫동안 소유하며 관리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사람을 살리는 집을 짓고 연륜이 깊어진 만큼 주인과 함께 하는 집이 늘어나길 바라며 저자는 집을 짓고 있다.
집은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이 걱정 없이 쉬면서 서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교감하는 가운데 자그마한 것이라도 나누는 공간이다. 집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건축물은 달라질 것이므로 저자는 먼저 의뢰인의 욕구를 충분히 들어 설계에 들어가는 정밀함을 보인다. 건축가가 설계에 들어가기 전 빛을 고려하여 집이 빛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정서까지 고려하는 면밀함을 읽을 수 있다. 개별성을 존중받으면서 자기만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1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책 향 가득한 서재에서 사색하며 글을 쓰는 내밀한 공간에서 놀 시간을 떠올리며 공간을 이동하며 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간다. 지붕과 천장 사이의 공간인 다락은 잉여의 공간으로 생활에 잉여를 주고 육체에 잉여를 줘 사색의 창으로도 작용한다.
혼잡한 도심보다는 공기 좋은 한적한 곳에 친자연적인 재료로 집을 지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우리 몸을 살리는 집에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단열성능이 강한 창호지는 바람은 통하지만 열은 차단하고 냄새를 빨아들이고 습도를 조절해주는 기능이 뛰어나다니 선조들의 통찰력에 숙연해진다. 골목이 살아 있는 시골과는 달리 사람들이 내왕하던 골목까지 갉아 건물을 세워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도시의 살풍경이 아쉽다. 자유로운 공간에 아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은 소나기 학교의 모습은 통제와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는 일반적인 학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든 것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건축은 집을 짓고 살아갈 이의 가치관이 넘나들며 녹아 흐르는 구조물이다. 의뢰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집주인의 바람을 반영하여 설계하여 집을 짓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한옥을 짓고 살고 싶은 욕구를 돋운다. 자연을 수용하여 집과 자연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균형을 유지한 대로 원하는 희망들을 종합하여 건축물을 완공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일련의 과정이 존귀한 일로 모아진다. 어지러운 시대에 우여곡절을 겪고 그 사연을 다 풀어내지 못한 채 거창에서 호두나무를 심는 농부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부부의 모습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떠올리며 어디에 가치를 두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를 위한 집에서 나답게 살아갈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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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내 집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월세,전세,자가 등 주거의 형태도 제각각이다.살아가는데 편리함과 자기만의 공간을 갖을 수 있기에 단독주택보다는 맨션,아파트 등 현대적 건축을 선호하는 것이 주거공간의 대세이다.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현대적 인테리어로 치장하여 주부들의 일손을 덜어 주는 것도 현대식 빌라,아파트가 주는 장점이기도 하다.다만 지금 살고 있는 집들이 대부분 현대식 구조에 맞춰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이웃간의 정,소통과 대화 등이 단절되어 있는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함이 깃들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이렇게 현대적 빌라,아파트 등은 설계사,건축업자,시공사,감리를 거쳐 시공되지만 10여 년만 흘르면 집안 곳곳이 균열이 생기면서 뜯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빌라,아파트가 살기에는 편하지만 내구성이 오래가지를 못하는 것이 단점이다.또한 집이라는 거주공간이 의식주를 해결함은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이기도 하다.그런데 집이라는 공간은 개성과 집안의 내력과 희망을 불어넣는 곳은 아닐까 되새겨 본다.비록 현대적 가옥이 갖고 있는 편리성에는 못미치지만 한국 전통주택을 들여다 보면 시간의 풍상을 견뎌내고 오랜 세월 가문을 빛내여 주고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부가 건축과 동문인 공저자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집을 짓기 전에 터를 잡고 그 터에 앉아 산과 들,물을 바라보면서 과연 오래 시간 그 터의 임자로서 한세월을 영위하면서 편안하고 인간다우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주공간에 대한 단상일 것이다.몇 년 살다 프리미엄이 오른다든지 학군,직장에 따라 철새와 같이 이리 저리 주거공간을 옮겨 가는 것은 삶에 정처가 없다는 의미이고 거주공간에 대한 가치마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의 경제적 능력,취향,목적에 따라 거주공간의 크기나 장소는 달라지게 마련이다.