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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말로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할 때. 올여름, 과거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따사롭던 모든 기억과, 폭염이 휘날리던 시간을 시원하게 해주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것들에게 더 이상 나를 저당 잡히지 말아야 하겠다. 그렇게 올여름은 특히나 무더웠다. 가슴이 탔고, 어떡해도 가닿지 않는 스산함으로 영혼마저 시리고 시리었다. 나의 실수였다. 한여름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닮았던 바람을 욕심 냈던 죄, 혁혁한 고독을 감추지 못한 죄, 그리하여 지나치게 스스로를 발가벗긴 죄. 그저 작은 이해면 되었던 것인데, 말없는 공감이면 되었던 것인데, 지레 겁먹은 사슴처럼 헛도는 풍차를 나는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내 통증을 부담으로 느끼는 여름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름아, 안녕!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후의 보람 있는 활동'이 아니다.
본서는 저자와 인연을 맺은 사람과 장소(화가 세잔과 반 고흐, 알베르 카뮈, 장 지오노, 마르셀 프루스트, 조르주 상드, 말라르메 등의 작가, 그들의 작품(시공간적 배경)에 얽힌 이야기(또는 소회)가 주가 되어 즐겨 찾던 서점 등), 음식 등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로방스를 시작으로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를 거쳐 베네치아 등, 개중엔 저자가 젊은 시절 이미 답사했던 곳도 몇 있었는데, 과거의 그곳들은 현재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세월이 흐르면 뭐든 변하거나 퇴색할 것을 알면서도 보는 당시엔 영원할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작가는 곰곰 추억하며 새삼 덧없음을 느낀다. 가난 속에서 꾸린 한 가정의 가장과 남편으로서 큰딸을 임신한 아내와 누볐던 과거 시공간과의 조우는 어딘가 공허하고 쓸쓸하기 마련이다. 추억할 것이 많다는 것은 으레 그렇다. 중년이 훨씬 지난 나이에 나의 20, 30대를 회상한다는 것은, 또 그 시절을 뭣모르고 다만 견디게 해 준 일과 풍경, 사람을 소환한다는 것은 살아내느라 잊었던 소박하나 결이 고운 정서와의 비장한 만남이다.
독서하는 내내 색색의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인 노력의 무용함을 작가의 그것에 비할까. 거창한 허장성세의 글을 쓰고 싶었던 초심이 무력해진다. 그렇게 아무런 결과 없이 2주를 버텼고, "커피값 정도에 불과한 헐값으로 구입한 책꾸러미를 안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던 저자와 달리 일주일은 너끈히 해결할 수 있는 식대로 구입한 책꾸러미를 보며 나는 부질없는 만족감과 흥분을 느껴야 했다. 삶과의 전의를 상실한 채, 카뮈와 장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서간집을 사 읽어야겠다던 다짐을 상기하며 서고에서 까뮈의 『결혼, 여름』과 그르니에의 『섬』을 다시 꺼내 들었다.
새로이 알게 된 지식이나 정보를 뽑아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에세이의 소소한 감흥은 그런 게 아니다. 이질異質을 독백의 섬처럼, 불행을 행복이나 운명으로 체화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고독의 장소 투르농을 떠나면서 말라르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곳에서 불행하다는 행복을 맛보았다. 그 때문에 나의 탐구와 작업은 더욱 집요해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이렇듯 외딴섬의 반쪽을 참 많이도 숨겨놓았다. 지구 곳곳에 인연이 되기는 희박하나 나와 비슷한 고적함을 겪는 이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 이토록 절절히 위로가 되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김춘수의 시 『꽃』이 말라르메의 무無 시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니, 20년 전 명시집을 꺼내 찬찬히 낭송해 볼 일이다. 그리하여 이름을 불러 나에게로 와 비로소 꽃이 될 고독과 포옹해야겠다.
