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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부터 '동안' 열풍이 부는 것 같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텔레비전에 나타나 자신이 젊게 관리한 얼굴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어려보이는 얼굴은 그 사람의 완벽한 자기관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타인의 부러움을 사게 한다. 나도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동안으로 소개된 사람이 알려준 '비법'을 남몰래 따라하곤 한다. 그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 가지 느낀 점은, 유독 동안을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 여자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50대 여자가 20대 여자처럼 보이는 게 너무나 아름답고 칭찬할 만한 일일까? 제 나이 대에 맞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앤 G. 토머스는 삼십여 년 동안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심리치료를 해온 전문가이다. 그녀 역시 어느 날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다 너무나 나이든 여자를 발견하고는 한 마디 말을 건넨다. "너, 늙었구나."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 앞에 태연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늘어가는 주름살에 질색하는 이유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 때문일 테고 나이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책의 저자는 민담, 신화, 전설속의 이야기와 실제 상담했던 사례들을 접목시켜 나이듦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영원히 살고 싶은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일 깊이 감정이입을 했는데 아마 그 이유는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 일거다. 왜 나이 드는 것을 무서워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이들 수록 '죽음'과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내 경우에는,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죽어버린다면-없어져버린다면-애초에 세상에 태어난 이유조차 희석되어 버리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각기의 이유가 있겠지만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몸에 좋다는 것에 귀가 번쩍 했던 사람이라면 나의 이유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들은 한 결같이 이런 식이다. "나 병인가 봐, 변비에 걸렸어, 기운이 없어, 통증에 시달려, 건망증이 심해졌어, 피곤해, 늙었어" 이에 반해 실제로 나이가 훨씬 더 많은 다른 여성들 중에는 삶으로 충만해 보이는 이들이 있다....이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몸에다 결박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자신을 '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점점 늙어간다. 정체성을 영혼에 두는 여성들은 다른 식으로 나이가 든다. 나이들 수록 좋은 점은 실수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겉모습에만 치중해서 내면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빈껍데기만 남는다. 나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라서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렇게 나이 먹었는데....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노화는 진행된다고 믿는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고약한 노파로 늙어갈지 혹은 주름살 하나까지도 아름다운 노부인으로 늙어갈지는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는다. 이미 앞서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속 이야기를 남겨준 선조들이 일러주고 있지 않은가.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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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제일 먼저 느끼는 변화는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점일 테다. 게다가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나 힘든 일을 극복하는 능력이 감퇴된다. 특히나 여성의 노화는 얼굴을 비롯해 몸매 등 외모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나이 듦에 대해 더 민감할 터.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물론 아름다운 노년, 행복한 나이 듦, 노년의 지혜 등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말도 있지만, 이는 듣기 좋은 말일 뿐 당사자들이 느끼는 점은 큰 좌절일 뿐이다. 반면 나이가 들어서도 평화롭고 내적으로 풍요로운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점 때문에 이런 성향을 갖게 되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이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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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간접체험 혹은 치유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가슴으로 느꼈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만 해도 책이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깨달음'의 기쁨을 맛본 뒤로는 전적으로, 진심으로 독서의 기능을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찬양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물론 아주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책을 여럿이 읽더라도 그것이 주는 느낌이나 영향은 다르다는 점이다. '적시에(right time)'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어찌보면 나에게 적시에 찾아온 책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인 내용이 적시라기 보다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의미의 적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가 나이 든 여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가족, 즉 원가족의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성격이 다시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고, 혹시 나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예전에 소그룹으로 의사소통 수업을 받으며 내면의 심리가 의미하는 바와 원가족의 영향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변하면서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도 변하는데 나는 예전에 듣고 느꼈던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표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친 김에 심리학에 대한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았고 지금은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으니 하나의 계기가 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신화나 전설, 민담(즉 옛이야기)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의 말이나 행동을 읽어내며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잘 풀어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옛이야기는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징하는 바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꼭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꽤 있지만 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해석하기 나름일 테니 저자의 해석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주는 내담자의 이야기가 더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몇 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당신의 삶에 대해 한탄하셨던 적이 있다. 당시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탄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지고 괜히 그러신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마음을 읽어드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철이 덜 들었던 것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였을 테고. 지금은 나이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지만 당시만 해도 무엇을 하든 '나이'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때 참 힘드셨겠구나 싶다. 힘들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 후반에 와 있는데 남은 것은 하나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고 '나'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을 때의 허탈감과 허무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과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게 참 죄송하다. 이제 깨달았으니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워낙 무뚝뚝한 딸이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역자와 이야기하던 도중 지금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 정말 그렇다. 이런 책을 통해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책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 환경이 이루어졌으나 그 분들은 이미 그것을 누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종종 그러신다. 젊었을 때 생각하기로는 나이 들면 책이나 실컷 보며 여유있게 살려고 했는데 책을 조금만 보면 머리가 아파서 읽을 수가 없다고(그래서 드라마를 엄청 보시는 건가). 이런 책을 읽고 더 확장해서 다양한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독서로 치유가 가능할 텐데,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는 엄마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손자 손녀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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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나이들어 성장하는 것에 대해 이 책은 신화, 전설, 민담을 통해 접근한다. 융의 분석심리학이 바탕이다. 설화뿐만 아니라 심리치료사인 저자 자신이 경험한 여러 사례들도 같이 다룬다.