대부분 자식들이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부는 자식들과 함께 공생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자식들이 분가를 하게 되면 부부는 노후의 주거공간을 잘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그렇게 하려면 젊은 시절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돈을 모아 말년에는 자신이 원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와 우리를 살리는 윤택하고 멋진 주거공간을 설계해 보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과 사색의 공간,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남향집,그리고 멀리 내려다 보이는 산과 강,뒤에는 산새들이 지저귀는 전원의 주택도 고려해 볼 만하다.머리 속에 어떠한 주거공간을 그릴 것인가는 부부가 합심하여 연구하고 이를 건축설계사에 의뢰하여 세세한 공간까지 부탁하면 멋진 주거공간을 연출할 것이다.경제적 능력이 닿는다면 자식들과 함께 거주하는 연결형 주택도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가족 구성원간의 대화와 소통이 부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좀 힘들겠지만)조부모,부모,자식 3세대가 살아가려는 공동체 의식도 매우 소중하다.
각박한 삶,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주거공간만이라도 자신의 기를 살리고 사람다워지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구가하는 것은 요원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노부부는 여생을 느긋하게 보내고 자식들은 직장과 가까운 교외지역을 잘 선택하고 주거공간을 마련하여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건강하고 재물이 따르는 자신만의 집을 지금부터라도 설계해 보았으면 한다.어떠한 주거공간에 사느냐에 따라 건강과 재물이 들어올 수도 있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풍수지리가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집은 개인의 운세와 역량을 다듬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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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집에서 삽니다. 집이란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저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잊고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가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다'라고 느낍니다." 2. 오늘은 '집'에 대한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립니다. 사람이 살만한 집, 사람이 살아나는 집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작업에 옮기는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가보겠습니다. 3.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소 원초적인 질문일 수 도 있는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한가?'로 시작합니다. 1부의 타이틀은 "나에게 묻는다"입니다. 2부에서는 안방, 거실, 빛과 바람 등 집의 요소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3부에서는 아파트와 친환경건축 등 오해하기 쉬운 삶의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4부에선 '살리는 집'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대해 풀어보고 있군요. 4. 요즘의 트렌드가 의식주(衣食住)의 순서대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의(衣)와 식(食)의 관심에서 주(住)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지요.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군요. 문학, 철학, 예술 등 그 자신의 관심사를 넣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집'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달리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램이 녹아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살인적인 도시의 땅값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결국 개인들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들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들에 의해 주택정책이 좌우되고, 사람들은 살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아 불편한 마음으로 늘 떠돌아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네를 없애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모순적인 '주택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싶은 장소에 자연스럽게 모여 살면서 원하는 대로 집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주택정책이 펼쳐지면 더 할 나위 없겠지요. 6. 건축의 가장 좋은 재료는 '빛'이라고 합니다. 빛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또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빛을 집안에 어떻게 끌여들이고, 반영하느냐에 따라 집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지요. "동쪽 창으로 온 방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은 사람을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하고 희망을 줍니다. 남쪽 창으로 종일 비추는 겨울나절의 빛은 따스함과 노곤함과 생에 대한 신뢰를 주고 긍정을 줍니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며 황금빛으로 울컥이게 하는 석양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7. '사람을 살리는 집'의 개념을 어디서 잡아야 할까요? 