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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권리= 이윤의 편의로 환원되는 신 자유주의, 우리는 마르크스와 푸코를 어떻게 다시 읽기를 해야 할까?
신자유주의 시대, “무제한적 시간의 재택 노동으로 변형된 IT 노동, 규정된 시간보다는 규정된 과업에 따라 맺는 노동 계약”은 사실상 ‘법적 노동시간’을 사실상 무효화한다. 현재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노동의 권리’= ‘이윤의 편의’로 환원하는 다양한 법제화를 모색, 강구하는 길을 열고 였다. 그래서 ‘노동시간’ 또다시, 어쩔수 없는 쟁점이 된다.
노동일 제한을 무효화하고 신체를 무제한적으로 소진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일을 법적으로 제한했던 과정 자체의 혁명적 본성을 우리에게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마르크스와 푸코를 읽어야 할까? ‘노동의 권리’가 모조리 ‘이윤의 편의’로 환원되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와 푸코에게서 어떤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관점에서 다시 읽기 작업을 해야 할까,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아니 경험을 하게 될 모든 것들의 미래는 ?, 여기서 지은이 자크비데 비데가 제안하는 독해법은 ‘마르크스와 푸코의 관계’를 재설정해 마르크스의 <자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두 철학자 모두에 대한 훨씬 더 촘촘하고 비판적인 탐구를 요한다. 그는 마르크스와 푸코를 대립시키는 기존의 해석-유명론적 인간학에 준거한 푸코가 하나의 중요한 쟁점으로 걸려 있는 생명을 (마르크스와 달리) 개인성의 측면에서 파악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반대로 마르크스의 강점은 계급관계라는 본질 속에서 사회 질서를 해독했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비데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근대성의 핵심인 원초적 호명, 즉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까지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인지하는 원초적 호명을 식별해낸다. 근대 노동자의 이 자유는 “노동자가 자신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하지만 이 주인이라는 형상은 언제나 ‘소유에 의한 주인’과 ‘조직에 의한 주인’으로 이중화되어 있다. 시장의 편에서 호명은 노동자에게 언제나 탈출 가능성과 자유를 제시하는 반면, 조직의 편에서 호명은 명령의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