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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사랑의 윤리학 - 박노해 시집 『겨울이 꽃 핀다』
1980년대의 박노해 시에서 사랑은 평등한 세상을 나타내는 시적 기호로 표현되었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천생연분」, 『노동의 새벽』)을 향한 절대적 사랑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같은 시) 까부수는 비장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했다. “가진 사랑보다 더 당당한 용기와 뚜렷한 소신으로 / 희생을 각오한 큰 사랑”(「남성편력기」, 『노동의 새벽』)만이 변혁운동의 중심에 선 ‘동지들’이 추구해야 할 참사랑의 전형이었다. 개인의 사랑은 항상 변혁투쟁의 전선에서 이념적으로 검증받아야 했다. 인간답게 사는 세계를 위해서는 강인한 사랑(투쟁)의 정신이 필요했고, 그것은 당연히 투쟁의 과정에서 성숙해지는 동지적 사랑으로 거듭나야 했던 것이다.
「이불을 꿰매면서」(『노동의 새벽』)에는 이러한 동지적 사랑의 시적 의미가 잘 묘사되어 있다. 노조일을 시작한 노동자가 있다. 그는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에 진저리를 친다. ‘명령하는 기업주, 순종하는 노동자’의 사고에 젖은 기업주의 권위적인 행태를 인식하며 그는 기업주와 노동자가 평등해지는 사회를 애타게 갈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기업주에게 당하는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 아내에게 아프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하게 된다. 평등한 세상은 가정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허상일 뿐이었다. 가정에서 무너진 평등의 세계를 어떻게 적대적인 사회에서 이룩할 수 있겠는가.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 속옷 빨래를 하면서 /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데서 혁명은 시작된다. 동지적 사랑은 부끄러운 삶을 동지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신념에서 뻗어 나온다. 박노해 식의 아픈 사랑의 이야기는 이처럼 신념으로서의 동지적 사랑이 타락한 현실과 불화하는 과정에서 펼쳐진다. 동지적 사랑은 개인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지만, 개인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 만큼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 현실과 이상 사이, 혹은 혁명과 사랑 사이의 갈등은 80년대 변혁의 주체라면 짊어져야 할 사랑의 운명이었던 셈이다.
눈빛 시리던 수배 시절이었어요 약속 장소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10분이 지나고 또 10분, 일 났구나! 긴장으로 날 선 몸 막 자릴 뜨는데 저만치 그녀가 하느적 하느적 걸어와서는 “사랑을 나누느라 조금 늦었어요 아니 많이 늦었네요 그이도 수배중이라 어렵게 만나서………” 푸훗, 고개 돌려 웃다가 그만 화장실에 가 몰래 한참을 울어버렸지요 - 「그리운 여자」 부분
사랑을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 1980년대였다. 만나기가 어려운데, 어느 시간에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약속 시간에 늦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긴장으로 날이 서 있던 시인은 화장실에서 남몰래 한참동안 울었다고 고백한다. 울지 않으면 가슴 속의 막막함을 씻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변혁운동의 길은 이렇듯 일상적인 삶을 스스로 포기해야(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연기해야)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에게 개인적인 사랑은 긴장감을 늦추게 하는 독소일 수 있었다. 운동의 긴장감과 사랑 사이를 왕래하며 박노해는 1980년대의 힘든 삶을 견뎌낸 셈이다. 1990년대 박노해 시를 관류하는 부드러운 사랑의 윤리는 따라서 이러한 긴장의 미학과 연관되지 않으면 제대로 의미화될 수 없다. 그에게 사랑은 80년대를 90년대로 연결하는 매개지점이면서, 80년대와 90년대를 구분 짓는 단절의 지점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강함은 닫힌 강함이 아니다 단순한 강함 비판적 강함 한바탕 강함이 아니다 진정한 강함은 섬세함이다 철저한 자기 절제력이다 안의 깊음으로 불의에 강함이다 부드러운 강함이고 열린 강함이고 복잡성을 품어낸 강함이다 진정한 강함은 비록 작아도 여려도 생을 두고 끝까지 정진하는 것이다 흔들려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 「진정한 강함」 전문
박노해는 부드러운 강함을 이야기한다. 부드러움이 없는 강함에는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 「부드러운 페니스」에 묘사되는 바, “뿔처럼 강한 페니스”는 “더 강하고 철저한 뿔이 되고자” 꽝꽝 언 땅을 난폭하게 밀고 들어간다. 강한 페니스는 폭력적이다. 힘으로 모든 것을 뚫으려 하고, 모든 것을 페니스의 폭력 아래 가두려 한다. 박노해는 이 시에서 “난 지금 부드러운 페니스로 널 만나고 싶”다고 분명히 밝힌다. 부드러운 페니스는 애무하는 페니스이다. 꽝꽝 언 땅을 난폭하게 뚫고 들어가는 페니스가 아니라, 그 땅을 애무로써 서서히 녹이는 페니스이다.
