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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으로 나올수록 작은 세계는 깨지고 부서진다. 편협한 사고를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문화가 나의 ‘상식’의 틀을 넓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상식의 틀이 끊임없이 깨지고 부서지며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몰라서 저질렀던,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며 반성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또 하나의 다양성을 사회에 드러내는 책이다. 전혀 알지 못하던 세계를 보여준 책이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울부짖는 외로움을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지독한 자기혐오의 문장들을 읽어 내리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그릇을 넓혀가는 행위다.
침묵해야 한다. 아무도 안 들으니까. 말하려고 매일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이루어질 거다. 그것밖에 원하지 않을 테니까. 기분이 좋아졌다가 무너지듯이 쓸려내려간다. 다 꿈이다. 꿈을 꾸고 있구나. 씻겨 무너져내리는 꿈. 말할 때 조심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느낀다고 말하는 것에 매혹될 뿐이고 그걸 모방하고 있다. 그렇게 안 느낀다. 아무것도 안 느낀다. 그 감정을 모방하고 싶다고 원할 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고통 없이 지낸다. 매일 꿈을 꾸고 있다고 일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크게 잘못되어 있어서 원하는 걸 원할 수 있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p.46
이 책은 ‘자살’에 관한 책이 아니다. ‘죽고 싶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죽고 싶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책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특징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그릇된 것이다. 다양성,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드러내고자하는 욕구, 이해받지 못해 느끼는 슬픔이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절망이 느껴졌다. 그 절망을 피부 깊숙이 느껴 책장을 넘기기가 힘겨워질 때마다 이 글들을 써내려간 의미는 무엇일까, 이 글들을 이러한 책의 형태로 엮은 의도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공감’과 ‘수용’이 필요한 것일까.
그들의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자문했다. 내게는 타인을 맘대로 재단하고 도려낼 권한이 없다. 따라서 나와는 다르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또 하나의 세계로 존중하자고 받아들인다. 내 세계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세계도 소중하다.
내가 폭식을 할 때 양배추나 샐러리를 먹진 않았던 것처럼 항문섹스 역시 기호가 반영된 행동이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과 관계맺기의 어려움의 결과로 위험행동을 했다는 인과관계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것만이 행동을 결정하진 않는다. 모든 게이 남성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여 다른 남성의 정액을 먹거나 다른 남성의 성기를 자신의 항문에 삽입하진 않으니까. 이성애자라고 하여 똑같은 생애 각본을 따르진 않듯 게이 남성으로 정체화했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욕구에 대한 차이가 나를 만든다. P.369
혐오세력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당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 P.369
하지만 익숙하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혐오를 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성원 작가의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 혐오를 경계하고자하는 데 무뎌진 감각을 다시금 일깨우는 책이다. 타인의 외로움에, 절망에 공감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치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릇을 넓혀가는 과정을 겪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문화적 충격에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래서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맨 마지막에 있는 〈친절한 설명〉을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럼 이 책이 말하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지독한 자기혐오와 죽고 싶다와 살고 싶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그 줄타기도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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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에 놀란다면 내가 1955버거를 혼자 먹다가 불이 꺼지는 그 순간도 알아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공평함이다.' (18p) '누가 내 팔다리를 잘라가서 남들 것이랑 뒤섞어놓고 여기서 네 몸 가져가라, 한다면 찾지 못할 거다.' (20p) '자살을 한다. 안 한다를 이겨낸다는 게 아니고 나한테 자살하라고 요구하는 이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다는 거야. (...) 