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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여'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쁜 소녀들' '발칙하고 영악한 소녀들' '질투심 많은 여성들' '앞과 뒤가 다른 여성들'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하나의 집단을 한 단어로 정체화해 버리는 말들. 여성을, 소녀를 질투심 많고 영악하고 이중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말들. 그것들은 전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무도 쉽게 접하는 동시에, 그 너머의 의도를 의심해보지 않았던 말들이다. 나는 의문한다. 여자의 적은 과연 여자일까? 소녀들은 나쁘며, 발칙하고, 영악할까? 모든 여성은 질투심이 많고, 깊은 우정을 갖지 못하며 앞과 뒤가 다른 모습을 보일까? 여성의 우정. 그리고 여성, 그 자체.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에 딴지를 걸고,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간다. 여자의 적은 여자만이 아니다. 나쁘고 발칙하고 영악한 소녀들은 난폭하고 폭력적이고 억척스럽기도 하다. 모든 여성은 질투심이 많으면서도 서로를 돕는다. 앞과 뒤가 다르기도 하지만, 앞과 뒤가 같기도 하다. 수백, 수천 가지의 상황과 성격, 언어와 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을 어떻게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수십억 명에 달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들을 어떻게 한 단어로, 한 수식어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여성은 규정되지 않는다. 여태껏 남성중심 사회에서 언어로써 규정되었던 여성들은 결코 규정될 수도, 정의될 수도 없는 존재이다. 여성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인줄 알고 골랐던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는 단순한 우정 책이 아니었다. 여성의 우정은 이러한 것이다, 하고 정의 내리는 도서도 아니었고, 여자(사람)친구를 사귀기 위해선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고 행동 강령을 알려주는 도서도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는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여성의 우정을 다양한 방면에서 분석하고, 이야기하고, 설명한다. 여성의 우정이 왜 중요하게 생각되지 못했는지. 여성은 왜 여자(사람)친구를 만들지 못했는지. 남성이 주가 되는 세상에서 여성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다른 여성들을 대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여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책은 수많은 예시를 통해 이를 말한다. 여기서 감독은 고양이싸움을 끌어들여 그들의 우정을 파탄 내려 했다. 도나휴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감독을 설득했다. 여자들의 큰 싸움은 남자들 때문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여성의 우정은 가볍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듯, '남자들' 이야기로만 이루어져 있지도, 질투와 시기, 그리고 연민과 가식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 여성의 우정은 다정하며, 때로는 과격하고, 사랑스럽고, 질척하며, 또 동시에 무겁고 복잡하다. 이런 아름답고 어려운 여성들의 우정을 단순히 '남자, 음식, 외모, 자기 관리' 네 단어로만 이야기하다니. 이 얼마나 불쾌하고 멍청한 생각인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는 여성의 우정을, 그리고 여성을 자신의 언어로 정의한다. 사회의 언어로, 통념적으로 사용되고는 하는 세상의 언어로 여성들을 정의한다. 하지만 결국, 그 언어는 전부 남성중심 사회에서 만들어진 언어일 뿐이다. 남성의 생각에서 나온, 남성의 입을 통해 나온 언어들. 그리고 이는 또다시 남성이 감독이 되는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재정체화되고 재정의된다. 우리는 각자의 로맨틱 드라마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때로는 졸업한 후 남자들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우리만의 멋진 미래를 그려 보기도 했다. 우리끼리 공부하고 논문이나 소설을 쓰고 영화를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여성의 우정에서 '남자'는 그저 우정을 구성하는 많은 파편의 일부일 뿐이다. '음식'도, '외모'도, '자기 관리'도 마찬가지이다. 수천, 수만 개에 달하는 파편들 사이,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하는 작고 작은 조각 하나. 여성들은 친구와 남자 이야기를 할 수도, 미래를 꿈꿀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의견을 나눌 수도,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여성의 우정은 그렇다. 단어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복합적인 파편들의 집합체. 여성들의 우정은 그런 것이다. 우리 사회는 또한 여성이 뭔가를 쟁취했다면 다른 여성은 그것을 뺏긴 거라고 가르친다. 여성들 세계에서는 성취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인식, 그래서 항상 인정사정없이 싸워야 된다는 인식을 퍼뜨린 것이다. 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은 '지독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는 걸까. 임원이 된 남성에게, 대통령이 되고, 나라의 왕이 된 남성에게 '너 참 지독하구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같은 남성을 다 꺾어버리고 그 자리에 오르다니! 너 정말 악바리구나!'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도 없다. '너 다른 남성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네가 다른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잖아' 따위의 말 또한, 당연하게도 하지 않는다. 왜 여성의 승리는 다른 여성의 패배로 정의될까. 여성의 쟁취는 다른 여성의 실패로, 여성의 승진은 다른 여성의 승진 실패로 이야기될까.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남성의 승리는,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데.