오노레 드 발자크.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글쓰기에 몰두했던 작가. 『고리오 영감』(임희근 역, 열린책들)을 시작으로 『발자크 평전』(슈테판 츠바이크 저, 안인희 역, 푸른숲),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역, 을유문화사) 등을 읽곤 형제애 비슷한 동질감(과 동정심)을 느꼈더랬는데, "작업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셨다"는 부분에선 특히나 그랬다. 어머니와의 초기 애착형성에 실패한 그는 꾸준히 글을 쓰는 생계형 작가로, 17년간 한스카 부인에게 구애한 끝에 결혼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과로사한다. 그의 이런 삶을, 작가는 한 문장으로 일갈한다. "그는 살기에 바빴고 쓰기에 바빴고 죽기에 바빴다."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묘사했던, "언제나 슬픔과 육체적 무기력과 질병과 어떤 고정관념과 신앙심이 두루 뒤섞인 애매한 상태에서 자리에 누운 채 두 번 다시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레오니 아주머니를 상상할 필요도 없이 이글을 마쳐야겠다. 그녀가 곧 나이므로. 나에게 [여름의 묘약]은 늘 그렇듯 고독의 스프링클러다. 어떤 말도 시간도 계절도 용감히 거슬러 가열차게 흩뿌려대는 물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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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려나보다.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나는 자꾸 햇살을 찾고만 싶다. 올 여름 북유럽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계절상 여름이어도 이 지역의 기온은 30도를 넘나드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 여름만은 예외였다. 어딜 가도 더웠으니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 풍경이나 거센 여름 바람에 두들겨맞은 듯 두 뺨이 불그레지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날이었다. 그런 여름이 가고 있다. 고맙게도 올해 마지막 여름길을 뜨거운 햇살이 배웅해주고 있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서 그럴까, 그렇게 더운 날을 선사하고도 어디에 그렇게 눈부신 햇살이 남아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남김없이 던져주고 있다. 나는 새삼스럽게 햇살을 만끽하며 한 권의 책을 읽는다. 여름의 끝자락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여름의 묘약] 김 화영 선생님의 에세이로 20대 남프랑스에서의 유학시절을 그린 책 [행복의 충격]에 이어 40년이 흐른 최근에 또다시 찾아간 프로방스에서 그가 거쳐간 사람들, 지금은 사라진 사람들과 풍경과 음식과 여름빛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20대를 보낸 기억과 현재의 변화된 모습이 물처럼 그려지는 글을 읽고 있자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상념에 젖지 않을 수 없다.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흘러가고 있다. 물꼬가 트인 곳이 언제였을까, 어디였을까, 나는 명망있는 불문학자의 인생 물꼬가 바로 프로방스에서 트였으리라 추측해본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함께 한 공간이란 잊을 수 없는 법이다. 그 곳에 청춘이, 열정이, 사랑이, 치열했던 문학공부가 함께 했음을 글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루르마랭 카뮈의 무덤앞에서 그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죽음을 논하다보면 햇빛으로, 삶의 기쁨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문장앞에서 잠시 글읽기를 멈추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불의의 사고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던 알베르 카뮈가 글쓰기를 멈추고 잠시 시선을 던진 풍경과 그 발자취가 남아 있을 그 곳으로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꿈꿔본다. 고갱과 결별하고 그 광기를 참지 못해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를 감금했던 정신병원에, 사람들은 그를 미쳤으니 길거리에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고 했고 그가 죽자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러 문화라는 단서를 붙여 그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람의 생애동안 끊임없이 진행되는가보다. 