요즘 많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생태적이라는 것 혹은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은 자연의 소재를 사용하고 자연을 위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런 막연하고 소극적인 생활의 자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다시 생산되는 자연의 순환체계의 고리를 중간에 끊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8. 집을 지을 때는 단열 못지 않게 환기에도 그 만큼 관심을 갖기를 권유하고 있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열에만 신경쓰다보면 자연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지요. 9. 책에는 부부가 건축의뢰를 받아서 짓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직접 그린 수채화 그림,집의 안과 밖을 찍은 사진이 제법 많이 실려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사는 집 같은 집들을 보면서 만들어진 집이 아닌 내 뜻과 생각이 담긴 집을 짓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10. 어느 덧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이 사는(生)곳이 아니라, 투자 수단으로 사는(買)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집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만큼 나를 키워주고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몸을 누이는 공간으로만 생각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돌아보게 해주고 형편이 허락되어 나의 집에 나의 생각을 넣어 줄 때 참고를 했으면 하는 저자의 생각이 잔잔하게 녹아들어 있군요. 그 때를 소망하며 읽어 두실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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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아파트키즈로 자란 내게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다 내 생각의 전환점을 준 한권의 책을 만났으니, 그게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집을 짓기 위해 오래도록 나눈 이메일을 담아낸 책이었는데, 집에 대한 다양한 고민거리를 툭툭 던져주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주어 좋았던 기억이 난다.(리뷰는 여기 http://blog.cyworld.com/tongmom/7039912) 그 덕분에 '집을 짓는 것'에 대해 작은 관심을 품고 지내던 중 또 한 권의 매력적인 책을 만났다. 바로 <사람을 살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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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통해 자기가 완성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1) ybphia@nqver.com
나는 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나를 살리는 일'은 다른 사람의 취향과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내 마음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믿고 나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나를 위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옛사람들이 마루를 닦고, 방을 늘리고, 별채를 만들고, 마당을 쓸며 집에 쌓아온 묵직한 시간에 비하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집에 담긴 시간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가볍고 조금 쓸쓸하기조차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의 최후의 보루는 가족입니다.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집입니다.
P71 조선시대 저명한 학자들은 평생에 걸쳐 꽤 많은 집을 짓고 꽤 많은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여러 채의 다양한 건축물을 지은 후 제일 마지막에 지은 집이 세 칸 혹은 네 칸짜리 아주 작은 집이었다는 것입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남명은 산천재를, 우암은 남간정사를 남겨놓았습니다. 모두 작고 검박한 집들입니다.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기 그지없는 고승이 마지막으로 '할'을 하듯 외마디 비명 같은 집을 지어놓고 그들은 그 안에서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여태까지는 연습~'이었다는 것처럼 정신적 풍요와 맑은 생활과 나아가서는 인생의 완성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에게 그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집들의 크기를 대충 계산해 보았더니 대략 열 평 내외. 정말 작은 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로 머무르던 방의 크기도 두 평 남짓이었습니다.
집을 통해 자기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몸을 스스로 거울에 비쳐보지 않은 채, 남들이 나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로, 혹은 남들의 몸을 보고 자신의 몸으로 착각하여 지은 집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야 말로,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이 과잉인 세상입니다. 우리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집을 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살아갑니다. 집에도, 마음 한구석에도 그렇게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방이 필요합니다.