견디고 싶다. 더 잘 견디고 싶다. 감정에 맞서지 말고 그것이 나를 채우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9p) '문을 여는 것은 힘도 돈도 들지 않으며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일처럼 보인다. 일어나서 저 문을 연다고 결심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데 문을 못 열겠다는 느낌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54p) '사람들이 건강한 걸 보는 게 힘이 든다. 나 역시 건강하게 보여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다.' (78p) '나는 '나'라고 생각되지 않는 내가 '나'로 전시되어 있는 상황이 힘이 든다. 나는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고 늘 '아닌데요'라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102p) '회복해도 이전과 같을 순 없다. 그건 건강한 삶도 뛰어난 삶도 아니다, 라는 말을 책에서 읽을 땐 기뻤다. 회복하면 너는 뛰어나지고 건강해져, 라는 말을 했더라면 더 깊은 실망과 벽을 느꼈을 것이다.' (128p) '읽을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들을 준비는 늘 되어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얘기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어떻게 죽을 뻔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178p)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요. 그 조건을 누가 바꿔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그 조건을 만지거나 궤도를 이렇게, 길을 바꿔 여기로 가봅시다, 할 수 없었고 그것이 각자의 삶이었으니까요.' (259p) 예전에 문학치료캠프를 다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사람들이 쓴 글들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자기 내면의 얼룩진 지점들을 파고든 흔적들. 자신의 연약하고 초라하고 찌질한 마음들을 계속해서 파헤치고 들추는 시도들. 남들이 봐주는 '나'로부터 벗어나 정말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나'들을 직면하는 과정들. 나의 얼룩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나는 이런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일. 그것을 들어주는 독자의 존재. 그 여러가지 것들이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도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내면의 고백들을 눈여겨 볼 수 있다. 그 방식들이 다소 감상적이거나 과격하고 적나라해서 이마를 짚게 될 수도 있지만, 과감하고 솔직한 자기고백들이 돋보이는 책이라 생각된다. 누군가가 아프다고 말하는 글을 좋아하고, 또 그런 글을 읽고 싶다고 말하는 화자의 말(26쪽)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 자신의 기질과 성격은 이미 훼손되어 있어 복구하거나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52쪽)들을 보고 있자면, 판단에 지친 화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해결책을 제시해줄 입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줄 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어느 특정한 '무엇'이라 인지하고, 일상에서 섞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화자에게 우리가 갖출 수 있는 공감의 태도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당사자의 맥락을 듣는 일. 마지막 친절한 설명 파트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가져와봤다. '어떠한 욕구도 그것을 단숨에 끊어내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 이 사람이 이러한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기 인식은 어떤지, 자신이 반복하는 행동과 상황에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삶을 기획하기 위해선 어떤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지 이해가 필요하다.'(387p) 타인의 존재에 대해 용납과 허락이 필요한 걸까. 존재 그 자체로서 바라보는 노력.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일이 필요한 요즘. 모두가 함께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책 뒷면의 바코드가 무척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하트 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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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 유성원 기록은 얼마나 투명해질 수 있을까 혹은 기록이 남긴 그림자는 얼마나 짙게 드리워질 수 있을까. 읽으며 책을 덮고 기록하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작가라는 생각은 그와의 거리감을 만든다. 일단 자신의 일상과 마음의 기록자.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보다 자신의 존재를 읽어내려는 치열하고도 진실한 시도들을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는 방식은 나의 고요한 마음에 하나의 돌멩이를 던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자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있으면 알 수 없고 알면 할 수 없다.”(47쪽) 나 “나쁜 생각을 안할 수도 나쁜 행동을 피할 수도 없다. 다만 다르게 살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삶을 자주 보고 느끼고 반성하는 수밖에.”(304쪽) 와 같이 자살충동이나 나쁜 생각 등의 단어들이 나의 마음으로 침잠한다. 