40년전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왔으나 이제는 그의 아이들이 장성하고 결혼을 해서 대가족이 프로방스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낸다. 사위, 손주를 비롯해 사돈내외까지 초대를 하여 시프레 나무 두그루가 양쪽을 받치는 시골 농가에서 프로방스의 여름을 맞는다. 한낮의 빛나는 여름빛이 저녁무렵 은은한 불빛에 사그러들고 캉탈루멜론과 파르마장봉의 뜻밖의 콤비네이션을 맛보며 로즈와인으로 무르익어가는 밤분위기를 상상해본다.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기억해본다. 남유럽 지중해를 가까이 한 도시에서 드러내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문학자이기에 불문학서에 등장하는, 특히나 한국어 번역에 이름을 올린 저자이기에 불문학도가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이해와 공감하는 부분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젊음을 보냈던 공간에 다시 찾아와 그 때 자신을 돌보며 그 곳의 사람들과의 인연을 둔 적이 없다면 기억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을 지 모른다. 김 화영 선생님의 학구적인 청춘을 그린 [행복의 충격]이 그래서 더 현학적이었다면 [여름의 묘약]은 초로에 젖게 하는 쓸쓸함, 옆에 있는 파트너의 소중함, 연륜이 쌓일수록 빛이 나는 감성, 문학적 성취감이란 가만히 앉아 책을 안고 있으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끌어안아야 비로소 만져지는 고감도의 터치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아름다운 날들, 여름의 끝, 나는 이 여름을 이렇게 보낸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 여름의 햇살과 함께 마지막 뜨거움을 나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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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랫동안 읽었다. 김화영 교수님의 산문집 <여름의 묘약>이다. '김화영' 작가 박웅현 『책은 도끼다』에서 머릿속에 강렬하게 印 박힌 이름이었다. 프랑스 문학, 알베르트 까뮈, 지중해 문학, 햇살과 프로방스...... 하면 딱 떠오르는 이름이 되었고 어떤 문체로 썼고, 번역했는지 궁금해서 무담시 검색했던 이름이다. 알베르트 까뮈의 책들을 거의 다 번역하셨다. 프랑스 문학 번역가로서의 인지도가 꽤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찮게 검색을 하던 중 산문집 하나 눈에 띄었다. 더위의 날을 세운 올해 마지막 여름 즈음에....
김화영 교수는 1969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혼자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했다. 프랑스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언제나 프로방스를 향해 있었다. 그 빛과 향기는 그리움이 되어... 1977년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 프로방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2011년과 2012년 두 번의 여름 휴가를 프로방스에서 보냈다. 그 프로방스에서 파리까지의 여정들이 <여름의 묘약>에 담겨져있다.
김화영 교수와 함께 하는 프랑스 문학 기행이라 이름 붙히고 싶다. 널리 알려진 도시가 아닌 목가적인 전원의 풍경이 가득 담긴 마을 둘레길 여행 같다. 프랑스 작가와 화가, 김화영 교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인적은 드물고, 고즈넉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곳을 향해 가는 마음은 얼마나 설렘 가득일까? 우리 나라에서는 뭣이 입소문 나거나 어떤 사람이 유명하다고 하면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 곳은 관광 타운으로 만들려고 안달할진대, 프랑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의외로 그들은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현재 그 곳에 살고 있는 작가와 화가들의 자녀, 후손들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느껴졌다. 그들의 명성이 훼손되지않고 보존되길 원하는 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네랑 참 다르구나!!! 부러웠다.