자연을 생각한 집을 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위협의 대상이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자연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고 집과 자연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균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연과 친한 집, 자연에 대비하는 집, 모두 같은 말이지만 뉘앙스가 조금씩은 다릅니다. 이 집은 자연에 살짝 기댄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골 주택은 겨울을 이겨낼 난방 방식이 가장 어렵습니다. 장작을 직접 때는 구들을 놓은 작은 온돌방을 하나 두고, 주된 난방은 기름과 겸용하는 화목보일러를 쓰기로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을 내려놓고 집의 크기를 소박하게 짓는 것입니다. 흔히 좋은 산이나 물이 있는 곳에 집을 지을 때 풍경을 담을 욕심에 너무 자연에 가깝게 다가갑니다. 그러면 집에서 보는 경치는 화려하겠지만 큰 자연과 다투게 되고 결국 압도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 건축에서는 자연을 존중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거리를 헤아려 집을 앉히고 인위적인 조경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집(노은주, 임형남 공저)》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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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우 특별한 책인 것 같다. 단지 집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정말 사람사는 공간과 사람사는 이야기를 함께 이야기하는 한 편의 에세이라는 생각이든다. 이 책 안에는 건축가로서의 저자들의 철학이 그들의 소소한 일상들과 잘 맞물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관계하는 모든 장소는 우리의 삶과 뗄래야 뗄 수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집은 사람을 살리는 집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아빠도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 엄마가 사용하는 부엌 이야기,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없는 건축가 자신이 아이들을 위하여 선택한 아파트의 현실 등이 200%의 공감을 불러온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연에서 온 재료로 자연속에 사는 전원주택의 삶을 소망하고 있다. 약간의 고독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삶을 한 층 여유롭게 한다는 저자의 말에 또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88쪽에는 내가 정말 바라던 넓은 창과 따스한 햇볕 그리고 높은 천장에 복층으로 된 거실에 벽면을 채운 책장과 가득한 책들이 있다. 이런 집이 정말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정겨운 삽화로 또는 실감나는 사진으로 꿈의 공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우기 저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함께 뭍어있어 더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을 살리는 집> 그런 집이 어떤 집인지는 이 책을 보면 여러분들도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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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살리는 집 *
- 이라는 다소 거창한 타이틀에...자연친화주의적인 집을 주장하려나? 하는 가벼운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한 책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 답게 단숨에 글로 가기 전에
차근차근 목차들을 먼저 살펴보고는-
옳다구나! 라는 탄성이 나오는 것을 보니..나와 딱 마음 맞는 책임에 틀림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에게 묻는 집에 대한 생각.
........................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한가.
나는 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나는 어디서 살고 싶은가.
나의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인가.
나는 언제 집에 머무는가.
.............................
질문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짧게 나마 스스로에게 대답을 해 보았다.
그리고나서 드는..이 괴로운 마음이란...
서글픔이라니....
삼 남매의 장녀로서...혼자 쓰는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보니...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은 집은 커녕 공간을 갖춰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말이다...
그.러.나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몇 배 더 많은 청춘이라면 청춘!
지금 내가 바라는 모습의 집 또는 공간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보다는... 앞으로 내가 원하는 집과 방을 가질수 있기를- 이라고 하는 소망과
이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를 살리는 집"
-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지.
(뭐..결국에는 돈을 벌어야겠는 이야기로 빠지겠지만..)
하지만- 어떤 것이든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은 아니기에 노은주 + 임형남 부부가 지은 "사람을 살리는 집"을 책을 통해
그네들의 집에 대한 철학과 지식, 그리고 조언들을 엿보면서 내것으로 삼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집=나만의 공간'을 거느리며 살아가도록 부지런 떨며 살아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쾌한 놀이터 같은 집!>도 참으로 근사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뭐, 본인을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시끄럽고 왁자지껄 한 곳/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위의 '유쾌한 놀이터 같은 집'의 제목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담소 나누며 차 한잔, 수다 삼매경 빠지는 것은 좋아하기에
나이가 들어 그네들이 내 집에 방문했을 때
같이 웃고 즐기며 편히 있다가는 공간을 내 집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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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30일에 읽기 시작- 8월1일에 완독을 끝내고 나니- 책의 옆구리에는 온통 포스트잇이 더덕더덕...
좋은 구절을 다 옮겨 오다가는 책을 통째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 뻔하겠다는 생각에
낭패아닌 낭패-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의 경우에는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이렇게 나름의 서평을 쓰며 정돈해가면서 스스로에게 되새김질을 하는 편인데.....
.............
이 책은 단순하게
'이런 집이 좋아요!' 이렇게 만드세요!'
- 라는 흔해빠진 집과 관련된 조언이나 던져주는 쉬이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책이다.