큰 파동을 남기면서. 이 책에서는 자주 반복되는데 외로움에서 이어진 생각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려는 글도 아니고, 독자가 의미와 가치 따위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사라진 채로 ‘모임’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은 눈으로 읽고 있지만 사실상 마음의 소리로 읽어내는 것이 되며 동시에 나의 흩어진 목소리를 찾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공감과 연대는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없이 상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는 거침없이 게이문화와 성적쾌락에 대해 쓰고 있기에 표면적 진실은 낯설고 간혹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의 각자의 고독에 귀기울이는 과정은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읽기에 불편한 지점들을 만날 수도 있으나, 불편을 느낀다는 것이 그 동안 내가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게이문화에 대해서 왜곡된 채로 인식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워하고 혼자가 되어 자신의 고독 속에서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 이를 테면 ‘죽고 싶다’는 말에서 조차, 삶을 그대로 느끼고자 한다. 대상화된 이미지들이 상품으로서 보여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나이 혹은 외모, 경제력, 관계 등에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 그 자체의 이야기인 것이다. 표지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16비트 게임 이미지의 알록달록한 하트그림에 한글자씩 반짝이는 표지는 첫장을 넘길 때와 마지막 장을 닫을 때의 마음의 무게를 다르게 한다. ‘외로움 없는’ 제목의 한 부분이 소리로 입 안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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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만 사는 걸 선택하는” 것은 그 특정한 집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어디에 말하거나 도와달라고 할 수 없는” 사회, 나의 외로움이 당연시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여줄 수 없는 것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떡하나요. 사라지면 된다. 없는 사람처럼.” 더이상 사라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책이기에, 그 진심을 믿고 읽어보아야 하는 책. 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작게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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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원,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난다, 2020. “세상에 없는 책을 하나 더 만들었어요. 세상에 필요한 책인 것 같아서요.” 책과 함께 온 난다의 편지였다. 이 책은 성소수자 게이인 작가가 2014년부터 2020년 4월까지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처음 책을 받고, 한동안은 도무지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삶의 범위, 내가 엿봐도 된다고 생각한 타인의 삶의 영역 이상을 보는 것만 같은 괴로움 때문에. 1부와 2부 내내 계속되는 자살과 섹스에 대한 작가의 생각. 그 표현조차 날것 그대로인 것만 같이 나온다. 아마 그 직접적인 표현을 인쇄된 책에서 마주한 것에서 오는 당혹스러움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이 사람의 삶의 힘듦에 대해 계속해서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다가 2부 어딘가를 넘기면서부터는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겠다고, 어쨌거나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기려고 꾸준히 존재의 기록을 남기는 이 목소리를 나는 어쨌거나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 자체에 온 힘을 쏟아 그 이상이 불가능한 상태, 자살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태, ‘설거지를 하면 되는데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나지지 않는’ 우울함을 나는 조금은 기억한다. 삶에 대해 느끼는 나의 버거움과 그의 그것은 비견할 바 안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공동체에 닿아있건 아니건 게이가 자살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229) 테니까. 그래서 나는 더더욱 어쨌든 존재하고, 존재함을 알리는 이 6년간의 글들을 버겁더라도 읽고 싶다. 나는 읽고 있다고, 듣고 싶다고. 그 삶에서 “좆 빠는 일”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그나마의 일이 될 수 있는지 아직은 어렵지만 듣고 싶다고. 이 책을 소화하기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말하는 한 페이지, 한페이지를 읽는 것이 나에게는 힘겹다. 그래도 다시금 열 것 같다. 조사가 자주 생략되는 이 짧은 문장들이 편지에서처럼 “세상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나 역시도 들기 때문에. 책을 읽다 힘들단 생각이 들면,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친절한 설명’을 먼저 읽길 권한다. 