20대때부터 친척이나 선배 언니뻘 되는 분들이 40세를 넘어가면서 이상하게 변하고 - 심지어 망가져가는 이유가 참 궁금했다. 남편과 아이에만 매달려 자신을 잃었다며 한탄하던 언니들이, 자녀 성장 후 본격적으로 자기 삶을 즐기기는커녕 자식(특히 며느리)을 괴롭히며 더욱 집착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리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남편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것도 웃겼다. 왜 원래 공주였던 이들이 나이가 먹으며 계모 마녀 왕비가 되어버린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얻고저 이 책을 골라 읽었다. 내향적인 여자들은 육체적으로나 내적인 방식으로 이 억압의 효과를 더 쉽게 경험한다. 이런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방기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나 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맞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고유한 자아의 측면들을 희생했거나 잡아먹혀 온 것이다. 결국 내향적인 여자는 질병이나 기력 고갈의 무게에 눌려 무너져 버릴 수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스스로 –내적 마녀-를 통제한 나머지 고역에 대해 충분히 방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스스로를 마모시켜 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것이 이 무시무시한 에너지에게 게걸스럽게 잠아 먹히는 내향적 여자들의 특징이다. 반면에 외향적인 여자들은 이 마녀, 즉 다크 페미닌의 인격화된 존재를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다. 외향적인 여자는 남을 통제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 - 208쪽에서 인용 나이듦의 또 다른 과업 중 하나는 스스로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노년 여성들은 정서적 흉터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 다친 이후 내내 껴안고 있다가 무의식으로 묻어 버렸던 상처들이 치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들 중 많은 수가 마더링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법은 전혀 익히지 못했다. 우리는 수 세대 동안 여자가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지니고 살아왔다. 이기적이라고 하는 이 관념은 여자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며, 건강하게 나이드는 일에 대한 준비를 지극히 제한해 왔다. 여자들이 자신의 필요를 무시해 버리면 스스로의 엄마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는 무기력해져 버린다. - 246쪽에서 인용 유년기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상처는 치유될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여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다른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받았던 것 같은 완전한 사랑을 갈망한다. 여기에는 좋은 엄마란 ‘무조건’사랑해 주고 내주는 사람이라는 판타지가 깃들여 있다. - 247쪽에서 인용 우리는 상처 입은 경험이 퍼스낼리티에 미친 효과를 모른 채 틀에 박힌 행동을 하곤 한다. - 251쪽에서 인용
그러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만으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해법은 행동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줄 아는 것이다. 내적으로 무엇이 진행되는지 인식할 줄 아는 사람만이 틀을 깨고 행동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 - 252쪽에서 인용
내가 막연히 느꼈던 문제점과 그 원인들을 전공자의 제대로된 문장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여성 영웅의 탄생>과 더불어, 만족스런 독서 경험을 했다. 미국 여성들도 엄마와 딸의 관계에대해 이렇게나 고민을 많이 하다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인간 성장의 기본 과업과 문제 패턴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 고민이 시시해졌다.
설화와 피상담자의 예, 가상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경험과 각성이 종횡으로 얽혀서 좀 읽기 산만하다. 게다가 예로 든 설화들이 익숙하지 않아 이 책의 장점이 깊이 와닿지 않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이들어가면서 성장을 고민하는 내 또래 다른 여성 친구분들께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내적으로 무엇이 진행되는지 인식할 줄 아는 사람만이 틀을 깨고 행동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 명심 또 명심하고 계속 읽고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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