집을 만드는 것을
땅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집과 그 집에 살게 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영매'와 같은 역할이라고 표현한 것에
집짓기에 대한 나의 유치한 정의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표면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즉- 이 책은 '집에 대한 철학'과 '집짓기에 대한 철학'이 상당히 문학적으로 쓰여있는 책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한 바탕 소설을 읽고 난 것 같은 여운이 들게 하는 것도 있는...그런 묘한 책.
====================================================== 내가 바라는 집
나라는 존재의 일부를 품고 이를 표현해 주는 집
나를 살리는 집
- 이러한 집을 가지고 싶은 이라면...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찬찬히 읽고 읽으면서
<자신 나름의 집에 대한 철학/생각>을 해나가다보면...그리고 확고해지다보면
나 또한 '내가 바라는 나의 집'을 좀 더 선명하게 그리며 그 집에 몸을 뉘일 수 있겠지.
좋은 책을 만나 기분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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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일까요. 아니, 이 질문은 이렇게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집이란 무엇일까요?" 동물 중에서도 포유류의 상당수는, 자연의 동굴을 집으로 삼아 추위와 천적을 피하며 삽니다. 인간은 그 진화 과정을 통해 만물의 영장으로 발돋움했는데, 진화 혹은 문명 발달에 있어 각 단계의 핵심 특성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집의 발전입니다. 어떤 문명이 선진적이냐, 그렇지 않고 미개 상태에 머물러 있느냐는 바로 거주 형태의 발달 단계를 보고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찌감치, 지구촌 어디를 둘러 봐도 이만한 곳이 없다 싶은 명승 최적지에 터전을 잡고, 한반도의 자연 조건에 가장 알맞은 주거 형태를 이루고 살아 왔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시는 바처럼, 조상들이 터전을 이루고 살아 온 부락은 식수와 농경 용수를 얻기 좋은 물가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저자의 설명대로, "동구"라는 말의 동(洞)은 "같을 동"과 "물(水)"이라는 두 개념이 합쳐져 이룬 글자입니다. 물이 고여 있으면 모기의 유충이 번식하는 것이 필연인데, 이 유충의 창궐을 막기 위해 미꾸라지를 키웠고, 그 다 자란 미꾸라지를 사람들이 잡아 영양식으로 활용합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생활 양태입니다. 자연을 쓸데 없이 파괴하지도 않고, 자연으로부터 불의의 피해를 입지도 않습니다.
임형남- 노은주 두 분 저자는, 이처럼 거주자 개인과, 나아가 거주자가 속한 공동체와, 지구에 두 발을 디디고 사는 인류 전체를 위해 가장 적합한 주거 문화, 주거 양식이 무엇인지를, 이 책 전체를 통해, 때로는 담담히, 때로는 열렬히, 때로는 처연한 감상을 섞어 가며, 나 자신이 원하며 나 자신을 이롭게 하는 집이 진짜 어떤 것인지를 두고,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이자 선진 시민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활동가로서 참으로 유익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습니다.