작가들의 작품이 쓰여진 배경이 되었던 장소나, 작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들을 찾아가는 길은 늘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는가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돌아서는 발걸음은 항상 쉬이 떼어지지 않나보다. 여행 중에 작가들의 책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김화영 교수가 번역했던 책들을 메모해놓고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해본다.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 ●장 지오노 『나무를 심는 사람』 ●유학시절 지도교수 레몽 장 『책 읽어주는 여자』 작가들의 책과 관련된 장소를 향해 찾아가는 여정, 들렀던 마을에서 책을 통해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들을 마주하는 것은 굉장히 가슴 뭉클했을 것 같다. 작가들의 생전 이야기와 쓰여진 책들, 장소의 환상적인 만남이 주는 감회는 매번 다를것이다.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한 귀퉁이에 딸기, 수박, 바나나 같은 모양을 수놓은 시골 행주 한 세트를 사서 8월에 결혼할 둘째딸에게 선물하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촌스러운 프랑스산 행주와 일본 산간의 온천여관에서 그냥 가져가게 하는 얅은 면 수건 따위를 유난히 좋아한다. 물기를 쏙쏙 잘 빨아들이는데다 얇아서 세탁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런 뽀송뽀송한 행주로 포도주 잔을 투명하게 닦아 그 청결함을 빛에 비추어 보노라면 햇살이 날아와 탱탱 울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나는 늘 이런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김화영 교수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와, 바로 저런 문장이다. 너무 맘에 들었다. 그의 문체와 생각이 바로 보이는 듯 했다. 책 읽는 이유가 된다. 그 사람을 알고, 그의 탁월함을 규정하는 문장을 찾아낸 내가 그저 대견스럽다. 지중해 빛 나는 '햇살' 문학이 따갑고 거침없어서 언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느낌, 알 것 같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생각하니 더 많이 고개 끄덕여진다. 내가 읽고 싶었던 부분도 어쩌면 지중해 문학의 단면이 아니었나싶다. 광고쟁이 박웅현 작가님 책의 영향력이 엄청 크다는 것을 한번더 느낀다.
책을 통해서 책을 알아가는 여정이 많이 흥미롭다. 연결고리마냥.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보니 읽은 책들 속에서 소개된 책들이다. 이런 나름 탁월한 방법은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재밌네. 아니 점점 재밌어지네. 책은 정말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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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을 만났다. 일단, 이 교수님이 늙은 여성 교수가 아닐까했는데, 남자분이라서 살짝 놀랐다. 프랑스어라는 언어의 특성, 그리고 그가 번역해왔던 작품, 그리고 성함까지. 나는 불문번역은 가급적 김화영 교수의 책을 선택하는데...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다고 생각하니...나의 무지함에 살짝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두가지 측면에서 매력적일 것 같다.
먼저, 그간 김화영 교수가 번역했던...읽었던...사랑했던...혹은 추억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문학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다니는 문학 기행 같은 면이 좋았다. 비록 내가 김화영 교수와 동행하고 있지 않고, 사진도 몇 컷 실려 있지 않아 오롯이 그의 글만 쫓아가고 있는 탓에 종종 지루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까뮈나 프루스트가 언급 될 때에는 눈이 초롱 초롱 맑아질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들에 관한 일화도..아마 이 책이 아니였다면, 절대 알 수 없었으리라.
문학 기획 측면 외에...불문학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자취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사실, 지난 주에 날씨가 너무 덥고 짜증나서 왈콱 울음이 날 지경인데, 이 책을 보고 있자니..은근 빈정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뭐..이렇게 한가하고 팔자좋은 인생이 다 있담. 나는 내가 갖을 수 없었던 그의 기억에 대해서 살짝 질투심, 혹은 내 처지에 대한 비관도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나쁜 생각을 했던 것은 잠깐 이였고, 30여년간의 그의 번역, 혹은 옛추억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이제는 조금은 나이들어 지난 날은 추억하고픈 한 남자가 보여, 잠시 짠~ 하기도 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책은...그 자체로 참 훌륭하다. 문학계에서 한 획을 그어버린 작가들, 작품들에 대한 문학 기행이 김화영 교수의 지난 날과 버무려져 정말 매력적으로 쓰여져있다.(그래서 읽어보지 않은 어떤 작품들은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덮고나니..몇 가지 다짐을 하고 싶다.
1.꾸준히 불문학 책을 읽고, 나도 언젠간..저렇게 문학 기행을 해보겠다. 2.전공을 하진 않았지만... 수년 내로...나도 애정어린 공부하고... 불문학을 원서로 읽어보겠다. 3.김화영 교수의 글에서 풍겨 나오는 단정함. 나도 저렇게 향내나는 사람이 되어보겠다.