남은 페이지들을 어떻게든 계속 읽어나가겠단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공적 공간에서 항문섹스, 노콘 섹스 등의 단어가 노출돼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혐오세력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당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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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그렇지만 토요일은 더욱 외로우면 안될 것 같은 요일이다. 외로워도 나의 외로움은 숨기고 아닌 척 해야할 것 같은 날.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롭다는 노랫말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외로워!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게이인 저자가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보고 또 들여다보며, 행동하고 겪었던 일과 생각을 기록한 글이다. 진하고 독한 외로움을 견디는 글이며, 게이문화와 성적 쾌락을 향한 표현과 묘사가 가득한 글이기도 하다.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숨겨져야 한다고 다수가 생각할 법한 이야기를 말하는 글.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펼쳤고 읽어나갈수록, '성소수자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몰라도 될 일,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일, 혐오까진 아니지만 무관심의 영역에 두고 싶은 일'라고 생각했던 세계의 이야기였다. 적극적인 방관자였던 나를 알아차리고, 그런 내게 질문이 쏟아지는 독서였다. 지하철에서,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읽으며, 누가 보지도 않는데 누군가 이 책을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보이는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몰랐고 알려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안 외롭기 위해, 안 자살하기 위해 쓰는 것. 누군가에게 말해야 하는 일. 내가 나로써 존재하는 일이 매번 부정당하는 환경 속에서 나로써 있기 위해 작가는 계속해서 기록하고 질문한다. 누군가에 닿기 위해 계속 쓰고 기록한다. 그 기록은 처절하기도 하고, 차마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이다. 쓰인대로 읽어나가며,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무엇을 밝히고 싶은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왜 당혹감이 들까? 읽는 것이 조금 괴로운 것은 왜일까? 하는 물음표가 자주 떠올랐다. 그래도 견디는 시간 끝에(2014~2016) 붙인 이후의 기록(2017~2020)은 줄곧 바닥을 보며 걷는 것 같던 지난 기록과 달리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조금은 밝아진 이 책의 시간에 다행인 마음으로 책장을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쓰고 싶은 마음, 읽고 싶은 마음과 써야하는 마음, 읽어야 하는 마음을 생각했다. '흔적이 없는 일, 없던 일이었다. 글로 남기지 않는 이상은. (p213)' 안 솔직함을 강요 당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바로 보려는 수없는 시도 끝에 솔직해지기 위한 흔적이어서 계속 읽게 되었다. 어떤 글을 시작부터 끝까지 읽으면 내가 변해? 읽기 전에 몰랐던, 읽기 전엔 될 수 없었던 존재가 될 기회를 얻어?(p214) 라고 작가가 던진 질문을 나에게도 던졌다. 내가 변할까? 어떤 기회를 얻은 것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변화가 너무 미약해서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몰랐던 것을 알고 난 뒤, 행동으로 이어져야 전엔 될 수 없었던 존재가 될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친절한 설명'에서 썼듯이 '누군가 차별 발언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 그것을 제지하고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HIV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외우기' '누구도 사람의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를 모욕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책은 꼭 읽어야할 책이야, 읽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렵다. 그냥 열린 마음을 갖고 책을 펼치고 쓰인 대로 읽어가며 저자와 함께 한페이지 한페이지 나아갔으면 한다. 저자의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것처럼 읽었으면 한다.
자신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마음이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부정하고 싶지만, 나는 나일 수 밖에 없고, '안 사랑'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하려 견뎌온, 시간의 기록이 이 책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글들이 묶여 13개의 하트가 반짝이는 책이 되었다. 나를 구성하는 실재의 일을 숨기면서 일부는 지우고 쉽게 받아들여질 부분만 보여지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꼭 쥐고 놓지 않는 사람. '자기를 사랑하기 위하여 문장을 공들여 쓰지 말자. 자기를 '정확히' 사랑받기 위하여 어떤 단어들은 선택되지 말자(282p)'고 말한다. 뒤돌아 가는 곳의 생활이 어떠하든, 결국 선택하고 가게 되는 곳이 어디든간에 그는 나일 수 밖에 없다 말하고, 이해할 한 명을 만나기 위해 말하는 용기를 쌓아간다. 용기는 작은 구슬이어서 쌓을 수 없지만 그의 곁에 영롱한 구슬이 많이 모이고, 우리 곁에 여러 형태의 사랑이 싹트기를 바랐다. 각각이 모두 다른 것처럼 모두의 사랑도 다 다를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이 조금 커진 것 같다. 많은 질문과 생각이 맘에 담겼다. 어느 부분은 정리가 되었고 어느 부분은 으아------- 모르겠어! 하는 부분도 있다. 앎은 부족하고 이해는 불완전하지만 이 책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 분명히 있다.