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절반은 여성이고, 건물을 채워가는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다. 하지만, 인류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의 인구수에 비해 그들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한없이 적기만 하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여성의 자리는 좁아지고, 여성이 잡아낼 수 있는 기회 또한 한없이 좁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싸움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남성의 자리는 아홉 개. 여성의 자리는 하나. 그러나 남성도 열 명, 여성도 열 명. 남성들은 말한다. '사회 탓하지 마. 열심히 하면 돼. 나를 봐. 열심히 하니까 성공했잖아?' 하지만 열 명 중 아홉 명이 되는 것과 열 명 중 한 명이 되는 건 결코 같지 않다. 같아질 수도, 비슷해질 수도 없다. 여성은 서로의 경쟁자였다. 여성은 서로의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로와 경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이 사회 속에서 피어난 여성의 우정은, 어쩌면 더욱 소중하고 단단한 것이 아닐까.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네가 무사하다고 알려줘. 난 항상 너를 생각해. 하던 이야기 계속하자.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책은 말한다. 여성의 우정은 단편적이지 않다고. 단순하지도, 마냥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마냥 소설 같지도 않다고. 여성은 언어로 서로를 보듬고, 마음으로 서로를 안으며, 행동과 몸짓으로 서로를 보호한다. "지금 너의 세계를 떠올려보고 있어. 사랑해." 책을 덮으며 나의 친구들의 세계를 떠올려본다. 그들은 어떤 순간을 살고 있을까. 여성의 우정이 경시되어 온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우정은, 과연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
![]() 여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여성들에게 늘 불리한 측면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여성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일각의 평판을 달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이 책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는 그동안 편견으로 가려진 여성들의 우정에 대한 재발견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예전에 어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여자는 제자가 없다?”라고 하시던 말씀을 듣고 서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그랬을까? 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취업, 결혼·육아를 감당하느라 활동 범위가 좁혀졌기 때문은 아닐까? 나 자신조차도 아이들 돌보느라 변변하게 친구를 만나 안부를 전할 엄두를 못 내고 살았을 정도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 하루 종일 아니 장시간 친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쉬움 때문인지 상대방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는 말이 바로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게 서양에서도 사람들 관계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지극히 여성적인 개인의 취향조차도 이질감을 가지고 여성을 밀어냈던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 시절에 나는 남자들에게는 관대하면서 여자들은 쉽게 비판하고 비난했다. 특히 사랑과 꽃에 너무 빠져 있는 것 같은 여자들하고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아까웠다. 내가 남자들의 호감을 얻고 싶었고 그들에게 집중해 있었기 때문에 나보다 남자들 세계에 관심이 없는 여자들, 즉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시했다. -p.124
“미성숙해서 그래요.” <마이 보이즈> 제작자 토머스는 주로 남자들과 어울리며 다른 여자들을 악마화하는 여자들을 그렇게 진단한다. “뭔가가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구분한 다음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죠.” -p.126
그러나 저자의 여성들의 우정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어가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적이면서도 장점이 많은 여성들은 사회적 편견을 과감하게 제치고 사회 각 분야에서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며 매력을 발산한다.
오늘날 여성들의 우정은 사회가 인정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 기존 규범을 바꿔서 쟁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 친구들은 정지이자 여성의 동반자라는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중략] 친구의 소중함을 알아보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들려주는 여성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은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 대중이 우리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못된 여자들, 개성 없는 단짝 그리고 독신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을 몰아내고 여성들이 함께 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폭넓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p268~269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 나는 오늘도 친구와 헤어지며 한 말이다. 이 간단한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자는 의미임과 동시에 상대방의 안부를 걱정하는 특별한 배려임을..... 호감의 만남이 계속되길 소망하며 건네는 말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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