뭐 이 정도.
덧붙임::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올가을엔 꼭 다시 한 번 더 읽어야지.
. 까뮈와 관련하여 죽음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반어적으로 말하건대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 " 그래도 부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 라고 까뮈가 말했듯이 죽음을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삶의 기쁨으로 돌아오게 된다. -10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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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이 작가의 책 '행복의 충격'과 잇닿아 있다. 읽는 내 상황 탓인지, 내용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집중은 이 책이 더 잘 되었다. 읽는 동안 내 기분이 상승하였고, 그래서 좀 행복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과 이 책을 보면서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생각하게 해 준 것도.
이 작가처럼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부를 잘하고, 프랑스 문학에 남들보다 관심을 갖고, 프랑스어도 잘하고,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 프랑스문학으로 박사 연구를 하면서 프랑스 작가들과 교류를 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와서는 프랑스 작가들의 책을 번역하고, 번역한 인연으로 다시 그 작가나 작가의 후손들과 교류하고, 그 모든 과정과 연결되어 있는 프랑스 땅을 둘러볼 수 있는 삶. 감히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과정 속의 수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멋있는 삶만 동경해도 부러움이 저절로 일어난다. 참 좋을 것이라고.
품격. 삶도 인격도 분위기도 그것을 품고 있다. 글과 자연과 문화를 상대로 하면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지도 않고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능력도 있어야 할 것이고 주어진 환경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부러운 만큼 거리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나로서는 이웃으로도 만나기 힘들 사람일 것이므로.
김화영 교수의 글을 놓치지 않고 간간이 읽어온 게 그저 다행이다. 장 그르니에를 알았던 것도, 프로방스를 알게 된 것도. 그리고 나의 행복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더 흐뭇하다.
<이 책으로 다시 내게 들어온 소설>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뮈, 최초의 인간 토마스 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레몽 장, 책 읽어주는 여자
38 문학은 삶에 형태와 윤곽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를 참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88-90 카뮈는 그의 시적 산문 「사막」에서 이렇게 썼다. “이미 수없이 많은 눈들이 이 풍경을 응시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데 내게는 이 풍경이 마치 하늘의 첫 번째 미소와도 같이 여겨졌다. 그것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놓는 것이었다. 나의 사랑과 이 돌의 아름다운 절규가 없다면 모든 것이 다 무용하다는 것을 이 풍경은 내게 확신시켜준다.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이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햇살에 따뜻해진 돌, 혹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흠씬 키가 크듯 위로 솟구치는 시프레 나무, 바로 그것이 ‘이치에 맞다’는 말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금 그어주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이다. 유일한 세계란 다름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한다. 그것은 나를 저 극한에까지 떠밀어간다. 세계는 분노하지 않은 채 나를 부정한다. 164 길고 긴 여로의 끝. 마침내 도착한 집.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서늘한 물로 손과 얼굴을 식힌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덧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오! 목을 쓰다듬는 바람의 가벼움이여, 날아갈 것 같은 홀가분함이여! 나는 여행에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수단으로서의 긴 여행은 끝났다. 이제 설레는 기대와 즐거움의 시간만이 망망대해처럼 앞에 펼쳐진다. 움직임은 수단이고 머무름이 비로소 삶인 것인가? 아니, 움직임 속의 짧은 머무름, 그것이 삶의 기쁨인지도 모른다.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오른발이 아직 뒤에 있을 때 그 중심에 머무는 몸의 짧은 순간, 전신의 모공을 열어 빨아들이는 세상의 빛과 냄새와 소리와 촉감, 그것이 여행이다. 210 이 고장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빛과 그늘의 반점 사이로 미풍처럼 흔들리다가 고이고 고였다가는 흐르는 우리들 저마다의 삶의 순간과 순간이다. 그 위에 내려앉는 짧은 여름빛, 그 덧없음이 바로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아닐까. 나비의 날개처럼 가늘게 떨리는 그 빛 위에 마음을 고즈넉하게 부어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 225 어느 날 카뮈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 하여간 그렇기는 해도 역시 태양은 우리의 뼈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 뼈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동안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찬미할 일이다. 363 아무도 없는 이런 시골 간이역과 작은 역사의 이마에 단정하게 붙인 오래된 간판, 그리고 역 앞으로 소실점을 향하여 하염없이 뻗어가는 철길을 보면 왜 가슴이 저릿해지는 것일까?