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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느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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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몰락한 귀족이었던 아버지와 대지주의 딸 사이에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2년 후에 어머니를 잃고, 7년 후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 후, 그는 우연 곡절 끝에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던 여인 ‘타치야나’의 손에서 성장한다. 19살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인생을 살고자 노동운동을 벌이지만 경험 없는 이상주의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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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몰락한 귀족이었던 아버지와 대지주의 딸 사이에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2년 후에 어머니를 잃고, 7년 후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 후, 그는 우연 곡절 끝에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던 여인 타치야나의 손에서 성장한다. 19살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인생을 살고자 노동운동을 벌이지만 경험 없는 이상주의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리고 만다. 모스크바로 돌아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형의 권유로 사관후보생이 된다. 이후 군 복무 시절 본격적인 집필활동에 들어가 작가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세워나간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불멸의 명작을 탄생시킨 후, 그는 깊은 허무주의에 빠져들며 그간의 자신의 삶을 허영과 욕망, 오만의 세월로 평가하고 신학과 복음서 연구에 깊이 몰두한다. 이때 그가 쓴 복음서가 바로 톨스토이 요약 복음서(The Gospel in Brief)이다.

그는 타락한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주의로 오염되기 전의 원시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예수는 소크라테스같이 유식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니라 글도 모르는 군중 앞에서 참된 삶의 길을 설교하였음을 지적하며 과거의 잘못된 해석을 걷어내고 불순물로 오염된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보이는 가르침 자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을 신성불가침의 절대 경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성경의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를 분석해 살아있는 예수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오염된 것이라 보이는 타인의 목소리를 털어내고 태워 버린다. 그리고 예수 사후에 추가된 가르침을 어리석다 비판하고 예수 자신의 것이라고 기록된 그의 말과 행동 안에서 연구하는 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1945년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도마복음을 통해 예수의 말씀 자료가 존재함이 입증되면서, 19세기 말에 자신의 요약 복음서를 펴낸 그의 의도는 비로소 그의 놀라운 영적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의 복음서에서 제외된 내용은 실제로 도마복음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네 복음서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한 예수의 참 말씀은 기적과 같은 신비적 요소와 예수의 신성(神性)들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의 복음서에는 마태와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탄생 설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극적 절정으로 마무리된다. 네 복음서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인정받는 마가복음서처럼 탄생 설화도, 부활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사실 8(“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며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로 마무리되며 9절 이후의 내용(부활)은 이후 추가된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여긴다.)

예수가 바라고, 이 세상에서 만들고 싶었던 세상은 모든 이가 평등하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회였으며, 우리가 육신의 편안함과 쾌락을 지양하고 영혼의 각성을 이룰 때 가능함을 전달하려 노력하였다. 톨스토이의 복음서는 일단 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예수의 설교 대상은 글도 읽지 못하는 민중이었기에 현학(衒學)적 미사여구가 없다. 탕자, 겨자씨, , 무화과나무와 포도원 주인, 좁은 문, 길 잃은 양, 무익한 종, 등불의 비유 등, 비유를 통해 쉽게 이해시키려 한 예수의 뜻을 최대한 충실하게 적용하려 노력한 톨스토이의 의도가 분명히 보인다. 어떠한 신비주의적 접근도 없다. 그러하기에 그의 복음서를 읽고 나면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그 메시지가 분명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성경에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절대성을 부여하다 보니 그 어떤 숨겨진 메시지(Bible Code)가 있을 것이라 믿고 평생을 바치는 우매한 사람들이 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온 메신저가 그 뜻을 왜 암호화하며 숨기려 노력하겠는가? 톨스토이의 복음서는 예수의 메시지 전달에 정말 충실해지려 노력한 유일한 복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d*****e 2021.03.30.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