두 분 저자는, 지금까지 고도 압축 성장기를 거쳐 오며 한국인이 발전시켜 온 집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점 일색은 아닙니다. 좋은 점 많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 숨가쁘고 험난한 시절을 살아 온 모습이 온전히 흉으로만 남지 않는 이치나 비슷합니다. 삼시 세 끼를 제대로 먹지 못 하고 살던 꾀죄죄한 삶에서, 어느덧 퀄리티와 명품을 논하는 태깔 나는 팔자로 그 짧은 시간 동안 탈바꿈했던 우리이기에, 쌓아 올리고 살아 온 집이란 것들이라야 부실 투성이가 아닐까, 잘 모르는 외부의 시선으로나, 평범한 상식의 결론으로나 당장이라도 붕괴해서 이상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저자들도 이 점을 지적하며, "워낙 많이도 짓고, 빨리도 지어 온 덕에 요령도 늘고 해서 서로(건축가들끼리를 말하는 거겠죠?) 칭찬해 주고 서로 자랑해 주는 품이 자연스러운 게 우리네 집짓기 문화"라고 설명합니다. 서구인들이 보면 몸서리를 치기도 하나 봅니다만, 낭비된 공간 없이 압축적으로 능률적으로 꽉꽉 네모반듯하게 잘 꾸려진 우리네 아파트들은, 비록 반(反)자연적이고 키치적이며 획일적일지언정, 지난 시절 우리네의, 모양새가 팍팍하나 이문은 박하지 않았던 삶의 여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두 분 저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 더 이상 집의 문화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이는, 집이 집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 영혼, 삶의 방식을 대변하고, 구체화하며, 나아가 규정하기까지 하는 사상(事象)이기에 그렇습니다. 두 분 저자는, 우리가 TV 등에서 잘 봐 와서 알듯, 그 유명한 환경 친화적 거주 조형인 "금산 주택"의 설계자들입니다. "금산 주택"이라는 "작품"을 통해 두 분이 의도했던 바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라.", "우리 겨레의 올바른 살이를 복원하라." 가 아니었을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이 예쁘고 친절하며 깊이 있는 책을 읽고 더욱 확신이 굳어졌습니다.
이 리뷰의 앞에서, (이 책에 소개된) 우리 조상들의 주거 문화 그 한 편린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저 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지도 않는, 상생의 문화, 상생의 주거 패턴을 구축하는 길, 그 힌트와 열쇠가 어디 놓여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의 조화, 합일입니다. 저자는 참으로 적절하게도 면앙정 송 순의 시조 한 수를 인용하며, 바람직한 주거 양태의 압축적 서술이자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개념을, 건축에 문외한이며 그도 부족해 우리 자신의 참된 지향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저자는 건축가답지 않게, 아니 어쩌면 진정 건축가답게(?),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곳을 이주, 이사해 오신 경험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자께서는 다양한 건축과 주거의 실례를 접했을 테고, 그 다양한 편차로부터 이상형의 성숙태를 귀납할 수 있는 바탕을 닦을 수 있었을 텝니다. 저자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고, 남들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고, 유행이나 대세가 아니다 싶으면 썰물처럼 빠져 나오는 세태를 개탄합니다. 집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이루는 요소인데, 살고 가꾸는 집이 그렇게나 자주 바뀌면, 그 주인인 인간은 올바른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집, 나아가, 정착지, 공동체는 인간과 일체를 이루는 게 이상적입니다. 떠돌이는 예로부터 온전한 인간 대접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하물며 지극히 속물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동선을 따라 주거를 변덕스레 교체하는 삶은, 자신 뿐 아니라 주변, 나아가 이웃에 죄를 짓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주거 패턴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주거 문화는, 환경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주거자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안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밖도 아닌 공간인 우리의 마루를 보십시오, 위의 면앙정 시조에서 보듯, 자연과 벗하는 삶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이 담보된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지향하는 건축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에, 저자의 건축물들은 마루 혹은 그 유사의 공간을 중시합니다. 전원에 위치한 주택은 언제나 난방이 문제이기에(도시 가스 공급이 어렵죠), 저자는 단열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환기의 문제를 잊지 않을 것을 가르칩니다. 이를 위한 핵심 요소가 창입니다. 우리 전통 문화에서 발전시켜 온 창호 문화는, 통풍과 보온의 trade-off 문제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해결한 기적적인 아이템입니다. 기계 장치에 의존한 환기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현대 주거 문화는 이미 그 인위와 기계화가 극치에 달한 상태이므로, 그 반대로 핸들을 꺾는 것이 삶을 지향하고 회복하는 길입니다. 저자는 여태 책 여섯 권을 저술한 이력이 쌓인 분이라고 합니다. 두 분 저자에 대한 관심이 남보다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 저인데, 벌써 그렇게나 되신 줄은 몰랐습니다. 저자의 이 말이 걸작입니다. "집 한 채를 짓고 나면,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집을 짓는다는 일 자체가 예사 분수로 넘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지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 명언을 듣고 문득 생각난 말은,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언명이었습니다. 