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떠나간 사람들과 잃어버린 시간들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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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책의 번역자로 유명한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님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뒤로 분명한 내 취향이 하나 더해지고 내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 작은 변화는 1975년에 출간되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첫 번째 산문집을 읽기 위해 다시 도서관에 발걸음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그 책을 알게 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얼마 전에 재 출간된 그 책을 새로 구입해 2번째 정독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던 중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었던 글이 묶여 출간된 이번 책 <여름의 묘약>을 먼저 읽고 나니 저자에게 흘러들었던 세월만큼이나 아련한 기억에 머무는 <행복의 충격>과 연관되어 그보다 훨씬 어린 나에게도 두 책 사이의 세월이 느껴져 묘한 기분을 일깨운다. 책은 2011년과 2012년 두 번의 여름을 보낸 프로방스에서의 나날이 펼쳐진다. 예전의 책이 청춘을 말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이미 자식을 결혼시키고 직업 전선에서도 은퇴한 노년의 시선이 드러난 부분이 많아 고요하면서도 한편으론 무르익은 삶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가족들과 함께 한 눈부신 나날들과 오래도록 알고 지낸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쉽게 들을 수 없는 프로방스만의 삶과 음식,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저자의 전공인 문학을 통해 여러 유명 작가들의 일화와 좋은 문구, 책 얘기까지 프랑스 문학을 사랑하고 즐기는 독자들에겐 여러모로 즐거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점은 바로 김화영 교수님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의 언어로 어디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작가들의 개인적인 비하인드스토리나 문학과 관련된 얘기뿐만 아니라 원래 책을 읽을 때 어딘가를 찾아가는 지리적 설명이 길어지면 부연 설명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종이 낭비라는 생각에 좋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특히나 이번 책에선 매일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찾아가는 길 하나하나가 무척 상세하게 묘사되어있지만 어느 하나 없어서는 안 될 단어처럼 그곳의 풍경을 생생히 그려내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오면서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어디에서나 예민하게 느끼는 감수성과 그것을 표현하는 글이 더해져 상상력을 더 증폭시켜 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프로방스의 맛과 전경을 예민하게 느낀 감수성을 그대로 잘 살려낸 글이 한 여름에 바캉스를 떠난 듯 그곳의 햇살과 풍경, 냄새와 맛이 느껴지는 듯 생생하고 감각적이게 느껴져 때마침 휴가철에 읽은 책이 바캉스를 대신하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프로방스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여행 서적은 아니지만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어떤 책보다도 프로방스를 사랑하고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이 책과 함께라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프로방스를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든다. 끝으로 프로방스의 눈부신 햇살이 삶의 모든 요소들을 그늘 없이 비춰주어 ‘작은 기쁨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법’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반어적으로 말하건대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그래도 부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라고 카뮈가 말했듯이 죽음을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삶의 기쁨으로 돌아오게 된다. (p.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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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살아간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느림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가장 알맞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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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여름빛 . 과 프랑스문학 . 에대한 작가의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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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만에 다시찾은
청춘의발자국이 짙게찍힌 . 프로방스
" 꿈과같았던빛이여 , 너무나짧았던 우리의생생한여름빛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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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듯하면서 예쁜문장이많아 읽는내내즐거웠지만
프랑스문학에대한 지식이부족한나에게 이책은버겁기도했다
- 매순간의여름빛은 영원한현재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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