캄캄했던 미지의 땅에 등불이 생겼다. 작은 것은 작고 큰 것이 크다는 사실처럼, 있는 그대로 보기를 말해지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기를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에 맞춰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답에 사회도 응답해야 한다.) 개개인의 삶이 진행형인 것처럼 답도 진행형이기에. 빛이 계속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해내가야지. 라고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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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부터 퀴어문화라고 칭하여진 이벤트나 행사 혹은 동성애를 소재로한 소설 혹은 에세이 들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는듯 보인다.새롭게 생겨나는 문화라는 모양도 있겠지.그보다는 전부터 잠재해 있던 것들이 사회적인 흐름속에 이제는 이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것이 표면상 드러나기 시작하는것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씌여진 글들은 아니나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일단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네이버를 뒤적여 그 단어의 (바텀,탑,노콘.HIV,크루징문화 등) 뜻을 찾아야 할만큼 나는 이 세계에 무지하다는 걸 알았다.어렴풋이 주어들은 것들,혹은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여러가지 말들로 생긴 편견들이 막연하게 두리뭉실 형체도 없는 것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정상과 비정상 ,이성애자는 건강인, 동성애자는 비건강인으로 분류해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남자를 일종의 병으로 바라보는 사고는 이들에게 삶의 존재 가치가 흔들리게 하는 것들로 알게 모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을 아주 선한 얼굴로 하고 있는 무리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 한권으로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려울수 있다 아니 사실 이해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보른다.그렇지만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이의 모습을 온전히 알고자 마음을 열어본다.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싶을수도 있을 만큼 행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들과 생각들로 써진 이글들이 읽는 동안 불편할수도 있다.성에 대해 타인의 다른 취향이 받아들이기 힘들수도 있다.제각각 같은 삶을 살수 없는 인생이기에 이런 삶도 있구나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가감없이 받아들일수 있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외롭다'라고 말하면 정말 외로운것 같다.하지만 외로운 게 아니라 누가 보고 싶은 것이다.그럼에도 '외로운 것'같다.말해진 것만이 내 감정 같다.사실이 아닌데도 앞으로 자살하고 싶을때마다 자살하고 싶지 않다고 고쳐 써야지 .외롭다고 말하고 싶을 때에도 외롭고 싶지 않다고 고쳐써야지 (P.30)
말할수 없는 일이면 하지도 말아야 한다.알 필요가 없고 그래도 된다는 이유로 폭력적일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략)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알고 싶고 그 '어떻게' 에 대해 말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인생 뭔지 알수 없는 중에서 혼자 노력했지만 그건 정말 어리둥절 속의 노력이었다(P.219)
자살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리며 감동한다.아직도 이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P.228)
'누가 시민을 규정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주는가 .성소수자 혹은 장애인에게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성애자들에게는 결혼하라고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이 공간에 입장해도 되는 사람과 안되는 사람을 규정하는 시민권이 확장되는 과정 ', (P.273)
남자랑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왜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만 사는걸 선택하는지 알 것 같다.무엇이든 지속되는건 없고 끝난다는 사실이 가르쳐 주는것.희망하고 소망하는게 있다면 좋겠지.살아 있는 데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 (P.348)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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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뭘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알고 싶고 그 '어떻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p219)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 동성애자이며 소수자로 살아가는 저자가 써왔던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결코 쉽게 받아들이고 전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글은 아니다. 모르는 용어들에 여러번 사전을 찾았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했다. 얼굴 붉어질 만큼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들에 조금의 당황스러움과도 마주했다. 최근 퀴어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고 그 이야기를 읽으며 소수자의 삶을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본이라는 틀에서 많이 벗어나, 그렇게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갔고 또 다른 삶을 보았다.