에로티즘으로 감싸여 있는 부드러운 생명의 힘은 「생명의 절정」에서는 “풀섶에 엉킨 배암 두 마리”의 숨죽인 열락으로 강렬하게 구현되고 있다. 에로티즘은 근본의 자리에서 생성되는 생명의 힘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페니스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강함의 세계에 제동을 건다. 안으로 깊어져야만 펼쳐낼 수 있는 생명의 시학은 박노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여성성의 시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성성은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마음이 여성성의 맥락이라면, 여성성은 정확히 ‘근본의 자리’에 가로놓여 있다. 근본의 자리는 생명이 잉태되는 장소이다. 박노해는 미래의 타자들을 배려하는 삶으로 여성성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노해의 여성성은 충분히 윤리적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작고, 힘이 약한 이유를 그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해명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여성은 “기꺼이 키 작아지고 힘 약해”진다.
“기꺼이”라는 시어에 내포된 능동적 주체성은 「세기말 성자의 기도」에 이르면, “새봄에도 건강한 몸으로 더 많은 사랑의 노동을 지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세기말 성자의 이타적인 모습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여성성을 실현하는 존재(여성-되기)는 사랑의 노동을 짓는 성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투쟁과 묵상의 맑은 눈”(「맑은 눈」)으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는 성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윤리적이다. 박노해 시의 여성성은 이렇게 시적 차원을 넘어 윤리적(종교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박노해 시는 윤리에서 윤리로 흐르고 있다. 80년대의 치열한 삶이 그에게 강인하고 강렬한 윤리를 심어주었다면, 90년대의 치열한 삶은 그에게 부드러운 윤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시가 윤리와 만나는 지점에서 박노해의 시는 세상과 맞서 싸웠다. 80년대의 박노해 시를 근거로 90년대에 발표된 박노해의 시를 ‘변절’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노해는 변절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의 시는 여전히 타자를 배려하는 윤리학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시를 쓰기보다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분쟁지역의 비참한 상황을 산문양식으로 발표하고 있다. 시의 차원과는 다른 현실의 차원이 있다. 시가 여성성(타자에 대한 배려)을 노래하는 순간에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은 굶어죽고 있다. 박노해는 그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곁을 항상 지키고 있다(지키려고 한다). 고통스런 타자와 함께 하려는 박노해의 이런 정신이 시의 윤리성을 잉태하는 밑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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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는 시인인가, 노동자인가, 운동가인가, 혁명가인가, 사상가인가, 전향자인가, 구도자인가'라고 해설에 한 귀절 쓰여 있었다. 박노해란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어구였다. 처음 내가 이 시집을 잡을 때는 별다른 뜻 없이 표지가 예뻐서 잡았다. 하지만 이 시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노동자들에게 힘있는 자들에 의해 밟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적은 시일 것이다. 난 노동자도 이 세계에서 밟히는 그런 존재도 아니기 때문에 이 시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감상을 적어본다. '검은 산에'에서의 감상이다.
1연에서는 많은 재앙이 나타난다. 큰 산불, 검은 바람. '검은? 바람은 검지 않다. 아, 연기는 검구나. '검다'는 것은 부조 리한 현실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 그러니까 힘있는 자들에 의해 강하게 이끌려간... 그런 말이군.' 하고 생각했다.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남은 것들에 관한 말이다. 불타 버린 산을 상상하던 도중. 내 머리속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소위 '달동네;라 부르는... 낮은 동산쯤 되는 그런 곳에 다닥다닥 수도 못 셀 집들이 새까맣게 있는 산. 시인의 의도 일지, 내 생각일 지 모르지만 의미는 통한 것 같다.
2연은 희망의 시작이다. '풀씨, 뿌리, 싹'..'불탄 몸 쓰러져도 뿌리는 살아' 이 부분에서 왠지모를 희망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불타기 전의 희망이었던 '꽃, 열매, 가지, 둥치'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 '씨알뿌리'가 탄생한 것이다. '꽃, 열매, 가지, 둥치'는 무엇을 말할까...... 내 딴에는 두가지로 생각해 보았는데 첫번째로는 권력층이 아닌 지식인들. 두번째로는 성인들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게 대유법인가? 맞는 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역시 '씨알뿌리'도 생각해 보면 두가지 의미가 나온다. 첫번째로는 노동자. 두번째로는 어린이, 청소년들.