이 말을 살짝 비틀자면, "언어는 올바른 집짓기로부터의 달콤하고 유익한 과실이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집을 고찰함으로써 바른 존재의 양식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이 청명한 언어가 전달하는 내용은, 그 탐구 과정의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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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쉬는 휴식처 집은 일을 하다가도 쉬고 싶으면 쉬고 힘이 들 때 쉬고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다. 휴식의 공간은 집에 들어와 사람을 쉬게 하기도 하는 안락한 공간을 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집은 살아오면서 모은 돈으로 산 재산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재산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집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가득 차 있고 각박한 사회 속에서 집을 휴식의 공간으로 생각하기 보단 주로 회사에서 하루의 삶을 생활하고 잠깐 들리는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장도 많이 들어섰고 옛날의 많은 동네모습들이 바뀌어졌다. 과거의 집을 만드는 조상들의 지혜나 직접 자신의 삶에 맞게 집을 지어가는 모습이 줄어들었다. 내가 편하고 나의 삶을 살아갈 곳을 정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집이 나오지 않고 어중간한 집이 많이 만들어 진다. 사람을 살리는 집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식주 중에서 주거공간인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고 그저 남들이 좋다는 곳이나 그 소리를 듣고 결정하여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도록 도와준다. 옛날에 농민시절에는 농사를 짓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쉬기도 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많은 욕심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살 수 있는 공간 정도 있으면 살아가고 집으로 인한 고민이 현재 보단 적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현재는 정말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집이 없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은 있으나 비워야하는 집도 있다. 개발을 하는 곳이나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시설들 교통수단이 좋아지더라도 집값이 올라가고 자신의 집 하나 구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어린 시절 따닥따닥 붙어 있던 집의 모습 이웃끼리 이야기 하면서 나가면 넓은 도시의 공간이 보이고 몇 평 안 되는 집이었지만 어릴 적 추억이 남아 있는 집 그 추억을 되살려 보기 위해 그런 비슷한 집을 찾아가서 회상하기도 하고 자라나서도 그러한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서 자신이 원하는 집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집에 들어오더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많은 가정에서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편하게 쉬고 싶고 내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 원하는 집의 형태로 집을 짓고 하고 싶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요즘 TV를 보게 되면 행복한 공간이나 좋은 집을 이야기 하면서 넓은 공간 속에 다양한 물건들이 있고 자연이 묻어나오기도 하고 생각을 잠기는 공간이나 서재 등 마당도 있는 넓은 집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자신의 삶에 활력을 주는 집에 있어서 넓은 공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파나 침대 가전제품들과 운동기구들 등 있으면 좋긴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 없던 서양의 물건들이 들어와 작은 평의 집이더라도 이 물건들이 없으면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집에도 있으니 우리 집에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넓은 공간이더라도 좁게 보이고 탁해 보이기도 하는데 15~20평의 집이더라도 소파나 많은 가전제품 없이 자신의 작은 독서 공간 딱 앉아서 공부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추억을 생각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좁은 공간이 좁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딱 살면서 필요한 정도로 만들고 화장실과 욕식을 분리하거나 주부에 맞게 혹은 여러 형태의 사람에게 맞게 편리성을 주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살고 싶은 집 들어가고 싶은 집이 사람을 살리는 집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나 삶에 있어서 더 생각을 해보고 내가 원하는 집을 생각하고 나를 살리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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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투자목적으로, 결혼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집을 여겨 왔다. 이책에서는 그런 우리의 잘못된 생각, 그리고 집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집을 위해 우리가 있는건지, 우리를 위해 집이 있는건지..... 왜 집이 있어야만 하는지 오늘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