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피캣의 위험성을 언론이 줄곧 여전히 떠들고 있지만, 복제를 예찬한다는 책이 훨씬 더 정감있는 표현이다. 실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을 것이 언어가 되고, 많이 봐 왔던 것을 직업으로 삼고, 여전히 처음하는 일에는 사례에 목말라져 있는 것은 서툴기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한다고 했다면, 그 완벽한 완전이 더 큰 불완전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책은 깊이가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부담스럽기까지도 하다. 보통 같은 맥락에서 위 아래로 살짝 살짝 벗어나가면서 글을 진행해 가는 것이 정석이다. 이 책은 범위가 남 다르다. 그래서 더 깊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현이기도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
바로 성찰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이 살고 내가 보고 듣는다. 그들이 반복하고 내가 듣고 좋아한다.
머리말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복제가 현대 문화에 속속들이 스며 들어 있는데도 '복제는 잘못이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법률과 제약, 태도가 복제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제예찬은 복제의 윤리를 논하기보다는 복제를 긍정하는 책이다. 복제는 기껏애햐 단어 하나에 불과하며 겉으로는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마, 모든 면에서 그 자신을 초월하여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대함을 열어주는 활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복제할까? 이데아를 지닌 사물의 겉모습을 본뜨는 것일까? 이데아라는 것이 없다면 이데아의 타락이라는 의미의 복제가 가능할까? 복제를 비난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어떤 근거를 내세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듯 작퉁을 비난하는 루이비통 자체가 짝퉁이라면? 이데아, 즉 본질이 없다는 본질 없음 개념은 불교의 공과 통한다. 이 책의 저자는 티베트 불교 수행자다. 공을 명상하는 것은 곧 복제를 명상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복제의 깊은 의미를, 본질 없는 대상의 드러남을 성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