즉 각각 풀이 해보면 첫번째 의미로는 권력층이 누를 때, 사회의 희망이던 지식층이(굳건하고 지혜롭던) 권력층이 휩쓸고 지나가자 남은 것은 사회의 낮은 계층이었던 노동자만이 남아 내일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미로 생각해보면 권력층이 휩쓸자, 이미 조금씩 쇠퇴해가며 검은 물이 들어가던 성인들이 없어지고 아직은 파릇파릇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남아 희망을 자리를 메운다는 것. 어느 쪽인지도 모르겠고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맞는 게 있는 지 조차 모르겠다.
'그랬습니다.'과거의 일인가? 아님 강조? 난 다부지게 다짐 하듯이 말하는 것을 느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이 구절이 너무 예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 시를 인용한지도, 아님 이 시가 인용한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시는 이렇게 예쁜 구절로 마친다. 이 시를 적은 시대에 희망이 꼭 필요해서 이런 시를 적은 거겠지만 어쨌든 희망은 언제, 어디서든지 꼭 필요한 것이라 그런지 내 가슴에 와닿았다. 상희야, 우리 희망을 가지고 살자!!! [인상깊은구절] 검은 산에 큰 산불이 나고 검은 바람이 불고 푸르던 나무들 불타버린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아 그래도 풀씨는 살아 불탄 몸 쓰러져도 뿌리는 살아 여린 싹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빛나던 꽃도 열매도 아닌 희망이던 가지도 둥치도 아닌 잊혀진 땅속의 씨알 뿌리들만이 타버린 한 시절의 몸을 껴안고 푸른 싹을 조용히 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
| 야 아빠다 달려와 안기던 딸아이가 아유 냄새 이쁜 얼굴 찡그리며 고갤 돌린다. 솔아 니 유아원에도 보내고 컴퓨터도 사줄라꼬 회사에서 일한 아빠 향기잖아 까끄런 내 입맞춤에 찡그리며 웃는다 솔아 훗날 너는 알게 되리라 온몸에 배인 이 아빠의 냄새를 이 기름 냄새의 설움과 아픔을 이 기름 향기의 깨끗한 가치를 박노해 시인의 시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주제로 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항상 겸손할 줄 알며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이 절절하다 내가 가진것에 만족할 줄 알며 내가 가진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좋은 시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
| 박노해 선생님을 민중 운동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자세한 이유를 나는 모르지만, 요 근래 박노해 님이 내시는 책을 보면, 참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힘찬 구절들을 선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 자신과의 힘겨움에서 강해지는 방법과 그리고 스스로 강인해 지는 법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이 피어나듯 힘겨움의 세월을 지나 우리는 강한 내면 세계에서 다시 우뚝 설 수 있는 그래서 강건해 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크나큰 여운을 준다. 눈부셔라 눈물 나라 저 꽃잎 속의 숨은 얼굴 그래 지난 겨울이 꽃핀다 어둠 속 뿌리가 환히 꽃핀다. -겨울이 꽃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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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를 독자와의 대화에서 만나고서 내가 느낀 것은 그가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얼마 전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그가 희망을 테마로 겨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동운동가로서 많은 세월을 힘들게 보낸 그가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살면서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힘을 내어야 할 때다. 너는 나를 잊으라는 시에서도 좋았던 날들이 흘러갔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흘러간다고 말하고 있다. 한많은 세월과 그 모든 아픔들을 잊으라고 외치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했던 사람아 사랑했던 사람아 너는 나를 잊으라 오늘은 오늘의 나를 위해 너는 나를 잊으라 |
|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박노해 '노동의 새벽', '참된시작',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리고 '겨울이 꽃핀다' 80년대 사노맹 사건으로 수배생활을 하고 91년에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노동의 투사. 98년 815특사로 풀려나 다시 우리곁으로 돌아온 그가 다시 시집을 내놓았다. 출옥당시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와서 여러 강연을 도는 동안, 과거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변질되었다'는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사상은 이제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자신의 이름처럼 투쟁적이고 선동적인 글 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소박한 내용을 위주로 글이 전개된다. 작고 소박하지만 그의 필체만은 예전의 힘을 잃지 않은 듯 보인다. 세월은 그에게도 빗겨갈 수 없는 것일까? 한층 성숙된 그의 이상이 보이고, 급격하지 않고 점진적인 변화를 꿈꾸는 그의 글이 이번 시집의 특징이다. 과거 박노해씨의 강인함을 느끼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난 이 책에 실망을 했다. 이제 자신의 필명을 바꿀 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더이상 그는 노동자의 대변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세상속으로 뛰쳐나올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범부로 살아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