소수자로서 그가 느끼는 차별과 편견, 끊임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그의 글은 살아내기 위한 투쟁이자 절규에 가깝다. 소리 내서 이야기해도 매번 벽에 부딪치는 벽 앞에서 그가 선택한 또 다른 자기표현이자 나를 드러내는 방법은 글이었다. 그가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려는 노력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때때로 불편한 이야기, 낯선 공간과 욕망들은 이야기의 진실 여부에 대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적 낙인과 불합리한 비난에 대한 문제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제들이 가시화되었을 때, 개인과 그 집단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며 앞으로 더 나은 방법과 방안들을 모색한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 그 노력의 시작이다. 꾸미거나 포장되지 않았기에 각자가 느끼는 감정들을 예측할 수 없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간 사람이 여기 있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자리에서 소리 내며 치열하게 살아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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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외로움없는삼십대모임 , 유성원 . . 이 책을 펼치며 참 많이 놀랐다. 펼치고 닫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이걸 지금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인지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꼈다. 사실 나는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의 삶에 깃든 취향과 문화만큼 어떤 이의 삶과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탐색할 줄 몰랐다. ‘성’에 대한 내밀하고도 거침없는 표현들,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과 그로 인한 무수한 감정과 마음이 맞닿아 있다. 그가 느끼는 외로움과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가기를 다시 바로잡는 그를 읽으면서도 나는 정말 어려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개개의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정해진 질문과 답은 없다는 것을. 주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어 생각하고 그러한 방향대로 기준을 나누는 삶의 방식 때문에 우리는 얼만큼 누군가의 소외를, 감정을, 마음을 떠밀어버렸을까. 이 책이 분명 다가가기 어려운 지점은 있다. 어떤 이의 세계와 인생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쉬울리 없으니까. 숨김없이 통째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은 또 얼만큼 쉽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저자는 조금씩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또 사람을 이해하고 알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 분명히 읽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외로움이 뭘까? ___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라고. 그가 던진 질문을 생각하다가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든 일 그 자체이기보다, 결국 ‘사람’일 것이라는 어느 문장이 나의 마음을 스친다. 내 일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라면 더욱 냉혹한 이 현실에서 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이 많은 의문을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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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동성애자인 저자가 2014년부터 2020년 5월까지 써온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자살하지 않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글. ‘유성원’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전부는 아무도 알지 못하겠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의 부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책을 받고 나서, 어떤 책인가 한번 쭈욱 훑어 보는데 눈에 들어온 몇몇 문장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책을 재빠르게 덮었다. 아주 직설적이며 솔직하고, 거침없는 듯한 문장들이었다. 책에 대한 첫 인상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솔직히 말하면 거침없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을 담은 이 책을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 난다의 서포터즈로서 이 책을 처음 받게 되었다.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받지 않았다면, 내게 이 책의 리뷰를 써야 할 의무가 없었다면, 나는 과연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을까? 이 책을 내 스스로의 의지로 집어 들어 끝까지 읽을 자신은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그동안의 편협했던 나의 시선과 사고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선호는 있더라도 편견은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편견이 사라지기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았구나, 싶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또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알지 못했을 누군가의 세계, 누군가의 인생을 알 수 있어서,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돌아보게 된다. 편견으로부터 온 거부감을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있던 건 아닌지. 인생을 살아가는 정해진 방법은 없는데, 나의 인생을 잣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깔보고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 책을 읽기 전에는 낯섦과 충격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책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설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당당히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온갖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 속 게이로서 마주해야 했던 편견과 혐오들을 보란듯이 짓누르는 듯한 책이다. 작가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없었을 책. 말 그대로 ‘세상에 없지만, 세상에 필요한 책’. 확실히 나와는 다른 사람이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 다름을 더 이상 낯설어 하고 싶지 않다. 알록달록 반짝이는 책의 표지처럼, 작가의 인생이 앞으로 계속 찬란하길 응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